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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와이에서 한인(韓人) 전통의 창출 : 태평양전쟁 전 하와이 이민 한인 여성의 민족 관계와 근대화

          이리카 ( Lee Rika ) 한국여성사학회 2017 여성과 역사 Vol.0 No.26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 한인(韓人) 이민노동자들은 일을 하지 않고 쉬는 날 즐기기 위해 캠프에서 춤을 추었고, 몇 년 뒤에는 그들 삶에서 중요한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모인 모임과 단체회합에서 춤을 추었다. 이 경우 춤을 추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여성들은 사람들 앞에서 춤추기를 꺼려했는데, 심지어 같은 민족 앞에서도 거의 춤을 추지 않았다. 그러나 1920∼30년대 하와이 문화행사에서 한국 춤이 공연되었을 때, 대중 앞에서 한국의 전통춤을 추었던 이들은 대부분 이민 2세대 한인 여성들이었다. 이후로 한인 여성이, 고등학교 민족 동호회에서처럼 출신 민족의 배경을 나타내는, 간단한 한국 춤사위를 시연하는 것이 새로운 `전통`이 되었다. 왜 어쩌다가 한인 여성들이 춤을 추게 되었고, 한인 여성들의 춤이 한국의 `전통`을 대표하게 되었을까? 이 논문에서는 이민 1세대와 2세대 한인 여성들의 일상과 민족 관계에 초점을 두고, 20세기 전반기 하와이에서 한인 여성들이 서구화, 근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했는지를 탐구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에서는 한인 여성들이 한국 전통춤을 추는데 참여하도록 동기를 유발한 두 가지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첫째, 주류사회에서 전통춤을 장려하였다. 춤(춤추기)은 하와이 사회에서 하와이 주민의 통합과 화합을 강조하기 위한 활동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둘째, 춤은 이민 1세대 한인 여성들과 이민 2세대 한인 여성들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한인 공동체는 양립할 수 없는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민 1세대가 장려하는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서구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근대적인 생활방식 사이에서의 갈등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전통춤은 한인 이민자들에게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근대(적인 생활방식)를 이어주는 바퀴가 되었다. 한국 전통춤은 한인으로서의 민족 정체성(민족성)과 그들의 삶을 연결하는 동시에 당대의 근대적이고 서구적인 가치를 아우르는 것으로, 하와이에서 “한국인”으로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상징이 되었고, 한인 공동체를 대표하는 새로운 “전통”이 되었다. In Hawai`i, Korean migrant workers danced at the camps to entertain themselves on their days off from work, and in later years at gatherings to celebrate their life events and at organizational meetings, ever since Korean migrant workers started to work at the sugar plantations in 1903. The people who danced at these occasions were mostly men, and women were reluctant to dance in front of people, and thus rarely seen dancing even in front of co-ethnics. However, when Korean dances were performed in the 1920s and 1930s at the cultural events of Hawai`i, it was the Korean women, mostly 2<sup>nd</sup> generations, who performed and represented the Korean `traditional` dances to the public. Since then, it became a new `tradition` for Korean women to present simple Korean dance steps to represent their ethnic background, such as ethnic clubs in high schools. Why did these women dance and represent Korean `tradition`? This article focuses on the everyday life and race relations of Korean women, both 1<sup>st</sup> and 2<sup>nd</sup> generation, and explores the ways in which Korean women adopted and understood the westernization and modernization in Hawai`i in the first half of 20th century. This article argues that there were two forces that motivated women to engage in dancing. First is the promotion of traditional dances by mainstream society. Dancing became an act highly valued in Hawaiian society, to emphasize the integration and racial harmony of Hawaii`s population. Second is the role of dance that bridged the split between the first and second generations. The Korean community was undergoing conflict that seemed to be incompatible with each other - the traditional way of living that was encouraged by their first generation, and the modern way of living that was essential to live in a western society. Under these circumstances, Korean dance enabled Koreans to connect the traditional with the modern. Korean dance, then, became a symbol of what it meant to live as “Korean” in Hawai`i, embracing the modern and western values of the time, as well as their life that connects them to their Korean ethnicity, and became a new “tradition” for the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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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말 박에스더의 미국 유학과 의료 활동

