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역사소설 양식의 출현과 변모과정을 통시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통시적인 접근을 통해 하나의 양식이 어떻게 서로 구별되고 뒤섞이며, 차용되고 출현하는가, 그리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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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세대학교, 2006
2006
한국어
813.6 판사항(4)
895.733 판사항(21)
서울
vi, 236 p.; 26 cm
권말부록으로 "『別乾坤』史話·野談·역사 관련 목록" 등 수록
참고문헌: p. 171-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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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역사소설 양식의 출현과 변모과정을 통시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통시적인 접근을 통해 하나의 양식이 어떻게 서로 구별되고 뒤섞이며, 차용되고 출현하는가,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위계화된 새로운 총체들 속에 어떻게 재분배되는가 등의 문제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문학사는 평면 위의 연속성으로나, 일괄적인 청산을 통한 단절이나 이식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a$$a본 연구는 일제 식민지하 역사담론의 생산과 재편의 과정을 살피는 일이 곧 역사소설 생산의 역학과 실천의 과정을 해명하는데 기본전제가 된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였다. 현실과 역사가 생성되는 과정과 그것이 이른바 역사소설로서 재생산되는 과정은, 현실이해나 역사인식을 형태 짓는 표상작용 및 역사서술의 제도성과 실천에 대한 접근과 해명이 전제되어야 한다. 역사, 문학, 매체, 독자 간의 상호 길항관계와 그들이 생산해내는 여러 담론에 대한 고찰은, 근대 역사소설 양식에 이르는 과정을 해명하기 위한 것이다.$$a$$a역사․전기소설은 근대계몽기의 정치적․사회적 담론의 생산물이었다. 역사․전기소설 작가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과 세계관을 구조화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담론 형태로 선택한 양식이 역사․전기소설이었다. 역사․전기소설은 철저하게 시대의 산물이었지만, 그 문학적 형식은 전류(傳類) 문학이나 군담계 소설, 조선후기 야담에서 발원한 ‘서사적 논설’의 글쓰기 방식 등 전대 문학 양식을 이어받고 있다. 그 중 신문이나 잡지에 실렸던 ‘인물기사’ 혹은 ‘인물고’는 역사․전기소설 양식 발생의 구체적인 토대로서 작용한다. 전대 양식의 계승 속에서 ‘역사․전기소설’은 분명 근대적인 의미의 역사소설의 양식에 다가선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자체로 역사소설의 양식에 부합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강렬한 역사의식과 시대적 사명감이 곧 문학적 양식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a$$a1910년대와 1920년대에 이르면 상당수의 활자본 고소설들이 활발하게 생산 유통되기 시작한다. 이들 중 전대의 역사소설이나 민족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역사 소재 활자본 고소설들은 역사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독자층의 확대를 통해 근대 역사소설이 발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인물의 위인적 면모나 왕조사나 궁중비사 중심의 사건은 근대 역사소설에 그대로 전이되어 나타난다. 하지만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궁중비사나 권력 투쟁사를 다루는 방식이 역사적 총체성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때, 고소설의 유산은 근대 역사소설이 통속적 시대물로 떨어지는 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a$$a하지만 통속성 이전에 이 시기에 역사를 소재로 한 많은 이야기책들이 생산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 역사소재 활자본 고소설의 등장이 근대계몽기의 역사․전기소설의 영향을 받았고, 그런 작품을 원하는 독자의 영향을 받았음은 사실이지만 그 접근 방식은 전혀 다른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곧 1910년대와 20년대 역사소재 활자본 고소설의 형성이 근대계몽기 역사․전기소설이 지니고 있었던 현실인식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의 결과라기보다는 양식적 계승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a$$a구활자본 고소설의 쇠퇴와 맞물려 있는 1927년을 전후한 시기에 다른 한편에서는 조직적인 야담 부흥운동이 전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야담이 생산 유통되기 시작한다. 1910년 초반부터 20년대 중반까지 대중의 역사소비 방식의 중요한 매체로 기능했던 구활자본 고소설의 역할이 야담에게로 이행된 셈이다. 당시의 야담운동은 ‘역사를 통한 민중 교화운동’의 수단으로써 진행되면서, 당대 민중예술, 민중오락으로 선전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1920년대 역사의 문예화 논의와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 역사소설의 맥락과 함께 위치한다. 