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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 Mask Dance’s Influence on Yeats’s Play

        장원재 한국예이츠학회 2002 한국예이츠 저널 Vol.18 No.-

        예이츠가 레이디 그레고리와 더불어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 및 아일랜드 연극운동을 견인하고, 장기간에 걸쳐 애비 극장의 책임자로 활동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 기간 동안 예이츠는 극장의 행정을 담당하고 공연의 예술적 지표를 설정하는 외에, 극작가로서 활동의 지평을 넓히기도 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예이츠의 <Four Plays For Dancers>를 중심으로, 한국 탈춤이 그의 후기 희곡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논구한다. 서양의 연극적 관습이 표현의 한계에 봉착했다고 진단한 예이츠는 그 탈출구를 동양의 전통극에서 찾고자 노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주일 영국대사관에 봉직했던 페날로사의 원고를 에즈라 파운드가 정리한 책으로부터 일본의 전통극 노(能)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고, 나름대로 새로운 연극적 문법을 창시하였다. 악사들을 무대 위로 올려 관중들이 그들의 존재를 곧바로 인지하도록 하고, 등장인물들과 악사 간에 대화를 나누도록 하며, 별도의 장치 전환 없이 배우들이 무대를 몇 바퀴 도는 행위만으로 극중 장소의 변경을 적시하려 한 점 등이다. 이는 근대 이후의 서양적 연극관습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새로운 시공간 개념을 도입하려한 시도에 다름 아니다. 일본의 전통극 노(能)가 공연양식, 탈의 활용법 등을 기준으로 한국의 탈춤, 특히 서낭굿 탈놀이와 방법론적 유사성을 보인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의 탈춤과 일본의 노(能)는 공히 불교 선교극에 예술적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보면, 나라시대(奈良時代: 646-794)에 백제(百濟)로부터 기악(枝樂)이라는 공연 양식이 전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곧 오늘날의 노(能)이다. 이와 같은 전파과정을 고려하면, 한국의 탈춤이 예이츠의 후기 희곡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예이츠가 차용한 악사의 역할, 그리고 연극적 공간의 활용법은 표면적으로는 한국 탈춤의 경우와 상당히 흡사하다. 그러나, 예이츠의 희곡과 한국 탈춤의 채록본을 분석하면, 공연의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논의되는 이 두 요소의 연극적 기능에 본질적인 차이가 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은 바탕 위에서, 본 고에서는 탈춤과 예이츠 희곡 간의 유사성 및 상이점을 자세하게 논구하였다. 나아가, 예이츠가 ‘총체극의 현현일 뿐 아니라 가장 첨단의 공연 양식’이라고 평가했던 동양 전통극의 공연관습이, 한국의 연극 운동 지도자들에게 전근대적이라고 폄하된 까닭을 고찰하였다. 이 문제와 이어지는 ‘연극적 근대성’의 개념에 대한 논쟁을 비교 분석하는 일은 지면 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뤄 두기로 한다.

      • KCI등재

        예이츠와 엘리엇 : 예이츠에 대한 엘리엇의 재조명 및 예이츠의 마스크

        이철희 한국예이츠학회 2013 한국예이츠 저널 Vol.40 No.-

        본 논문은 예이츠와 엘리엇의 관계를 자신들의 평가로 대비한다. 엘리 엇은 예이츠를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 평가 했고 예이츠는 엘리엇은 “시에 있어서 가장 혁명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엘리엇은 예이츠를 지적 우 수성은 물론 도덕적 우수성을 겸비한 작가이며 젊은 시인들이 예이츠를 존경심을 가 지고 배워야한다고 평가한다. 특히 예이츠의 표현기법상의 명료함, 정직성, 활력, 끊임 없는 소재의 개발 등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예이츠의 대표적인 문학창작 이론 중에 하나인 마스크 이론은 작가의 객관적인 관점을 표현해 내기 위한 도구라는 점에서는 엘리엇의 몰개성이나 객관적 상관물이론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As Modernist poets Yeats and Eliot compare well. While Eliot regards Yeats as the greatest poet of our time, Yeats considers Eliot as the most revolutionary man in poetry. Eliot thinks Yeats is a model of great poet, with moral and intellectual excellence, who shows clarity, honesty, vigour, endless pursuit of poetic subjects in his work. Yeats’s theory of Mask is not dissimilar to Eliot's objective correlative. Like Eliot’s objective correlative and impersonality, Yeats uses Mask to express his multiple points of view of man.

