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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빈의 그리스도론에 관한 연구 : 『기독교강요(1559년)』 2권 12장 1절을 중심으로

        추용재 서울장신대학교 일반대학원 202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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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칼빈이 『기독교강요(1559)』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가 가져야 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중요성을 말함으로써 시작하였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자리를 지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게 한다. 이명웅 교수의 『하나님의 현존과 이치에 합함』의 “하나님 지식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와 “창조-지식-신학: 개혁교회 인식론”은 칼빈이 강조한 하나님 지식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 준다. 본 연구는 『기독교강요』 2권 12장 1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다룬 2권 12장 1절은 “참하나님이시며 참사람이신 분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깊고 먼 거리를 연결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2권 12장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한 위격 안에 두 본성을 가짐으로써 우리의 중보자가 되신다는 진리를 천명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신다. 인간에게 왜 중보자가 필요한지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기독교강요』 2권 1장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칼빈은 “인간의 원죄론”을 주장하는데,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영적으로 비참한 상태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그의 중보자 되심은 율법에 잘 나타나 있고 또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 바울 종말론의 초석으로서의 데살로니가전서 : 바울 종말론의 변화에 대한 연구

        길동호 서울장신대학교 일반대학원 201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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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말론이란 역사의 마지막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이론으로, 이것은 개인의 삶의 역사에 있어서 마지막에 일어날 일들, 곧 죽음의 문제, 심판의 문제, 영혼 불멸의 문제 등을 다루는 개인적인 종말론과 세계사의 마지막에 일어날 일들을 곧 죽은 자의 보편적 부활과 최후심판, 천년 왕국, 하나님의 나라 등을 다루는 세계사적 종말론으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종말 사상은 일반적으로 공통된 역사적, 사회적 배경 속에서 형성되었다. 즉, 변화와 개혁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사회 현실, 미래를 예견하기 어려운 역사와 격동기, 제도, 교회와 성직자 계급의 부패와 정신적 빈곤 등 소위 정신적 절망감 속에서 형성되었던 것이다. 기독교는 고대 유대교 안에서 하나의 묵시적 종파로 시작되었으며 묵시주의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 종교적 구조에서 소외감을 느낄 때, 특히 재난과 박해의 때에 일어난 것으로 대부분의 신약성서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요소였다. 그러므로 묵시적인 요소는 종말론 해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이다. 종말론은 19세기 말엽에 신학계의 주요 주제로 떠올랐고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바울의 사상 중 종말론보다 더 많은 관심을 끌었던 것은 없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의 입장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 종말론적 언어의 기능과 그 중요성을 살펴보고 자신의 사상을 표현할 때 크게 의존하고 있는 묵시 문학적 전통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 살펴보면 초기 교회의 종말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가 이 시대를 다른 것에 유혹되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 길을 갈 수 있는 혜안을 제시해 주지 않을까? 현대 교회의 물량주의, 성공적인 삶에 대한 강조보다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함에는 어떤 가르침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들여다보니 데살로니가 전서에서의 공동체의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고 바울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종말론적 질의에 대해서 우리의 삶이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를 따라가는 것이라면, 본문에 나타나있는 데살로니가 공동체의 삶을 들여다봐야 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바울이 그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으며 실제적으로 공동체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지 살펴봄으로써 오늘날의 교회가 잘못된 종말의식에서 벗어나 바른 신앙을 유지하는데 목적을 둔다.