          윤선자 ( Yoon Seon-ja ) 한국여성사학회 2014 여성과 역사 Vol.- No.20

          10세의 한국 소녀 김점동은 그녀가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가난함,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아들을 중시하여 양자를 들이는 당시 한국사회의 관습, 여동생의 탄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화학당에 입학하였다.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전파하는 교회당에 근무하면서도 양자를 들이는 대신 딸을 내보내는 한국의 전통적인 관습에 사로잡혀 있던 아버지에 의해 그녀는 서구사상과 문물에 접하였다. 그리고 이화학당에서의 신학문 공부 및 서양인 선교사들과의 생활, 진료소에서의 서양인 여의사 의료 보조 활동을 통하여 한국 소녀 김점동은 교육받은 여성, 서구사상과 문물에 눈뜨고 그것들을 활용하는 여성, 에스더로 성장하였다.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에스더의 결혼은 두 집안 간의 관계에서 부모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배우자가 그리스도교신자이기 때문에 성사되었다. 결혼 1년 여만에 선교사를 따라 내딛은 미국 땅에서 그녀는 의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선교사와 선교회의 도움도 있었지만, 그녀가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 자신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남편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 때문에 가능하였다. 박에스더는 전문직업인, 여의사가 되어 귀국하였다. 그리고 서양인 여의사와 함께 당당하게 한국 여성들을 진료하였다. 당시 한국 사회가 여전히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을 뿐 아니라 전문직일지라도 폄하하려 하였지만 그녀는 의사로서의 자부심을 가졌고, 그녀의 일에 충실하였다. 박에스더의 이화학당 입학은 그녀 아버지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후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가고, 그곳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전문직업인 의사가 되고, 귀국하여 한국 여성들을 위해 의료활동을 전개한 것 모두가 그녀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러한 그녀의 삶은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한국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쳐,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기는 하였지만, 많은 한국 여의사들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한국 최초의 미국 유학 여성`, `한국최초의 서양의학 여의사`라는 그녀에 대한 평가와 의미 부여는 한국 근대사·한국사에서 역사적인 의의를 갖는다. Jeomdong Kim, a 10-year old Korean girl entered into EwhaHaktang, led by her father, partly because of poverty, contemporary Korean society`s custom - which is governed by male-oriented culture: where people adopt a son if they do not have a son - and the birth of younger sister. Ironically, his father worked in a church where he had learned a new culture and learning. However, he was still adhering to Korean traditional custom to let daughters leave family, so that it gave her a chance to learn the Western thought and culture. While learning new studies, living with missionaries in EwhaHaktang, she also assisted female doctor, which opened her eyes to western thought and culture. Gradually, she grew into a woman, named Esther who is full of new thoughts and civilization. Esther married after the introduction from missionaries. Compared with a marriage set up between parents of two families, she could marry with her choice, because the groom was a Christian. A year after her marriage, she followed other missionaries to U.S. where she started to study. Missionaries and their community supported her. However, she could be a doctor mostly because of her will and effort, and her husband full support. Esther Pak returned to Korea as a professional medical doctor. Then along with other female doctors, she helped Korean women. Although the korean society was not welcoming a career woman and even underestimated professional women, she had a pride as a doctor and devoted herself to her job. It was her father`s decision for Esther Pak to get into EwhaHaktang. However, it was her decision in learning new thought, marrying one she loves, going to U.S., becoming a medical doctor, returning to Korea, and performing medical activity for Korean women. So, her story had a tremendous influence on Korean women who wish to make their own lives and stories. It took a long time but it was the reason why there are a number of female medical doctors at present. Therefore, as the first Korean woman studying in U.S., and the first Korea-born female western medical doctor, she is considered as an important figure in modern Kore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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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백의 한국여성사 연구

