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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복음화 위기 극복을 위한 기독교대학 선교의 신학과 효율적 방안: 한남대학교 사례를 중심으로

        최영근 한국대학선교학회 2014 대학과 선교 Vol.26 No.-

        This paper investigate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hurch growth andcampus evangelization, and examined the crisis of the Korean church fromthe perspective of campus mission. It aimed at suggesting theology and strategyfor an effective campus ministry of the Christian university by presentinga case of Hannam University. The Korean Church rapidly grew in number between the 1960s and the1980s. The campus evangelization led by campus missionary groups was theone of the most important factors in the church growth. The church growth,however, came to decelerate sharply in the 1990s, and the Korean churchbegan to decrease in number in the 2010s. Accordingly, campus evangelizationcame into crisis. It was the same situation in the Christian universityfacing identity crisis after secularization. Christian universities as well as theKorean churches failed to respond efficiently to the shift in society and culturewhile holding fast to old paradigms. They stuck to dogmatism, proselytism,and cultural exclusivism, and therefore became isolated and marginalizedfrom Korean society and university culture in particular. The collapse ofcampus mission would endanger the church's spiritual integrity and institutionalsoundness, and dim hopes for the future of the Korean Church. Thus for theology of an effective campus ministry of the Christian university, this paper suggested holistic mission and incarnational theology. TheChristian worldview and morality should shape and inspire all the spheres ofthe life and culture in the university. For this regard, Christian universityshould reestablish Christian educational goals, foster Christian worldviewwithin the community, and integrate faith and knowledge to build upChristian scholarship, morality, and spirituality. For successful evangelization,furthermore, Christian university should focus on training ofChristian students into leaders of campus ministry and utilize all the possibilitiesas missionary opportunities. 이 논문은 한국교회 성장과 대학선교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고, 당면한 캠퍼스 선교의 위기와 한국교회 위기를 상호검토한 후에, 한남대학교의 사례를 중심으로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기독교대학 선교의 신학과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1960년대와 1980년대에 이르는 한국교회 급성장의 중심에는 대학선교단체들의 활발한 학원복음화가 있었다. 한국교회 부흥의 시대에 학원복음화가한국교회 부흥과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한국교회의 성장은 대학선교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성장감소와 2010년대의 교세감소에 직면한 한국교회의 위기상황은 대학선교의 위기를 동반하고 있다. 진리와 도덕적 가치가 상대화되고 다양한 문화와 개성이 공존하는 변화된포스트모던의 사회 환경 속에서, 특히 학문과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위기에 직면한 대학선교는 새로운 신학과 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이는 설립정신의 쇠퇴로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하며 효율적인 대학선교의 방향을 모색하는 기독교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일방적 교리전달과 문화적 배타주의, 하나님나라를 교회로 환원하는 개종과 이식 유형의 선교방법은 이미 한계를 노출시키며 복음을 대학사회에서 고립시키고 대학문화의 주변부로 내몰고 있다. 효율적인 기독교대학 선교의 신학으로서 이 논문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삶을 대학의 학문과 삶과 문화 속에 이루어가는 통전적 선교를 제시하였다. 곧 기독교의 진리가 구성원들과 학생들의 신앙과 지성과 인격을 형성하는 성육신적 선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신학에 기초한 기독교대학 선교의효율적 방안으로서, 구성원들 가운데 창학이념과 교육목적을 분명하게 확립하고,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신앙과 학문을 통섭하고, 전공교육과 학교활동을 통해, 특별히 채플과 기독교 교과목의 효율적 운영을 통해, 기독교정신에기초한 인성과 도덕적 탁월성과 봉사정신을 겸비한 인재를 길러내는 전인격적, 통전적 기독교 교육을 지향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기독교대학은 교목실을 중심으로 구성원들의 비전과 소명의식을 회복시키고, 기독학생들을 양육하고 훈련하여, 이들을 대학 선교의 자원과 주체로 양성하면서, 기독교대학이 가진 다양한 기회와 여건들을 충분히 활용하여 종합적인 대학선교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

