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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근대 신문연재 역사소설의 기원과 계보 = 韓國近代新聞連載歷史小說の起源とその系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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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0513960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연세대학교, 2006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연세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 2006

      • 발행연도

        2006

      • 작성언어

        한국어

      • 주제어
      • KDC

        813.6 판사항(4)

      • DDC

        895.733 판사항(21)

      • 발행국(도시)

        서울

      • 형태사항

        v, 191 p.; 26 cm

      • 일반주기명

        권말부록으로 "일제 강점기 한국 근대 신문연재 역사소설 목록" 수록
        참고문헌: p. 183-187

      • 소장기관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도서관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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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논문은 한국근대 신문연재 역사소설의 기원과 계보에 관한 연구다. 식민지 조선에서 ‘歷史小說’은 수입된 글쓰기로 발원했다. 잡지 少年에 연재된 「A B C 契」에 그 용어가 최초 등장한 이래 근대적인 소설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역사소설’을 처음 사용한 이는 주요한이었다. 1926년 나카니시 이노쓰께(中西伊之助)의 熱風 연재예고와 이광수의 麻衣太子 광고에 사용되면서 이후 ‘역사소설’은 양식성을 가정한 용어로 자리 잡는다. 현대물과 역사물의 분화, 독자 폭의 확대, 그리고 야담운동과의 차별화 등은 이처럼 외래로부터 수입된 역사소설이 조선의 문화질서에 새롭게 가져온 번역 상의 잉여들이었다.역사소설은 역사전기소설은 물론 신소설과도 담화적 차이를 갖는 글쓰기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역사소설이 신소설뿐만 아니라 사화와 사담, 야담 등의 역사담물과 변별될 정도로 근대소설의 미학을 온전히 구현한 글쓰기였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역사소설의 기점을 밝히는 문제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역사소설의 남상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역사소설의 출현 배경과 정착과정에 얽힌 복합적인 문맥을 밝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명칭의 등장과 용어의 수입 경로, 번역과 창작 사이의 편차, 그리고 신문연재소설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면밀히 고찰함으로써 그 준거를 찾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에 대해 근대적인 매체에 의해 번역되어 장형의 서사로 발화한 점, 전대서사문학의 전통과 거리 두기를 시도하며 근대소설의 한 글쓰기 양상으로 성장한 점, 그리고 신문소설로서 연재란의 고정 지면에 안착한 점 등을 한국 근대 역사소설의 공통된 자질로 제시한다. 연재 번역물 熱風에 대한 분석은 그 물증의 하나로 시도된 것이다. 