      • KCI등재

        Painterly Poeticizing in W. B. Yeats’s Poetry

        이영석 한국예이츠학회 2003 한국예이츠 저널 Vol.20 No.-

        예이츠(W. B. Yeats)는 화가를 아버지로, 화가 수업을 받은 시인이었다. 시인으로 성장하면서 문인 못지 않게 여러 화가들과 예술가적 환경에서 생활하였는데, 그의 저술 여기저기에 회화에 대한 언급이 많다. 따라서 그의 시의 형성에는 화가적 시학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다는 전제가 이 논문의 바탕이 된다. 그리고 그의 시작 초기에 결정적 영향을 준 사람이 시인이며 화가인 영국의 대표적 낭만주의 시인인 블래이크(William Blake)이다. 예이츠는 이 시인을 두 번에 걸쳐 편집하고, 곧 이어서 두 편의 글 “회화의 상징성” (1898년)과 “시의 상징성” (1900년)을 발표한다. 이 작업을 통해 예이츠시의 골격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의 시들은 회화의 상징주의와 잘 비교 대조된다. 이 시기 이전의 예이츠는 힘이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예이츠시는 본질적으로 고전적인 회화적 형상성을 처음부터 보이나 상징적 특정이 가미되면서 시는 더욱 깊어진다. 예이츠 시의 또 다른 특성은 추상성이다. 이 특성은 예이츠가 의도적으로 시도했다기보다 선구적인 그의 기질이 이런 시를 만들게 했다고 보인다. 추상주의 미술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으나, 예이츠는 “추상”이라는 용어를 종종 사용한다. 이러한 회화와 시 읽기에서 다루어지는 작품과 작가는 들라크루와(Delacroix)와 예이츠, 예이츠와 셰익스피어, 「레다와 백조」(Leda and the Swan)와 「비너스와 아도니스」(Venus and Adonis), 블래이크와 예이츠 및 「방울 달린 모자」(The Cap and Bells,)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와 예이츠, 모로의 회화작품들, 「쿨 장원의 야생 백조」(The Wild Swans at Coole)와 후기인상파 화가들 및 모로, 예이츠와 화가 시인 컴밍스(e e cummings) 등이다. W. B. Yeats was born a son of a painter father, John Butler Yeats. While growing up, he had been under the influence of painters, as well as of poets; as a result, Yeats often mentions things that have to do with art and artists in his writing. In view of this background, the basis of the thesis of the present paper focuses on the painterly poeticizing tendency in the poetry of Yeats. And the most important influence on his early poetic practice was William Blake, who was a poet and painter. He did his own illustrations to his poetry. Yeats edited Blake twice, and wrote two essays, “Symbolism in Painting” (1898) and “The Symbolisn in Poetry” (1900). Through this work, Yeats grew stronger in constitution. Compared with his earlier poetry, the poetry after his contact with Blake grows starker but richer, due to the symbolic enhancement. Yeats’s poetry is Classical in nature, if we borrow the term from the history of art; and it deepens with symbolism. Another characteristic in Yeats is the abstraction that Altieri and Albright discuss; Yeats did not yet see Abstract art appear, and yet he created poetry of “Abstract art.” His efforts to create a new poetry were about to be born, when he died. c c cummings may or may not surprise Yeats. The reading of the poetry and the paintings is done through dealing with Delacroix and Yeats; Yeats and Shakespeare; “Leda and the Swan” and “Venus and Adonis”; Blake and Yeats and “The Cap and Bells”; Gustave Moreau and Yeats, Moreau’s paintings; “The Wild Swans at Coole” and Post-Impressionist Painters and Moreau; Yeats and e e cumm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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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ats and Hopkins