      • KCI등재

        고등교육기관에서 기독교 교육과 선교의 방향

        박용우 ( Yong Woo Park ) 한국대학선교학회 2000 대학과 선교 Vol.2 No.-

        기독교 교육과 선교 주변환경의 변화 기독교 교육과 선교의 주변환경이 많이 변화고 있다. 우리는 생활의 여러 방면에서 복합적이고도 우주적인 세계에 살고 있으며 생태학, 인구폭발, 천연자원의 고갈, 유전공학 등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의 혁명과 더불어 너무나 많은 지식과 정보가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고등교육기관들이 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21세기는 지나간 세기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는 대중문화의 해체기에 있으며 개별적인 개성을 토대로 한 새로운 문화가 창출되고 있다. 가상세계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으며 재택 근무 등 직업형태도 바뀌고 있으며, 대기업이나 대량화보다는 경쟁력 있는 전문화된 작은 형태의 기업 등 기업이나 경제의 새로운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문화적 다양성과 사회적 다원주의에 직면하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오면서 우리는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강한 다원주의와 개인주의를 보게되며, 이것이 종교와 교회뿐만 아니라 문화와 대학에 영향을 주고 있다. 더욱이 종교적이고도 문화적인 다원주의는 기독교 대학들에게 비기독교화를 요구하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다. 대학은 이제 더 이상 진리를 위한 場(장소)이 아니다. 동경대학의 명예 경제학 교수이면서 후에 동경 여자 기독교 대학의 총장이 된 Mikio Sumiya는 이미1981년에 .대학이 바벨탑인가. (Is a University the Tower of Babel)라는 책에서 학문은 더 이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적어도 경제학은 진리를 찾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의 목사(교목)로서 우리는 예수에게서 3가지 모델을 배울 수 있다: 목회자적인 모델, 제사장적인 모델, 예언자적인 모델이 그것이다. 목회자적인 모델은 목회자/선생으로서 여러 가지업무에 종사함으로서 학원 선교를 위한 전형적인 모델 중의 하나이다. 제사장적인 모델은 구약성경에 있어서 제사장의 이미지를 본받은 것으로서 학원선교의 또 다른 모델이다. 예언자적인모델은 하나님의 진리와 정의를 담대하게 외치는 구약성경에서 본받은 또 다른 모델이다. 때로는 학원선교가 사회와 학교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진리와 정의를 담대하게 외침으로서 예언자의 역할을 해야한다. 이런 종류의 예언자적인 역할은 때로는 엄청난 저항이 있기 때문에 대단한 용기를 요하기도 한다. 가끔 예언자들은 권세를 가진 자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구약성경 시대에도 위협을 당했다. 예수조차도 그 당시 이슈와 관련해서 옳지 못한 부패한 정치적 사회적 지도자들과 구조들에 대하여 겁없이 공격했다. 예수는 가난하고 가지지 못한 자들의 편이었다. 한국에 있는 기독교 대학들은 대학의 정신이 학문과 연구의 자유, 가르침과 비판의 자유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언자적인 역할을 소홀히 해왔다. 대학에서 기독교교육 교수들과 선교자인 교목들은 그들의 대학이 오늘 세계의 얽힌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 씨름에 나가도록 용기를 북돋우어 주어야 한다. 신앙과 학문 패러다임의 역사적인 변화 고대 그레코로만 시대에는 이성적인 학문활동이 활발했다. 5세기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 중세기에는 기독교 신앙의 방어를 위해서 이성 (또는 지식)은 신앙 밑에 있었다. 만약 지식이 믿음과 갈등이 생긴다면 그 지식은 무시되었다. 때때로 지식(이성,과학)은 기독교 신앙의 적으로서 무시를 당했다. 이성과 믿음사이에 조화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12세기말 교회학교에서 스콜라철학의 열기와 더불어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찾게되었다. 이성과 계시, 자연과 은혜, 지식과 믿음 사이에 조화를 도모하게 되었다. 중세말 유럽에서 대학은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토대로 한 스콜라철학의 열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17세기에는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학문 패러다임에 또 하나의 변화가 있었다. 계몽주의시대의 사상가들은 종교적 신앙과권위는 과학과 철학을 이해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신앙은 과학에 배치되며 적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것은 존로크에 있어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미국의 학자 G. M. Marsden은 1993년 .학문자유의 모호성.이라는 그의 책에서 미국 대학교수들의 연합회를 창설한 존 듀이는 과학과 종교 사이를 결정적으로 갈라놓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유럽 대학의 세속화는 미국대학의 세속화와 일본 및 한국대학의 세속화에 전염병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Marsden은 .미국대학의 정신.이라는 그의책에서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된 미국대학의 그러한 변화는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불 신앙으로의 변화라고 말했다. 여하간 계몽주의 전통은 과학과 종교를 갈라놓았다. 또한 그것은 종교는 의미를 추구하고 과학은 진리를 추구한다는 가설을 남겼다.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은 근대 모더니즘 사상에 반대되는 지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왔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진리와 도덕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미국의 학자 AllanBloom은 「미국정신의 종말」이라는 그의 책에서 오늘의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이 상대성을 주장하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라고 했다. 