이는 자국의 전사(前史)에 기대어 모국어로 씌어진 텍스트만을 한국 근대 역사소설로 등재시켜온 시각의 편협성을 지적하는 한편, 역사소설 쓰기가 요구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정황을 설명함으로써 한국 근대 역사소설의 기원을 찾기 위한 작업으로서의 의의를 동시에 갖는다.역사소설 연재에 부기되었던 ‘장편소설’ 혹은 ‘연재소설’과 같은 표제들이 매체적 특성과 관련된다는 사실은 역사소설이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내막을 설명해준다. 장형의 서사물이 신문소설로서 적합할 수밖에 없다고 했을 때, 역사적 소재와 상상력의 결합에서 배태될 역사소설의 열린 외연은 그와 같은 조건에 부합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글쓰기라 할 수 있다. 소재의 무한성과 모티프의 전거(典據) 면에서 장편소설로 가공되기에 최적의 환경을 구비하고 있는 글쓰기가 역사소설이었던 셈이다. 무엇보다도 역사소설은 속도를 중시한 글쓰기였기에 대중성 획득이 용이했다. 사료의 연대기적 시간을 해체함으로써 서사의 계기적 시간을 임의적으로 재구할 수 있는 글쓰기가 역사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소설의 번성은 이러한 내재적 자질에서 비롯된 결과만은 아니었다. 다양한 역사담물의 공조적 역할 역시 컸다. 1930년대 역사소설은 역사담물의 번성이 가져온 역사물 일반에 대한 독자대중의 관심을 부산물로 공유하는 한편, 신문연재소설로서 개별성을 동시에 추구했다.그 동안 한국 근대문학에서 ‘역사소설’은 역사적 제재를 취한 소설 일반을 가리키는 양식 명을 뜻했다. 그러나 실제로 역사소설은 고유의 양식 미학을 구유한 글쓰기라 할 수 없다. 역사소설이 장르 혹은 양식적 글쓰기로 고정된 데에는 역사소설 비평의 역할이 주효했다. 1920년대 후반에서 해방 이전까지의 역사소설 비평은 역사소설에 내재된 사실과 허구간의 모순을 반복적으로 문제삼았다. 역사담물과의 차별화, 허구의 허용 범위, 그리고 전작소설(全作小說)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일이 그 세부 논의거리였다. 그러나 이는 역사소설의 독자적 미학을 상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논의의 공전이었다.근대소설의 글쓰기 양상으로 전개된 한국 근대 신문연재 역사소설의 계보를 그리기 위해 일차적으로 본 연구가 주목한 대목은 전대 서사문학 전통과의 교섭 흔적이다. 역사소설은 수입된 글쓰기였지만, 야담적 내용과 강사(講史)적 서술 태도 면에서 전대 서사문학의 전통이 차입된 글쓰기이기도 하다. 신문연재소설의 규범이 특화되는 상황과 맞물려 역사소설이 신문연재소설의 대명사로 양적인 번성을 구가해간 1930년대 중반 이후 이러한 전대 서사문학의 특질이 현저히 감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근대적인 신문연재소설로서의 면면이 그 만큼 강화된 결과였다.한편 과거 수난사를 다룬 이 시기 역사소설 텍스트들의 기저에 대체로 작가의 근대적인 민족주의 의식이 투영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민족적 관점에서 국가적 위란을 제재 삼은 작품들은 대체로 식민현실을 우회적으로 반영하는 차원에서 그 극복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광의의 민족주의 담론 안에서 읽을 수 있는 이들 텍스트는 민족 정체성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봉건적 충의사상의 옹호, 그리고 계급적 세계관과의 착종에 이르기까지 꽤나 넓은 폭을 보여준다. 선과 악의 구분을 통해 중심인물을 영웅적으로 형상화한 서사 재현 방식은 이 시기 역사소설 창작의 공통된 창작 문법의 하나였거니와, 특히 작가의 민족의식이 투사된 작품들의 경우 이항 대립의 서사 갈등이 더욱 뚜렷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웅사관으로 집약되는 역사의식이 곧 이들 텍스트의 서사 논리였던 것이다.이 시기 역사소설의 통속화 경향은 신문연재소설의 일반적인 특성이면서 동시에 역사담론에 바탕한 글쓰기라는 점과도 관련이 깊다. 