        Youngmin Kim 한국예이츠학회 2000 한국예이츠 저널 Vol.14 No.-

        제랄드 맨리 홉킨스 (1844-1889)와 윌리암 버틀러 예이츠(1865-1939)를 전적으로 다루어 비교분석한 논문은 극히 드물다. 다만 홉킨스와 예이츠 아버지 화가 존 예이츠와의 만남에 대한 언급을 한 논문은 특히 홉킨스 써클의 학자들에게서 가끔 볼 수 있다. 이 두 시인은 직접적인 시와 시론의 영향을 서로 받은 적은 없다. 1886년 홉킨스가 예이츠의 “두 거인”이라는 정치시를 읽고서 생생한 이미저리와 멋진 시행을 발견할 수 있다고는 했으나 아직 미숙한 알레고리라고 한 적이 있고, 홉킨스가 캐터린 타이난과 예이츠 아버지와 만났을 때에 존 예이츠가 자신의 아들인 윌리암 예이츠가 쓴 “모사다”라는 시를 보여주자, 별로 신통치 않게 생각했다는 점이 두사람의 만남의 전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홉킨스가 예이츠를 존 예이츠의 스튜디오에서 직접 만난 적이 있고, 예이츠는 홉킨스를 민감하고, 수다스런 학자로 기억했다고 한다는 점만이 유일한 두 사람의 “접속”일 뿐이다. 전기적인 사실로 볼 때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시인에게,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자아형성 과정에는 묘한 유사성과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예이츠의 Unity of Being과 홉킨스의 inscape와 instress에 근거한 selving process가 이 두 시인의 창작과정을 지배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예이츠와 홉킨스가 어떤 과정을 통해 존재와 생성을 인식하고 그 들의 시에 구현해 나갔는가를 추적하는데 그 주요 목적을 둔다. 예이츠는 “존재의 합일”의 구조를 인간의 육체에 유추하여 시각화하여 “다이몬적인,” “가이어” 적인 이중원추의 작용으로 구심적으로 존재와 앎에 대한 이해를 해나갔으며, 홉킨스는 인간의 육체의 “인스케이프”를 치환시켜 언어적으로 자기화 과정을 통해 “인스트레 스”에 의해 충전된 변화무쌍한 자아를 생성해 나가는 원심적인 접근방법을 취했다. 사실상 이 두 시인은 분신과도 같이 존재와 생성의 문제를 다루어 자신들의 시적자아의 순수성에 도달하려고 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예이츠의 가이어를 홉킨스의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의 영역과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성의 영역의 혼성적 상태와 대비시켜 논의할 때, 두 시인이 유추적으로 서로 상응하는 대화를 그들의 시론과 시를 통해 나누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 KCI등재

        Revisiting the Romanticism in Early Yeats

        Jerry Chia-Je Weng 한국예이츠학회 2017 한국예이츠 저널 Vol.52 No.-

        이 논문은 『교차로』(1889년)와 『장미』(1889년)가 포함된 1895년 『시집』에서의 초기 예이츠 시 속의 낭만주의 계승을 다시 읽으려 한다. 셸리와 블레이크의 예이츠에 대한 깊은 영향에 대해 학자들이 많이 연구하지만 주로 예이츠의 후기 상징 주의 체계와 신화와 결부 짓는 것이었다기에 사실 예이츠의 초기시는 비교적 소홀하 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는 아일랜드의 민담과 신화를 자신의 초기시에 통합시키려 하 지만, 이때 시인과 지상과의 문제가 중심과제로 등장한다. 이 문제는 불가피하게 낭만 주의 전통에 기대게 된다. 본인은 예이츠가 시어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연 에 도전하고 시인과 자연의 관계를 수정하기 위해서 그의 초기시에서 근본적 낭만주 의의 문제를 다룬다고 주장한다. 블레이크와 셸리에 더하여, 워즈워드는 예이츠 초기시에 자연과 시에 대한 여러 가지의 암시와 반향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워즈워드의 지속적 영향이다. In this paper I reconsider the inheritance of romanticism in the early poetry of Yeats—especially the 1895 collection of Poems consisting of the sections Crossways (1889) and The Rose (1893). While the pervasive influence of Blake and Shelley on Yeats has received much scholarly attention, it has generally been in reference to Yeats’s later system of symbolism and mythology; the poetry of Yeats’s youth has suffered from comparative neglect. As Yeats strives to integrate the traditional materials of Irish folklore and mythology into his early work, the question of the poet’s relation to the earth emerges as a central concern—one that inevitably draws on the English romantic tradition. I argue that Yeats critically engages with the fundamental themes of romanticism in his earliest poetry, challenging and revising the poet’s link to nature while questioning the efficacy of poetic language. In addition to Blake and Shelley, William Wordsworth emerges as a steady influence on early Yeats, evinced by the various echoes and allusions regarding the status of nature and poetry.

