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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백의 한국여성사 연구

            김수태 ( Kim Soo-tae ) 한국여성사학회 2016 여성과 역사 Vol.0 No.25

            이기백의 한국사 연구와 관련해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은 한국여성사 연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가들이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문제를 거의 돌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비판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한국사의 진실을 제대로 파헤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에 그는 한국사 연구에서 여성사라는 분류사가 역사학의 한 분야로써 언제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살피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연구자들이 여성사에 대한 단순한 평면적인 서술이 아니라, 한국여성사에서 무엇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기를 바랐다. 주제나 방법론에서 드러난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특히 그는 고대사를 중심으로 한국여성사 연구를 개척한 역사가였다. 이때 그는 이를 정치사, 사회사 및 사상사와의 연관성 속에서 깊이 있게 분석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시대에 따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변화를 고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로 나누어서 다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그의 한국사 연구에서 여성사 연구가 차지하는 위치나 중요성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점에서 이기백의 한국여성사 연구를 정리해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Regarding Lee, Ki-baik`s research of Korean history, study of Korean women`s history can be said to be an indispensable part. He criticized that until now, most of the Korean historians have neglected to mention the matter of female, which account for half of the human race. In this state, he believed that truth of Korean history can not dealt in its true perspective. Hence, he examined how and when the category of women`s history has emerged in the area of Korean history. Furthermore, he hoped that researchers deliberate how and what to describe in the domain of Korean women`s history, rather than simplistic description. This was to overcome the former limitations that were exposed in themes and methodology. He was an historian who pioneered the study of Korean women`s history regarding ancient history. At that period, he conducted in-depth analyses of Korean women`s history in relation to political, social history and history of thoughts. Based on these researches, he dealt with the changes in women`s social status following time, by dividing time to four distinctive periods; ancient, Koryo dynasty, Joseon(Choson) dynasty, modern era. However, up to now, how his research of women`s history take place in his entire study of Korean history and the significance of it have not been properly evaluated. In this regard, organizing Lee Ki-baik`s study of Korean women`s history would be meaningful.