          김수태 ( Kim Soo-tae ) 한국여성사학회 2016 여성과 역사 Vol.0 No.25

          이기백의 한국사 연구와 관련해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은 한국여성사 연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가들이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문제를 거의 돌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비판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한국사의 진실을 제대로 파헤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에 그는 한국사 연구에서 여성사라는 분류사가 역사학의 한 분야로써 언제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살피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연구자들이 여성사에 대한 단순한 평면적인 서술이 아니라, 한국여성사에서 무엇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기를 바랐다. 주제나 방법론에서 드러난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특히 그는 고대사를 중심으로 한국여성사 연구를 개척한 역사가였다. 이때 그는 이를 정치사, 사회사 및 사상사와의 연관성 속에서 깊이 있게 분석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시대에 따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변화를 고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로 나누어서 다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그의 한국사 연구에서 여성사 연구가 차지하는 위치나 중요성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점에서 이기백의 한국여성사 연구를 정리해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Regarding Lee, Ki-baik`s research of Korean history, study of Korean women`s history can be said to be an indispensable part. He criticized that until now, most of the Korean historians have neglected to mention the matter of female, which account for half of the human race. In this state, he believed that truth of Korean history can not dealt in its true perspective. Hence, he examined how and when the category of women`s history has emerged in the area of Korean history. Furthermore, he hoped that researchers deliberate how and what to describe in the domain of Korean women`s history, rather than simplistic description. This was to overcome the former limitations that were exposed in themes and methodology. He was an historian who pioneered the study of Korean women`s history regarding ancient history. At that period, he conducted in-depth analyses of Korean women`s history in relation to political, social history and history of thoughts. Based on these researches, he dealt with the changes in women`s social status following time, by dividing time to four distinctive periods; ancient, Koryo dynasty, Joseon(Choson) dynasty, modern era. However, up to now, how his research of women`s history take place in his entire study of Korean history and the significance of it have not been properly evaluated. In this regard, organizing Lee Ki-baik`s study of Korean women`s history would be meaning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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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천성에서 다원화로: 한국의 중국여성사 연구의 배경과 흐름

          천성림 ( Chun Sung-lim ) 한국여성사학회 2010 여성과 역사 Vol.- No.13

          이 논문은 한국에서의 중국여성사 연구의 배경과 흐름을 개관하고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서구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의 여성사 연구도 사회운동의 영향을 받아 성장해왔다. 따라서 초기의 여성사 연구는 한국의 근대 여성사에 초점이 맞춰졌다. 한국에서의 중국 여성사 연구는 1990년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아직은 주제와 시간적 범위 모두 협소한 상황이다. 본고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한국에서 비교적 활발하게 토론된 주제들, 예를 들어 여성 담론, 경제 활동, 출산통제를 통해 본 국가와 여성의 관계 등을 소개하였다. 비록 한국의 중국여성사 연구는 연구자의 수와 연구주제 면에서 여전히 협소하기는 하지만 연구의 추세면에서 어느 정도 서구나 일본에서의 연구와 `공시성`도 발견할 수 있었다. 앞으로 한국에서 여성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젠더사가 요구된다. 젠더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남성과 여성을 포괄하는 보다 완전한 역사이다. 이와 관련해 하층민 여성, 이주 여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며 다른 학문과의 소통도 필요하다. In this article I review the backgrounds and trends of the study of Chinese women`s history in Korea and propose challenges. As in America and in Japan, the study of Chinese women`s history in Korea has grown under the influences of social movements. As a result, the research has strong practicalities and is largely focused on Modern Korean women`s history. The research of Chinese women`s history in Korea began in earnest in the 1990s, and therefore the range and depth of topics are limited. In this paper, I presented those topics that have been actively discussed in the last 20 years in Korea, such as general discourses of women, women`s economic activities, and the relation of women with the nation through birth control. Although the research of Chines women`s history in Korea still lacks researchers and has limited topics, I discovered that its trend is in line with that of the related studies in Western countries and Japan. I would like to propose gender history for the survival of the studies of women`s history in Korea. The ultimate goal of studying gender history is to provide a more complete picture of history of all humans, both men and women. For that end, research of low-class women and immigrant women should also be followed, and research from other fields should be incorpor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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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에 서술된 `한국여성독립운동`에 대한 비판적 검토

