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후백제와 태봉 불교석조미술품의 특징과 영향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6936538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후백제와 태봉이 각각의 국체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이것이 문화에도 영향을 끼쳐 각국의 독 특한 문화 특질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지금까지의 연구는 이 시기를 ‘羅末麗初’ 곧 ‘신라 말~고려 초’라는 모호한 시기로 부르면서 불러왔다. 후삼국기의 문화적 독자 성을 부정하고 단순히 통일신라 문화의 연속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짙었다. 다만, 최근 들어서 불교미술 연구 분야에서 후백제와 태봉을 구분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어 상당히 고무적이다. 본 논문은 불교석조미술 관련 연구 성과를 바탕으 로 후삼국기 후백제와 태봉의 문화의 특징이 무엇이었는지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우선 후백제와 태봉으로 나누어 정권과 밀접한 대표적인 불교석조미술품들이 무엇들이 있으며, 그 특 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아울러, 후백제와 태봉의 불교석조미술품이 후대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도 검토하였다. 후삼국기의 이 두 국가는 각각 백제와 고구려의 계승을 내걸었음에도, 時空의 한계로 신라 하 대 불교미술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인다. 그러함에도 두 나라는 나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불교석조미술품을 만들었다. 두 나라의 이러한 불교석조미술품은 고려시대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후백제지역에서는 견훤에 의해 자각한 백제귀소의식의 발현으로 백제 복고양식 석탑과 석불이 조성되었다. 반면, 태봉지역에서는 미륵불로서 궁예가 각인되어, 몽골 침입과 같은 어려움 을 겪었을 때 소위 ‘궁예미륵’이 등장한다.
      번역하기

      후백제와 태봉이 각각의 국체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이것이 문화에도 영향을 끼쳐 각국의 독 특한 문화 특질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지금까지의 연구는 이 시기를...

      후백제와 태봉이 각각의 국체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이것이 문화에도 영향을 끼쳐 각국의 독 특한 문화 특질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지금까지의 연구는 이 시기를 ‘羅末麗初’ 곧 ‘신라 말~고려 초’라는 모호한 시기로 부르면서 불러왔다. 후삼국기의 문화적 독자 성을 부정하고 단순히 통일신라 문화의 연속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짙었다. 다만, 최근 들어서 불교미술 연구 분야에서 후백제와 태봉을 구분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어 상당히 고무적이다. 본 논문은 불교석조미술 관련 연구 성과를 바탕으 로 후삼국기 후백제와 태봉의 문화의 특징이 무엇이었는지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우선 후백제와 태봉으로 나누어 정권과 밀접한 대표적인 불교석조미술품들이 무엇들이 있으며, 그 특 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아울러, 후백제와 태봉의 불교석조미술품이 후대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도 검토하였다. 후삼국기의 이 두 국가는 각각 백제와 고구려의 계승을 내걸었음에도, 時空의 한계로 신라 하 대 불교미술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인다. 그러함에도 두 나라는 나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불교석조미술품을 만들었다. 두 나라의 이러한 불교석조미술품은 고려시대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후백제지역에서는 견훤에 의해 자각한 백제귀소의식의 발현으로 백제 복고양식 석탑과 석불이 조성되었다. 반면, 태봉지역에서는 미륵불로서 궁예가 각인되어, 몽골 침입과 같은 어려움 을 겪었을 때 소위 ‘궁예미륵’이 등장한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Hubaekje and Taebong each had a state system, thereby presumably creating cultural influences so as to help various states form their own unique cultures. Nonetheless, the period of these two states was classified as the late Silla to early Goryeo period, making it an ambiguous period. Such viewpoint tends to deny the unique culture of the Later Three Kingdoms period and regard it as an extension of the Unified Silla culture. In recent years, however, attempts have been made in the research field of Buddhist art to separate Hubaekje and Taebong from the defined period to examine their characteristics. Such effort is very encouraging.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cultural characteristics of Hubaekje and Taebong in the Later Three Kingdoms period, based on the research results of Buddhist stone art works. To that end, first, Hubaekje and Taebong were each examined to determine their respective Buddhist stone art works crafted in close relationship with the prevailing political powers at the time as well as their characteristics. How Hubaekje and Taebong Buddhist stone art works influenced the subsequent generations was examined as well. The two states in the Later Kingdoms period each claimed to inherit Baekje and Goguryeo; due to time and space limitations, however, they only limited their Buddhist art base to the Buddhist art of the second-half period of Silla. Nonetheless, the two states crafted Buddhist stone art works representing their own identity. Their Buddhist stone art works influenced the Goryeo period such that, in the Hubaekje region, an awareness of returning to Baekje -- initiated by Gyeonhwon -- was raised; thus resulting in crafting Baekje retro-style stone pagodas and stone Buddhas. On the other hand, in the Taebong region, Gungye was believed to be Maitreya Buddha. Thus, when the state underwent difficulties such as Mongolian invasions, the so-called Gungye Maitreya emerged.
      번역하기