          • KCI등재

            하와이에서 한인(韓人) 전통의 창출:태평양전쟁 전 하와이 이민 한인 여성의 민족 관계와 근대화

            이리카 한국여성사학회 2017 여성과 역사 Vol.0 No.26

            In Hawai'i, Korean migrant workers danced at the camps to entertain themselves on their days off from work, and in later years at gatherings to celebrate their life events and at organizational meetings, ever since Korean migrant workers started to work at the sugar plantations in 1903. The people who danced at these occasions were mostly men, and women were reluctant to dance in front of people, and thus rarely seen dancing even in front of co-ethnics. However, when Korean dances were performed in the 1920s and 1930s at the cultural events of Hawai'i, it was the Korean women, mostly 2nd generations, who performed and represented the Korean ‘traditional' dances to the public. Since then, it became a new ‘tradition' for Korean women to present simple Korean dance steps to represent their ethnic background, such as ethnic clubs in high schools. Why did these women dance and represent Korean ‘tradition'? This article focuses on the everyday life and race relations of Korean women, both 1st and 2nd generation, and explores the ways in which Korean women adopted and understood the westernization and modernization in Hawai'i in the first half of 20th century. This article argues that there were two forces that motivated women to engage in dancing. First is the promotion of traditional dances by mainstream society. Dancing became an act highly valued in Hawaiian society, to emphasize the integration and racial harmony of Hawaii's population. Second is the role of dance that bridged the split between the first and second generations. The Korean community was undergoing conflict that seemed to be incompatible with each other – the traditional way of living that was encouraged by their first generation, and the modern way of living that was essential to live in a western society. Under these circumstances, Korean dance enabled Koreans to connect the traditional with the modern. Korean dance, then, became a symbol of what it meant to live as “Korean” in Hawai'i, embracing the modern and western values of the time, as well as their life that connects them to their Korean ethnicity, and became a new “tradition” for the community.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 한인(韓人) 이민 노동자들은 일을 하지 않고 쉬는 날 즐기기 위해 캠프에서 춤을 추었고, 몇 년 뒤에는 그들 삶에서 중요한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모인 모임과 단체 회합에서 춤을 추었다. 이 경우 춤을 추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여성들은 사람들 앞에서 춤추기를 꺼려했는데, 심지어 같은 민족 앞에서도 거의 춤을 추지 않았다. 그러나 1920∼30년대 하와이 문화행사에서 한국 춤이 공연되었을 때, 대중 앞에서 한국의 전통춤을 추었던 이들은 대부분 이민 2세대 한인 여성들이었다. 이후로 한인 여성이, 고등학교 민족 동호회에서처럼 출신 민족의 배경을 나타내는, 간단한 한국 춤사위를 시연하는 것이 새로운 ‘전통'이 되었다. 왜 어쩌다가 한인 여성들이 춤을 추게 되었고, 한인 여성들의 춤이 한국의 ‘전통'을 대표하게 되었을까? 이 논문에서는 이민 1세대와 2세대 한인 여성들의 일상과 민족 관계에 초점을 두고, 20세기 전반기 하와이에서 한인 여성들이 서구화, 근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했는지를 탐구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에서는 한인 여성들이 한국 전통춤을 추는데 참여하도록 동기를 유발한 두 가지 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첫째, 주류사회에서 전통춤을 장려하였다. 춤(춤추기)은 하와이 사회에서 하와이 주민의 통합과 화합을 강조하기 위한 활동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둘째, 춤은 이민 1세대 한인 여성들과 이민 2세대 한인 여성들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한인 공동체는 양립할 수 없는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민 1세대가 장려하는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서구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근대적인 생활방식 사이에서의 갈등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전통춤은 한인 이민자들에게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근대(적인 생활방식)를 이어주는 바퀴가 되었다. 한국 전통춤은 한인으로서의 민족 정체성(민족성)과 그들의 삶을 연결하는 동시에 당대의 근대적이고 서구적인 가치를 아우르는 것으로, 하와이에서 “한국인”으로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상징이 되었고, 한인 공동체를 대표하는 새로운 “전통”이 되었다.

          • KCI등재후보

            실천성에서 다원화로: 한국의 중국여성사 연구의 배경과 흐름

            천성림 ( Chun Sung-lim ) 한국여성사학회 2010 여성과 역사 Vol.- No.13

            이 논문은 한국에서의 중국여성사 연구의 배경과 흐름을 개관하고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서구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의 여성사 연구도 사회운동의 영향을 받아 성장해왔다. 따라서 초기의 여성사 연구는 한국의 근대 여성사에 초점이 맞춰졌다. 한국에서의 중국 여성사 연구는 1990년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아직은 주제와 시간적 범위 모두 협소한 상황이다. 본고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한국에서 비교적 활발하게 토론된 주제들, 예를 들어 여성 담론, 경제 활동, 출산통제를 통해 본 국가와 여성의 관계 등을 소개하였다. 비록 한국의 중국여성사 연구는 연구자의 수와 연구주제 면에서 여전히 협소하기는 하지만 연구의 추세면에서 어느 정도 서구나 일본에서의 연구와 `공시성`도 발견할 수 있었다. 앞으로 한국에서 여성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젠더사가 요구된다. 젠더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남성과 여성을 포괄하는 보다 완전한 역사이다. 이와 관련해 하층민 여성, 이주 여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며 다른 학문과의 소통도 필요하다. In this article I review the backgrounds and trends of the study of Chinese women`s history in Korea and propose challenges. As in America and in Japan, the study of Chinese women`s history in Korea has grown under the influences of social movements. As a result, the research has strong practicalities and is largely focused on Modern Korean women`s history. The research of Chinese women`s history in Korea began in earnest in the 1990s, and therefore the range and depth of topics are limited. In this paper, I presented those topics that have been actively discussed in the last 20 years in Korea, such as general discourses of women, women`s economic activities, and the relation of women with the nation through birth control. Although the research of Chines women`s history in Korea still lacks researchers and has limited topics, I discovered that its trend is in line with that of the related studies in Western countries and Japan. I would like to propose gender history for the survival of the studies of women`s history in Korea. The ultimate goal of studying gender history is to provide a more complete picture of history of all humans, both men and women. For that end, research of low-class women and immigrant women should also be followed, and research from other fields should be incorporated.