또한 1920년대 후반 역사물 보급 운동은 위기의식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근대계몽기의 역사․전기류의 생산과 1910년대 역사 연구 및 대중화 운동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a$$a1920년대 중반에서 30년대에 발행된 여러 종합 대중지들은 여러 역사담론들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중요한 매체로써 기능한다. ꡔ開闢ꡕ의 폐간과 함께 1926년 창간된 월간지 ꡔ別乾坤ꡕ에 이르면 거의 매호마다 야담 및 사화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1928년 창간된 잡지 ꡔ한빛ꡕ은 야사와 정사를 통틀어 우리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야담대회를 통한 구연으로서의 야담은 1934년 윤백남에 의해 발행된 야담 전문잡지 ꡔ月刊野談ꡕ이나 1935년 김동인에 의해 발행된 ꡔ談ꡕ을 통해 활자매체로 정착한다. ‘야담’ 전문 잡지뿐 아니라 ꡔ朝光ꡕ, ꡔ三千里ꡕ와 같은 종합 대중지들도 야담과 사화, 역사 관련 기사, 세계 각국의 독립운동사, 국내외 사적(史蹟)에 대한 기행문, 세계 각국의 역사 위인에 대한 소개, 주요 역사적 사건에 대한 비평을 통해 담론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이들 종합지들은 정치적 독립과 계급투쟁의 담론이 억압된 상황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식민지 근대화의 온갖 사회 의제들을 포함하고 있었다.$$a$$a대중지에 실린 이러한 항목들은 결국 당시 대중 독자들이 단순히 소일거리로서 역사이야기를 향유하였다는 차원을 넘어 역사물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독자들의 취향은 곧 역사소설의 생산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당시의 주요한 사회적 관심사나 쟁점들과 관련한 역사담론들이 소개되면 이와 관련하여 역사소설들이 창작되면서 그러한 담론들이 재생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a$$a이들 잡지에 실린 사화(史話)․야담(野談)․열전(列傳)․전기(傳記)․실록(實錄)․비사(秘史)․애화(哀話) 등 다양한 양식의 글들은 뚜렷한 양식개념에 입각하여 호명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양식 간의 분류가 불가능할 만큼 차용과 삼투, 그로 인한 다양한 변개가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역사를 매개로 한 여러 양식의 글들은 아직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역사소설에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대중의 역사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a$$a한국의 근대 역사소설은 근대계몽기의 역사․전기소설 및 1920년대 초반의 역사 단편류 등을 전사(前史)로 하여 1930년대에 이르면 더욱 두드러진 현상으로 부각된다. 현실상의 제약은 작가들로 하여금 역사소설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많은 작가들이 역사소설 제작에 참여하여 다량의 작품을 생산해냄으로써 이른바 ‘역사소설시대’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객관적 현실의 악화는 현재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이나 문제 해결에 대한 모색을 불가능하게 하였고, 결국 작가들은 과거를 호출하는 방식으로 역사소설의 창작으로 나아가게 된다.$$a$$a1930년대의 지배적인 담론의 형성은 신문․잡지 등 언론 매체와 사회 지도층이 생산해내는 여러 담론들이 사회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여기에 일반 대중이 충실히 응답함으로써 안착되는 과정을 보인다. 여기서 대중의 관심은 단지 신문이나 잡지의 독자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출판시장에서는 새로운 소비자의 위치로, 문단에서는 새로운 독자층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매체에 의해 사회의 지배적 담론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독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 그 결과물로써 역사소설의 생산이 이루어진다.$$a$$a활자 매체뿐 아니라 방송 매체 역시 당시 중요한 담론 생산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신문 잡지 등 여러 활자 매체를 통해 생산되는 여러 담론이 다양한 층위에서 논의될 수 있었다면, 총독부의 관리 운영 하에 놓여 있었던 경성방송은 주로 식민지배 권력을 합리화하거나 ‘국민’ 동원의 장치로 이용되었다. ‘문학’과 ‘역사’ 역시 단순한 위안거리로 전락하거나, ‘황국신민’과 ‘내선일체’와 같은 일제의 지배 정책을 강화하고, 침략 정책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었다.$$a$$a다양한 역사담론들과 그것들의 생산, 그리고 역사소설 양식의 정립에 이르는 과정은 수직적인 계승관계였다기보다는 충돌과 변이, 경쟁과 갈등 속에서 재배치되며 또한 상호 보완적인 제휴의 관계를 맺기도 하는 것이다. 일제하 여러 담론의 생성과 소멸은 외적 요소에 의해 강하게 견인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곧 이 시기의 담론이 외부현실과 맺었던 치열한 긴장관계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a$$a이상의 연구를 통하여 역사발전의 특수성과 관련지어 역사의식 형성의 특수성과 초기 역사소설 대두와의 상호관계, 폭넓은 의미의 우리나라 역사소설의 전통과 근대 역사소설의 관련성, 춘원 이후 20세기 역사소설의 문학사적 발전에 따른 서술문제 등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또한 이러한 논의는 지금껏 단편소설 위주의 문학사 기술에 대해 반성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소설 연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