니체와 프로이드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선구자들이었다. 니체는 이성은 진리와 정의를 세우지 못했으며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프로이드는 이성은 무의식의 욕구, 리비도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능이라고 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등장과 더불어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주장한 진리는 상대적 진리로 경감되었다. 해석학과 지식사회학의 견지에 비추어 볼 때 알키메데스적인 요점은 없는 것이었다. 기독교 대학의 대처방안21세기를 향한 지식 패러다임의 새로운 확립(신앙과 과학 사이에 있어서)이 필요하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교회 신앙의 몰락을 가져왔다. 지난 40년 동안 장로교를 포함해서 큰 기독교 교파들은 그 숫자가 줄어들었으며 유럽과 한국에서 교회학교 학생들은 매년 줄어들었다. 교회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한 학생들 중에서 대단히 적은 숫자가 대학생 과정에 합류했다. 교회는 매년 많은 대학생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상대주의 영향의 결과였다. 종교가 상대적인 것이라면 누가 종교를 믿으려고 하겠는가? 지금 기독교 대학들은 지식과 과학 사이에서 새로운 조화를 수립하려는 상태에 있다. 계몽주의는 이성의 절대성을 강조한 나머지 이성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았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성의 한계성을 강조했지만 기독교의 상대성 (종교 다원주의 등)을 주장함으로서 기독교 신자의 감소를 가져왔다. 기독교 대학들은 신앙과 과학 사이의 전통적인 조화를 회복해야 한다. 더욱이 임마누엘 칸트처럼 이성과 신앙 사이에 고유의 영역이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21세기를 향한 대학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우리는 생물학에 있어서 유전공학, 컴퓨터 공학과 물리학에 있어서 급속한 발전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네트워크 세계에 살고있으며 시티즌(시민)인 동시에 네티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의 급속한 발전이 매일 우리가 직면하는 윤리적인 문제에 언제나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고등교육기관으로서 기독교 대학들은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과학과 세계관에 대해서 기독교적인 통찰력을 확립해 주어야 한다. 기독교 교수들은 종교적 중립성을 탈피하고 기독교적인 관점을 가질 것이 요구된다. 기독교 대학이 무엇인가? 전통적으로는 대학이 학생들에게 종교과목을 개설하고 채플을 개설할 때에 기독교 대학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기독교 대학은 그 이상이어야 한다. 기독교 대학은 정신과 지식과 실천에서 학문과 신앙을 조화롭게 통합(믿음과 과학의 조화 있는 통합) 해야 한다. 기독교 과목을 직접적으로보다는 간접적으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와 문화, 기독교와 예술, 기독교와 자연과학, 기독교와 역사, 기독교와 공학, 기독교와 컴퓨터, 기독교와 윤리 등 통합적인 기독교 과목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21세기에 있어서 기독교는 진리와 도덕과 종교의 상대성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기독교 대학은 기독교 대학의 이념과 정체성을 포기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기독교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당면한 문제들을 극복하든지 해야 한다. 우리는 진리와 도덕과 가치에 있어서 상대성의 물결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실한 오늘의 사람들에게 영원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중세의 교육과 오늘의 교육의 차이점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중세의 교육은 라틴어로 획일적으로 이루어졌던 반면에 오늘의 교육은 다양한 여러 가지 언어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문화적인 다양성을 더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중세의 교육은 오직 특권을 가졌던 상류계층을 위한 것이었다면 오늘의 교육은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남녀모두에게 평등하게 일반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세 교육의 목표가 더 나은 기독교인들로 만드는 것이었다면, 오늘 교육의 목표는 더 나은 기독교인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은 시민을 만드는 데에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하나의 세계에만 속한 것이 아니고 두 개의 세계(하나님의 나라와 지상의 나라, Civitas Dei와 Civitas Terrena)에 속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교육의 목표는 영적인 성장과 경건을 위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사회 속에서 기독교 문화를 창 출하는 사명을 위한 것이다. 요컨대 기독교 교육과 선교는 신앙과 학문을 통합해야 한다. 기독교 교육과 선교의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기독교적 관점에서 모든 일들을 해석할 수 있도록 기독교적인 관점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고등교육기관에서 기독교 교육과 선교는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창출하는 데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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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와 선교 신학의 상관관계

