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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本書紀」의 편찬과 백제 관련 문헌 연구 = A Study on the Relation between the Compilation of "Ilbonsoki" and Historical Records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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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1746581

    • 저자
    • 발행사항

      청원군 :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09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 역사교육전공 , 2009. 8

    • 발행연도

      2009

    • 작성언어

      한국어

    • 주제어
    • 발행국(도시)

      충청북도

    • 형태사항

      vi, 203 p. : 삽도 ; 26 cm

    •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 김은숙
      부록 : 1. 백제왕 계보. -2. 일본서기 백제왕 관련 기사. - 3. 일본서기와 삼국사지 백제 왕력 비교
      참고문헌 : p. 167-184

    • 소장기관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 한국교원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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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日本書紀」의 편찬과정에서 百濟 관련 문헌이 어떻게 이용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百濟 관련 문헌의 사료적 성격을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각 문헌의 편찬자 및 편찬과정 그리고 「日本書紀」에 이용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른바 百濟三書의 하나인 「百濟記」는 百濟王氏인 善光과 망명백제인이 7세기 후반 일본에서 近肖古王~文周王대까지 百濟의 역사를 정리한 사서라고 할 수 있다. 善光 등은 당시 일본의 고대 율령제 국가에서 정치․사회적 지위를 보전하는 방법으로써 백제가 근초고왕 이래 天皇家에 봉사하였다는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이를 위해 百濟의 왕위계승을 천황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기술하는 등 百濟계 원사료를 변형시키거나 윤색하여 「百濟記」를 편찬하였다. 그 내용은 百濟가 근초고왕대 倭國에 복속함으로써 양국관계가 시작된 이후 天皇의 蕃國이었던 것처럼 기록되었다.
    「百濟記」 편찬에 기초가 된 것은 百濟 王歷 기사이다. 「日本書紀」 편찬자는 「百濟記」를 이용하여 神功紀․應神紀 기사를 만들고 나서 다시 중국 사서를 참고로 수정하였다. 그 결과 백제의 왕력도 120년 거슬러 올라가 놓이게 되었다. 「日本書紀」 편찬자는 「百濟記」와 중국측 문헌을 이용하여 神功紀를 일본의 대외관계 기사의 출발점이며, 그 출발이 韓半島諸國의 군사적 복속 및 국교의 개시로부터 시작되도록 구성하였다. 한편, 「日本書紀」 神功紀에 기록된 백제와 가야의 관계는 원래 5세기 전반의 이야기이다. 이것을 善光이 聖王의 회고담을 반영하여 근초고왕대로 소급시켜 「百濟記」에 기록한 것이다.
    「百濟記」 기사 가운데는 武內宿禰 후예씨족들의 전승과 함께 「日本書紀」 기사 구성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즉 「百濟記」는 전설상의 시대인 神功․應神시대와 그 시대의 활약상을 전승으로 가지고 있는 武內宿禰 후예 씨족 전승에 사실성을 부여해 주기 위해 이용되었을 것이다. 나아가 「百濟記」는 「日本書紀」에서 大和政權이 신라를 정토하고, 이어 백제를 복속시킴으로써 ‘任那’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일련의 대외 관계 구도를 완성시키는 데도 이용되었다.
    「百濟本記」는 善光이 681~691년 사이에 武寧王에서 威德王까지의 백제의 역사를 정리한 사서라고 할 수 있다. 「日本書紀」 編纂局은 加耶諸國의 멸망 원인과 가야에서 활약하였다고 전하는 왜국내 유력 씨족들의 활동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善光에게 백제 문헌의 편찬과 제출을 요구하였다.
    善光의 입장에서도 왜국내에서 다른 백제계 渡倭人들에 대한 우월의식 및 자신들의 사회적․정치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백제 문헌의 편찬을 받아들였다. 善光은 백제에서 정리된 자료를 바탕으로 가야의 멸망 과정과 이에 관련된 백제의 입장을 변호하는 사서로서 「百濟本記」를 편찬하였다. 그 내용은 백제가 加耶지역으로 진출하는 과정과 이에 대한 加耶諸國의 대응, 그와 관련된 高句麗․新羅 및 倭의 동향이다.