      Hubaekje and Taebong each had a state system, thereby presumably creating cultural influences so as to help various states form their own unique cultures. Nonetheless, the period of these two states was classified as the late Silla to early Goryeo per...

      Hubaekje and Taebong each had a state system, thereby presumably creating cultural influences so as to help various states form their own unique cultures. Nonetheless, the period of these two states was classified as the late Silla to early Goryeo period, making it an ambiguous period. Such viewpoint tends to deny the unique culture of the Later Three Kingdoms period and regard it as an extension of the Unified Silla culture. In recent years, however, attempts have been made in the research field of Buddhist art to separate Hubaekje and Taebong from the defined period to examine their characteristics. Such effort is very encouraging.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cultural characteristics of Hubaekje and Taebong in the Later Three Kingdoms period, based on the research results of Buddhist stone art works. To that end, first, Hubaekje and Taebong were each examined to determine their respective Buddhist stone art works crafted in close relationship with the prevailing political powers at the time as well as their characteristics. How Hubaekje and Taebong Buddhist stone art works influenced the subsequent generations was examined as well. The two states in the Later Kingdoms period each claimed to inherit Baekje and Goguryeo; due to time and space limitations, however, they only limited their Buddhist art base to the Buddhist art of the second-half period of Silla. Nonetheless, the two states crafted Buddhist stone art works representing their own identity. Their Buddhist stone art works influenced the Goryeo period such that, in the Hubaekje region, an awareness of returning to Baekje -- initiated by Gyeonhwon -- was raised; thus resulting in crafting Baekje retro-style stone pagodas and stone Buddhas. On the other hand, in the Taebong region, Gungye was believed to be Maitreya Buddha. Thus, when the state underwent difficulties such as Mongolian invasions, the so-called Gungye Maitreya emerged.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 Ⅱ. 후백제 불교석조미술품의 양상과 특징
      • Ⅲ. 태봉 불교석조미술품의 양상과 특징
      • Ⅳ. 후백제·태봉 불교석조미술품의 후대 영향
      • Ⅴ. 맺음말
      • Ⅰ. 머리말
      • Ⅱ. 후백제 불교석조미술품의 양상과 특징
      • Ⅲ. 태봉 불교석조미술품의 양상과 특징
      • Ⅳ. 후백제·태봉 불교석조미술품의 후대 영향
      • Ⅴ. 맺음말
      • 국문초록
      • Abstract
      • 참고문헌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南東信, "羅末麗初 華嚴宗團의 대응과 『(華嚴)神衆經』의 成立" 外大史學會 5 : 1993

      2 金杜珍, "羅末麗初 桐裏山門의 成立과 그 思想" 延世大學校 國學硏究院 57 : 1988

      3 金壽泰, "후백제와 견훤" 서경문화사 2000

      4 진정환, "후백제 불교조각의 대외교섭" 백제연구소 (61) : 147-175, 2015

      5 진정환, "후백제 불교미술품과 고고자료의 검토" 호남고고학회 61 : 108-130, 2019

      6 조인성, "태봉의 궁예정권" 푸른역사 2007

      7 전용호, "익산 왕궁리유적의 조사성과와 의의"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9

