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KCI등재

    강세황의 <도산도> - 표암 강세황과 성호 이익이 우정으로 그린 그림 -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0399458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URL 복사
    • 오류접수
    인용문이 복사되었습니다.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751년, 안산에 머물던 姜世晃(1713~1791)은 대학자 星湖 李瀷(1681~1763)을 위해 <陶山圖>를 제작하였다. <도산도>는 退溪 李滉(1501~1570)의 도산서원과 그 주변의 풍광을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이 처음 그려진 명 종대 이래 <도산도>는 퇴계로부터 시작된 남인의 학문적 宗旨를 상징하는 그림으로서 주자의 강학처를 그린 <武夷圖>와 더불어 남인 문사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강세황이 성호의 요청으로 제작한 <도산 도>는 이 그림의 보편적 맥락에서 성호의 퇴계에 대한 존경심과 학문적 계승정신을 기탁한 그림이었다. 도산도의 일반적인 도학적 상징성을 넘어 강세황의 <도산도>를 통해 조명해야 하는 부분은 ‘實學’을 대표하 는 학자 성호와, 문화예술 부분에서 역시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화가 강세황 간의 ‘안산’에서 일어난 ‘만남’ 이다. 이들의 만남이 중요한 까닭은 학문과 예술, 두 분야의 대표적인 인물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머 물며 시절을 공유하는 경우란 역사에서 다시 찾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20년이 넘는 긴 세월 동 안 한 지역에 동거하며 학문과 문예로서 교유했다. 그러나 이 만남은 그들이 남긴 문자 속에서 쉽게 실체를 드 러내지 않는다. 비록 문헌에는 이 관계가 도드라지지 않지만, 강세황이 안산에서 제작한 회화 작품은 두 사람 간의 특별한 관계를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다. 30여년이 넘는 나이차, 서로 다른 사회적 위상을 뛰어넘어 이루 어진 이 관계에는 단순히 지역적 근접성으로, 문인집단 내의 일상적인 만남으로서, 혹은 그림의 주문자와 화 가로서의 관계로 축소할 수 없는 성질이 있다. <도산도>가 제작된 날은 1751년 10월 15일이다. 바로 성호의 생일을 3일 앞 둔 날이었다. 이 시점에 제작한 < 도산도>는 성호의 71세 생일을 맞이하여 그의 일생과 학문을 기념하기 위한 그림이었다. 동시에 같은 해 아들 李孟休(1713~1751)의 죽음으로 상심한 그를 위로하는 그림이기도 했다. 강세황은 이 그림을 제작하며 관습적 인 화법으로 그려지던 <도산도>를 문인화의 방식으로 새롭게 그려냈으며, 원근법을 적용하여 화면을 재구성 했다. 그림의 마지막에 적은 화기에는 성호에 대한 존경심을 담았다. 문인화가의 손에 의해 새롭게 탄생한 < 도산도>에는 성호의 예술적 취미와 도산서원을 방문한 기억이 반영되어 있다. 강세황이 성호를 위해 <도산도 >를 그리고자 한 바탕에는 성호의 삶과 학문에 대한 특별한 이해와 우정이 있었다. 강세황이 안산에 머물며 성호와 교유하던 시기는 문인화가로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성숙시켜 나간 시기였다. 이 논문은 안산을 배경으로 맺어진 인간적 연대가 강세황의 예술세계를 형성한 한 가지 요소이며, 그 관계의 이면에서 역사적, 개인적 경험이 작용하고 있음에 대해 논의한다.
    번역하기

    1751년, 안산에 머물던 姜世晃(1713~1791)은 대학자 星湖 李瀷(1681~1763)을 위해 <陶山圖>를 제작하였다. <도산도>는 退溪 李滉(1501~1570)의 도산서원과 그 주변의 풍광을 그린 작품이다...