          • KCI등재

            한국근대여성운동의 역사적 기원지 - ‘여권통문' 결의 장소 발굴 -

            윤정란 한국여성사학회 2019 여성과 역사 Vol.0 No.30

            This study tracks the excavation of the place where Chanyanghoe was organized according to the purpose of ‘Yeogwontongmun' and where Sunseong Women's School was founded. By examining the progress of the women's movement in each place where they organized Chanyanghoe, with the support of hundreds of women, it is revealed that the location is today 117, Samgak-dong, Jung-gu, Seoul. The process is described as follows. Historical sites related to 'Yeogwontongmun' include Hongmundong Private Elementary School Lee Si‐seon's house, Seungdong Susa Hong Geon‐jo's house, Jangryewon Jusa Kim Yong‐gyu's house in front of Gyeongungung Inhwamun, Gyedong Jeonhwaseon Jusa Ma Hee‐ryul's house, in front of Gyeongungung Inhwamun, Changseonbang Neuritgol, and Saheonbu Jobang in front of Donhwamun. Among them, Hongmundong Private Elementary School Lee Si‐seon's house can be said to be the origin of the Korean women's movement. According to the 1903 Imperial Daehan's Hanseongbu Family Register, it was 1ho 8tong, Hongmundong, Hongmundonggye, Namseo. Compared to the land register in 1912, this site corresponds to 31‐33, Samgakjeong, Nambu on Samgakjeong cadastral map in 1912. In 1943, Samgakjeong of Nambu became Samgakjeong of Jung‐gu, and it was renamed Samgak‐dong of Jung‐gu in 1946 after liberation. In 1999, Hongmundong Private Elementary School Lee Si‐seon's house was integrated into 117, Samgak-dong, Jung-gu. Therefore, according to the purpose of ‘Yeogwontongmun', the place that organized Chanyanghoe and decided to establish Sunseong Women's School is 117, Samgak-dong, Jung-gu where Shinhan Bank and Baeknyeongwan are located today.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the site of Shinhan Bank Baeknyeongwan today is the location of the origin point of the Korean Women's Movement where Korean women organized Chanyanghoe, Korea's first women's organization and decided to establish Sunseong Women's School, the first private Korean women's school in Korea to carry out the purpose of Yeogwontongmun of Korean women. 이 글은 한국 최초의 여성권리선언문인 ‘여권통문'이 각 신문지상에 발표된 후 수백 명의 여성들 지지하에 최초의 한국근대여성단체인 찬양회를 조직하고 순성여학교 설립을 결의했던 장소에서부터 순성여학교 운영 및 폐교에 이르기까지 여성운동의 전개과정을 각 장소 별로 살펴본 후 ‘여권통문' 취지에 따라 찬양회를 조직하고 순성여학교 설립을 결의했던 장소의 발굴과 오늘날 그 위치가 어디인지를 추적하였다. 추적의 결과 그 위치가 오늘날 서울시 중구 삼각동 117번지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 과정에 대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여권통문'과 관련된 역사적 장소는 홍문동사립소학교 이시선 집, 승동 수사 홍건조 집, 경운궁 인화문 앞 장례원 주사 김용규 집, 경운궁 인화문 앞, 창선방 느릿골, 계동 전화선 주사 마희률 집, 돈화문 앞 사헌부 조방 등이었다. 이 중에서 홍문동사립소학교 이시선 집은 ‘여권통문' 결의 장소이자 한국근대여성운동의 역사적 기원지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1903년 대한제국 한성부 호적표에 의하면 남서 홍문동계 홍문동 8통 1호이었다. 이곳은 1912년 토지대장과 비교했을 때 1912년도 삼각정 지적도상의 남부 삼각정 31-33번지에 해당되었다. 1943년 남부 삼각정은 중구 삼각정으로 되었고 광복 이후 1946년 중구 삼각동으로 개칭되었다. 1999년 홍문동사립소학교 이시선 집은 중구 삼각동 117번지로 통합 정리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여권통문의 취지에 따라 찬양회를 조직하고 순성여학교 설립을 결의했던 장소가 곧 오늘날 신한은행 백년관이 위치하고 있는 중구 삼각동 117번지이다. 즉 오늘날 신한은행 백년관 장소는 한국여성들이 여권통문의 취지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한국 최초의 근대여성단체인 찬양회를 조직하고 한국 여성 최초의 사립여학교인 순성여학교 설립을 결의했던 ‘여권통문' 결의 장소이자 한국근대여성운동의 역사적 기원지였다고 할 수 있다.