인물 형상의 상투성, 멜로드라마적인 서사 전개, 그리고 삽화적인 서사 구성 등이 그 공통된 특질이다. 이러한 통속적 요소들은 작가들의 역사 전유 경로뿐만 아니라 대중의 역사 기대 지평을 선 규정한 신문저널리즘의 정책과 독자 반응 사이의 절충점이 어디였는가를 또한 말해준다. 역사를 매개로 한 매체와 작가, 그리고 독자 간의 공모적 관계가 이러한 통속성으로 발화되었던 것이다.1930년대 역사소설의 통속화는 탈정치적 성향과 맞물려 진행된 흐름이었다. 그러나 1940년대 들어와 역사소설은 전시동원체제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담론과 함께 연재되는 가운데 정치적 담론의 장 안으로 재진입한다. 일제의 대동아공영론을 선전하는 제국서사로 변신을 꾀함으로써 역사소설이 다시 한번 그 번성을 구가하게 된 시점이 이때다. 이 계열의 작품들은 ‘충’의 이념을 직간접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점을 보인다. 텍스트 밖의 작가적 현실에서 이 ‘충’은 국체로서 일본 천황과 제국을 향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대동아전쟁의 의의를 긍정하고 국민들의 전의를 독려하기 위해 제국의 서사로 헌정된 글쓰기가 이 시기 역사소설이었던 것이다.본 연구는 규정적 정의 하에서 역사소설 일반에 접근하는 기존의 연구방식을 비판적으로 해체함으로써 한국 근대 신문연재 역사소설의 기원과 계보를 기술하고자 했다. 그러나 식민시기에 창작되고 유통된 텍스트로 연구 대상을 한정한 점에서 일정 부분 한계를 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해방 이후 역사소설과의 분절적 국면까지도 아울러 고찰하게 될 때, 한국근현대 역사소설의 특질을 전반적으로 조감하는 보다 진전된 연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この論文は韓國近代における新聞連載歷史小說の起源とその系譜についての硏究である。植民地朝鮮における‘歷史小說’は近代において持ち まれた作法にその源をもっている。雜誌 少年に連載された「ABC契」で、初めて登場した後、近代的な小說を指し示す用語としてそれを最初に使用したのは朱耀翰であった。1926年、中西伊之助の熱風の連載予告と李光洙の麻衣太子の廣告で使用された後、‘歷史小說’は獨自の樣式を仮定した用語として定着する。現代物と歷史物との分化、讀者層の擴大、また‘野談’運動との差別化などは外來のものとして持ち まれた歷史小說が朝鮮の分化秩序に新たにもたらした譯語的な剩余物であった。歷史小說は、歷史傳記小說はもちろん‘新小說’との語り上の差異をもつ作法として始まった。だが、一方では歷史小說が‘新小說’だけではなく、‘史話’と‘史談’、‘野談’などの歷史談物と分別できるほど近代小說の美學を完全に具現した作法であったと斷定するのは難しい。歷史小說の基点を明らかにするという問題が依然として難題として殘っている理由もそこにある。歷史小說の濫觴を特定するには、歷史小說出現の背景とその定着過程にかかわる複雜な文脈の解明が先ずもって行われなければならない。すなわち、名 の登場と用語の受容 路、 譯と創作との間の偏差、また新聞連載小說として定着するまでの過程を綿密に考察することで、その準據を見つけ出す必要がある。本硏究はそのために近代的なメディアにより 譯され定型の語りとして發話されたということ、前代の 事文學の 統と距離を置こうと試みて近代小說の一つのアスペクトへと成長したということ、また新聞小說として連載欄という固定した紙面に定着したということ等を韓國近代歷史小說の共通する資質として示した。 譯連載物の熱風に對する分析はその物 の一つとして試みられている。それは自國の前史に依りながら母語により書かれたテキストだけを韓國近代歷史小說としてリストアップしてきた視覺の偏狹さを指摘する一方、歷史小說という作法を求めざるを得なかった必然的な狀況を說明することで、韓國近代の歷史小說の起源を見つけ出すための作業としての意義を同時にもっている。歷史小說の連載に付記された ‘長編小說’ または ‘連載小說’といった副題がメディア的な特性と關連しているということは歷史小說が大衆性を獲得し得た內幕を說明してくれている。定型の語りこそが新聞小說として最適であるとされたとき、歷史的素材と想像力との結合において胚胎される歷史小說という開かれた外緣は、そうした條件に合致する可能性が最も高い作法だと言える。素材の無限さとモチーフの典據性の面において長編小說への加工に最適の環境を兼ね備えている作法が歷史小說であったわけである。何よりも、歷史小說は速度を重視する作法であったため、大衆性の獲得が容易であった。