    持統朝(687~696)는 天武 10년의 「帝紀」와 「上古諸事」의 정리 작업을 확대하면서 본격적인 編年體의 역사를 서술하던 시대이다. 즉 「百濟本記」는 「百濟記」는 「日本書紀」 편찬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비중있게 다루어졌다. 두 문헌의 서술의 가장 큰 특징은 백제의 대외활동 및 영역확장이 모두 천황의 영향력 속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기술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百濟記」와 「百濟本記」는 「三國史記」에 보이지 않는 내용들도 많이 수록하고 있어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百濟新撰」은 7세기 후반 飛鳥戶造氏가 武寧王의 출생담을 중심으로 작성한 사서이다. 飛鳥戶造씨는 7세기 후반 자신들의 선조인 昆支에서 武寧王에 이르는 계보가 백제왕권의 정통이라고 주장하고자 「百濟新撰」을 편찬하였다. 그 내용은 蓋鹵王․文周王․東城王․武寧王의 즉위사정과 蓋鹵王․昆支와 雄略王과의 관계이다. 「百濟新撰」은 백제 왕력만 놓고 보면 「百濟記」와 「百濟本記」를 연결하는 사서라고 할 수 있다.
    「百濟新撰」과 「日本書紀」 본문과는 무령왕의 출생담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왕명의 표기 및 무령왕의 계보에 대해서는 크게 차이가 난다. 「日本書紀」 본문에서는 무령왕이 개로왕의 아들로 나오지만, 「百濟新撰」에서는 昆支의 아들로 나온다. 이러한 차이는 무령왕이 개로왕의 자식이라는 계보를 가진 倭君氏의 家記가 「日本書紀」 본문으로 구성되고, 이후 「百濟新撰」이 참고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여겨진다. 倭君氏의 家記가 「日本書紀」 본문으로 구성될 수 있었던 것은 백제왕씨인 선광의 영향이 작용하였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百濟三書는 「日本書紀」 편찬자료 이외에도 일본내의 백제계 후예씨족들의 정보를 제공하였다. 동시에 백제계 씨족의 家記을 넘어선 백제왕의 계보까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였던 것이다. 이에 家記가 아닌 「百濟記」․「百濟本記」․「百濟新撰」이라는 서명을 명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日本書紀」에 이용된 백제삼서에 대해서는 「日本書紀」 편찬과정뿐만 아니라 백제멸망 후 백제계 도래씨족이 일본에서 어떻게 존립하고 있었는가 하는 문제도 함께 고찰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日本世記」는 고구려 승려인 道顯이 왜국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서술한 당대의 역사서이다. 그 주요 내용은 백제의 멸망과 원인, 福信의 豊章 귀국 요청, 고구려의 멸망 과정, 그리고 藤原鎌足의 사망 관련 기사이다. 이러한 기사들 중에는 중국이나 한반도 자료에는 볼 수 없는 내용도 전하고 있어서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道顯은 백제 멸망 전에 왜국으로 건너 와 당시 국제사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왜국 내에서 藤原鎌足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정치․군사고문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과정에서 도현은 「日本世記」를 편찬하였는데 「日本世記」의 기록 범위는 현재 「日本書紀」에 남아 있는 기록범위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道顯은 「日本世記」에 자신의 관점과 사상을 「春秋左氏傳」의 표현들을 이용해서 나타내었다. 이것은 道顯이 사실을 중시하면서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는 「日本世記」의 서술 체계를 세우는 데 「春秋左氏傳」의 영향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日本世記」는 「日本書紀」 편찬자에게 역사를 기록하는 데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훌륭한 해설서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日本世記」는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 律令 및 國史 편찬에 깊이 관여하였던 藤原不比等에 의해 「日本書紀」 편찬에 이용되었을 것이다.
    이상의 백제 관련 문헌은 「日本書紀」에 인용될 때 分注로 인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문으로도 기술되었다. 「日本書紀」 편찬자는 「日本書紀」 본문을 구성하는 데 용어 및 내용의 통일보다는 백제 관련 문헌의 원문을 더욱 존중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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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日本書紀」의 편찬과정에서 百濟 관련 문헌이 어떻게 이용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百濟 관련 문헌의 사료적 성격을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각 문헌의 ...