          이방원 ( Lee Bangweon ) 한국여성사학회 2015 여성과 역사 Vol.- No.22

          2009년 개정교육과정 하에서 출간된 총 8종의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에서, `한국여성독립운동` 에 관한 내용을 정리 및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10년대 항일독립운동을 한 여성인물 및 여성단체로 송죽회와 유관순만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송죽회는 여성이 주축이 된 비밀결사라는 내용으로만 설명되어 있고, 유관순에 대해서는 비상교육과 천재교육 출판사만이 유관순의 만세 시위운동과 그에 따른 일제의 탄압을 자세하게 서술하였을 뿐이다. 둘째, 3·1운동이후 여성의 민족운동 관련 단원에 서술된 여성인물 및 단체 중 적어도 2종 이상의 교과서에 공통적으로 수록된 사항은 모두 여성단체이며, 근우회(8종),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 조선여성동우회(이상 7종), 조선여자교육회(5종), 토산애용부인회(3종), 근화여학교(2종) 등 총 6단체이다. 그러나 이상의 여성단체를 서술함에 있어서도 항일활동이 드러나지 않으며 여성 계몽에 중점을 두고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여성독립운동가가 적지 않고 그들의 역할이 주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독립운동가와 단체의 발굴 및 연구, 교육내용으로서의 타당성 및 필요성 등이 검정되는 과정을 거쳐 이들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I reviewed contents of women`s movement for Korean independence written in eight kinds of highschool textbooks on Korean history for 2009 Revised Course for Education. I have come to conclusion as follows by the analysis and organization of these contents. Firstly, only Songjukhoe (Society of Pine and Bamboo) is appeared as women`s association and Yu Gwan-sun is appeared as woman worked for Korean independence in textbooks on Korean History. However, Songjukhoe is only explained as the secret association of women. Moreover, only textbooks of Visang Education Publishing Company and Chunjae Education Publishing Company go into details of mansei (hurray) demonstration of Yu Gwan-sun and ensuing Japanese suppression of it. Secondly, the contents which more than two textbooks describe in common on the chapter about women`s national movement after 3·1 mansei Undong (1919 Demonstrations for Independence) are only about six women`s associations. Eight kinds of textbooks describe Geunuhoe (Society of the Friends of the Rose of Sharon). Seven describe Joseon Yeoja Gidokgyo Cheongnyeonhoe (Society of Young Christian Women in Joseon) and Joseon Yeoseong Donguhoe (Women`s Association of Joseon). Five describe Joseon Yeoza Gyoyukhoe (Women`s Educational Association in Joseon). Three describe Tosan Aeyong Buinhoe (Women`s Organization for Consumption of Indigenous Products). Two describe Geunhwa Yeohakgyo (Geunhwa Girl`s School). However, these description don`t show anti-Japanese activities of these associations. Textbooks only describe about women`s enlightenment activities of them. Though so many women leaders worked for Korean independence and their role was important, they don`t receive necessary attention. We should have to find and research women and women`s associations working for Korean independence. Process for investigation of validity and necessity of them as educational contents is needed. I think that correct education of these contents is necessary for stu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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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 한국여성독립운동사 연구 현황과 과제

          강수옥 ( Kang Su-ok ),동염 ( Dong Yeom ) 한국여성사학회 2019 여성과 역사 Vol.0 No.31

          중국조선족역사연구는 총체적으로 5단계의 발전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발전해 왔다. 여성사 연구 역시 이러한 과정에 맞물려 진행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중국에서 한국여성독립운동사 연구 현황을 살펴보고 앞으로 연구방향을 모색하려는 의도이다. 중국에서 한국여성독립운동사 연구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연구 인원이 너무나 적을 뿐만 아니라 연구단체도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한국여성독립운동사 연구는 현재 대부분 개인적인 연구 성향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중국에서 한국여성독립운동사연구팀을 여성독립운동사연구의 심도를 깊이하고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중국 한국여성독립운동의 역사 흐름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필요하다. 동시에 협동연구로 단조로운 여성운동 투쟁사에만 그치지 말고 중국에서 한국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하고 이들의 활동이나 역할과 더불어 독립운동가 여성들의 생활상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어야 한다. China`s research on Korean women began in the early 1990s. The study of the history of Chinese Koreans has experienced five stages of development and keep continues. And the study of female history has also been through this process. This paper reviews the recently research condition of Korean women's independence movement history in Chinese academic circles, expounds the problems to be overcome in the future. There are still many problems in the study of Korean women's independence movement history in China, such as lack of researchers ,be short of research groups and so on. At present, most of the research on Korean women's independence movement history in China is based on individual research. Establishing China`s own Korean women's independence movement history research team, go deep into the history of women's independence movement is indispensable for grasping the development trend of Korean women's independence movement history in China. At the same time, we need to unfold multi-angle research, not only to stay in the history of women's movement struggles, but also to pay more attention to Korean women's independent activists in China. Except their activities and historical role, these female independent sportsmen`s life situation also requires in-depth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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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대 여성사 연구의 현황과 전망, 2007~2013

