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와 태봉이 각각의 국체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이것이 문화에도 영향을 끼쳐 각국의 독 특한 문화 특질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지금까지의 연구는 이 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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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환 (국립광주박물관)
2020
Korean
후삼국기 ; 후백제 ; 태봉 ; 불교미술 ; 백제귀소의식 ; 궁예미륵 ; Later Three Kingdoms period ; Hubaekje ; Taebong ; Buddhist art ; awareness of returning to Baekje ; Gungye Maitreya
KCI등재
학술저널
125-15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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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후백제와 태봉이 각각의 국체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이것이 문화에도 영향을 끼쳐 각국의 독 특한 문화 특질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지금까지의 연구는 이 시기를...
후백제와 태봉이 각각의 국체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이것이 문화에도 영향을 끼쳐 각국의 독 특한 문화 특질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지금까지의 연구는 이 시기를 ‘羅末麗初’ 곧 ‘신라 말~고려 초’라는 모호한 시기로 부르면서 불러왔다. 후삼국기의 문화적 독자 성을 부정하고 단순히 통일신라 문화의 연속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짙었다. 다만, 최근 들어서 불교미술 연구 분야에서 후백제와 태봉을 구분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어 상당히 고무적이다. 본 논문은 불교석조미술 관련 연구 성과를 바탕으 로 후삼국기 후백제와 태봉의 문화의 특징이 무엇이었는지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우선 후백제와 태봉으로 나누어 정권과 밀접한 대표적인 불교석조미술품들이 무엇들이 있으며, 그 특 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아울러, 후백제와 태봉의 불교석조미술품이 후대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도 검토하였다. 후삼국기의 이 두 국가는 각각 백제와 고구려의 계승을 내걸었음에도, 時空의 한계로 신라 하 대 불교미술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인다. 그러함에도 두 나라는 나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불교석조미술품을 만들었다. 두 나라의 이러한 불교석조미술품은 고려시대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후백제지역에서는 견훤에 의해 자각한 백제귀소의식의 발현으로 백제 복고양식 석탑과 석불이 조성되었다. 반면, 태봉지역에서는 미륵불로서 궁예가 각인되어, 몽골 침입과 같은 어려움 을 겪었을 때 소위 ‘궁예미륵’이 등장한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Hubaekje and Taebong each had a state system, thereby presumably creating cultural influences so as to help various states form their own unique cultures. Nonetheless, the period of these two states was classified as the late Silla to early Goryeo per...
Hubaekje and Taebong each had a state system, thereby presumably creating cultural influences so as to help various states form their own unique cultures. Nonetheless, the period of these two states was classified as the late Silla to early Goryeo period, making it an ambiguous period. Such viewpoint tends to deny the unique culture of the Later Three Kingdoms period and regard it as an extension of the Unified Silla culture. In recent years, however, attempts have been made in the research field of Buddhist art to separate Hubaekje and Taebong from the defined period to examine their characteristics. Such effort is very encouraging.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cultural characteristics of Hubaekje and Taebong in the Later Three Kingdoms period, based on the research results of Buddhist stone art works. To that end, first, Hubaekje and Taebong were each examined to determine their respective Buddhist stone art works crafted in close relationship with the prevailing political powers at the time as well as their characteristics. How Hubaekje and Taebong Buddhist stone art works influenced the subsequent generations was examined as well. The two states in the Later Kingdoms period each claimed to inherit Baekje and Goguryeo; due to time and space limitations, however, they only limited their Buddhist art base to the Buddhist art of the second-half period of Silla. Nonetheless, the two states crafted Buddhist stone art works representing their own identity. Their Buddhist stone art works influenced the Goryeo period such that, in the Hubaekje region, an awareness of returning to Baekje -- initiated by Gyeonhwon -- was raised; thus resulting in crafting Baekje retro-style stone pagodas and stone Buddhas. On the other hand, in the Taebong region, Gungye was believed to be Maitreya Buddha. Thus, when the state underwent difficulties such as Mongolian invasions, the so-called Gungye Maitreya emerged.
목차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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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옥천사 연대암 치성광여래도 도상연구 - 칠성각부도상을 중심으로 -
불교와 도교의 交涉과 攝受 - 조선후기 神衆圖의 신선 도상 수용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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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11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Dongak Art History -> Association of Dongak Art History | ![]() |
| 2013-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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