    본 연구는 「日本書紀」의 편찬과정에서 百濟 관련 문헌이 어떻게 이용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百濟 관련 문헌의 사료적 성격을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각 문헌의 편찬자 및 편찬과정 그리고 「日本書紀」에 이용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른바 百濟三書의 하나인 「百濟記」는 百濟王氏인 善光과 망명백제인이 7세기 후반 일본에서 近肖古王~文周王대까지 百濟의 역사를 정리한 사서라고 할 수 있다. 善光 등은 당시 일본의 고대 율령제 국가에서 정치․사회적 지위를 보전하는 방법으로써 백제가 근초고왕 이래 天皇家에 봉사하였다는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이를 위해 百濟의 왕위계승을 천황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기술하는 등 百濟계 원사료를 변형시키거나 윤색하여 「百濟記」를 편찬하였다. 그 내용은 百濟가 근초고왕대 倭國에 복속함으로써 양국관계가 시작된 이후 天皇의 蕃國이었던 것처럼 기록되었다.
    「百濟記」 편찬에 기초가 된 것은 百濟 王歷 기사이다. 「日本書紀」 편찬자는 「百濟記」를 이용하여 神功紀․應神紀 기사를 만들고 나서 다시 중국 사서를 참고로 수정하였다. 그 결과 백제의 왕력도 120년 거슬러 올라가 놓이게 되었다. 「日本書紀」 편찬자는 「百濟記」와 중국측 문헌을 이용하여 神功紀를 일본의 대외관계 기사의 출발점이며, 그 출발이 韓半島諸國의 군사적 복속 및 국교의 개시로부터 시작되도록 구성하였다. 한편, 「日本書紀」 神功紀에 기록된 백제와 가야의 관계는 원래 5세기 전반의 이야기이다. 이것을 善光이 聖王의 회고담을 반영하여 근초고왕대로 소급시켜 「百濟記」에 기록한 것이다.
    「百濟記」 기사 가운데는 武內宿禰 후예씨족들의 전승과 함께 「日本書紀」 기사 구성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즉 「百濟記」는 전설상의 시대인 神功․應神시대와 그 시대의 활약상을 전승으로 가지고 있는 武內宿禰 후예 씨족 전승에 사실성을 부여해 주기 위해 이용되었을 것이다. 나아가 「百濟記」는 「日本書紀」에서 大和政權이 신라를 정토하고, 이어 백제를 복속시킴으로써 ‘任那’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일련의 대외 관계 구도를 완성시키는 데도 이용되었다.
    「百濟本記」는 善光이 681~691년 사이에 武寧王에서 威德王까지의 백제의 역사를 정리한 사서라고 할 수 있다. 「日本書紀」 編纂局은 加耶諸國의 멸망 원인과 가야에서 활약하였다고 전하는 왜국내 유력 씨족들의 활동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善光에게 백제 문헌의 편찬과 제출을 요구하였다.
    善光의 입장에서도 왜국내에서 다른 백제계 渡倭人들에 대한 우월의식 및 자신들의 사회적․정치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백제 문헌의 편찬을 받아들였다. 善光은 백제에서 정리된 자료를 바탕으로 가야의 멸망 과정과 이에 관련된 백제의 입장을 변호하는 사서로서 「百濟本記」를 편찬하였다. 그 내용은 백제가 加耶지역으로 진출하는 과정과 이에 대한 加耶諸國의 대응, 그와 관련된 高句麗․新羅 및 倭의 동향이다.
    持統朝(687~696)는 天武 10년의 「帝紀」와 「上古諸事」의 정리 작업을 확대하면서 본격적인 編年體의 역사를 서술하던 시대이다. 즉 「百濟本記」는 「百濟記」는 「日本書紀」 편찬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비중있게 다루어졌다. 두 문헌의 서술의 가장 큰 특징은 백제의 대외활동 및 영역확장이 모두 천황의 영향력 속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기술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百濟記」와 「百濟本記」는 「三國史記」에 보이지 않는 내용들도 많이 수록하고 있어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百濟新撰」은 7세기 후반 飛鳥戶造氏가 武寧王의 출생담을 중심으로 작성한 사서이다. 飛鳥戶造씨는 7세기 후반 자신들의 선조인 昆支에서 武寧王에 이르는 계보가 백제왕권의 정통이라고 주장하고자 「百濟新撰」을 편찬하였다. 그 내용은 蓋鹵王․文周王․東城王․武寧王의 즉위사정과 蓋鹵王․昆支와 雄略王과의 관계이다. 「百濟新撰」은 백제 왕력만 놓고 보면 「百濟記」와 「百濟本記」를 연결하는 사서라고 할 수 있다.