          • KCI등재후보

            한말 박에스더의 미국 유학과 의료 활동

            윤선자 한국여성사학회 2014 여성과 역사 Vol.- No.20

            Jeomdong Kim, a 10-year old Korean girl entered into EwhaHaktang, led by her father, partly because of poverty, contemporary Korean society's custom - which is governed by male-oriented culture: where people adopt a son if they do not have a son - and the birth of younger sister. Ironically, his father worked in a church where he had learned a new culture and learning. However, he was still adhering to Korean traditional custom to let daughters leave family, so that it gave her a chance to learn the Western thought and culture. While learning new studies, living with missionaries in EwhaHaktang, she also assisted female doctor, which opened her eyes to western thought and culture. Gradually, she grew into a woman, named Esther who is full of new thoughts and civilization. Esther married after the introduction from missionaries. Compared with a marriage set up between parents of two families, she could marry with her choice, because the groom was a Christian. A year after her marriage, she followed other missionaries to U.S. where she started to study. Missionaries and their community supported her. However, she could be a doctor mostly because of her will and effort, and her husband full support. Esther Pak returned to Korea as a professional medical doctor. Then along with other female doctors, she helped Korean women. Although the korean society was not welcoming a career woman and even underestimated professional women, she had a pride as a doctor and devoted herself to her job. It was her father's decision for Esther Pak to get into EwhaHaktang. However, it was her decision in learning new thought, marrying one she loves, going to U.S., becoming a medical doctor, returning to Korea, and performing medical activity for Korean women. So, her story had a tremendous influence on Korean women who wish to make their own lives and stories. It took a long time but it was the reason why there are a number of female medical doctors at present. Therefore, as the first Korean woman studying in U.S., and the first Korea-born female western medical doctor, she is considered as an important figure in modern Korean history. 10세의 한국 소녀 김점동은 그녀가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가난함,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아들을 중시하여 양자를 들이는 당시 한국사회의 관습, 여동생의 탄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화학당에 입학하였다.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전파하는 교회당에 근무하면서도 양자를 들이는 대신 딸을 내보내는 한국의 전통적인 관습에 사로잡혀 있던 아버지에 의해 그녀는 서구사상과 문물에 접하였다. 그리고 이화학당에서의 신학문 공부 및 서양인 선교사들과의 생활, 진료소에서의 서양인 여의사 의료 보조 활동을 통하여 한국 소녀 김점동은 교육받은 여성, 서구사상과 문물에 눈뜨고 그것들을 활용하는 여성, 에스더로 성장하였다.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에스더의 결혼은 두 집안 간의 관계에서 부모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배우자가 그리스도교신자이기 때문에 성사되었다. 결혼 1년 여만에 선교사를 따라 내딛은 미국 땅에서 그녀는 의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선교사와 선교회의 도움도 있었지만, 그녀가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 자신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남편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 때문에 가능하였다. 박에스더는 전문직업인, 여의사가 되어 귀국하였다. 그리고 서양인 여의사와 함께 당당하게 한국 여성들을 진료하였다. 당시 한국 사회가 여전히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을 뿐 아니라 전문직일지라도 폄하하려 하였지만 그녀는 의사로서의 자부심을 가졌고, 그녀의 일에 충실하였다. 박에스더의 이화학당 입학은 그녀 아버지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후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가고, 그곳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전문직업인 의사가 되고, 귀국하여 한국 여성들을 위해 의료활동을 전개한 것 모두가 그녀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러한 그녀의 삶은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한국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쳐,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기는 하였지만, 많은 한국 여의사들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한국 최초의 미국 유학 여성', ‘한국 최초의 서양의학 여의사'라는 그녀에 대한 평가와 의미 부여는 한국 근대사‧한국사에서 역사적인 의의를 갖는다.