        김주덕 한국대학선교학회 2008 대학과 선교 Vol.15 No.-

        Despite the short history of the Korean Church of only 125 years - there are 23 out of 50 biggest churches in the world in Korea and it is the second largest sender of missionaries abroad, second only to America -what was the main reason to set up the Korean Church of today? In my thesis, I have studied the theology of mission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Korean Church and mission. Through my research, I have attempted to find the transformations and tendencies of the theology of mission in Korean Church history . In my study, I have divided the history of the Korean mission into periods through a historical and chronological way. Firstly, it was a “theology of mission of missionaries”, which spanned from the beginning of mission in Korea to 1910. In this period, missionaries from abroad strongly influenced the mission policy and strategy of mission in Korean church. Secondly, it was a “theology of revival movement mission”, from the 1910s to the 1950s. In this period, Korean church leaders, who were strongly influenced by missionaries, led the revival movement in the Korean Church. Typical revivalists such as Sunju Kil, Ikdu Kim and Yongdo Lee led the revival movement which established a lot of new churches and church growth under gloomy Japanese colonial period. After the Korean War, however, there were two theologies of mission in the Korean Church which shared an antagonistic relationship. One is a “theology of church planting and revival”and another is a“missio-dei”. These two theologies of mission have been, and still remain, the main theologies in the Korean Church. Finally, it was a “theology of abroad mission”which was appeared after the 1980s. After the 1980s, there was a rapid increase sending missionaries to abroad. As a result, in 2007 there was a tragic accident in Afganistan, where two missionaries were killed which was a big issue inside and outside the Korean Church. In this article, I have studied the transformations and tendencies of theology of mission in Korean Church history through a historical and chronological method. Also, I have attempted to research the “theology of abroad mission”in the Korean Church’s history. I believe my thesis will be an important resource to establish a new theology and strategy of mission abroad in the Korean Church. 125년의 짧은 교회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세계5 0 개의대형교회중2 3 개가한국에있고미국에이어세계제2위의해외선교사파송국가가되었다. 과연오늘의한국교회를있게한한국교회의선교신학은무엇일까? 이를위해이글에서는한국의선교신학을한국교회와의상관관계속에서분석하여보고자하였다. 오늘날까지한국교회의전반적인선교신학의변화와흐름들을연구하여보고자한것이다. 따라서본글에서는먼저한국교회의역사를통하여커다란변화가있었던선교신학을역사적, 시대별로, 다음과같이네부분으로나누어보았다. 이는첫째로, 한국교회의선교초기부터1910년까지의 시기로, 한국교회의형성에커다란영향을주었던“선교사들의선교신학”이다. 이시기는선교사들의선교정책을중심으로초기선교사들의 선교신학이중심되었던시기이다. 두번째로는선교사들의선교신학의영향으로초대한인목회자들에의해형성된1910년부터해방되기 까지의“부흥운동의선교신학”이다. 이시기는한국의일제치하의암담한정치, 경제적현실속에서부흥사경회를통해교회의설립및부흥성장을주도하였던대표적인부흥사들이중심되어선교신학을주도하였다고할수있을것이다. 그러나해방과더불어찾아온민족분단의아픔속에서한국교회의선교신학또한“교회설립및부흥성장의선교신학”과“하나님의선교신학”으로이분되어각각발전되어오게되었다. 1960년대부터1980년대까지이두선교신학들이한국교회에형성되어각각의배경과특징들을갖고한국의선교신학을주도하고있으며, 이두선교신학은 오늘날까지큰두흐름으로한국교회에남아있다고하겠다. 마지막으로는1980년대후반부터급격하게증가된해외선교사를파송하게된“해외선교신학”이다. 이는2 0 0 7 년7월아프가니스탄에서두사람이 살해당하고나머지는극적으로살아고국으로돌아오는사건을일으키며한국교회에안팎으로커다란파장을일으키기도하였다. 이글을통하여오늘날까지역사적시대별로중심되었던한국교회의 선교신학의변화를한국교회의부흥성장의관계속에서연구분석하여봄으로한국교회의선교신학의변화발전과정을이해해보고자하였다. 또한한국교회가해외선교정책을수행했던해외선교신학을연구분석하는시도이기도하다. 그러므로보다발전적이고새롭게갱신되어야할한국의해외선교정책을펼칠효과적인해외선교신학의확립에중요한자료가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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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 내 독립된 분과로서 "대학선교학"의 학문적 정체성에 관한 연구

        이대성 ( Dae Sung Lee ) 한국대학선교학회 2016 대학과 선교 Vol.30 No.-

        “대학선교학”은 1970년에 출범한 “한국기독교대학교목회”가 1997년에 “한국대학선교학회”를 발족하고 2000년 2월에 학회지 .대학과 선교.(Universityand Mission) 창간호를 발행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되어 온 신학의 한 분야이다. 그동안 대학선교학은 학술지 게재 논문의 양적 질적 발전과 꾸준한 학술발표회를 통해 신학 내에서 독특한 관심영역을 형성해 오면서 그 내용의 폭이나 깊이, 그리고 교회와 대학에 끼치는 영향력 면에서 크게 발전해왔다. 대학선교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학선교학의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없었다. 이제 대학선교학이 한 단계 더 학문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또 그렇게 함으로 대학선교에 더 크게 공헌하기 위해서는 대학선교학의 학문적 정체성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때가 되었다. 본연구는 기독교 신학 내의 고유한 분과로 자리잡아가는 대학선교학의 현재상태와 특징, 한계 등을 살펴보고, 이를 근거로 앞으로 대학선교학이 독립된학문 영역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기 위해 취해야 할 방안과 방향에 대한 제안을 한다. “University Mission Studies”(UMS) is an emerging academic discipline in the field of theology. Its development was accelerated by the founding of “The Korean Association for University Mission Studies” in 1979 and the creation of the academic periodical, University and Mission in 2000. So far UMS has achieved significant growth through the publication of increasing number of high quality research papers through University and Mission and regular academic conferences. Its influence to the churches and universities in Korea is great. In spite of the long history and visible development of UMS, there have not been any serious studies on the academic identity of UMS. It is time to do the research on this topic. This paper evaluates the status of UMS as an academic discipline by examining its current situation, characteristics, and limits. Based on the evaluation, this paper makes suggestions for the further development of 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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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대학교회의 태동과 변천 ― 연세대학교를 중심으로