          홍양희 ( Hong Yang-hee ) 한국여성사학회 2013 여성과 역사 Vol.- No.19

          2007년부터 현재까지 여성사 연구 논문을 대상으로 연구 현황을 살펴보았다. 필자가 논문을 수집을 하면서 놀라웠던 것은 여성사/젠더사 논문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생산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역사학뿐만 아니라 한국문학, 역사사회학, 여성학 등의 분과학문에서도 논문들이 꾸준히 축적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연구의 심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우선적으로 논쟁의 지점을 가시화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학제 간 연구를 활성화 하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방법론적 전략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작업들이 연구의 질적발전을 가져올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논쟁이 가시화 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우선, 여성사/젠더사 연구의 인식론 및 방법론에 대한 질문은 한국 여성사 연구자들에게 여전히 풀어야할 현재 진행형의 과제이다. 젠더사로의 전환 문제, 여성들 사이의 차이에 대한 강조, 포스트콜로니얼리즘계열의 연구 등이 자칫 여성사의 정치성을 탈각시킬 위험이 있다는 문제제기를 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역시 요청된다고 하겠다. 두 번째 지점은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의 문제이다. 특히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의 현실에서 민족주의는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 연구 패러다임으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지만, 국가/민족의 경계를 넘어 페미니즘 자체도 문제화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셋째, 여성의 `주체화`의 문제 또한 정체성 정치나 재현의 정치학과 관련하여 논쟁의 지점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여성들의 행위성(agency)을 어떻게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 다층적인 측면에서 고민의 지점들이 존재한다. 아울러 논쟁의 지점을 다방면적으로 발굴하는 작업 또한 중요하다.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historiography of women/gender in colonial Korea which was producted 2007 to 2013. This review covers papers written by scholars in the department of history, Korean literature, historical sociology, women`s/gender studies and others. Firstly, I investigate the epistemology and methodology for women`s/gender history. Secondly, I review the papers of women/gender which was producted 2007 to 2013. For this work, I classify them into five groups: historical female figures and movement, family and women/gender, urban space/culture and `new woman`/`modern girl`, transnational knowledge and women/gender across borders, war and mobilization of women. Thirdly, I offer the characteristics of the present status of modern women`s/ gender history, and what we have to do in the future for writing women`s/gender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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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1990년대 생리대 광고 담론과 여성