          • KCI등재

            1980년대 여성운동의 새로운 여성 주체 기획과 주부운동론

            김영선 한국여성사학회 2018 여성과 역사 Vol.0 No.28

            This paper analyzes the trends and agendas of “differentiation” (bunhwa) in the progressive women's movement in Korea beginning in the late 1970s and the 1980s. The focuses of this study are the “Housewife Movement Theory” and discourses on the “housewife” constructed by the 'Women's Studies Association' (Yeoseongsa yeonguhoe) and' “Another Culture” (Ddo hana eui munhwa), groups that undertook the formation of new women' s subjects through the publication of mooks and related publishing projects in their progressive academic and cultural movements. Center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labor and class/ family, country and region, the paper analyzes the question of how the “labor value” theory of domestic labor and the social mobilization of housewives were reconstructed in terms of theoretical framework and political perspective, within the complex contexts of the political and social conditions of the 1980s, the formation of the progressive academic movement, and the organization of the national/regional women's movement). It is hoped that in attempting to reflect on the location, content, characteristics, and organization of housewives movements in discourses on “the female subject” produced by women's activists during this period, the present research can provide insight into an historical reasoning for formulating desirable strategies (and emphases) in dealing with the political, practical issues of establishing and reconstructing the category of “woman” in contemporary women's movements n the contemporary women's movement since feminism's “reboot” in Korea. 이 논문은 1980년대 학술운동 및 문화운동인 「여성사연구회」와 「또하나의문화」를 중심으로 일어난 한국 주부운동론과 궤적을 현재의 담론 지형과 연결해 검토하려고 한다. 특히 무크지 발행 등, 출간작업을 통해 여성 주체를 형성하려했던 동인들이 구성한 ‘주부조직론'과 ‘사회주부' 담론의 주요 내용과 특성을 살펴볼 것이다. 1980년대 한국에는 진보적 변혁이론이 확산되었고, 전국/지역 단위의 여성단체들이 조직되었다. 이러한 복합적 토양에서 새로운 여성주체로서 주부가 어떻게 기획되고 재발견되었는지 이론적, 운동론적인 입장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당시 여성운동의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갔던 지식생산의 주체들은 민주화의 열망 속에 있었던 학생, 노동자, 지식인들 그리고 여러 시민단체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교차하고 길항하면서 당대의 모순적 구조를 진단했고,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식을 고민하면서 자신의 운동위치와 전략을 다각도로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기층 민중과 대중이라는 이항 대립적 범주가 만들어졌다. 다른 한편, 여성운동의 조직화 과정 속에서 주체 구성의 우선순위와 대중화 방식을 둘러싼 방법론적 긴장이 전개되기도 했다. 현재 시점에서 바라볼 때, 1980년대는 한국 여성운동의 주체 생산과 운동 방향을 설정해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전환의 기점이며 기억, 현재 운동의 자원이 되었다. 그 당시 여성운동 담론의 장에 등장한 주제는 주부의 사회적 위치, 가사노동의 가치화 그리고 주부운동의 사회적 영향력 등 이었다. 특히 이 연구는 주부운동 조직이 노동과 계급 그리고 지역과 국가와 연결고리 속에서 열었던 지평과 전망을 분석하였고, 또한 어느 매체를 중심으로 논의되었는지 살펴보았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 여성운동 안에서, ‘여성' 범주의 획정과 재구성이라는 정치적, 실천적 논제를 둘러싼 논쟁이 깊어지고 있다. 이 연구가 여성운동, 풀뿌리/지역운동 그리고 주부운동의 상호관계성 및 조직화 방식 이라는 과제로 고민해왔던 여성운동이 차후 문제를 해결하는데 단서가 되길 기대한다.