        박정세 한국대학선교학회 2010 대학과 선교 Vol.19 No.-

        Although many articles have been published on chapel programs and lectures for campus Christian ministry in Korea, research on university churches, an important part of campus ministry, is relatively rare. In this article, the founding and transition of Yonsei University Church, which has the longest history among university churches in Korea, will be examined. Christian missionary activity in Korea was prohibited in the early days of Chai Chung Won - the first modern medical college with a hospital,founded in 1885 and renamed Severance Medical College in 1904. The transfer of the ownership of the institution in 1894 from the King of Chosun (Korea) to the Presbyterian Church of the United States became the first step in missionary work; worship service was initiated for fellows,staff and patients. The congregation can be regarded as the origin of Yonsei University Church. The church was also used as the venue for the general assembl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Meanwhile, Yonhee College Church was founded in 1933. The church,located outside the walled city of Seoul, not only served the people dwelling in and near the college site but also fulfilled the need of an ecumenical church in the campus. This spirit of cooperation expanded to the setting up of a church managed by two colleges−Yonhee and Ewha−in 1935. Although this Hyop-seong Church, or the Union Church, was shut down by oppression of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it was reopened by the two colleges after independence. The consolidation of Severance Medical College and Yonhee College into Yonsei University in 1957 was followed by the establishment of Yonsei University Church in 1962. The construction of University Chapel,or Luce Chapel, in 1975 provided the momentum to develop a renovated mission policy of Yonsei University Church, such as ‘community church,’‘bridge church,’ and ‘open church’. Enculturation and globalization of church programs were added recently. In accordance with the opening of the new university sites of Yonsei,new university churches were built in new campuses. These churches, following the ‘main’ Yonsei University Church as a model, have been developing their own programs. For example, Wonju Medical College Church, opened in 1981, organized an overseas medical service team; since 1984 Maeji Campus Church has been focusing on students’ dormitory ministry; Samae Campus Church, founded in 2006, has been trying to develop their own church program following the donor’s ‘Samae (three loves)’ spirit. 한국의 기독교대학에서 캠퍼스 선교와 관련하여 채플과 기독교 과목에 관해서는 여러 면에서 고찰해 왔으나 선교의 중요한 축인 대학교회와 관련하여서는 별다른 연구가 없었다. 이에 한국에서 제일 처음기독교대학으로 출발한 연세대학교를 중심으로 대학교회의 설립과 변천 및 현황에 대해 고찰하였다. 제중원 초창기에는 공식적으로 기독교 선교가 허락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1894년 제중원이 북장로교로 이관됨에 따라 선교의 기회가 생기게 되어 교직원이 환자와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고 여기에 인근주민들도 참여함으로써 교회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이 모임은 점차 성장하여 교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고 교단의 공의회가 모일 수 있는예배당을 갖게 되었으며, 그 후에는 교회를 신축하기에 이른다. 연희대학교회인 ‘연희협성교회’는 1930년 초에 창립되는데, 당시 서울의 교회는 사대문 안 중심이었으나 이제 성문밖에 새롭게 형성된 교육 커뮤니티는 그 나름대로의 편리와, 연합교단 교회의 필요를 충족하는 새로운 형태로 시작되었다. 또한 이러한 연합 정신은 한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서 인근 이화대학과 공동으로 한 대학교회를 운영하는 데까지 발전한바 있다. 연희대학과 세브란스의학대학이 연합하여 연세대학이 된 후 1962년에 다시 시작된 대학교회는 몇몇 과정을 걸쳐 1975년부터 교목실과유기적인 관계로 운영된다. 이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커뮤니티를 기본으로 하여 기독교에 관심을 갖는 학생을 육성하려는 목적을 예배와 프로그램과 친교활동을 통해 조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근간에 이르러서는 예배의 부분적 토착화 시도와 국제화에 따른 제반의 필요를 프로그램으로 연결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의 여러 캠퍼스들은 본교 대학교회의 운영방식을 근간으로 하여 그 나름의 특성을 살리고 있다. 의료원 캠퍼스의 병원교회는환자를 위한 주일예배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며, 1981년부터 시작된 원주의과대학교회 역시 해외 의료선교 활동을 중심으로그 특색을 살리고 있다. 또한 1984년부터 시작된 매지캠퍼스 교회는 지방에 위치하며 방대한 기숙사를 가진 대학의 특성을 목회와 프로그램에잘 반영하고 있고, 2006년에 설립된 삼애교회 역시 기증자의 뜻 (三愛:하나님 사랑, 노동사랑, 농촌 사랑)을 살려 특색 있게 운영되고 있다. 연세대학교의 대학교회들은 각각 그 시대적 요구와 그 공동체의 요구를 잘 연계하여 교회를 설립하였고 나름대로의 특색을 발전시키고있음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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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선교와 대학교회의 역할 −한남대학교회를 중심으로