      8 전용호, "익산 왕궁리유적의 사찰 운영에 대한 재검토 - 왕궁탑 하부 유구를 중심으로 -" 호남사학회 (60) : 51-92, 2015

      9 全北大學校博物館, "완주 봉림사지 발굴조사(3차) 약식보고서" 전북대학교 박물관 2017

      10 全北大學校博物館, "완주 봉림사지 발굴조사 약식보고서" 전북대학교 박물관 2016

      1 南東信, "羅末麗初 華嚴宗團의 대응과 『(華嚴)神衆經』의 成立" 外大史學會 5 : 1993

      2 金杜珍, "羅末麗初 桐裏山門의 成立과 그 思想" 延世大學校 國學硏究院 57 : 1988

      3 金壽泰, "후백제와 견훤" 서경문화사 2000

      4 진정환, "후백제 불교조각의 대외교섭" 백제연구소 (61) : 147-175, 2015

      5 진정환, "후백제 불교미술품과 고고자료의 검토" 호남고고학회 61 : 108-130, 2019

      6 조인성, "태봉의 궁예정권" 푸른역사 2007

      7 전용호, "익산 왕궁리유적의 조사성과와 의의"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9

      8 전용호, "익산 왕궁리유적의 사찰 운영에 대한 재검토 - 왕궁탑 하부 유구를 중심으로 -" 호남사학회 (60) : 51-92, 2015

      9 全北大學校博物館, "완주 봉림사지 발굴조사(3차) 약식보고서" 전북대학교 박물관 2017

      10 全北大學校博物館, "완주 봉림사지 발굴조사 약식보고서" 전북대학교 박물관 2016

      11 정은우, "연구논문 : 연기 불비상과 충남지역의 백제계 불상" 백제문화연구소 (32) : 89-98, 2003

      12 최웅, "역사 기록과 구전 설화로 본 궁예" 인문과학연구소 (27) : 301-330, 2010

      13 정성권, "안성 기솔리 석불입상 연구- 궁예 정권기 조성 가능성에 대한 고찰" 신라사학회 (25) : 351-399, 2012

      14 배순화, "심수륜묘 출토복식" 경기도박물관 2004

      15 엄기표, "신라와 고려시대 석조부도" 학연문화사 2003

      16 천득염, "백제계석탑 연구" 전남대학교 출판부 2000

      17 정성권, "나주 철천리 석불입상의 조성시기와 배경" 신라사학회 (31) : 225-272, 2014

      18 최성은, "나말려초 중부지역 석불조각에 대한 고찰 -궁예 태봉(901~918)지역 미술에 대한 시고 -" 한국역사연구회 (44) : 29-64, 2002

      19 장일규, "금석문을 통한 신라사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 2005

      20 이재범, "궁예의 불교사상에 관한 고찰" 신라사학회 (31) : 185-223, 2014

      21 임영애, "고려전기 원주지역의 불교조각" 韓國美術史學會 228·229 : 2001

      22 권보경, "고려전기 강릉일대 석조보살상 연구" 수선사학회 (25) : 113-149, 2006

      23 "高麗史節要"

      24 "高麗史"