      • 스웨덴 복지국가 형성 과정에 관한 연구 : 종교개혁 전, 후를 중심으로

        강성옥 서울장신대학교 일반대학원 2014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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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의 목적은 스웨덴이 현대 복지선진국으로 성장 할 수 있었던 원동력과 근거를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스웨덴이 오늘날 평등사상을 기반으로 한 보편적 복지국가로 성장할 수 있는 근저(根柢)사상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여러요인들 중 종교가 영향을 미쳤다면, 종교가 그 사회에서 어떠한 영향으로 스웨덴 복지국가를 형성하게 했는가? 스웨덴 복지국가 형성에 개신교 신앙을 기반으로 한(faith-based) 종교개혁 사건이 정치·종교·복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 먼저, 종교개혁과 기독교사회복지, 스웨덴 종교개혁과 빈민구제, 스웨덴 복지국가 형성 요인 그리고 1900년대 이전의 스웨덴 정치·종교·복지에 관한 문헌자료를 분석하였다. 특히, 종교개혁이전의 스웨덴 사회를 이해하고 종교개혁 당시 빈민구제를 위한 국가의 역할과 기능을 탐색하였다. 종교개혁이후 국가교회중심의 사회적 기능을 이해하였다. 스웨덴 복지는 1862년 지방정부개혁법이후 국가교회중심에서 국가중심의 복지로 전환되었다. 국가중심의 복지에서 국가가 접근하지 못하는 복지사각지대의 빈민을 위해 그리스도의 영성과 전문성을 갖춘 디아코니아 활동의 발전 과정을 검토하였다. 또한 스웨덴 기독교사회복지전문가와 면접조사를 실시하였고 스웨덴 기독교사회복지기관(디아코니아)과 사회복지기관을 방문조사 하였다. 주요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종교개혁 이전의 스웨덴 사회는 카톨릭 중심의 지배 사회로 9세기 중엽 카톨릭을 수용하고 로마 교황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카톨릭 교회는 미개했던 사회에 변혁을 일으켰고 수도원에서 난민을 돌보고 보호하는 자선기관의 역할을 수행했고 나병환자를 위한 시설을 설립, 운영하였다. 카톨릭의 권한이 강해지자, 교회재산은 증가되었고 주교들의 권한은 사회 지배계급으로 점점 더 확대되었다. 중세 빈민구제는 기부자의 영혼 구원을 위한 기부행위의 수단으로 간주되었고 교회는 자발적인 빈민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구치원(hospital)은 수도원의 지휘, 명령을 받았고 빈민과 병자들을 위한 원내구호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둘째, 종교개혁 당시 스웨덴은 루터교를 국가 종교로 입법화했고 종교개혁 사상과 교리를 바탕으로 빈민구제(자선)의 전환점이 된 중요한 시기이다. 덴마크로부터 독립한 스웨덴은 1523년 6월 6일 구스타프 바사 1세가 왕이 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1527년 베스테로스(Västerås)의회에서 종교개혁을 수용하고 루터교를 국가교회로 지정되었다. 국왕은 카톨릭 재산을 몰수할 수 있는 경제적 권한과 교회의 최고관리자로 주교 임명권과 교회 권리에 대한 결정권을 가졌고 국가는 사회 문제인 구걸을 통제하였다. 스웨덴은 종교개혁을 통해 왕권이 강화되고 행정체계를 위한 근대초기국가로 발전하였다. 또한 바사왕은 올라우스 페트리와 함께 루터교 복음주의적 교리와 믿음에 기초하여 사회개혁을 주도하였다. 스웨덴 교회는‘만인제사장주의’교리를 통해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없애고 평등한 기독교 공동체를 재정립하였고 평신도를 위한 활동에 주력 하였다. 빈민구제의 특징은 종교개혁 교리에 기초한 빈민구제법과 교회법에서 사회적 약자(빈자, 병자, 노인등)를 돌보고 구제를 실천한 시기로 선행에 대한 관점이 변화되었다. 카톨릭 교회의 선행(기부자들이 구원에 이르는 길을 용이하게 하는 수단)과 달리 개신교적 자선(복음주의적 선행)은 칭의(稱義)의 결과로써 선행을 실천하였다. 또한, 복음주의적 교리를 통해 노동의 중요성과 근로의무의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빈민의 근로능력 유, 무에 따라‘가치 있는 빈민(the deserving poor)’과 `가치 없는 빈민(the undeserving poor)'으로 구분하여 전자는 빈민구제 서비스 대상이었고 후자는 근절의 대상이며 엄격한 처벌규정이 적용되었다. 이러한 근로능력의 유, 무에 따른 처우와 근로의 강조와 필요성은 후대의 개신교 노동윤리의식에도 기여하였다. 교회는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교회 내에 공동모금함(common chest)을 설치하고 빈민을 위해 분배하고 빈민구제활동에 사용하였다. 셋째, 종교개혁 이후 스웨덴은 국가교회중심의 사회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1862년대 지방정부개혁법과 사회민주주의의 등장으로 모든 체제들이 국가중심으로 변화되었고 국가가 접근하지 못하는 복지사각지대에 제 3의 영역의 복지주체인 디아코니아 활동이 발달한 시기이다. 