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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로젠뢰혀의 "팔려간 포장석" : 독일 통일 6년만에 다시 읽어본 전환기의 일기 및 기록 문학의 한 예
Brasel, Sylvia,신혜양 淑明女子大學校 統一問題硏究所 1996 통일논총 Vol.13 No.-
신사숙녀 여러분, 이같이 뜻깊은 학술대회에 초대해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국제적으로 학제간의 협력을 위해 노력하시는 김종영 소장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특히 인문과학자로서 정치 및 경제와 관련된 이러한 학술대회에 참여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이 학술대회의 주제에 맞추어 경제와 문학을 연결지음으로써 이 관계를 생산적으로 고찰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저의 긴 강연제목에서 이미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오전의 강연들에서 이야기 되었던 바대로 통일 독일이나 통일 민족 등의 말은 수십년간 사라져버린 개념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주제는 이미 처리되어버렸고, 역사의 잊혀진 자리 정도로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향수 Das Parf?m』란 작품으로 한국에도 알려진 작가인 파트릭 쥐스킨트가 독일통일의 전환기에 쓴 한 글이 기억납니다. 그 글에서 그는, 서독인들에게는 이태리나 프랑스의 한 도시가 동독의 한 도시보다 더 친근한 상황에서 통일이란 미친 짓이라고 누구나 말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통일 문제를 주제로 연구하는 사람은 감탄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지만 또한 낯선 느낌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분단상황에서 입장정리를 해버린 것이었습니다. 서독에서는 동독을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의 증거로 보았고-특히 1968년의 서독 학생운동에서-, 동독에서는 서독을 소비지향적 자유가 투영되어 있는 나라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를들자면 서독의 텔레비젼과 동독의 텔레비젼이 비교되기도 하였습니다. 서독에서는 자의식이나 자기정체성을 민족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경제적 성공에 맞추어 형성하였습니다. 반면, 동독에서는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고, 욕망의 가능성들을 물리치게 하는 공동체 의식을 지향하는 창조적 유통피아가 중심점이 되었습니다. 동독에서 씌어진 문학 (저는 의식적으로 동독 문학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은 이러한 창조적 유토피아의 형상화에 기여하였습니다. 이점에서 특히 문학이 중요한 기능을 한 것입니다. 크리스타 볼프의 『카싼드라』의 경우가 그러했고, 또 하이너 뮐러가 "우리는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만들어내는 실험기사들이다"라고 말한 것도 문학의 이러한 기능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한 시대가 곧 그 시대정신과 동일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동독에서 씌어진 문학작품들은 독일이 재통일 된 지 6년이 된 지금, 그 문학적 다양성과 진언내용, 그리고 영향의 측면에 있어서 벌써 진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들에 나타난 많은 문제들은 동독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낯선 친구 Der fremde Freund』라는 작품으로 유럽 전역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킨 크리스토프 하인이나, 헬가 쾨니히스도르프, 크리스타볼프, 프란츠 퓌만, 그리고 지난해 한국을 방문하였던 두루스 그륀바인 등이 그 대표적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독에서 창작된 문학을 오로지 동독 체제의 내적 조건들로써만 설명하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의 이 짧은 강연을 위해 의식적으로 시대의 증언이 될 만한 작품을 택하였습니다. 그것은 독일 통일의 전환기에 씌어진 한 일기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체험한 변혁의 과정들에서 생겨난 주관적인 기록이며 이 기록에는 찬성과 반대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간략한 생각의 기록들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 이 일기기록들을 제가 선택한 이유는, 거의 6년 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읽어본 이 기록들에는 당시 동독에서나 서독에서의 시대체험의 직접성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독일통일의 문턱에 이른 시점에서 자연발생적 경험들이나 착각들, 꿈들과 두려움, 선입견과 희망들이 그대로 살아 있는데 저자가 일일이 해설을 부치지는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6년이 지난 오늘날 검증의 대상이 되며, 당시 동서독 양측에 존재했던 잠재력과 가능성들 중에서 어떤 것들이 어떻게 취해졌고 또 어떤 것들이 버려졌는지를 처음으로 분석해 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러한 고려에 의해서, 또 여러분들의 관심에 따라, 저는 전환기를 소설로 형상화하는 작품들(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델리우스의 "리벡의 배 Die Birnen von Ribbeck", 마르틴 발저의 "유년시절의 방어 Die Verteidigung der Kindheit"' 브리기테부어마이스터의 "노르마의 이름으로 Unter dem Namen Norma"등)을 택하지 않은 것입니다. 특히 이 소설들에는 종종 일기문학의 특징을 이루는 그러한 직접성이 결여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로 머리말을 마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