        김광률 한국대학선교학회 2010 대학과 선교 Vol.19 No.-

        What is the University Church’s reason for existence in a Christian university? Its response stimulates us to explore the University church’s task.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the University Church and the Christian University, in that this is one of the academic communities while that is one of the worship communities. In spite of the difference,there is a common purpose in which both of them pursue accomplishing the Kingdom of God in the world. It is possible to enrich each other as well as cooperate with each other. Bas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m, the past, present, and future of the Hannam University Church are systemized. Its reason for being is drawn from its foundational purpose and process, and its features and visions. Its chronicle of activities shows its effect on the campus mission. Its future is found in its tasks. It enables us to get an insight into the distinctive features and activities of other university churches to understanding its organizations as a local congregation. In addition, it is possible to build a guidepost for the university churches’ future. 기독교대학에 대학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어떤 모습으로존재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음으로써 대학교회의 존재이유와 오늘의 사명을 밝힐 수 있다. 기독교대학은 학문공동체의 하나이며, 대학교회는 예배공동체의 하나라는 차이를 갖고 있다. 그 차이에도불구하고 그 둘이 갖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선교적 사명으로 기독교대학은 학문 활동을 통해, 교회는 예배와 봉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이 땅에 실현하게 된다. 그러기에 대학과 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위해서로 협력하는 것이 공통적 의무이며, 각 공동체를 생명력 있게 만들수 있게 한다. 이 글에서는 위에서 제기한 관계설정을 기초로 한남대학교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정리한다. 왜 한남대학교회가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립취지와 과정, 특성과 비전을, 지금까지 학원선교를위해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발자취를 통해 대학교회가 설정한 비전에 따른 활동들과 그것들이 학원선교에 끼친 영향들을 살펴보며, 그리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미래 대학교회의 바람직한 모습을 위한 과제를 알아본다. 이 글은 독자들이 개교회로서의 한남대학교회를 바로 이해하는 데도움이 될 것이며, 또한 다른 대학의 독특한 대학교회의 특성과 활동들을 이해함으로써 오늘의 대학교회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 모색에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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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회의 성격과 선교적 과제 - 연세대학교회를 중심으로 -

        조재국 ( Jae-kook Cho ) 한국대학선교학회 2016 대학과 선교 Vol.32 No.-

        본 논문은 지역의 교파교회의 대안으로 새로운 교회의 형성을 목표로 설립되어 학원선교의 미래를 개척하고자 하는 대학교회, 특히 연세대학교회의 성격과 그 선교적 과제에 대하여 조사, 분석한 것이다. 한국교회가 고도 성장기를 지나 오랜 침체기에 들어서고 있는 가운데, 선교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역교회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노력해 온 대학교회의 성격과 과제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은 시급한 일이라 하겠다. 이를 위하여 본 논문은 먼저 연세대학교회와 연세 신앙공동체의 특성을 알아보고, 교회의 조직과 운영, 즉 거버넌스의 특성을 분석해 보았으며, 다음으로 예배순서와 내용을 분석하고, 대학교회의 선교적 과제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연세대학교회에 관한 심층적 분석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연세대학교 캠퍼스에 위치하는 대학교회와 그 자매교회들은 지역교회와는 다른 독특한 거버넌스를 성립시켜, 총장의 임명에 따른 임기제 목회자에 의하여 목회와 행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장기에 걸쳐 봉사하는 전문사역자들에 의하여 예배와 신앙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경직되고 말았고, 오랜 역사와 노인층 신자들의 증가로 인하여 미래교회를 위한 준비가 큰 과제로 등장하였다. 둘째로, 대학교회는 대학의 행정시스템과 직제에 따른 투명하고 정확한 재정처리와 목회자들과 전문봉사자자들, 평신도지도자들의 역할부담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대학의 부속기관장으로써의 임시직으로 인한 담임목회자의 한계로 인하여 장기적인 목회계획이나 평신도 훈련이 어려운 상황이다. 셋째로, 대학교회의 오랜 전통인 예전예배와 성서정과에 따른 설교는 서양교회의 전통적이고 규범적인 기독교예배를 경험하게 하고, 바로크시대로부터 계승된 교회음악의 전통을 지켜올 수 있었고, 그로 인하여 지식인 중심의 예배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으나, 청년친화적인 교회의 형성이 큰 과제로 남게 되었다. 대학교회는 교회의 본래적 사명인 예배, 교육, 선교를 성취하기 위하여 소속신자들의 신앙성장을 위한 교육훈련과 선교역량의 증대, 그리고 목회적 돌봄을 통한 신앙의 성숙을 기하고자 노력하여 왔다. 그러나 오늘의 대학교회는 오랜 역사와 전임 목회자의 부재, 평신도 중심의 교회운영으로 인하여 새 시대를 열어갈 청년, 학생들을 위한 선교역량의 제고와 예배와 신앙의 역동성 증대가 앞으로의 연구과제로 남게 되었다. This essay aims to analyse the characteristics of the Yonsei university church and the tasks of campus ministries as an alternative of local churches or denominational churches. The university churches may complement the weakness of local churches for growth slump to be continued. We examine the university church to try to improve new order of worship service and new model of governance system, management and prospect the model for the future church as follows; At first, we seek the university church and its sister churches to form the present unique governance system through its active campus missionary for Yonsei Campus and students, professors, civilians around campus. Secondly, we recognize that the University church has high level`s morality and transparency of church management because of a two-year term senior pastor appointed by the president of the University and the financial management used by university administration. Thirdly, we know that the worship service reading by the church choir and the organist is conducted as a ritual worship to follow the lectionary. The western lectionary will need to change in Korean traditional calendar. Fourthly, we think that the university church will need the improvement of new emerging power for mission because of institutional rigidities and ageing members. To support the campus mission, the university church should try to welcome new members and deep inspiration and new programs by bible study and pray meetings for new missionary circumsta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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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2 : 대학교회와 학원선교 ; 한국 대학교회의 태동과 변천 -연세대학교를 중심으로