資料の年代記的な時間を解 することで語りの契機となる時間を任意に再構成できる作法が歷史小說だったからである。だが、歷史小說の隆盛はそうした內在的な資質によってもたらされた結果だけではなかった。多樣な歷史談物の共助という役割もまた大きかった。1930年代の歷史小說は、歷史談物の隆盛がもたらした歷史物一般に對する讀者大衆の關心を副産物として共有する反面、新聞連載小說としての個別性を同時に追求していた。この間、韓國近代文學において‘歷史小說’は歷史的題材を扱う小說一般を指し示す樣式面を意味していた。だが、實際に歷史小說は固有の樣式美學を具有する作法とは言えない。歷史小說がジャンルまたは樣式的な作法として固定してしまったことについては歷史小說批評の役割が大きく働いていた。1920年代後半から解放期以前までの歷史小說批評は歷史小說に內在する事實と虛構との間の矛盾を繰返し問題にしてきた。歷史談物との差別化、虛構の許容範 、また‘全作小說(連載を ずに出版される小說)’としての可能性を打診することがその細部的な論議對象であった。だが、それは歷史小說の獨自の美學を想定できないということを逆說的に示す論議の空轉であった。近代小說の作法のアスペクトとして展開された韓國近代新聞連載歷史小說の系譜を描くために本硏究が注目した地点は、前代 事文學の 統との接 の痕跡である。歷史小說は持ち まれた作法であったが、‘野談’的な內容と‘講史’的な 述の態度面において前代 事文學の伝統を借用している作法でもある。新聞連載小說の規範が特化されていく狀況と機を一にして、歷史小說が新聞連載小說の代名詞として量的な隆盛を謳歌していった1930年代中盤以降、そうした前代 事文學の特質の明らかな減退が見られる。それは近代的な新聞連載小說としての側面がそれだけ强化された結果であった。一方、過去の受難の歷史を扱ったこの時期の歷史小說の諸テキストの基底には、多くの場合作家の近代的な民族主義への意識の投影が見られる。民族的な觀点から國家的な危機を題材とする諸作品は、多くの場合植民地という現實を遠回しに反映するという次元において、それを克服しようという意志の披瀝が見られる。廣義の民族主義言說の內において讀み取れるそれらのテキストは民族のアイデンティティ に對する省察をはじめとし、封建的な忠義思想の擁護、また階級的世界觀との錯綜に至るまで非常に廣い幅をもって示されている。善と惡の區分を通じ中心人物を英雄的に描いた語りの再現方式は、 時の歷史小說創作の共通した創作の文法の一つであったし、特に作家の民族意識が投射されている諸作品の場合、二項對立という語りの葛藤のよりいっそうの明確化が見られる。英雄史觀へと集約される歷史意識こそがそれらの諸テキストの語りの論理であったのだ。この時期の歷史小說の通俗化傾向は新聞連載小說の一般的な特性であり、同時に歷史言說に基づいた作法だという点とも關連が深い。人物の形象でのワンパタ ン、メロドラマ的な語りの展開、またエピソ ド的な語りの構成などがその共通した資質である。そうした特徵は作家たちの歷史を專有する 路と性格は勿論であり、大衆に歷史に對する期待の地平を前もって規定した新聞ジャーナリズムの戰略と讀者の反 との間での折り合い点を語っている。歷史を媒介としたメディアと作家、そして讀者間での共謀的な關係がそうした通俗さとして發話されたのであった。1930年代の歷史小說の通俗化は脫政治的傾向と重なり進行した流れだった。だが、1940年代に入り、歷史小說は戰時動員 制の正 さを擁護する言說とともに連載されるという狀況の下で、政治的言說の場の內部へと再び進入する。日帝の大東亞共榮論を宣 する帝國の語りへと 身を ることで歷史小說が再びその隆盛を謳歌することになるのがこの時期である。その系列の諸作品は ‘忠’イデオロギ を直間接的に喚起している点において共通する主題意識を見せている。テキスト外部の作家的現實において、その‘忠’は國 として日本の天皇と帝國へと向かうしかなかった。大東亞戰爭の意義を肯定し國民の戰意を督勵するために帝國の語りとして限定された作法がこの時期の歷史小說だったのである。本硏究は規定的な定義の下において歷史小說一般に接近していく旣存の硏究方式を批判的に解 し、韓國近代新聞連載歷史小說の起源とその系譜の記述に集注している。だが、植民地期に創作され、流通したテキストをもってその硏究對象を限定しているという点で、一定部分その限界が露呈している。解放以降の歷史小說との文節的な局面までをも共に考察することで韓國近代歷小說の特質を全般的に見渡すことのできる、より進んだ硏究が期待できる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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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한국근대 신문연재 역사소설의 기원과 계보에 관한 연구다. 식민지 조선에서 ‘歷史小說’은 수입된 글쓰기로 발원했다. 잡지 少年에 연재된 「A B C 契」에 그 용어가 최초 등장...