    「百濟新撰」과 「日本書紀」 본문과는 무령왕의 출생담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왕명의 표기 및 무령왕의 계보에 대해서는 크게 차이가 난다. 「日本書紀」 본문에서는 무령왕이 개로왕의 아들로 나오지만, 「百濟新撰」에서는 昆支의 아들로 나온다. 이러한 차이는 무령왕이 개로왕의 자식이라는 계보를 가진 倭君氏의 家記가 「日本書紀」 본문으로 구성되고, 이후 「百濟新撰」이 참고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여겨진다. 倭君氏의 家記가 「日本書紀」 본문으로 구성될 수 있었던 것은 백제왕씨인 선광의 영향이 작용하였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百濟三書는 「日本書紀」 편찬자료 이외에도 일본내의 백제계 후예씨족들의 정보를 제공하였다. 동시에 백제계 씨족의 家記을 넘어선 백제왕의 계보까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였던 것이다. 이에 家記가 아닌 「百濟記」․「百濟本記」․「百濟新撰」이라는 서명을 명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日本書紀」에 이용된 백제삼서에 대해서는 「日本書紀」 편찬과정뿐만 아니라 백제멸망 후 백제계 도래씨족이 일본에서 어떻게 존립하고 있었는가 하는 문제도 함께 고찰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日本世記」는 고구려 승려인 道顯이 왜국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서술한 당대의 역사서이다. 그 주요 내용은 백제의 멸망과 원인, 福信의 豊章 귀국 요청, 고구려의 멸망 과정, 그리고 藤原鎌足의 사망 관련 기사이다. 이러한 기사들 중에는 중국이나 한반도 자료에는 볼 수 없는 내용도 전하고 있어서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道顯은 백제 멸망 전에 왜국으로 건너 와 당시 국제사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왜국 내에서 藤原鎌足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정치․군사고문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과정에서 도현은 「日本世記」를 편찬하였는데 「日本世記」의 기록 범위는 현재 「日本書紀」에 남아 있는 기록범위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道顯은 「日本世記」에 자신의 관점과 사상을 「春秋左氏傳」의 표현들을 이용해서 나타내었다. 이것은 道顯이 사실을 중시하면서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는 「日本世記」의 서술 체계를 세우는 데 「春秋左氏傳」의 영향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日本世記」는 「日本書紀」 편찬자에게 역사를 기록하는 데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훌륭한 해설서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日本世記」는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 律令 및 國史 편찬에 깊이 관여하였던 藤原不比等에 의해 「日本書紀」 편찬에 이용되었을 것이다.
    이상의 백제 관련 문헌은 「日本書紀」에 인용될 때 分注로 인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문으로도 기술되었다. 「日本書紀」 편찬자는 「日本書紀」 본문을 구성하는 데 용어 및 내용의 통일보다는 백제 관련 문헌의 원문을 더욱 존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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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론 1
    • 1.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1
    • 2. 기존 연구의 문제점과 연구 방법 5
    • 3. 연구 내용 8
    • Ⅰ. 서론 1
    • 1.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1
    • 2. 기존 연구의 문제점과 연구 방법 5
    • 3. 연구 내용 8
    • Ⅱ. 「百濟記」의 사료적 성격과 성립과정 10
    • 1. 「日本書紀」에 인용된 「百濟記」 10
    • 1) 神功紀의 編年 문제 11
    • 2) 神功紀의 「百濟記」 16
    • 3) 應神紀의 「百濟記」 36
    • 4) 雄略紀의 「百濟紀」 45
    • 2. 「百濟記」의 성립과정 52
    • Ⅲ. 「百濟本記」의 사료적 성격과 성립과정 58
    • 1. 「日本書紀」에 인용된 「百濟本記」 58
    • 1) 繼體紀의 「百濟本記」 59
    • 2) 欽明紀의 「百濟本記」 79
    • 2. 「百濟本記」의 성립과정 108
    • Ⅳ. 「百濟新撰」의 사료적 성격과 성립과정 113
    • 1. 「日本書紀」에 인용된 「百濟新撰」 113
    • 1) 雄略紀의 「百濟新撰」 114
    • 2) 武烈紀의 「百濟新撰」 127
    • 2. 「百濟新撰」 성립과정 130
    • Ⅴ. 「日本世記」의 사료적 성격과 성립과정 134
    • 1. 「日本書紀」에 인용된 「日本世記」 134
    • 1) 齊明紀의 「日本世記」 135
    • 2) 天智紀의 「日本世記」 146
    • 2. 「日本世記」의 성립과정 155
    • Ⅵ. 결론 161
    • 참고문헌 167
    • 부록 185
    • ABSTRACT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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