    1751년, 안산에 머물던 姜世晃(1713~1791)은 대학자 星湖 李瀷(1681~1763)을 위해 <陶山圖>를 제작하였다. <도산도>는 退溪 李滉(1501~1570)의 도산서원과 그 주변의 풍광을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이 처음 그려진 명 종대 이래 <도산도>는 퇴계로부터 시작된 남인의 학문적 宗旨를 상징하는 그림으로서 주자의 강학처를 그린 <武夷圖>와 더불어 남인 문사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강세황이 성호의 요청으로 제작한 <도산 도>는 이 그림의 보편적 맥락에서 성호의 퇴계에 대한 존경심과 학문적 계승정신을 기탁한 그림이었다. 도산도의 일반적인 도학적 상징성을 넘어 강세황의 <도산도>를 통해 조명해야 하는 부분은 ‘實學’을 대표하 는 학자 성호와, 문화예술 부분에서 역시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화가 강세황 간의 ‘안산’에서 일어난 ‘만남’ 이다. 이들의 만남이 중요한 까닭은 학문과 예술, 두 분야의 대표적인 인물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머 물며 시절을 공유하는 경우란 역사에서 다시 찾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20년이 넘는 긴 세월 동 안 한 지역에 동거하며 학문과 문예로서 교유했다. 그러나 이 만남은 그들이 남긴 문자 속에서 쉽게 실체를 드 러내지 않는다. 비록 문헌에는 이 관계가 도드라지지 않지만, 강세황이 안산에서 제작한 회화 작품은 두 사람 간의 특별한 관계를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다. 30여년이 넘는 나이차, 서로 다른 사회적 위상을 뛰어넘어 이루 어진 이 관계에는 단순히 지역적 근접성으로, 문인집단 내의 일상적인 만남으로서, 혹은 그림의 주문자와 화 가로서의 관계로 축소할 수 없는 성질이 있다. <도산도>가 제작된 날은 1751년 10월 15일이다. 바로 성호의 생일을 3일 앞 둔 날이었다. 이 시점에 제작한 < 도산도>는 성호의 71세 생일을 맞이하여 그의 일생과 학문을 기념하기 위한 그림이었다. 동시에 같은 해 아들 李孟休(1713~1751)의 죽음으로 상심한 그를 위로하는 그림이기도 했다. 강세황은 이 그림을 제작하며 관습적 인 화법으로 그려지던 <도산도>를 문인화의 방식으로 새롭게 그려냈으며, 원근법을 적용하여 화면을 재구성 했다. 그림의 마지막에 적은 화기에는 성호에 대한 존경심을 담았다. 문인화가의 손에 의해 새롭게 탄생한 < 도산도>에는 성호의 예술적 취미와 도산서원을 방문한 기억이 반영되어 있다. 강세황이 성호를 위해 <도산도 >를 그리고자 한 바탕에는 성호의 삶과 학문에 대한 특별한 이해와 우정이 있었다. 강세황이 안산에 머물며 성호와 교유하던 시기는 문인화가로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성숙시켜 나간 시기였다. 이 논문은 안산을 배경으로 맺어진 인간적 연대가 강세황의 예술세계를 형성한 한 가지 요소이며, 그 관계의 이면에서 역사적, 개인적 경험이 작용하고 있음에 대해 논의한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n 1751, Kang Sehwang 姜世晃 (sobriquet, Pyeoam, 1713–1791) painted Dosan-do陶山圖 (the Painting of the Dosan Confucian Academy) for Yi Ik 李瀷 (sobriquet, Seongho, 1681–1763), a leading scholar of Sil’hak (實學), a Confucian social reform movement of the eighteenth-century Joseon period. Dosan-do is a topographical landscape painting representing the Dosan Confucian Academy and its surroundings (located at Andong), commemorating the scholar Yi Hwang 李滉 (sobriquet, Toegye, 1501–1570). Since the first version was painted in 1550 on the orders of King Myeongjong (r.1545–1567), Dosan-do was repeatedly paired with Muyi-do, the painting representing Zhu Xi’s (朱熹, 1130–1200) Wuyi Mountains. For members of Namin (南人), the Southern School of Joseon Neo-Confucianism, Dosan-do and Muyi-do epitomized the pursuit of Toegye’s doctrine of Joseon Neo-Confucianism. It is generally acknowledged that Yi Ik’s commission of Dosan-do from Kang is an affirmation of respect for Yi Hwang as well as for the spiritual genealogy of the pedigree of Namin. Beyond such ideological symbolism of Dosan-do, the paper shed light on the “meeting” between Kang Sehwang, a representative literati painter, and Yi Ik, a prominent scholar of the late eighteenth century. They both lived in Ansan for twenty years and shared their academic interests and artistic experiences. Extant text records, however, do not reveal precisely how they interacted with each other. Although their interaction has been dismissed as unremarkable because of the scarcity of written evidence, we can find obvious traces of an interrelationship in Kang’s Ansan paintings. Kang and Yi shared a particular friendship despite more than thirty years of difference in age as well as differing social status. However, if we focus on the Confucian genealogy of Dosan-do, their relationship would be reduced merely to that of patron and painter or to a token interaction between local scholars. The consequence would be to disregard Kang’s own pictorial strategy and the multifaceted implications of the artistic activities in his life. Therefore, I intend to pay more attention to Kang’s pictorial reinterpretation, and to the context in which he encountered Yi Ik. This approach will highlight the significance of their junction. During his stay at Ansan, spending time with Yi Ik enabled Kang Sehwang to establish his artistic vision, thoughts, and knowledge as an artist and intellectual, and ultimately allowed him to develop his self- conscious art.
    번역하기