      이 논문은 한국근대 신문연재 역사소설의 기원과 계보에 관한 연구다. 식민지 조선에서 ‘歷史小說’은 수입된 글쓰기로 발원했다. 잡지 少年에 연재된 「A B C 契」에 그 용어가 최초 등장한 이래 근대적인 소설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역사소설’을 처음 사용한 이는 주요한이었다. 1926년 나카니시 이노쓰께(中西伊之助)의 熱風 연재예고와 이광수의 麻衣太子 광고에 사용되면서 이후 ‘역사소설’은 양식성을 가정한 용어로 자리 잡는다. 현대물과 역사물의 분화, 독자 폭의 확대, 그리고 야담운동과의 차별화 등은 이처럼 외래로부터 수입된 역사소설이 조선의 문화질서에 새롭게 가져온 번역 상의 잉여들이었다.역사소설은 역사전기소설은 물론 신소설과도 담화적 차이를 갖는 글쓰기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역사소설이 신소설뿐만 아니라 사화와 사담, 야담 등의 역사담물과 변별될 정도로 근대소설의 미학을 온전히 구현한 글쓰기였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역사소설의 기점을 밝히는 문제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역사소설의 남상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역사소설의 출현 배경과 정착과정에 얽힌 복합적인 문맥을 밝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명칭의 등장과 용어의 수입 경로, 번역과 창작 사이의 편차, 그리고 신문연재소설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면밀히 고찰함으로써 그 준거를 찾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에 대해 근대적인 매체에 의해 번역되어 장형의 서사로 발화한 점, 전대서사문학의 전통과 거리 두기를 시도하며 근대소설의 한 글쓰기 양상으로 성장한 점, 그리고 신문소설로서 연재란의 고정 지면에 안착한 점 등을 한국 근대 역사소설의 공통된 자질로 제시한다. 연재 번역물 熱風에 대한 분석은 그 물증의 하나로 시도된 것이다. 이는 자국의 전사(前史)에 기대어 모국어로 씌어진 텍스트만을 한국 근대 역사소설로 등재시켜온 시각의 편협성을 지적하는 한편, 역사소설 쓰기가 요구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정황을 설명함으로써 한국 근대 역사소설의 기원을 찾기 위한 작업으로서의 의의를 동시에 갖는다.역사소설 연재에 부기되었던 ‘장편소설’ 혹은 ‘연재소설’과 같은 표제들이 매체적 특성과 관련된다는 사실은 역사소설이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내막을 설명해준다. 장형의 서사물이 신문소설로서 적합할 수밖에 없다고 했을 때, 역사적 소재와 상상력의 결합에서 배태될 역사소설의 열린 외연은 그와 같은 조건에 부합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글쓰기라 할 수 있다. 소재의 무한성과 모티프의 전거(典據) 면에서 장편소설로 가공되기에 최적의 환경을 구비하고 있는 글쓰기가 역사소설이었던 셈이다. 무엇보다도 역사소설은 속도를 중시한 글쓰기였기에 대중성 획득이 용이했다. 사료의 연대기적 시간을 해체함으로써 서사의 계기적 시간을 임의적으로 재구할 수 있는 글쓰기가 역사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소설의 번성은 이러한 내재적 자질에서 비롯된 결과만은 아니었다. 