          노지은 ( Jieun Roh ) 한국여성사학회 2014 여성과 역사 Vol.- No.21

          이 글은 한국의 1970년대∼1990년대 생리대 상품화 과정에서 여성의 `월경`과 월경하는 `여성`이 시대적으로 어떻게 사회문화적으로 의미화되었는가를 여성잡지에 게재된 생리대 광고 담론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이 시기 생리대 광고는 여성의 월경에 대한 공적 담론을 형성하는 하나의 매개로서 전통적 구속과 육체적 제약에서`해방된` `현대 여성`이라는 새로운 주체로 호명하면서 근대 가부장제적 자본주의 젠더 규범의 문화적 기제로서 작동한다. 1975년 우리나라에서 일회용 접착식 생리대가 상품 생산된 이래, 생리대 상품 광고는 한국 사회 문화에서 상품 사용자인 여성들에게 생리대 상품을 이해시키고 소비시키기 위한 치열한 가치 경쟁의 장이었다. 자본주의 기술의 발달로 이루어진 생리대라는 상품의 혁신 과정은 기적의 흡수력과 초박형 재질, 편리한 날개를 달고 생물학적, 역사적 시공간을 넘어 여성의 `자유`를 약속한다. 이전 세대 여성들이 마주했던 장애물들을 `초월`하여 활동적이고 독립적이고 용감한 여성이 될 수 있다고 `마법`을 건다. 그러나 생리대 광고는 월경하는 여성들의 불안과 수치스러움을 강조하면서 일반적으로 금기시되고 오염으로 인식되었던 월경을 신비화하고, 이상적인 여성다움의 이미지를 중개하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여성은 비정상적이고, 불결하고, 건강하지 않으며, 자기보호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변하지 않는다. 여성을 새로운 소비자로서 창출하려는 자본주의 상품화가 여성의 월경 경험을 비가시화하고 타자화하는 가부장제적 가치 규범과 얽혀있는 지점들을 생리대 상품 광고는 보여준다. Since self-adhesive disposable menstrual pads were first commercialized in Korea in 1975, the menstrual product market has become a field of fierce “value competition,” as female consumers accept and consume the new concept of menstrual products in a Korean socio-cultural context. This paper aims to reveal critically the cultural taboo of menstruation that alienates women`s bodily experiences and women gender as inferior by analyzing menstrual product advertisements in a Korean women`s magazine focusing on 1970s∼90s. The innovation of menstrual products, made possible by the development of capitalistic technology, promises freedom for women from biological and historical time and space, with “miraculous” absorption, ultra-thin material, and convenient “wings.” The advertisements work “magic,” claiming that women can be active, independent, and brave by “transcending” the obstacles faced by women of previous generations. On the one hand, advertisements for menstrual products have played a role in developing and improving technology, while on the other hand mediating feminine images related to women`s menstruation. Advertisements for menstrual products, occasionally in the name of science, have mysticized menstruation, which has been generally considered a taboo and perceived as contamination, by emphasizing women`s anxiety and shame. There has been an unchanging message that women are abnormal, non-daily, unsanitary, and unhealthy, all due to menstruation, and thus need self-protection. Advertisements for menstrual products in Korea show the points at which the capitalistic desire to constantly turn women into capitalistic market consumers is entwined with patriarchal values and the norms that marginalize women g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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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여성사 서술의 현황과 과제

          정현백 ( Hyun Back Chung ) 한국여성사학회 2014 여성과 역사 Vol.- No.21

          이 글의 목표는 독일여성사 연구의 현황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밝히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독일에서 진행된 여성사연구 현황을 구명하였다. 독일에서는 여성사연구가 1980년대에 이르러 호황을 누렸고, 이 시기 동안 미국여성사의 자극 속에서 여성사에서 젠더사로의 전환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초기부터 독일여성사는 미국에 비하면 연구나 제도화의 과정에서 그 발전이 제한적이었다. 더구나 지난 10년 사이에 여성사연구는 양적으로도 위축되었고, 그래서 여성사가들은 여성사의 위기를 거론하고 있다. 젠더사 연구의 발전도 더디고, 여전히 기성 역사학의 주변부에 머물고 있다. 젠더사를 둘러싼 활발한 이론적 논의에도 불구하고, 실제연구는 여전히 잘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여성사는 1980년대에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발전은 1990년대 후반기부터이다. 해외에서 여성사를 전공한 소장 여성사가들의 등장이 새로운 연구의 열기를 자극하였다. 그러나 독일사연구 내에서 여성사는 양적 규모면에서 보자면,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뿐 만 아니라 여성사연구에서 젠더사연구로의 전환문제는 아직 논의되지 않았다. 독일에서와 같은 `여성사가논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제 독일여성사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를 진행하면서, `여성사의 이론화` 작업도 모색되어야 한다. 최근 남성 역사가들에 의한 젠더사연구의 성과가 생산되는 것도 고무적이다. This paper`s aim is to analyse the present situation of Germany`s women`s history research and to suggest its tasks in future. First of all I survey the situation of women`s history research in Germany. In the 1980s the field of women`s history in Germany enjoyed popularity and during this time, tried to transform its research direction to gender history(Geschlechtergeschichte). But from the beginning the research development and its institutionalisation was limited in comparison with North American women`s history research field. Furthermore, during the last 10 years, the quantity of work in the field of women`s history was reduced, and thus, female historians now mention `the crisis of German women`s history`. The development of gender history is staggering, and women`s history is still standing at the outskirts of German historical science. In spite of active discussions about gender history, the field is not going forward well. In Korea the research field of women`s history began in the late 1980s, but real development started in the second half of 1990s. The appearance of young female scholars studying the women`s history in western countries stimulated new energy for researches. But they are still minority in the German history circle. Also the transformation from women`s history to gender history has not been discussed until now. The `female historian`s debate` as seen in Germany is yet to be found. Now, the German women`s history field in Korea should continue basic researches further, and at the same time, it should also try to build its synthesis and theory. It is inpiring that several male historians in German history are generating products in the area of gender history.