    In 1751, Kang Sehwang 姜世晃 (sobriquet, Pyeoam, 1713–1791) painted Dosan-do陶山圖 (the Painting of the Dosan Confucian Academy) for Yi Ik 李瀷 (sobriquet, Seongho, 1681–1763), a leading scholar of Sil’hak (實學), a Confucian social ...

    In 1751, Kang Sehwang 姜世晃 (sobriquet, Pyeoam, 1713–1791) painted Dosan-do陶山圖 (the Painting of the Dosan Confucian Academy) for Yi Ik 李瀷 (sobriquet, Seongho, 1681–1763), a leading scholar of Sil’hak (實學), a Confucian social reform movement of the eighteenth-century Joseon period. Dosan-do is a topographical landscape painting representing the Dosan Confucian Academy and its surroundings (located at Andong), commemorating the scholar Yi Hwang 李滉 (sobriquet, Toegye, 1501–1570). Since the first version was painted in 1550 on the orders of King Myeongjong (r.1545–1567), Dosan-do was repeatedly paired with Muyi-do, the painting representing Zhu Xi’s (朱熹, 1130–1200) Wuyi Mountains. For members of Namin (南人), the Southern School of Joseon Neo-Confucianism, Dosan-do and Muyi-do epitomized the pursuit of Toegye’s doctrine of Joseon Neo-Confucianism. It is generally acknowledged that Yi Ik’s commission of Dosan-do from Kang is an affirmation of respect for Yi Hwang as well as for the spiritual genealogy of the pedigree of Namin. Beyond such ideological symbolism of Dosan-do, the paper shed light on the “meeting” between Kang Sehwang, a representative literati painter, and Yi Ik, a prominent scholar of the late eighteenth century. They both lived in Ansan for twenty years and shared their academic interests and artistic experiences. Extant text records, however, do not reveal precisely how they interacted with each other. Although their interaction has been dismissed as unremarkable because of the scarcity of written evidence, we can find obvious traces of an interrelationship in Kang’s Ansan paintings. Kang and Yi shared a particular friendship despite more than thirty years of difference in age as well as differing social status. However, if we focus on the Confucian genealogy of Dosan-do, their relationship would be reduced merely to that of patron and painter or to a token interaction between local scholars. The consequence would be to disregard Kang’s own pictorial strategy and the multifaceted implications of the artistic activities in his life. Therefore, I intend to pay more attention to Kang’s pictorial reinterpretation, and to the context in which he encountered Yi Ik. This approach will highlight the significance of their junction. During his stay at Ansan, spending time with Yi Ik enabled Kang Sehwang to establish his artistic vision, thoughts, and knowledge as an artist and intellectual, and ultimately allowed him to develop his self- conscious art.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Ⅰ. 서론
    • Ⅱ. 남인의 도맥을 상징하는 도산도
    • Ⅲ. 강세황이 문인화로 그린 도산도
    • Ⅳ. 실학의 대학자와 문인화가의 만남
    • 국문초록
    • Ⅰ. 서론
    • Ⅱ. 남인의 도맥을 상징하는 도산도
    • Ⅲ. 강세황이 문인화로 그린 도산도
    • Ⅳ. 실학의 대학자와 문인화가의 만남
    • Ⅴ. 결론: 불우한 시절의 우정과 연대
    • 참고문헌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김동준, "해암 유경종의 시문학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3