다양한 역사담물의 공조적 역할 역시 컸다. 1930년대 역사소설은 역사담물의 번성이 가져온 역사물 일반에 대한 독자대중의 관심을 부산물로 공유하는 한편, 신문연재소설로서 개별성을 동시에 추구했다.그 동안 한국 근대문학에서 ‘역사소설’은 역사적 제재를 취한 소설 일반을 가리키는 양식 명을 뜻했다. 그러나 실제로 역사소설은 고유의 양식 미학을 구유한 글쓰기라 할 수 없다. 역사소설이 장르 혹은 양식적 글쓰기로 고정된 데에는 역사소설 비평의 역할이 주효했다. 1920년대 후반에서 해방 이전까지의 역사소설 비평은 역사소설에 내재된 사실과 허구간의 모순을 반복적으로 문제삼았다. 역사담물과의 차별화, 허구의 허용 범위, 그리고 전작소설(全作小說)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일이 그 세부 논의거리였다. 그러나 이는 역사소설의 독자적 미학을 상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논의의 공전이었다.근대소설의 글쓰기 양상으로 전개된 한국 근대 신문연재 역사소설의 계보를 그리기 위해 일차적으로 본 연구가 주목한 대목은 전대 서사문학 전통과의 교섭 흔적이다. 역사소설은 수입된 글쓰기였지만, 야담적 내용과 강사(講史)적 서술 태도 면에서 전대 서사문학의 전통이 차입된 글쓰기이기도 하다. 신문연재소설의 규범이 특화되는 상황과 맞물려 역사소설이 신문연재소설의 대명사로 양적인 번성을 구가해간 1930년대 중반 이후 이러한 전대 서사문학의 특질이 현저히 감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근대적인 신문연재소설로서의 면면이 그 만큼 강화된 결과였다.한편 과거 수난사를 다룬 이 시기 역사소설 텍스트들의 기저에 대체로 작가의 근대적인 민족주의 의식이 투영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민족적 관점에서 국가적 위란을 제재 삼은 작품들은 대체로 식민현실을 우회적으로 반영하는 차원에서 그 극복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광의의 민족주의 담론 안에서 읽을 수 있는 이들 텍스트는 민족 정체성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봉건적 충의사상의 옹호, 그리고 계급적 세계관과의 착종에 이르기까지 꽤나 넓은 폭을 보여준다. 선과 악의 구분을 통해 중심인물을 영웅적으로 형상화한 서사 재현 방식은 이 시기 역사소설 창작의 공통된 창작 문법의 하나였거니와, 특히 작가의 민족의식이 투사된 작품들의 경우 이항 대립의 서사 갈등이 더욱 뚜렷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웅사관으로 집약되는 역사의식이 곧 이들 텍스트의 서사 논리였던 것이다.이 시기 역사소설의 통속화 경향은 신문연재소설의 일반적인 특성이면서 동시에 역사담론에 바탕한 글쓰기라는 점과도 관련이 깊다. 인물 형상의 상투성, 멜로드라마적인 서사 전개, 그리고 삽화적인 서사 구성 등이 그 공통된 특질이다. 이러한 통속적 요소들은 작가들의 역사 전유 경로뿐만 아니라 대중의 역사 기대 지평을 선 규정한 신문저널리즘의 정책과 독자 반응 사이의 절충점이 어디였는가를 또한 말해준다. 역사를 매개로 한 매체와 작가, 그리고 독자 간의 공모적 관계가 이러한 통속성으로 발화되었던 것이다.1930년대 역사소설의 통속화는 탈정치적 성향과 맞물려 진행된 흐름이었다. 그러나 1940년대 들어와 역사소설은 전시동원체제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담론과 함께 연재되는 가운데 정치적 담론의 장 안으로 재진입한다. 일제의 대동아공영론을 선전하는 제국서사로 변신을 꾀함으로써 역사소설이 다시 한번 그 번성을 구가하게 된 시점이 이때다. 