      25 진정환, "高麗前期 新樣式 石佛의 展開와 造成背景" 한국미술사학회 287 (287): 5-27, 2015

      26 陳政煥, "高麗前期 佛敎石造美術 硏究" 東國大學校 大學院 2013

      27 홍대한, "高麗 石塔 硏究" 단국대학교 대학원 2011

      28 신호철, "高麗 初 後百濟系 人物들의 활동" 한국중세사학회 (22) : 77-107, 2007

      29 許興植, "韓國金石全文 中世上" 亞細亞文化社 1984

      30 김혜원, "譯註 羅末麗初金石文(上)" 혜안 1996

      31 崔聖銀, "羅末麗初 小形金銅佛立像 硏究-王宮里 五層石塔 出土 金銅佛立像을 中心으로" 國立中央博物館 58 : 1997

      32 洪潤植, "素軒南都永博士古稀紀念 歷史學論叢" 민족문화사 1993

      33 申虎澈, "甄萱의 出身과 社會的 進出" 西江大學校 東亞硏究所 17 : 1989

      34 邊東明, "甄萱의 出身地 再論" 震檀學會 90 : 2000

      35 金杜珍, "王建의 僧侶結合과 그 意圖" 國民大學校 韓國學硏究所 4 : 1982

      36 國立扶餘文化財硏究所, "王宮里Ⅸ" 國立扶餘文化財硏究所 2013

      37 國立扶餘文化財硏究所, "王宮里Ⅷ" 國立扶餘文化財硏究所 2012

      38 國立扶餘文化財硏究所, "王宮里 發掘中間報告 Ⅲ" 國立扶餘文化財硏究所 2001

      39 배재훈, "片雲和尙浮圖를 통해 본 實相山門과 甄萱政權" 백제연구소 (50) : 201-234, 2009

      40 정성권, "泰封國都城(弓裔都城) 내 풍천원 석등 연구" 한국고대사탐구학회 (7) : 167-211, 2011

      41 李東喆, "榮州地域의 新羅石佛像 硏究" 東國大學校 大學院 1994

      42 金相鉉, "新羅華嚴思想史硏究" 民族社 1991

      43 李基白, "新羅思想史硏究" 一潮閣 1986

      44 文明大, "新羅四天王像의 硏究" 東國大學校 博物館 5 : 1980

      45 진정환, "新羅 下代~高麗 前期 佛敎石造美術 發願者와 匠人의 變化" 신라사학회 (32) : 341-388, 2014

      46 "新增東國輿地勝覽"

      47 陳政煥, "慶北 北部地域의 羅末 佛像에 對한 考察" 國立慶州博物館 5 : 2011

      48 진정환, "後百濟의 佛敎美術과 그 影響" 전북사학회 (47) : 35-76, 2015

      49 진정환, "後百濟王 甄萱의 900~901年 言行의 意味" 전북사학회 (57) : 115-148, 2019

      50 李道學, "後百濟 甄萱의 農民施策에 관한 再檢討" 白山學會 62 : 2002

      51 진정환, "後百濟 佛敎美術의 特徵과 性格" 동악미술사학회 (11) : 157-188, 2010

      52 趙仁成, "彌勒信仰과 新羅社會" 震檀學會 82 : 1996

      53 申虎澈, "弓裔의 政治的 性格-특히 佛敎와의 관계를 中心으로" 一志社 8 : 1982

      54 李道學, "弓裔의 北原京 占領과 그 意義" 東國史學會 43 : 2007

      55 趙仁成, "弓裔의 勢力形成과 建國" 震檀學會 75 : 1993

      56 趙仁成, "弓裔의 出生과 成長" 西江大學校 東亞硏究所 17 : 1989

      57 정성권, "弓裔와 梁吉의 전쟁, 비뇌성 전투에 관한 고찰"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83) : 197-220, 2012

      58 梁敬淑, "弓裔와 그의 彌勒佛 思想"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3 : 1993

      59 최연식, "康津 無爲寺 先覺大師碑를 통해 본 弓裔 행적의 재검토" 한국목간학회 7 : 2011

      60 全北大學校博物館, "完州鳳林寺地" 全北大學校博物館·完州郡 2015

      61 京畿道博物館, "奉業寺" 京畿道博物館 2002

      62 진정환, "南原 池塘里 石佛立像 考察" 동악미술사학회 (8) : 101-123, 2007

      63 陳政煥, "全北地域 百濟樣式 石塔에 對한 一考察" 國立公州博物館 3 : 2003

      64 임영애, "元祐5年(1090)銘 原州 立石寺 磨崖佛坐像 小考" 韓國美術史硏究所 12 : 1999

      65 진정환, "井邑地域 百濟系 佛像 考察" 한국문화사학회 (27) : 467-489, 2007

      66 "三國遺事"

      67 "三國史記"

      68 전용호, "三國~朝鮮, 發掘調査와 成果 韓國의 都城"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10

      69 홍창우, "『삼국유사』의 후고구려 인식" 호남사학회 (62) : 89-135, 2016

      70 정성권, "‘궁예미륵’석불입상의 구비전승적 연구 -안성 기솔리 석불입상, 포천 구읍리 석불입상을 중심으로-" 국립민속박물관 (30) : 91-115, 2012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5-02-11 학회명변경 영문명 : Dongak Art History -> Association of Dongak Art History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7 0.47 0.7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8 0.71 0.807 0.1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