        • KCI등재

          산업화 이전 시기 한국 여성의 모성 경험과 정체성 - 1940년대 중반∼1960년대 초반을 중심으로

          김은경 ( Kim Eunkyung ) 한국여성사학회 2014 여성과 역사 Vol.- No.21

          이 연구의 목적은 1940년대 중반∼60년대 초반 한국 모성의 역사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20∼30년대에 출생해 1940∼50년대에 결혼한 여성들의 구술을 분석했다.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산업화 이전 시기 여성들의 피임과 출산의 경우 근대적 의료시설에 대한 의존도가 낮았다. 고학력 여성들은 월경주기법을 알고 있었지만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못했으며 피임 기구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출산은 모두 산파나 여성 가족구성원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이루어졌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은 병원에서 인공 중절 수술을 받거나 전통적인 방식의 낙태를 시도했다. 둘째, 산업화 이전 시기 한국 어머니는 자녀를 직접 보호하고 돌보는 일을 중시하지 않았지만 자녀교육에 대한 의지는 높았다. 이 시기 어머니가 자녀를 직접 가르치는 경우는 소수였다. 자녀 교육을 직접 담당했던 여성들은 대부분 고학력 중산층이었고 가사사용인과 시부모의 도움으로 가사노동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웠다. 생계노동을 했던 저학력 빈곤 여성들은 배움이 부족하거나 시간적 여유가 없어 직접 아이를 가르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당시 과열되던 교육열기와 무관하지 않았다. 이 시기 일하는 어머니의 특성은 직접 가르치는 어머니라기보다 자신이 벌어서 교육비를 마련하는 어머니였다. 셋째, 산업화 이전 시기 생계노동에 참여했던 어머니의 모성 실천은 산업화 시기와 마찬가지로 돌봄노동과 생계노동이 분리되지 않았다. 특히 홀로 자녀양육과 생계를 도맡은 전쟁미망인들은 힘겨운 노동을 감내해 자식을 먹여 살리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이들에게 생계노동은 모성 수행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와 달리 남편이 있는 여성들은 생계노동을 모성 수행과 독립적으로 사고했다. 이들은 사회·경제적 욕구의 실현이라는 맥락에서 자신의 노동을 이해했다. 넷째, 한국전쟁 후 생계노동을 하는 기혼 여성이 급증하고 어머니가 학교 교육에 참여하는 기회가 많아짐에 따라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육아를 보조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이제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봉양을 받는 위치에서 손주 양육을 보조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이는 기혼 여성의 전통적인 정체성인 `며느리 정체성`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어머니 역할이 증대되는 상황과 맞물려 `어머니 정체성`의 강화로 나타났다. This study aimed to show historicity of Mothering Experiences and Identities of Korean Women in the Pre-Industrialization Period. The result of the study is as follows; Firstly, women didn`t trust the modern medical system when they tried to avoid pregnancy and gave birth to babies in the pre-industrialization period. Secondly, Mothers rarely involved child education in the Pre- Industrialization Period. However, they were greatly concerned about child education. Thirdly, Mothering of Korean Women in the Pre-Industrialization Period mixed care work and paid work. Especially, survival was the very important par of mothering for war widows. Fourthly, married women largely increased after Korean War and their mothers-in-law supported child care. This caused the change of identities of married women from `daughter-in-law` to `m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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