개신교 교리에 영향 받은 구스타프 아돌프는 정치를 안정시키고 사회행정시스템을 구축하였다. 교구자치제의 발달로 교구 목사주도하에 신앙교육을 실시하여 주민 계몽, 빈민구제와 자립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17세기 빈민수가 증가하자, 1624년 빈민구제법에서 구치원(hospital) 확대운영과 구걸금지를 시행하였다. 노동능력이 있는 빈민은 돌봄의 대상이 아닌 엄한 처벌의 대상으로 작업장에서 강제노동을 하였다. 1642년 빈민구제법에서 빈민처우에 대해 관대해져 구걸 허가증을 발급받은 빈민들에게는 구걸을 허용하였다. 1847년 빈민법에서 복지원조를 전국적으로 통일, 빈민구제의 의무화, 구걸 금지, 복지기금 마련을 위한 빈민세(poor rate)를 도입했다. 1871년 빈민법은 취약계층(15세미만의 미성년자, 노인, 병자)의 구제를 의무화시켰고 건강한 실직자에 대한 원외구제는 폐지하는 엄격한 규정이 적용되었다. 1880년대 독일의 영향을 받은 사회민주주의의 사상이 대두되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교회의 빈민구제 활동을 비판하였지만 국가가 못 미치는 복지활동 분야에 19세기 기독교 전문 활동인 여성집사(deaconess)제도는 복지활동의 주체로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국가복지와 민간복지가 혼합된 빈민구제의 특징이었다. 여성집사는 전문화된 가사 이데올로기의 활동영역을 넓혀 아동과 여성을 원조하고 종교적 양심과 교리를 가르치는 민간복지의 주체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1898년 스웨덴 집사 협회가 설립되었고 여성집사의 원내구제활동은 작업장, 빈민구제농장, 구빈원에서 빈민들에게 도덕적인, 종교적인 모델의 기능을 했다. 원외구제활동에서 여성집사는 초대교회 모델을 재창조한 활동형태로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하였다. 목사들의 조력자로 빈민가정을 방문하여 교육을 시켜 자립을 촉진하였고 기초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여 병자를 돌보고 방치된 아동에게 신앙교육을 실시하여 복음 전도와 기독교적 구원사역을 실시하는 서비스 제공자로서의 기능을 하였다. 역사적 관점에서 종교개혁은 스웨덴 복지모델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종교개혁사상의 만인제사장주의를 통해 누구나에게 평등하고 균등한 삶을 통해 복지를 구현해 냈고 근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회를 통해 완전고용이라는 경제적 목표를 달성했다. 이상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복지국가 스웨덴의 경험을 조명하여 복지국가 형성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은 첫째,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차별 없는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가치제공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둘째, 교회는 복지주체에 있어 제 3의 영역으로 국가복지와 더불어 거버넌스의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교회는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도덕적 해이 현상을 예방하고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정직한 사회 건설에 기여할 수 있게 국가복지활동의 모니터링 역할을 해야 한다. 넷째, 교회는 사회문제를 예방, 인식, 치료, 해결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 한국교회는 다른 복지주체와 달리 예수 그리스도가 행한 것처럼 신앙의 고백성(영성)을 지키고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 기독교가 올바른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교회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는 성서에 기반을 둔 교회 본질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구현해야 한다. 둘째, 한국교회는 봉사와 말씀 선포는 동일선상의 사역임을 직시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 크리스찬은 선한행위를 통해 알곡신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 교회는 사회구호(구제)적 봉사와 사회구조(정책)적 봉사에 앞장 서 평등한 복지를 구현해 낸다면 교회는 사회 순기능을 회복하게 되고 잃어버렸던 하나님 형상(Imago Dei)을 회복할 수 있다.

