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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新石器時代 大韓海峽 兩岸地域 交流에 대한 再檢討 = New Perspectives on Socioeconomic Interchanges between Southern Korean Peninsula and Japanese Kyushu Island during the Neolithic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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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52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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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article investigate interchanges and their changes with time between groups of Southern Korean peninsula and Japanese Kyushu island during the Neolithic period in relation to socioeconomic changes in each region. Interchanges between the two regions identified by the exchange items like potteries, stonetools and ornaments continued from Initial to Final phase. Intensity of interchanges is not unchanged through time, which was already pointed by some researchers, being stronger during Initial to Early phases and Final phase than other ones. Formation and change of these interrelations are closely related with socioeconomic needs of each regional group, so a full understanding of socioeconomic changes in each region needed firstly. Therefore, this article focuses on the process of socioeconomic changes in each region and its relation with interchanges between the two regions.
    The history of interchanges between the two regions can be divided into three phases, Phase 1, 2 and 3 respectively. Each phase corresponds to the Initial to Early, Middle to Late, and Final phase of southern Korean Neolithic period successively. Changes during Phase 1 to 2, characterized by weakening of intensity of interchange, related with the spread of incipient agriculture to southern Korea and southward spread of Sobata(曾畑) pottery culture in Kyushu. Changes during Phase 2 to 3, represented by movement of contact area from Tchushima(對馬島) to southern part of Korea, related with breakup of subsistence system in southern Korean Chulmun(櫛文) societies and huge influx of cultural traits into Kyushu island from western part of Honshu(本州) in Japanese Jomon(繩文). These changes in interrelationship seem to working together with the changes of neighboring Northeast Asian Neolithic cul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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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article investigate interchanges and their changes with time between groups of Southern Korean peninsula and Japanese Kyushu island during the Neolithic period in relation to socioeconomic changes in each region. Interchanges between the two regi...

    This article investigate interchanges and their changes with time between groups of Southern Korean peninsula and Japanese Kyushu island during the Neolithic period in relation to socioeconomic changes in each region. Interchanges between the two regions identified by the exchange items like potteries, stonetools and ornaments continued from Initial to Final phase. Intensity of interchanges is not unchanged through time, which was already pointed by some researchers, being stronger during Initial to Early phases and Final phase than other ones. Formation and change of these interrelations are closely related with socioeconomic needs of each regional group, so a full understanding of socioeconomic changes in each region needed firstly. Therefore, this article focuses on the process of socioeconomic changes in each region and its relation with interchanges between the two regions.
    The history of interchanges between the two regions can be divided into three phases, Phase 1, 2 and 3 respectively. Each phase corresponds to the Initial to Early, Middle to Late, and Final phase of southern Korean Neolithic period successively. Changes during Phase 1 to 2, characterized by weakening of intensity of interchange, related with the spread of incipient agriculture to southern Korea and southward spread of Sobata(曾畑) pottery culture in Kyushu. Changes during Phase 2 to 3, represented by movement of contact area from Tchushima(對馬島) to southern part of Korea, related with breakup of subsistence system in southern Korean Chulmun(櫛文) societies and huge influx of cultural traits into Kyushu island from western part of Honshu(本州) in Japanese Jomon(繩文). These changes in interrelationship seem to working together with the changes of neighboring Northeast Asian Neolithic cul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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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는 신석기시대 대한해협 양안지역 교류관계의 변화를 각 지역 내부의 사회경제적 변화과정과 관련하여 검토하고자 하였다. 양안지역 교류는 남해안 신석기 조기 단계부터 만기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전개되어 왔으며, 이는 토기나 석기, 장신구 등의 교류관련 유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교류관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강도의 증감이 있었음은 기존의 연구에서 이미 지적되었는 바, 양안지역 교류가 조기와 전기 단계를 중심으로 가장 활발히 진행되었고, 남해안 만기 단계에 九州지역의 문물이 상대적으로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류관계의 성립과 변동은 각 지역 내부의 사회경제적 필요와 밀접히 관련되는 것이므로, 한반도 남해안과 九州지역 자체의 사회경제적 변화과정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일차적으로 양안지역 교류문물의 내용과 성격을 파악한 후, 이를 양안지역 각각의 사회경제변화 과정과 관련하여 해석하였다. 그 결과 양안지역의 교류사를 크게 3기의 획기로 나누었으며, 이는 각각 남해안 신석기 조∼전기/중∼후기 / 만기 단계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았다. 1기∼2기의 변화는 양안지역교류강도의 약화로 표현될 수 있는 바, 이는 한반도 남부지역에 초기농경이 확산되는 현상,
    구주 소바타토기문화의 남부지역 확산현상 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2∼3기의 변화는 양안지역 접촉지대가 대마도에서 한반도 남해안지역으로 이동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바, 이는 한반도 남부지역 생업시스템의 와해 및 九州 繩文 후기단계에 서일본으로부터 새로운 문화가 대거 유입되는 현상과 관련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동북아시아의 광역변동과도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양안지역 교류사에 대한 연구는 더 넓은 시야에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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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신석기시대 대한해협 양안지역 교류관계의 변화를 각 지역 내부의 사회경제적 변화과정과 관련하여 검토하고자 하였다. 양안지역 교류는 남해안 신석기 조기 단계부터 만기에 이르...