          • KCI등재후보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에 서술된 `한국여성독립운동`에 대한 비판적 검토

            이방원 ( Lee Bangweon ) 한국여성사학회 2015 여성과 역사 Vol.- No.22

            2009년 개정교육과정 하에서 출간된 총 8종의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에서, `한국여성독립운동` 에 관한 내용을 정리 및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10년대 항일독립운동을 한 여성인물 및 여성단체로 송죽회와 유관순만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송죽회는 여성이 주축이 된 비밀결사라는 내용으로만 설명되어 있고, 유관순에 대해서는 비상교육과 천재교육 출판사만이 유관순의 만세 시위운동과 그에 따른 일제의 탄압을 자세하게 서술하였을 뿐이다. 둘째, 3·1운동이후 여성의 민족운동 관련 단원에 서술된 여성인물 및 단체 중 적어도 2종 이상의 교과서에 공통적으로 수록된 사항은 모두 여성단체이며, 근우회(8종),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 조선여성동우회(이상 7종), 조선여자교육회(5종), 토산애용부인회(3종), 근화여학교(2종) 등 총 6단체이다. 그러나 이상의 여성단체를 서술함에 있어서도 항일활동이 드러나지 않으며 여성 계몽에 중점을 두고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여성독립운동가가 적지 않고 그들의 역할이 주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독립운동가와 단체의 발굴 및 연구, 교육내용으로서의 타당성 및 필요성 등이 검정되는 과정을 거쳐 이들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I reviewed contents of women`s movement for Korean independence written in eight kinds of highschool textbooks on Korean history for 2009 Revised Course for Education. I have come to conclusion as follows by the analysis and organization of these contents. Firstly, only Songjukhoe (Society of Pine and Bamboo) is appeared as women`s association and Yu Gwan-sun is appeared as woman worked for Korean independence in textbooks on Korean History. However, Songjukhoe is only explained as the secret association of women. Moreover, only textbooks of Visang Education Publishing Company and Chunjae Education Publishing Company go into details of mansei (hurray) demonstration of Yu Gwan-sun and ensuing Japanese suppression of it. Secondly, the contents which more than two textbooks describe in common on the chapter about women`s national movement after 3·1 mansei Undong (1919 Demonstrations for Independence) are only about six women`s associations. Eight kinds of textbooks describe Geunuhoe (Society of the Friends of the Rose of Sharon). Seven describe Joseon Yeoja Gidokgyo Cheongnyeonhoe (Society of Young Christian Women in Joseon) and Joseon Yeoseong Donguhoe (Women`s Association of Joseon). Five describe Joseon Yeoza Gyoyukhoe (Women`s Educational Association in Joseon). Three describe Tosan Aeyong Buinhoe (Women`s Organization for Consumption of Indigenous Products). Two describe Geunhwa Yeohakgyo (Geunhwa Girl`s School). However, these description don`t show anti-Japanese activities of these associations. Textbooks only describe about women`s enlightenment activities of them. Though so many women leaders worked for Korean independence and their role was important, they don`t receive necessary attention. We should have to find and research women and women`s associations working for Korean independence. Process for investigation of validity and necessity of them as educational contents is needed. I think that correct education of these contents is necessary for students.