        박정세 ( Chung Se Park ) 한국대학선교학회 2010 대학과 선교 Vol.19 No.-

        한국의 기독교대학에서 캠퍼스 선교와 관련하여 채플과 기독교 과목에 관해서는 여러 면에서 고찰해 왔으나 선교의 중요한 축인 대학교회와 관련하여서는 별다른 연구가 없었다. 이에 한국에서 제일 처음기독교대학으로 출발한 연세대학교를 중심으로 대학교회의 설립과 변천 및 현황에 대해 고찰하였다. 제중원 초창기에는 공식적으로 기독교 선교가 허락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1894년 제중원이 북장로교로 이관됨에 따라 선교의 기회가 생기게 되어 교직원이 환자와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고 여기에 인근주민들도 참여함으로써 교회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이 모임은 점차 성장하여 교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고 교단의 공의회가 모일 수 있는 예배당을 갖게 되었으며, 그 후에는 교회를 신축하기에 이른다. 연희대학교회인 ‘연희협성교회’는 1930년 초에 창립되는데, 당시 서울의 교회는 사대문 안 중심이었으나 이제 성문밖에 새롭게 형성된 교육 커뮤니티는 그 나름대로의 편리와, 연합교단 교회의 필요를 충족하는 새로운 형태로 시작되었다. 또한 이러한 연합 정신은 한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서 인근 이화대학과 공동으로 한 대학교회를 운영하는 데까지 발전한바 있다. 연희대학과 세브란스의학대학이 연합하여 연세대학이 된 후 1962년에 다시 시작된 대학교회는 몇몇 과정을 걸쳐 1975년부터 교목실과 유기적인 관계로 운영된다. 이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커뮤니티를 기본으로 하여 기독교에 관심을 갖는 학생을 육성하려는 목적을 예배와 프로그램과 친교활동을 통해 조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근간에 이르러서는 예배의 부분적 토착화 시도와 국제화에 따른 제반의 필요를 프로그램으로 연결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의 여러 캠퍼스들은 본교 대학교회의 운영방식을 근간으로 하여 그 나름의 특성을 살리고 있다. 의료원 캠퍼스의 병원교회는 환자를 위한 주일예배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며, 1981년부터 시작된 원주의과대학교회 역시 해외 의료선교 활동을 중심으로 그 특색을 살리고 있다. 또한 1984년부터 시작된 매지캠퍼스 교회는 지방에 위치하며 방대한 기숙사를 가진 대학의 특성을 목회와 프로그램에 잘 반영하고 있고, 2006년에 설립된 삼애교회 역시 기증자의 뜻 (三愛: 하나님 사랑, 노동사랑, 농촌 사랑)을 살려 특색 있게 운영되고 있다. 연세대학교의 대학교회들은 각각 그 시대적 요구와 그 공동체의 요구를 잘 연계하여 교회를 설립하였고 나름대로의 특색을 발전시키고 있음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Although many articles have been published on chapel programs and lectures for campus Christian ministry in Korea, research on university churches, an important part of campus ministry, is relatively rare. In this article, the founding and transition of Yonsei University Church, which has the longest history among university churches in Korea, will be examined. Christian missionary activity in Korea was prohibited in the early days of Chai Chung Won - the first modern medical college with a hospital, founded in 1885 and renamed Severance Medical College in 1904. The transfer of the ownership of the institution in 1894 from the King of Chosun (Korea) to the Presbyterian Church of the United States became the first step in missionary work; worship service was initiated for fellows, staff and patients. The congregation can be regarded as the origin of Yonsei University Church. The church was also used as the venue for the general assembl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Meanwhile, Yonhee College Church was founded in 1933. The church, located outside the walled city of Seoul, not only served the people dwelling in and near the college site but also fulfilled the need of an ecumenical church in the campus. This spirit of cooperation expanded to the setting up of a church managed by two colleges-Yonhee and Ewha- in 1935. Although this Hyop-seong Church, or the Union Church, was shut down by oppression of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it was reopened by the two colleges after independence. The consolidation of Severance Medical College and Yonhee College into Yonsei University in 1957 was followed by the establishment of Yonsei University Church in 1962. The construction of University Chapel, or Luce Chapel, in 1975 provided the momentum to develop a renovated mission policy of Yonsei University Church, such as ‘community church,’ ‘bridge church,’ and ‘open church’. Enculturation and globalization of church programs were added recently. In accordance with the opening of the new university sites of Yonsei, new university churches were built in new campuses. These churches, following the ‘main’ Yonsei University Church as a model, have been developing their own programs. For example, Wonju Medical College Church, opened in 1981, organized an overseas medical service team; since 1984 Maeji Campus Church has been focusing on students’ dormitory ministry; Samae Campus Church, founded in 2006, has been trying to develop their own church program following the donor’s ‘Samae (three loves)’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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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미국 남장로회 여성선교사 유화례(Florence E. Root)의 교육선교, 1927-1937

