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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청동기시대 암각화의 층위관계와 암각화 확산의 사회경제적 배경 검토 = Examining the Stratigraphic Relation of Korean Bronze Age Petrographs and the Socio-economic Background of Their Sp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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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논문의 목적은 청동기시대 암각화의 편년을 층위관계와 암각화 문양의 내용검토를 통하여 추적하고 암각화 확산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고찰하는데 있다.
    부여 송국리 1호 석관묘 개석을 포함하여 보성 동촌리 1호지석묘의 개석과 석관 벽석에서 확인된 성혈과 박편의 제작시기인 청동기시대 토층에 부분적으로 덮여 있는 고령 봉평리암각화에서의 층위관계, 사천 본촌리유적 나10호주거지 출토 동검암각화 지석, 밀양 살내유적II 제1호 지석묘 출토 동검암각화는 청동기시대 암각화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층위관계 속의 고고학적 검증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설사 청동기시대 지상에 노출되었더라도 포항 인비동 16호 지석묘 암각화, 대구 진천동 입석의 암각화, 여수오림동 5호지석묘 상석의 암각화도 청동기시대 유적에 청동기시대 유물을 모티브로 하거나 그 당시 사용되는 문양을 사용하는 암각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청동기시대 암각화의 존재를 알려주는 방증적 증거이다.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검, 촉, 동심원(나선형), 성혈 등 다양한 암각화 문양이 사용되고 청동기시대 후기에 더 많이 남한지역에 확산되는 양상이다. 상기 암각화자료의 사례분석을 통하여 청동기시대 암각화의 사용과 확산배경 중의 하나로 농경정착사회의 장례의례와 조상숭배가 관련되는 경우가 다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청동기시대 조상숭배를 강조하는 정착농경사회의 발전은 지석묘문화와 결합한 암각화를 발생시킨 여러 원인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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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의 목적은 청동기시대 암각화의 편년을 층위관계와 암각화 문양의 내용검토를 통하여 추적하고 암각화 확산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고찰하는데 있다. 부여 송국리 1호 석관묘 개석을 ...

    이 논문의 목적은 청동기시대 암각화의 편년을 층위관계와 암각화 문양의 내용검토를 통하여 추적하고 암각화 확산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고찰하는데 있다.
    부여 송국리 1호 석관묘 개석을 포함하여 보성 동촌리 1호지석묘의 개석과 석관 벽석에서 확인된 성혈과 박편의 제작시기인 청동기시대 토층에 부분적으로 덮여 있는 고령 봉평리암각화에서의 층위관계, 사천 본촌리유적 나10호주거지 출토 동검암각화 지석, 밀양 살내유적II 제1호 지석묘 출토 동검암각화는 청동기시대 암각화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층위관계 속의 고고학적 검증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설사 청동기시대 지상에 노출되었더라도 포항 인비동 16호 지석묘 암각화, 대구 진천동 입석의 암각화, 여수오림동 5호지석묘 상석의 암각화도 청동기시대 유적에 청동기시대 유물을 모티브로 하거나 그 당시 사용되는 문양을 사용하는 암각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청동기시대 암각화의 존재를 알려주는 방증적 증거이다.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검, 촉, 동심원(나선형), 성혈 등 다양한 암각화 문양이 사용되고 청동기시대 후기에 더 많이 남한지역에 확산되는 양상이다. 상기 암각화자료의 사례분석을 통하여 청동기시대 암각화의 사용과 확산배경 중의 하나로 농경정착사회의 장례의례와 조상숭배가 관련되는 경우가 다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청동기시대 조상숭배를 강조하는 정착농경사회의 발전은 지석묘문화와 결합한 암각화를 발생시킨 여러 원인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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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thesis aims to evaluate whether the Korean Bronze Age petrographs are really dated to the Korean Bronze Age or not by way of examining both their stratigraphic relation and their petrograph motifs. In addition it also aims to review the socio-economic background of their spread.
    However the examples of petrographs such as not only the covering plate stone of No. 1 stone cist at Songguk-ri of Buyeo County but also that of the stone cist underneath pebble layers of the No. 1 dolmen at Dongchon-ri of Boseong County and the petrographs from Bongpyeong-ri of Goryeong County covered partly from the cultural layer of the Bronze Age, and other two more petrographs are very important because they vividly show the existence of the petrographs by stratigraphic relation during the Bronze Age. There are also indirect evidences to imply a tradition of carving petrograph during the Korean Bronze Age, which is suggested by the three examples such as the stone dagger motifs and the stone arrowhead motif on the capstone of No. 16 dolmen at Inbi-dong of Pohang City, the stone dagger motif on the capstone of No. 5 dolmen at Orim-dong of Yeosu City, and the cup marks and concentric designs on the menhir at Jincheon-dong of Daegu City.
    Although the sample sizes are not big enough, it is meaningful to find that carving petrographs during the Late Bronze had been practiced in South Korea for rituals such as mortuary practices or ancestor worship practices as the sedentary agricultural communities of the Korean Bronze Age entered into the agricultural intensification further. The development of sedentary agricultural communities with ancestor worship practices might be one of the factors causing the spread of petrographs combing with the dolme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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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thesis aims to evaluate whether the Korean Bronze Age petrographs are really dated to the Korean Bronze Age or not by way of examining both their stratigraphic relation and their petrograph motifs. In addition it also aims to review the socio-eco...