      • 다문화 사회 글로컬리즘(Glocalism)적 선교 모델에 관한 연구

        단안드레 서울장신대학교 일반대학원 201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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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중동지역으로 노동력을 수출하여 외화벌이를 하던 우리나라의 모습 은 성공적인 근대화와 세계화를 통하여 이제는 노동력 수입국으로 변모하였다. 또한 외국인 근로자들 외에도 결혼 이주여성, 새터민, 영주권자, 난민 등 일자리 와 삶의 터전을 찾아 한국 사회로 진출한 이들이 한국 사회에 편승하여 다문화 사회를 형성해 가고 있다. 근대화와 세계화는 자유주의 경제의 시장논리로 가치판단의 기준을 세워 나갔고 이러한 흐름은 한국 사회에 영향을 주어 발빠른 근대화를 이룩한 서구사 회를 동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동경은 서구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로까지 이어져 한국 사회는 이주민들의 문화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선입관과 편견으로 일관한 배타적 자세를 취하게 만들었다. 이주자들에 대한 배타적 자세는 우리나라의 다문화 정책을 차별⋅배제 모형으로 인도하였으며 이주민들 스스로는 다문화 한국 사회에서 타자화되고 주 변화되는 경험들을 하였다. 문화 상대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폐혜 속에 철저히 소 외당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한국 다문화 사회에서 이주민들은 출신국가별 모임들을 만들어 자조적인 모임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키워나갔다. 그리고 이주민들과 한국 사람들과의 연대 는 먼저 민간단체들에 의해서였다. 민간단체들은 이주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들의 인권과 사회적응을 위해 협력했다. 국가 기관들도 이제는 급격히 증가되 는 이주민들을 방관할 수 없다는 듯 다문화의 사회 통합을 외치며 다양한 이주 민 정책들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이주민지원 정책이나 활동들은 지원을 돕는 주체들이 뚜렷이 구분되고 아직 많은 부분에서 협력되지 못한 모습들을 보인다. 다문화 축제의 경우 도 민(民) 주도와 관(官) 주도의 경우 특성에 있어 대조적으로 확연한 구분을 보 이고 있다. 글로벌 추구와 로컬의 추구 이 둘의 쌍방향적 추구를 글로컬리즘적 조화 라 할 때, 이 글로컬리즘의 특성들은 문화들 간의 차별성(differentiation)과 특수 성(particularity)의 상관 관계로 소급됨을 알 수 있다. 차별성이 특수성에 비해 크다고 한다면 제국주의 성향이 짙어지고 반면에 특수성이 차별성보다 큰 경우 는 많은 사회적 혼란이 우려될 것이다. 그러므로 차별성과 특수성이 대등한 위치에 있을 때가 다문화 사회의 통 합을 위한 조화모델의 주소이다. 차별성과 특수성의 조화 아래 참된 통합이 가능 케 되는 것이고 피지배문화와 지배문화가 대등하게 존중됨이 다문화사회에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다. 이러한 다문화 사회 속 글로컬리즘의 조화를 위해 선교로 부름심을 받은 크리스쳔들과 교회들이 선지자적 리더십을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한국의 다문화 상황은 민감하게 변화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차별⋅배제 모형으로 그려지던 한 국의 다문화 정책들도 분명히 변화할 것이다. 한국의 다문화 정책들은 고정되지 않고 진화한다. 변화하는 다문화 상황 에서 한국의 다문화 정책들도 오랜 전통과 과정들을 겪어온 서구세계의 다문화 정책이 걸어갔던 길을 되짚어가며 발전할 것이다. 선지자적 리더들은 한국의 차별⋅배제 모형 다문화 정책이 동화주의로 흐름을 인식한다. 또한 이 동화주의 정책의 한계로 말미암아 서구 세계가 다문화 주의 모델에 편승함도 인식한다. 그리고 동화주의 정책 그 다음, 한국 사회가 추 구할 동화주의의 걸어갈 바람직한 모습을 그려주고 올바른 다문화주의로 이끌어 주어야 할 것이다. 미래를 예측한 인도자로서 선지자적 리더십을 말한다. 글로컬리즘적 조화를 위한 다문화 선교의 모습은 이주민들의 주체성을 길러 주며, 이주민들을 바라 보는 근본적인 시각이 변화되도록 유도하고, 기존 교회와 다문화 선교단체들과의 연합을 유도하는 것이다. 한국에 다문화 상황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 불완전하겠으나 이주 민 선교를 통하여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예표를 이루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다문화 사회 글로컬리즘적 조화와 협력, 공존을 위하여 크리스쳔 개개인들과 교회들을 부르신다. 약함 가운데 온전해지는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뜻 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 복음의 상황화를 통한 청소년 선교 연구

        류효묵 서울장신대학교 일반대학원 202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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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청소년의 복음화율은 계속해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제 안타깝게도 미전도 종족이라고 불릴 위기에 처했다. 필자는 다른 영역의 선교도 중요하지만 한국교회가 청소년 선교에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보았다. 첫째로, 청소년들은 짧게는 5~6년 이내의 한국 교회의 미래이며 길게는 10년 전후로 한국 교회의 미래가 될 세대들이다. 청소년들을 복음화 한다는 것은 점점 약해져가는 한국 교회 가운데 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부흥의 불씨를 일으키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청소년들을 가르켜 사춘기 시기라고 말하는데 사춘기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인이되며 심리적 신체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이다.” 육체뿐만이 아닌 정신적, 심리적으로 성인이 되는 시기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치관에 대한 적립이 청소년 시기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청소년 시기가 복음적 세계관을 적립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 생각한다.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복음 안에서 제자로 거듭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청소년의 시기 때 보다 더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사춘기의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들 만큼 그들에게 복음적 세계관을 적립하기 좋은 시기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교회는 청소년 복음화을 위하여 애써야 한다.