이 계열의 작품들은 ‘충’의 이념을 직간접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점을 보인다. 텍스트 밖의 작가적 현실에서 이 ‘충’은 국체로서 일본 천황과 제국을 향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대동아전쟁의 의의를 긍정하고 국민들의 전의를 독려하기 위해 제국의 서사로 헌정된 글쓰기가 이 시기 역사소설이었던 것이다.본 연구는 규정적 정의 하에서 역사소설 일반에 접근하는 기존의 연구방식을 비판적으로 해체함으로써 한국 근대 신문연재 역사소설의 기원과 계보를 기술하고자 했다. 그러나 식민시기에 창작되고 유통된 텍스트로 연구 대상을 한정한 점에서 일정 부분 한계를 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해방 이후 역사소설과의 분절적 국면까지도 아울러 고찰하게 될 때, 한국근현대 역사소설의 특질을 전반적으로 조감하는 보다 진전된 연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この論文は韓國近代における新聞連載歷史小說の起源とその系譜についての硏究である。植民地朝鮮における‘歷史小說’は近代において持ち まれた作法にその源をもっている。雜誌 少年に連載された「ABC契」で、初めて登場した後、近代的な小說を指し示す用語としてそれを最初に使用したのは朱耀翰であった。1926年、中西伊之助の熱風の連載予告と李光洙の麻衣太子の廣告で使用された後、‘歷史小說’は獨自の樣式を仮定した用語として定着する。現代物と歷史物との分化、讀者層の擴大、また‘野談’運動との差別化などは外來のものとして持ち まれた歷史小說が朝鮮の分化秩序に新たにもたらした譯語的な剩余物であった。歷史小說は、歷史傳記小說はもちろん‘新小說’との語り上の差異をもつ作法として始まった。だが、一方では歷史小說が‘新小說’だけではなく、‘史話’と‘史談’、‘野談’などの歷史談物と分別できるほど近代小說の美學を完全に具現した作法であったと斷定するのは難しい。歷史小說の基点を明らかにするという問題が依然として難題として殘っている理由もそこにある。歷史小說の濫觴を特定するには、歷史小說出現の背景とその定着過程にかかわる複雜な文脈の解明が先ずもって行われなければならない。すなわち、名 の登場と用語の受容 路、 譯と創作との間の偏差、また新聞連載小說として定着するまでの過程を綿密に考察することで、その準據を見つけ出す必要がある。本硏究はそのために近代的なメディアにより 譯され定型の語りとして發話されたということ、前代の 事文學の 統と距離を置こうと試みて近代小說の一つのアスペクトへと成長したということ、また新聞小說として連載欄という固定した紙面に定着したということ等を韓國近代歷史小說の共通する資質として示した。 譯連載物の熱風に對する分析はその物 の一つとして試みられている。それは自國の前史に依りながら母語により書かれたテキストだけを韓國近代歷史小說としてリストアップしてきた視覺の偏狹さを指摘する一方、歷史小說という作法を求めざるを得なかった必然的な狀況を說明することで、韓國近代の歷史小說の起源を見つけ出すための作業としての意義を同時にもっている。歷史小說の連載に付記された ‘長編小說’ または ‘連載小說’といった副題がメディア的な特性と關連しているということは歷史小說が大衆性を獲得し得た內幕を說明してくれている。定型の語りこそが新聞小說として最適であるとされたとき、歷史的素材と想像力との結合において胚胎される歷史小說という開かれた外緣は、そうした條件に合致する可能性が最も高い作法だと言える。素材の無限さとモチーフの典據性の面において長編小說への加工に最適の環境を兼ね備えている作法が歷史小說であったわけである。何よりも、歷史小說は速度を重視する作法であったため、大衆性の獲得が容易であった。資料の年代記的な時間を解 することで語りの契機となる時間を任意に再構成できる作法が歷史小說だったからである。だが、歷史小說の隆盛はそうした內在的な資質によってもたらされた結果だけではなかった。多樣な歷史談物の共助という役割もまた大きかった。1930年代の歷史小說は、歷史談物の隆盛がもたらした歷史物一般に對する讀者大衆の關心を副産物として共有する反面、新聞連載小說としての個別性を同時に追求していた。