        최영근 한국대학선교학회 2022 대학과 선교 Vol.53 No.-

        이 연구는 유화례의 선교편지와 자서전, 그리고 남장로회 연례회의록 등의 일차자료에 기초하여 일제강점기 유화례의 교육선교를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미국 남장로회 한국선교의 맥락과 일제의 식민통치 아래 있었던 한국교회와 사회에서 그의 선교활동이 갖는 교회사적 의의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특별히 유화례의 일제의 한국통치에 대한 인식과 자세, 한국사회와 교회에서 교육선교의 목적과 의의, 여성교육의 필요성과 비전에 주목하면서, 그의 선교활동에서 이러한 인식들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조명하였다. 유화례의 교육선교의 비전은 식민지교육의 대안으로서 기독교학교에서 학생들을 기독교 신앙과 가치로 교육하여 가정과 사회는 물론 교회를 섬기는 책임적인 지도자가 되게 하고, 한국과 아시아의 모든 민족에게 축복을 끼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미션스쿨의 교육경쟁력을 위해 지정학교 인가를 추진하였고, 동시에 기독교적, 실용적 교육으로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이끌어 나갈 능력 있는 기독교 여성지도자를 기르는 미션스쿨 본연의 목적을 위해 교사들의 신앙훈련과 학생들의 신앙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타협하지 않고 학교폐쇄를 단행한 남장로회의 결정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교육선교의 목적과 원칙을 끝까지 지켰다. 이 과정에서 일제의 천황제 국가주의 우상성과 군국주의 야욕을 비판하였고, 권위자와 지배자의 모습이 아니라 친구와 어머니로서, 학생과 동역자와 한국교회와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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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스크랜튼과 클라라 하워드의 교육선교에 대한 연구

        안신 한국대학선교학회 2015 대학과 선교 Vol.28 No.-

        This article deals with the comparison between two women Methodist missionaries in Korea, Mary F. Scranton(1832-1909) and Clara Howard (1895-1995). The author finds good examples of glocalization in the history of Christianity and missionary movements. Scranton and Howard were educational missionaries, but their strategies were different from each other. Scranton founded Ewha College in 1886 and gave Korean women the chances to have modern education and to change their lives and communities. The Daejeon College of Early Education, which had been founded by Howard in 1955, was merged into Pai Chai University in 1978. Her students were sent to teach children and their parents in the most vulnerable and marginalized providences far from the main cities including Seoul. Scranton came with her son’s family to Korea in 1885 as a widow, but unmarried Howard came alone in 1923. They both came from the U.S., but their commitments to missionary works were initiated by their contacts with contemporary missionaries through their writings and speeches. Self-educated Scranton devoted herself to the development of woman education, but Howard paid more attention to the early childhood education. Though they were different in educational focus, previous experiences, and generational ethos, they satisfied what Korean women and children needed in the crisis of poverty and inequality. Recently, new insights challenge us to rethink the meaning of these Methodist women in Korea. It should be noted that women’s mission not only improved the human rights of the marginalized Koreans but also gave American women missionaries themselves the chances of leadership to educate others in need. 이 논문은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한국에서 활동했던 미국감리교의 여자선교사, 메리 스크랜튼(1832-1909)과 클라라 하워드(1895-1995)의 교육선교를 연구한 글이다. 그녀들은 모두 교육에 방점을 두고 선교를 진행했지만선교전략에는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먼저 미국 북부 출신 스크랜튼은 1886 년에 이화학당을 서울에 설립함으로써 소외받던 한국여성들에게 현대지식을 가르치며 그들의 삶과 공동체를 변혁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반면에 미국 남부 출신 하워드는 1955년에 대전에 여자초급대학을 설립하고 제자들을 배출하여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동떨어진 교육취약지역에교사를 파송함으로써 아동들과 학부모들을 교육하였다. 여자학교 대전여자보육대학은 헨리 게르하르트 아펜젤러(1858-1902)가 1885년에 설립한 남자학교 배재학당과 1978년에 통합하였다. 남편과 사별한 스크랜튼은 아들가족과 함께 1885년에 내한했지만 하워드는 결혼하지 않은 독신여성으로 1923년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에도착하였다. 그들은 모두 미국에서 파송된 여자선교사로서 동시대 선교사들의 글과 연설에 자극을 받았고 선교에 헌신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가정교육을 받은 스크랜튼은 여성교육에 혼신의 힘을 다 바쳤지만, 대학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하워드는 유아교육을 전문분야고 선택하여 관심을 기울였다. 이 처럼 두 여성은 선교대상, 가정환경, 미국경험, 세대 간 가치가 서로 달랐지만, 가난과 불평등의 위기에 처해 있던 한국의 여성과 아동의 필요를 알고충족시켜 주었다. 최근에 권력과 이념의 시각에서 한국에서 활동한 여자선교사의 선교활동이 지닌 함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한국에서 이루어진미국교회의 여성선교가 소외된 한국인들의 인권과 능력을 증진시켰을 뿐만아니라 한국 여성과 아동을 교육했던 미국여성 당사자들에게도 모국에서시도할 수 없었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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