      • 부의 양극화 현상에서 본 주의 만찬 연구 : 고린도교회를 중심으로

        양승아 서울장신대학교 일반대학원 201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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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는 지정학적 특징으로 인해 그리스-로마 세계의 신흥 무역도시로 발전한다. 거대한 경제도시로 발전한 고린도에는 경제적 혹은 정책적 이유로 다 양한 종족과 종교, 문화가 유입되고, 빈부격차도 심하다. 후원자 제도는 그리스- 로마 세계의 사회적 기반이다. 후원자-피후원자는 후원자가 피후원자의 생활을 책임져주고, 피후원자는 후원자에게 충성을 바치는 호혜적 관계다. 후원자 제도 는 고린도 사회의 전 영역에 깊숙이 침투하여 수직적 사회구조질서를 공고히 한 다. 그리스-로마 세계의 관행으로 자리한 식탁교제는 두 번의 식사, 즉 애찬에 이은 주 만찬으로 이루어진다. 고린도에서 식탁교제는 식탁 공동체의 결속력과 함께 사회구조질서를 강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고린도의 사회적 특징은 고린도교회에 반영된다. 고린도교회는 정치·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상류층에 속하는 소수의 교인과 하류층에 속하는 다수의 교인 으로 구성된다. 상류층 교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 해 이방 문화와 그 영향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를 교회 내에서도 적용시키고자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후원자 제도다. 당시 상류 층은 철학자나 종교지도자는 자신들로부터 후원을 받아 활동하는 것이 당연하다 고 여긴다. 고린도교회의 상류층 교인들은 후원자 제도를 교회 내에서도 통용시 키고자 한다. 이는 고린도교회의 갈등 요인으로 내재되어 있다. 고린도교회에 내재된 갈등 요인은 주의 만찬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불 열을 촉발한다. 고린도교회의 만찬은 두 번의 식탁으로 이루어진다. 경제적 여유 가 있는 상류층 교인들은 첫 번째 식탁인 애찬에서, 가지고 온 음식으로 교제를 나눈다. 하지만 시간적·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하류층 교인들은 두 번째 식탁 인 주 만찬에 맞춰 도착한다. 하류층 교인들은 주 만찬에 올 때 음식을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상류층 교인들은 하류층 교인들을 배려하지 않고, 애찬에서 음식을 마음껏 먹고 마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음식의 소유권이 자신들 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먹는 것보다 질이 낮고적은 양의 음식을 하류층 교인들에게 남겨주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들 은 하류층 교인들에게 충분히 선의를 베풀고 있다고 여기며 스스로를 명예롭게 생각한다. 이렇게 상류층 교인들은 자신들을 하류층 교인들의 후원자로 자처하 며, 교회에 사회의 수직적 구조질서를 적용시키고자 한다. 이런 상류층 교인들의 태도는 하류층 교인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하류층 교인들은 남겨진 식 탁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체감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고린도교회의 주의 만 찬에서 상류층 교인들과 하류층 교인들은 분열하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은 주의 만찬의 의미를 가르친다. 첫째, 바울은 주의 만찬을 통해 새 언약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일깨운다. 이를 위해 바울은 주의 만찬에 참여함으로써 경험되는 하나님과의 수직적 코이노니아는 교회 공동 체와의 수평적 코이노니아로 연결됨을 깨우친다. 둘째, 바울은 주의 만찬에서 그 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하나의 떡과 잔을 나누는 행위를 강조한다. 이를 통해 바울은 새 언약 공동체로서의 연대의식을 고취시킨다. 셋째, 바울은 새 언 약 공동체로써 세상 질서와 분리된 새로운 질서와 가치관 속에서 살아야 함을 일깨운다. 주의 만찬을 통한 내적 연합과 외적 경계는 그에 적합한 실행을 통해 강화된다. 먼저 바울은 교회를 종말론적 공동체로 암시하며, 주의 만찬을 적합한 방법으로 반복하여 실행할 것을 강조한다. 다음으로 바울은 상류층 교인들의 현 실을 고려해서 주의 만찬을 애찬과 분리시키는 형식 변경을 단행한다. 바울의 주의 만찬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공 동체로서의 연대의식을 강화 및 유지시킨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팽배한 개인주 의적 자유주의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주의 만찬을 통해 새 언약 공동체 로서의 정체성을 일깨움으로써 연대의식을 강화 및 유지시킨다. 둘째, 사회구조 질서를 전환한다. 바울은 주의 만찬을 통해 새 언약 공동체가 지향하는 삶의 가 치와 질서를 상기시킨다. 이를 통해 사회의 구조질서인 수직적 구조질서에서 벗 어나 초기 기독교의 지배적 질서인 수평적 구조질서로 전환하고자 한다. 셋째, 나눔을 실천한다.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식탁 봉사라는 의미의 디아코니아는 사 회적 차별이 내재되어 있다. 그런데 바울은 주의 몸이라는 신학을 통해 식탁 봉 사의 의미를 전환함으로써 나눔의 실천을 격려한다. 바울의 주의 만찬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성찬 예전은 명확한 상징성과 예배 공동체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이를 성찬의 ‘사중 행위’ 에 따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봉헌 예식이다. 봉헌위원이 성찬에 사용할 빵과 포도주와 함께 예물을 들고 성찬 식탁으로 행진한다. 예배 공동체는 자신들 의 수고와 땀이 담긴 예물이 바쳐지는 상