    2 安輝濬, "한국의미: 山水畵 下" 중앙일보사 1985

    3 국립중앙박물관, "표암 강세황: 시대를 앞서 간 예술혼" 국립중앙박물관 89-272, 2013

    4 이태호, "표암 강세황" 예술의 전당 398-404, 2003

    5 이경화, "윤두서(尹斗緖)의 <정재처사심공진(定齋處士沈公眞)> 연구-한 남인 지식인의 초상 제작과 우도론(友道論)"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8) : 152-193, 2009

    6 전성건, "성호의 가문의식과 일상생활" 한국실학학회 (26) : 7-42, 2013

    7 정만조, "성호 이익의 학문 탐구와 정치적 위상" 10 : 5-34, 2011

    8 이상해, "도산서원" 한길사 293-322, 2001

    9 유재빈, "도산도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4

    10 변태섭, "교학한국사대사전9" 55-, 2013

    1 김동준, "해암 유경종의 시문학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3

    2 安輝濬, "한국의미: 山水畵 下" 중앙일보사 1985

    3 국립중앙박물관, "표암 강세황: 시대를 앞서 간 예술혼" 국립중앙박물관 89-272, 2013

    4 이태호, "표암 강세황" 예술의 전당 398-404, 2003

    5 이경화, "윤두서(尹斗緖)의 <정재처사심공진(定齋處士沈公眞)> 연구-한 남인 지식인의 초상 제작과 우도론(友道論)"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8) : 152-193, 2009

    6 전성건, "성호의 가문의식과 일상생활" 한국실학학회 (26) : 7-42, 2013

    7 정만조, "성호 이익의 학문 탐구와 정치적 위상" 10 : 5-34, 2011

    8 이상해, "도산서원" 한길사 293-322, 2001

    9 유재빈, "도산도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4

    10 변태섭, "교학한국사대사전9" 55-, 2013

    11 정은진, "강세황의 안산생활과 문예활동: 유경종과의 교유를 중심으로" 25 : 367-396, 2000

    12 김선희, "가난, 병, 죽음: 삶의 난관 앞에 선 실학자들" 한국실학학회 (26) : 121-167, 2013

    13 丁若鏞, "韓國文集叢刊281" 민족문화추진회 2002

    14 李瀷, "韓國文集叢刊199․200" 민족문화추진회 1996

    15 趙德鄰, "韓國文集叢刊175" 민족문화추진회 1996

    16 이우성, "陶山書院" 한길사 140-141, 2001

    17 윤진영, "陶山圖의 전통과 陶山九曲" 10 : 69-122, 2011

    18 金赫濟, "金赫濟 校閱" 명문당

    19 예술의 전당, "退溪 李滉" 예술의 전당 286-269, 2001

    20 李漵, "近畿實學淵源諸賢集1" 成均館大學校 大東文化硏究院 2002

    21 변영섭, "豹菴 姜世晃 繪畵 硏究" 72-74, 1988

    22 예술의 전당, "豹菴 姜世晃" 예술의 전당 360-361, 2003

    23 정은진, "聲皐酬唱錄을 통해 본 豹菴 姜世晃과 星湖家의 교유 양상" 동양한문학회 22 (22): 337-374, 2006

    24 김동준, "王世貞 코드로 읽는 生誌銘과 意園-18세기 安山圈 文人들의 불우와 위안의 예술적 형상화-" 한국한문학회 (52) : 125-164, 2013

    25 羅竹風, "漢語大詞典5" 漢語大詞典出版社 93-1173, 1990

    26 고연희, "星湖 李瀷의 繪畵觀" 온지학회 (36) : 75-104, 2013

    27 이성무, "星湖 李瀷(1681-1763)의 生涯와 思想" 3 : 97-128, 1997

    28 서수정, "文人畵論에 나타난 人品의 儒家哲學的 考察" 동양철학연구회 (42) : 349-372, 2005

    29 何傳馨, "山水合璧: 黃公望與富春山居圖特展" 國立故宮博物院 42-63, 2011

    30 이경화, "姜世晃의 <淸供圖>와 文房淸玩" 한국미술사학회 271272 (271272): 113-144, 2011

    31 정민, "18세기 우정론의 맥락에서 본 이용휴의 生誌銘攷" 34 : 301-325, 2000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5-29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東아시아古代學 -> 동아시아고대학 KCI등재후보
    2005-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33 0.33 0.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 0.29 0.686 0.09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