    본고는 신석기시대 대한해협 양안지역 교류관계의 변화를 각 지역 내부의 사회경제적 변화과정과 관련하여 검토하고자 하였다. 양안지역 교류는 남해안 신석기 조기 단계부터 만기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전개되어 왔으며, 이는 토기나 석기, 장신구 등의 교류관련 유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교류관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강도의 증감이 있었음은 기존의 연구에서 이미 지적되었는 바, 양안지역 교류가 조기와 전기 단계를 중심으로 가장 활발히 진행되었고, 남해안 만기 단계에 九州지역의 문물이 상대적으로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류관계의 성립과 변동은 각 지역 내부의 사회경제적 필요와 밀접히 관련되는 것이므로, 한반도 남해안과 九州지역 자체의 사회경제적 변화과정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일차적으로 양안지역 교류문물의 내용과 성격을 파악한 후, 이를 양안지역 각각의 사회경제변화 과정과 관련하여 해석하였다. 그 결과 양안지역의 교류사를 크게 3기의 획기로 나누었으며, 이는 각각 남해안 신석기 조∼전기/중∼후기 / 만기 단계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았다. 1기∼2기의 변화는 양안지역교류강도의 약화로 표현될 수 있는 바, 이는 한반도 남부지역에 초기농경이 확산되는 현상,
    구주 소바타토기문화의 남부지역 확산현상 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2∼3기의 변화는 양안지역 접촉지대가 대마도에서 한반도 남해안지역으로 이동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바, 이는 한반도 남부지역 생업시스템의 와해 및 九州 繩文 후기단계에 서일본으로부터 새로운 문화가 대거 유입되는 현상과 관련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동북아시아의 광역변동과도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양안지역 교류사에 대한 연구는 더 넓은 시야에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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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임상택, "한국 중서부지역 빗살무늬토기문화 변동과정 연구" 서울대학교 2006

    2 송은숙, "한국 빗살무늬토기 문화의 확산과정 연구" 서울대학교 2002

    3 하인수, "영남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연구ᜭ편년과 생업을 중심으로" 부산대학교 2006

    4 임효재, "신석기시대의 한일문화교류" 국사편찬위원회 16 : 1986

    5 하인수, "신석기시대 한일문화교류와 흑요석" 嶺南考古學會·九州考古學會 2004

    6 河仁秀, "신석기시대 한일 문화교류와 흑요석" 한국고고학회 58 (58): 4-39, 2006

    7 하인수, "신석기시대 대외교류 연구" 부산시립박물관 8 : 2001

    8 李相均, "동아시아속에서의 한국신석기문화" 고대학회 8 : 1997

    9 정징원, "남해안지방과 구주지방의 신석기시대 문화교류 연구"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12 : 1998