    This thesis aims to evaluate whether the Korean Bronze Age petrographs are really dated to the Korean Bronze Age or not by way of examining both their stratigraphic relation and their petrograph motifs. In addition it also aims to review the socio-economic background of their spread.
    However the examples of petrographs such as not only the covering plate stone of No. 1 stone cist at Songguk-ri of Buyeo County but also that of the stone cist underneath pebble layers of the No. 1 dolmen at Dongchon-ri of Boseong County and the petrographs from Bongpyeong-ri of Goryeong County covered partly from the cultural layer of the Bronze Age, and other two more petrographs are very important because they vividly show the existence of the petrographs by stratigraphic relation during the Bronze Age. There are also indirect evidences to imply a tradition of carving petrograph during the Korean Bronze Age, which is suggested by the three examples such as the stone dagger motifs and the stone arrowhead motif on the capstone of No. 16 dolmen at Inbi-dong of Pohang City, the stone dagger motif on the capstone of No. 5 dolmen at Orim-dong of Yeosu City, and the cup marks and concentric designs on the menhir at Jincheon-dong of Daegu City.
    Although the sample sizes are not big enough, it is meaningful to find that carving petrographs during the Late Bronze had been practiced in South Korea for rituals such as mortuary practices or ancestor worship practices as the sedentary agricultural communities of the Korean Bronze Age entered into the agricultural intensification further. The development of sedentary agricultural communities with ancestor worship practices might be one of the factors causing the spread of petrographs combing with the dolme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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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권구,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목기에 대한 고찰-남한지역의 목기를 중심으로" 한국고고학회 (67) : 40-71, 2008

    2 신종환, "한국의 암각화 II-대구 · 경북편" 울산암각화박물관 248-255, 2012

    3 김권구, "한국사 연구의 새로운 동향" 도서출판 역락 9-70, 2018

    4 곽종철, "한국고대의 수전농업과 수리시설" 한국고대의 수전농업과 수리시설 231-315, 2010

    5 이성주, "한국 지석묘(고인돌)유적 종합조사 ·연구-분포, 형식, 기원, 전파 및 사회복원-" 문화재청 · 서울대학교박물관 423-441, 1999

    6 이하우, "한국 암각화의 祭儀性" 학연문화사 2011

    7 임세권, "한국 암각화에 나타난 태양신 숭배" (창간) : 7-26, 1999

    8 곽종철, "한국 농경문화의 형성" 한국고고학회, 학연문화사 25-93, 2002

    9 고민정, "청동기시대 후기 농경 집약화와 사회조직-진주 대평리유적을 중심으로-"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1 : 79-105, 2009

    10 윤호필, "청동기시대 묘역지석묘에 관한 연구"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1 : 1-2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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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곽종철, "한국고대의 수전농업과 수리시설" 한국고대의 수전농업과 수리시설 231-3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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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이하우, "한국 암각화의 祭儀性" 학연문화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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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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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9 0.79 0.7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2 0.66 1.364 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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