      • KCI등재

        예이츠와 엘리엇의 관계 살펴보기: 만남에서 상호 평가와 엘리엇 속의 예이츠 반향 찾기

        이철희 한국예이츠학회 2020 한국예이츠 저널 Vol.62 No.-

        예이츠와 엘리엇 사이의 관계 규명을 위한 시도는 있었지만 좀처럼 그 해답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은 이 두 시인 사이의 관계 규명을 위해 기획된 것이다. 그래서 먼저 엘리엇과 예이츠 비교 연구의 의의와 이 두 시인 사이의 첫 만남에서 시작하여 예이츠와 엘리엇 상호 간의 평가와 마지막으로 엘리엇 작품 속 예이츠의 투영 모습을 고찰했다. Not a few researchers have tried to closely define the relationships between Yeats and Eliot. But most seem to have had some limitations. I will make an effort to fill in the gap by researching the relations that remain neglected so far. I focus on the two poets’ first meeting, as well as the mutual evaluations of each other, and some transformations that could be traced to Eliot’s influence in Yeats’s works. As I show in this essay, Yeats and Eliot have had closer ties through their contact and their interest in each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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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iticism Against the Modern Civilization in W. B. Yeats’s Poetry

        홍성숙 한국예이츠학회 2002 한국예이츠 저널 Vol.17 No.-

        예이츠, 엘리오트, 조이스등 모더니즘 문학작품 속에서 독자는 서구문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모더니즘 문학은 르네상스 이후 4세기를 주도하면서 이루어낸 영국적 실용가치관이 주도한 현대문명을 비판한다. 가까이는 영국빅토리아 시대의 극단적인 형태의 정치, 경제, 도덕, 문화에 대한 공격인 것이다. 즉, 정치에 있어서는 제국주의, 경제에 있어서는 자본주의, 도덕과 문화에 있어서는 속물주의, 종교에 있어서는 기독교에 대한 반성과 해부를 그 특징으로 한다. 무엇보다 예술이 도덕, 정치, 종교의 시녀의 역할에서 벗어나 예술자체로 독립할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예술은 그 실용성보다는 미 자체로 다시 태어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예이츠의 부르주아 문명에 대한 비판은 그의 영적이고 시골적인 것을 찬미하는 기질과 그의 18세기 앵글로 아이리쉬 문화에 대한 애착 그리고 순진하고 신선한 원시성을 지닌 아일랜드 풍물에 대한 매튜 아놀드 같은 이의 찬미에 힘입어 주로 실용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아일랜드 중산 계급의 심미적인 결핍을 공격하는 양상을 띤다. 한편, “재림”이라는 시에서는 서구문명의 해체까지를 예언하며, 또 한편으로 “비잔틴으로의 항해”에서는 예술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세계를 그려낸다. 그의 문명비판의 특징을 좀 더 확실히 규명하기 위해, 서구 문명을 소유와 지배로 규정한 아도르노와 비교해 본 결과, 예이츠가 부르주아의 소유욕을 비판할 지라도 아도르노처럼, 서구 문명에 내재된 착취, 지배라는 사회학적 억압기재를 찾아내지 못했다. 돈과 실용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자본주의에 심취한 부르주아는 죽음을 미적으로 승화시킬 능력이 없고 성적에너지를 자연스럽게 구가할 수 없었으므로 그의 공격 대상이 되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하면 예이츠는 아도르노처럼, 문명을 지배와 억압이라는 사회학적인 차원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시적 가치와 미적인 삶을 충실히 구가할 수 없게 하는 파괴자로 인식한 것이다. 그런데 예이츠가 지배의 구조를 서구 문명 안에서 찾아내지 못한 것과 달리 그는 예술로만 지배되는 이상적 국가를 제시한 점은 그 역시 부르주아로서의 지배 욕구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예이츠는 문명의 속성인 지배를 향유한 계급으로서 지배와 착취의 현장을 외면했으며 피지배자들을 동정하기보다 그들의 미적인 결핍을 지적했다. 특히 그가 예술로만 지배되는 파시즘적인 미학을 가진 것에서 그의 부르주아로서의 지배이데올로기는 살아있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예이츠와 대다수 아일랜드인의 공동 목표는 아일랜드적 문화를 만들려는 데서는 공통점을 보일지라도 정치와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면에 있어, 서로의 감각은 매우 큰 차이를 드러냈다고 평가된다. 그 당시 대다수의 아일랜드인들이 예이츠의 문학을 “노예의 깨어진 거울”로 평가 절하시킨 것이라든지 아일랜드 내에서 예이츠 미학에 대해 별로 호응이 없었던 것도 예이츠가 자신의 시에서 착취당하는 자와 착취의 현장을 외면한 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즉, 정치와 경제, 사회계급에 민감했던 아일랜드 중산계층은 예이츠의 예술 지상국 창조를 하나의 환상으로 보았을 가능성과 자신들에 대한 예이츠의 공격을 새롭게 도전하는 노예에 대한 상전의 방어로 보았을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 KCI등재