    10 田中聰一, "韓國中·南部地方新石器時代土器文化硏究" 동아대학교 2000

    1 임상택, "한국 중서부지역 빗살무늬토기문화 변동과정 연구" 서울대학교 2006

    2 송은숙, "한국 빗살무늬토기 문화의 확산과정 연구" 서울대학교 2002

    3 하인수, "영남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연구ᜭ편년과 생업을 중심으로" 부산대학교 2006

    4 임효재, "신석기시대의 한일문화교류" 국사편찬위원회 16 : 1986

    5 하인수, "신석기시대 한일문화교류와 흑요석" 嶺南考古學會·九州考古學會 2004

    6 河仁秀, "신석기시대 한일 문화교류와 흑요석" 한국고고학회 58 (58): 4-39, 2006

    7 하인수, "신석기시대 대외교류 연구" 부산시립박물관 8 : 2001

    8 李相均, "동아시아속에서의 한국신석기문화" 고대학회 8 : 1997

    9 정징원, "남해안지방과 구주지방의 신석기시대 문화교류 연구"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12 : 1998

    10 田中聰一, "韓國中·南部地方新石器時代土器文化硏究" 동아대학교 2000

    11 安承模, "韓國における農耕, 定住生活のはじまりと社會變化"

    12 木村幾多郞, "貝輪と埋葬人骨" 雄山閣 38 : 1992

    13 山崎純男, "西北九州漁撈文化の特性" 雄山閣 (25) : 1988

    14 渡邊誠, "西北九州の繩文時代漁撈文化" 日本エデイタースクルー出版部 (2) : 1985

    15 福田一志, "西北九州における繩文後期遺蹟の特性"

    16 吉留秀敏, "繩文時代後期から晩期の石技術總體の變化とその平價" 九州古文化硏究會 35 : 1995

    17 土肥孝, "繩文時代の裝身具" 至文堂 2 : 37-44, 1997

    18 中山淸隆, "繩文文化と大陸系文物" 雄山閣 38 : 1992

    19 川崎保, "石製裝身具に見える外來要素" ニューサイエンス社 (454) : 2000

    20 川崎保, "玦狀耳飾と管玉の出現" 日本考古學會 83 (83): 1998

    21 宮本一夫, "海峽を峽む二つの地域" 考古學硏究會 37 (37): 1990

    22 正林護, "海を介した交流"

    23 大貫靜夫, "東北アジアの考古學" 同成社 1998

    24 水ノ江和同, "朝鮮海峽を越えに繩文時代の交流の意義" 同志社大學 Ⅷ : 2003

    25 渡邊誠, "朝鮮海峽における漁民の交流"

    26 西谷正, "朝鮮半島の黑曜石について"

    27 島津義昭, "日韓の文物交流" 雄山閣 (38) : 1992

    28 하인수, "日本白浜遺蹟出土彩色土器小考" 부산시립박물관 5 : 1996

    29 水ノ江和同, "新石器時代韓日交流의 硏究現況과 課題"

    30 李相均, "新石器時代における韓國南岸と九州地方の文化交流" 東京大學 1995

    31 廣瀨雄一, "對馬海峽を挾んだ日韓新石器時代の交流" (6) : 2005

    32 安樂勉, "對馬における韓國新石器時代文化との交流" ニューサイエンス社 (376) : 1994

    33 宮本一夫, "園耕과 죠몽(繩文)農耕" 한국신석기학회 10 : 2005

    34 宮本一夫, "北部九州と朝鮮半島南海岸地域の先史時代交流再考"

    35 甲元眞之, "先史時代の日韓交流試論" 韓國文化硏究振興財團 20 : 2002

    36 甲元眞之, "先史時代の對外交流" 岩波書店 1 : 1987

    37 木村幾多郞, "交易のはじまり" 雄山閣 10 : 1997

    38 木下尙子, "九州繩文時代の裝身具"

    39 正林護, "九州出土の韓國系新石器時代土器" 熊本大學考古學硏究室 2 : 1999

    40 九州繩文硏究會, "九州の貝塚"

    41 九州繩文硏究會, "九州の繩文住居"

    42 水ノ江和同, "九州の玦狀耳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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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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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 1 0.7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9 0.82 1.79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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