      • 누가-행전에 나타난 경제윤리에 대한 연구

        김재숙 서울장신대학교 일반대학원 201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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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누가는 재물 문제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예를 들면 마리아 찬가에 나오는 빈자와 부자의 극적인 역전 기사(눅1:52f), 세례 요한의 선포에서 나눔에 대한 강조 (눅3:13f), 예수의 첫 공생애 설교에서 가난한 자를 높이는 내용 등(눅4:18f) 셀 수 없이 많다. 마태나 마가복음에는 물질을 강조하는 본문이 상대적으로 적다. 두 복음서의 저자는 탐욕에 대한 경계, 무엇을 먹고 입을지 염려하지 말라는 수준에서 논의했다면 누가는 나눔의 구체적인 예까지 제시한다. 때로 누가는 모든 소유의 포기라는 과격한 물질관을 피력하기도 한다. 누가에서 구재와 나눔은 구원의 차원까지도 연결된다. 나사로와 부자 비유, 삭개오 이야기, 다비다 이야기, 고넬료 이야기 등에서 구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의 일환으로 하나님 나라와 연관성 있는(구원과 연결되는) 행동으로 묘사된다. 누가는 신명기의 "너희 중에 가난한자가 없으리라(신 15:4)"는 말씀이 초대 공동체에서 구현 된 것으로 보았다(행 4: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런 맥락에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유무상통(행 2:44-45; 4:34; 6:1-7; 9:36; 10:2; 11:29; 24:17, 또는 구제나 나눔)은 율법의 핵심인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 19:18; 눅10:27)"의 구체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누가는 10번재 계명을 "네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라(눅 18:22)로 대신 할 만큼 강조한 이웃사랑의 실천이 예수의 복음을 받은 초대교회에서 성취된 것으로 본 것이다,

      • 울산 학원선교의 역사에 대한 연구 : 홍성범과 한국교육자선교회를 중심으로

        홍정기 서울장신대학교 일반대학원 202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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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에서는 홍성범과 한국교역자선교회 울산지방회의 선교 사역을 중심으로 울산지역 학원선교의 역사를 살펴보고 울산지역 학원선교에 대하여 선교학적 평가를 시도해 보았다. 홍성범의 학원선교는 한국교육자선교회 울산  울주지역회 설립 이전부터 실행되고 있었는데, 그는 1930년 8월 1일에 경기도 양주군(현재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서 모태신앙인으로 출생하여 용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6.25 전쟁과 군생활 중에 여러 번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통해 위급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과 죽음의 위험 속에서 생명을 온전하게 구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홍성범은 이런 시련과 역경에 대하여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평생의 사명인 학원선교를 위한 준비의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홍성범은 1968년 3월에 울산 염포초등학교에 처음으로 부임하여 교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학원선교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염포초등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가정 형편 때문에 진학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동광재건학교를 설립하고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을 위해서 유치원을 설립했는데, 이 일은 당시 염포지역의 교육과 선교, 양 측면에 있어서 획기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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