この間、韓國近代文學において‘歷史小說’は歷史的題材を扱う小說一般を指し示す樣式面を意味していた。だが、實際に歷史小說は固有の樣式美學を具有する作法とは言えない。歷史小說がジャンルまたは樣式的な作法として固定してしまったことについては歷史小說批評の役割が大きく働いていた。1920年代後半から解放期以前までの歷史小說批評は歷史小說に內在する事實と虛構との間の矛盾を繰返し問題にしてきた。歷史談物との差別化、虛構の許容範 、また‘全作小說(連載を ずに出版される小說)’としての可能性を打診することがその細部的な論議對象であった。だが、それは歷史小說の獨自の美學を想定できないということを逆說的に示す論議の空轉であった。近代小說の作法のアスペクトとして展開された韓國近代新聞連載歷史小說の系譜を描くために本硏究が注目した地点は、前代 事文學の 統との接 の痕跡である。歷史小說は持ち まれた作法であったが、‘野談’的な內容と‘講史’的な 述の態度面において前代 事文學の伝統を借用している作法でもある。新聞連載小說の規範が特化されていく狀況と機を一にして、歷史小說が新聞連載小說の代名詞として量的な隆盛を謳歌していった1930年代中盤以降、そうした前代 事文學の特質の明らかな減退が見られる。それは近代的な新聞連載小說としての側面がそれだけ强化された結果であった。一方、過去の受難の歷史を扱ったこの時期の歷史小說の諸テキストの基底には、多くの場合作家の近代的な民族主義への意識の投影が見られる。民族的な觀点から國家的な危機を題材とする諸作品は、多くの場合植民地という現實を遠回しに反映するという次元において、それを克服しようという意志の披瀝が見られる。廣義の民族主義言說の內において讀み取れるそれらのテキストは民族のアイデンティティ に對する省察をはじめとし、封建的な忠義思想の擁護、また階級的世界觀との錯綜に至るまで非常に廣い幅をもって示されている。善と惡の區分を通じ中心人物を英雄的に描いた語りの再現方式は、 時の歷史小說創作の共通した創作の文法の一つであったし、特に作家の民族意識が投射されている諸作品の場合、二項對立という語りの葛藤のよりいっそうの明確化が見られる。英雄史觀へと集約される歷史意識こそがそれらの諸テキストの語りの論理であったのだ。この時期の歷史小說の通俗化傾向は新聞連載小說の一般的な特性であり、同時に歷史言說に基づいた作法だという点とも關連が深い。人物の形象でのワンパタ ン、メロドラマ的な語りの展開、またエピソ ド的な語りの構成などがその共通した資質である。そうした特徵は作家たちの歷史を專有する 路と性格は勿論であり、大衆に歷史に對する期待の地平を前もって規定した新聞ジャーナリズムの戰略と讀者の反 との間での折り合い点を語っている。歷史を媒介としたメディアと作家、そして讀者間での共謀的な關係がそうした通俗さとして發話されたのであった。1930年代の歷史小說の通俗化は脫政治的傾向と重なり進行した流れだった。だが、1940年代に入り、歷史小說は戰時動員 制の正 さを擁護する言說とともに連載されるという狀況の下で、政治的言說の場の內部へと再び進入する。日帝の大東亞共榮論を宣 する帝國の語りへと 身を ることで歷史小說が再びその隆盛を謳歌することになるのがこの時期である。その系列の諸作品は ‘忠’イデオロギ を直間接的に喚起している点において共通する主題意識を見せている。テキスト外部の作家的現實において、その‘忠’は國 として日本の天皇と帝國へと向かうしかなかった。大東亞戰爭の意義を肯定し國民の戰意を督勵するために帝國の語りとして限定された作法がこの時期の歷史小說だったのである。本硏究は規定的な定義の下において歷史小說一般に接近していく旣存の硏究方式を批判的に解 し、韓國近代新聞連載歷史小說の起源とその系譜の記述に集注している。だが、植民地期に創作され、流通したテキストをもってその硏究對象を限定しているという点で、一定部分その限界が露呈している。解放以降の歷史小說との文節的な局面までをも共に考察することで韓國近代歷小說の特質を全般的に見渡すことのできる、より進んだ硏究が期待できる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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