        예이츠와 S. 지젝 : 실재의 탐색

        이규명 한국예이츠학회 2016 한국예이츠 저널 Vol.49 No.-

        “비전,” “비잔티움,” “탑”으로 점철되는 예이츠의 플라토닉한 과업인 현실에서 실재로의 항해의 차원과는 달리 지젝은 인간이 상징적, 물리적 현실을 탈피하여 실재로의 이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아 현실과 실재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체적인 현실이 실재의 단서임을 주장함으로써 신-플라톤주의를 함의한다. 이 점은 지젝이 애독하는 라캉의 「훔쳐진 편지」(The Purloined Letter)에 대한 독해에도 드러난다. 이와 달리 예이츠는 무의식의 실재를 신비로운 영역으로 바라봄으로써 프로이트의 입장을, 지젝은 무의식의 실재를 기호로 바라봄으로써 라캉의 견해를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라캉이 프로이트의 텍스트를 확대재생산하듯이 지젝 또한 라캉의 텍스트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하여튼 예이츠와 지젝은 현실의 공간을 넘어 혹은 현실의 공간 안에서 실재를 탐색한다는 점이 니체적인 불멸성의 비전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Yeats pursues a vision of presence revealed in themes, such as ‘Byzantium’ and ‘the Vision,’ beyond limited realities; Žižek would think of the fabulous vision as the Real as a disguised mode of concrete realities; living in a symbolic and physical world, it is not easy to grasp the signification of the Real. The poet relies on Platonism for reality, the philosopher on Neoplatonism. The poet sees the vision as an unknown and esoteric space isolated from the real world, thus inviting the Freudian unconscious. The philosopher sees, however, the Real as the thing itself: thus, even if we look at the Real, we tend to miss its essence and adhere to its gestalt depending on our perspectives. Both poet and philosopher try to reach the Real or the Vision, beyond or within realities: Yeats and Žižek are steadily searching for a Nietzschean vision of immortality armed with a spirit of Übermensch unleashed from the desperate symbolic panopticons.

      • KCI등재

        예이츠와 니체 : 비극으로서의 삶

        안미현 한국예이츠학회 2021 한국예이츠 저널 Vol.65 No.-

        예이츠는 지속적으로 이원론적 분열과 갈등을 다루지만, 그의 초기와 중후 기 작품과는 차이가 있다. 시인에게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내게 한 것은 니체다. 예이츠 의 초기 시에 등장하는 인물은 현실과 이상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비극을 경험하고 삶을 부정한다. 1902년 니체를 만난 후, 그의 비극론은 예이츠에게 상당한 영향을 준다. 고통 으로부터 삶을 보호하고 구원하는 아폴론적 힘과 이를 파괴하고 재창조하는 디오니소스 적 힘의 결합은 비극적 삶과 예술 그리고 “비극적 환희”에 대한 예이츠의 태도에 반영된 다. 니체와의 만남 후 예이츠의 인물은 여전히 비극적 삶을 마주한다. 그러나 인물은 의 지를 갖고 환희를 창조하며 삶을 긍정한다. Yeats consistently focuses on the dualistic conflict and division, but his early works differ from his later works; the difference must have been made by Nietzsche who has influenced the later Yeats. In Yeats’s early poems, an individual experiences tragedy which is made of the conflict between reality and ideal, and ends up denying life. Since 1902 when Yeats first read Nietzsche, his theory of tragedy has greatly influenced Yeats. The combination of Apollonian power to protect and save life from pain and the Dionysian power to destroy and recreate it permeates Yeats’s attitude toward tragic life and art, especially in tragic joy. With Nietzsche, Yeats could create a great Yeatsian character, who has a will, feels joy, affirms life in the face of tragic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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