          • KCI등재

            하와이에서 한인(韓人) 전통의 창출 : 태평양전쟁 전 하와이 이민 한인 여성의 민족 관계와 근대화

            이리카 ( Lee Rika ) 한국여성사학회 2017 여성과 역사 Vol.0 No.26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 한인(韓人) 이민노동자들은 일을 하지 않고 쉬는 날 즐기기 위해 캠프에서 춤을 추었고, 몇 년 뒤에는 그들 삶에서 중요한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모인 모임과 단체회합에서 춤을 추었다. 이 경우 춤을 추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여성들은 사람들 앞에서 춤추기를 꺼려했는데, 심지어 같은 민족 앞에서도 거의 춤을 추지 않았다. 그러나 1920∼30년대 하와이 문화행사에서 한국 춤이 공연되었을 때, 대중 앞에서 한국의 전통춤을 추었던 이들은 대부분 이민 2세대 한인 여성들이었다. 이후로 한인 여성이, 고등학교 민족 동호회에서처럼 출신 민족의 배경을 나타내는, 간단한 한국 춤사위를 시연하는 것이 새로운 `전통`이 되었다. 왜 어쩌다가 한인 여성들이 춤을 추게 되었고, 한인 여성들의 춤이 한국의 `전통`을 대표하게 되었을까? 이 논문에서는 이민 1세대와 2세대 한인 여성들의 일상과 민족 관계에 초점을 두고, 20세기 전반기 하와이에서 한인 여성들이 서구화, 근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했는지를 탐구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에서는 한인 여성들이 한국 전통춤을 추는데 참여하도록 동기를 유발한 두 가지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첫째, 주류사회에서 전통춤을 장려하였다. 춤(춤추기)은 하와이 사회에서 하와이 주민의 통합과 화합을 강조하기 위한 활동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둘째, 춤은 이민 1세대 한인 여성들과 이민 2세대 한인 여성들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한인 공동체는 양립할 수 없는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민 1세대가 장려하는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서구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근대적인 생활방식 사이에서의 갈등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전통춤은 한인 이민자들에게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근대(적인 생활방식)를 이어주는 바퀴가 되었다. 한국 전통춤은 한인으로서의 민족 정체성(민족성)과 그들의 삶을 연결하는 동시에 당대의 근대적이고 서구적인 가치를 아우르는 것으로, 하와이에서 “한국인”으로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상징이 되었고, 한인 공동체를 대표하는 새로운 “전통”이 되었다. In Hawai`i, Korean migrant workers danced at the camps to entertain themselves on their days off from work, and in later years at gatherings to celebrate their life events and at organizational meetings, ever since Korean migrant workers started to work at the sugar plantations in 1903. The people who danced at these occasions were mostly men, and women were reluctant to dance in front of people, and thus rarely seen dancing even in front of co-ethnics. However, when Korean dances were performed in the 1920s and 1930s at the cultural events of Hawai`i, it was the Korean women, mostly 2<sup>nd</sup> generations, who performed and represented the Korean `traditional` dances to the public. Since then, it became a new `tradition` for Korean women to present simple Korean dance steps to represent their ethnic background, such as ethnic clubs in high schools. Why did these women dance and represent Korean `tradition`? This article focuses on the everyday life and race relations of Korean women, both 1<sup>st</sup> and 2<sup>nd</sup> generation, and explores the ways in which Korean women adopted and understood the westernization and modernization in Hawai`i in the first half of 20th century. This article argues that there were two forces that motivated women to engage in dancing. First is the promotion of traditional dances by mainstream society. Dancing became an act highly valued in Hawaiian society, to emphasize the integration and racial harmony of Hawaii`s population. Second is the role of dance that bridged the split between the first and second generations. The Korean community was undergoing conflict that seemed to be incompatible with each other - the traditional way of living that was encouraged by their first generation, and the modern way of living that was essential to live in a western society. Under these circumstances, Korean dance enabled Koreans to connect the traditional with the modern. Korean dance, then, became a symbol of what it meant to live as “Korean” in Hawai`i, embracing the modern and western values of the time, as well as their life that connects them to their Korean ethnicity, and became a new “tradition” for the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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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말 박에스더의 미국 유학과 의료 활동

            윤선자 ( Yoon Seon-ja ) 한국여성사학회 2014 여성과 역사 Vol.- No.20

            10세의 한국 소녀 김점동은 그녀가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가난함,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아들을 중시하여 양자를 들이는 당시 한국사회의 관습, 여동생의 탄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화학당에 입학하였다.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전파하는 교회당에 근무하면서도 양자를 들이는 대신 딸을 내보내는 한국의 전통적인 관습에 사로잡혀 있던 아버지에 의해 그녀는 서구사상과 문물에 접하였다. 그리고 이화학당에서의 신학문 공부 및 서양인 선교사들과의 생활, 진료소에서의 서양인 여의사 의료 보조 활동을 통하여 한국 소녀 김점동은 교육받은 여성, 서구사상과 문물에 눈뜨고 그것들을 활용하는 여성, 에스더로 성장하였다.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에스더의 결혼은 두 집안 간의 관계에서 부모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배우자가 그리스도교신자이기 때문에 성사되었다. 결혼 1년 여만에 선교사를 따라 내딛은 미국 땅에서 그녀는 의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선교사와 선교회의 도움도 있었지만, 그녀가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 자신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남편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 때문에 가능하였다. 박에스더는 전문직업인, 여의사가 되어 귀국하였다. 그리고 서양인 여의사와 함께 당당하게 한국 여성들을 진료하였다. 당시 한국 사회가 여전히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을 뿐 아니라 전문직일지라도 폄하하려 하였지만 그녀는 의사로서의 자부심을 가졌고, 그녀의 일에 충실하였다. 박에스더의 이화학당 입학은 그녀 아버지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후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가고, 그곳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전문직업인 의사가 되고, 귀국하여 한국 여성들을 위해 의료활동을 전개한 것 모두가 그녀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러한 그녀의 삶은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한국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쳐,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기는 하였지만, 많은 한국 여의사들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한국 최초의 미국 유학 여성`, `한국최초의 서양의학 여의사`라는 그녀에 대한 평가와 의미 부여는 한국 근대사·한국사에서 역사적인 의의를 갖는다. Jeomdong Kim, a 10-year old Korean girl entered into EwhaHaktang, led by her father, partly because of poverty, contemporary Korean society`s custom - which is governed by male-oriented culture: where people adopt a son if they do not have a son - and the birth of younger sister. Ironically, his father worked in a church where he had learned a new culture and learning. However, he was still adhering to Korean traditional custom to let daughters leave family, so that it gave her a chance to learn the Western thought and culture. While learning new studies, living with missionaries in EwhaHaktang, she also assisted female doctor, which opened her eyes to western thought and culture. Gradually, she grew into a woman, named Esther who is full of new thoughts and civilization. Esther married after the introduction from missionaries. Compared with a marriage set up between parents of two families, she could marry with her choice, because the groom was a Christian. A year after her marriage, she followed other missionaries to U.S. where she started to study. Missionaries and their community supported her. However, she could be a doctor mostly because of her will and effort, and her husband full support. Esther Pak returned to Korea as a professional medical doctor. Then along with other female doctors, she helped Korean women. Although the korean society was not welcoming a career woman and even underestimated professional women, she had a pride as a doctor and devoted herself to her job. It was her father`s decision for Esther Pak to get into EwhaHaktang. However, it was her decision in learning new thought, marrying one she loves, going to U.S., becoming a medical doctor, returning to Korea, and performing medical activity for Korean women. So, her story had a tremendous influence on Korean women who wish to make their own lives and stories. It took a long time but it was the reason why there are a number of female medical doctors at present. Therefore, as the first Korean woman studying in U.S., and the first Korea-born female western medical doctor, she is considered as an important figure in modern Kore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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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 한국여성독립운동사 연구 현황과 과제

            강수옥 ( Kang Su-ok ), 동염 ( Dong Yeom ) 한국여성사학회 2019 여성과 역사 Vol.0 No.31

            중국조선족역사연구는 총체적으로 5단계의 발전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발전해 왔다. 여성사 연구 역시 이러한 과정에 맞물려 진행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중국에서 한국여성독립운동사 연구 현황을 살펴보고 앞으로 연구방향을 모색하려는 의도이다. 중국에서 한국여성독립운동사 연구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연구 인원이 너무나 적을 뿐만 아니라 연구단체도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한국여성독립운동사 연구는 현재 대부분 개인적인 연구 성향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중국에서 한국여성독립운동사연구팀을 여성독립운동사연구의 심도를 깊이하고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중국 한국여성독립운동의 역사 흐름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필요하다. 동시에 협동연구로 단조로운 여성운동 투쟁사에만 그치지 말고 중국에서 한국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하고 이들의 활동이나 역할과 더불어 독립운동가 여성들의 생활상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어야 한다. China`s research on Korean women began in the early 1990s. The study of the history of Chinese Koreans has experienced five stages of development and keep continues. And the study of female history has also been through this process. This paper reviews the recently research condition of Korean women's independence movement history in Chinese academic circles, expounds the problems to be overcome in the future. There are still many problems in the study of Korean women's independence movement history in China, such as lack of researchers ,be short of research groups and so on. At present, most of the research on Korean women's independence movement history in China is based on individual research. Establishing China`s own Korean women's independence movement history research team, go deep into the history of women's independence movement is indispensable for grasping the development trend of Korean women's independence movement history in China. At the same time, we need to unfold multi-angle research, not only to stay in the history of women's movement struggles, but also to pay more attention to Korean women's independent activists in China. Except their activities and historical role, these female independent sportsmen`s life situation also requires in-depth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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