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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國에 있어서의 루터 硏究

        Ji, Won Yong 루터신학대학교 루터연구소 1966 루터 硏究 Vol.4 No.-

        영국에 있어서의 루터 연구는 독일이나 미국처럼 활발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세계 제2차 대전 이후에 나온 루터에 관한 출판물들은 그 이전에 출간된 모든 것들보다 양이 더 많다. 유럽 대륙에서 처럼 "루터 르네상스"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나 루터에 대한 관심의 도는 점점 더해가고 있는 중이다. 대전말기 유대인계 독일 피난민 중 Peter F.Wiener라는 사람에 의하여 루터를 그릇 소개하는 "Martin Luther : Hitler's Spiritual Ancestor"라는 작은 출판물이 발간되어 그 당시 적지 않은 물의와 오해를 일으켰다. 전쟁 당시 독일인에 의하여 받은 쓰라린 국민 감정이 남아 있던 때인지라 루터가 결코 좋게 해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독일 민족에 대한 루터의 영향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여기에 대하여 영국의 루터 학자Gordon Rupp교수는 "Martin Luther : Hitler's Cause or Cure"라는 반대의 글을 발표하였다. 그 후 계속 출판되는 루터에 관한 긍정적인 논문들에 의하여 Wiener의 주장 같은 것에는 점차적으로 무관심하기에 이르렀다. 감리교 계통의 조직 신학 교수인 Philip Watson씨가 그의 저서 "Let God Be God"(한글 역 :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원리")를 출판했는데 거기에는 루터에 관한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계통의 문헌들이 잘 이용되어 있다. 본래 1946년에 행한 특별 강의문인데 책으로 출판된 이후 독일 과 미국 내에서도 호평을 받아왔다. 그 밖에 여러 종류의 글을 발표한 바 있다.

      • 루터가 불사른 敎皇 레오 16世의 敎書 : Exsurge, Domine

        韓國루터교宣敎部 루터신학대학교 루터연구소 1965 루터 硏究 Vol.2 No.-

        1955년 종교개혁 주일에 Albert L.Neibacher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뉴욕시의 성누가 루터교회는 교황 레오 10세가 선포한 교서 "Exsurge, Domine"로 알려진 교황의 편지 원본을 전시하였다. 이 교서가 정식으로 공포된 지 60일 이내에 루터가 그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그를 파문하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교서 Exsurge, Domine라는 명칭은 "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시편 74:22)의 처음 말에서 따온 것이다. 교황은 그 편지의 일부를 "1520년 7월 1일 전 제17일"로 하였다. 이 교서는 본래 나테란 궁전 문과 교황의 특별집무청 문과 Brandenburg, Meissen. alc Merse`burg 대성당 문위에 붙여졌던 것이다. 루터의 제일가는 적수인 Johann Eck은 그 교황 문서를 가지고 독일로 왔다. 그 편지 일부가 1520년 6월 15일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루터에게 도착한 날은 1520년 10월10일이었다. 이 교서는 루터의 저서 가운데서 41가지의 "과오"가 지적되어 있다. 루터는 원죄, 참회, 면죄증, 성만찬, 교황권, 교회의회, 선행, 자유의지, 신앙의인, 연옥 및 다른 교리들에 대하여 "과오"가 있는 것으로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이 교서는 "이단적인" 글들을 유발케 한 루터의 모든 저서들을 공개적으로 소거해 버릴 것도 역시 포고하였다.

      • 美國에 있어서의 루터 硏究

        韓國루터교宣敎部 루터신학대학교 루터연구소 1965 루터 硏究 Vol.2 No.-

        루터와 그의 사상에 관한 주제들이 미국내의 학자층에서 과학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루터교 신학교들 사이에서 오히려 루터 연구가 널리 행해지지 못하였다. 초기에 있어서 (수십년전) Michael Reu 교수같은 사람의 공헌을 들 수 있을 정도이다. 루터 학자 George Forell에 의하면 미국내 루터교 계통 사람들은 “루터를 숭배는 하였으나 연구는 하지 않았다.” 루터에 대한 교조의식(Kirchenvaterkomplex)이나 또는 루터 무오설 같은 관념은 적지 않았으나 그에 관한 깊은 지식은 비교적 불충분하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 2,30년 동안에 다시 루터 연구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미국내의 루터 르네상스를 이룩하게 되었다. 구라파 여러 나라와 그 계통의 학자들의 영향이 적지 않으며, 그들의 연구 논문들이 미국어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W. Elert, Raul Althaus, H. Boehmer, Gustaf Aulen, Anders Nygren, Regin Prenter, Gustaf Wingren, Taito Kantonen, Edgar M. Carlson, Gordon Rupp, Philip Watson 등의 업적을 들 수 있다. 특히 예일 대학의 Roland H. Bainton 교수와 유니온 신학교의 W. Pauck 교수 그리고 프린스톤 신학교의 신약학 교수 Otto Piper의 루터 연구 및 그들이 학도들간에 일으킨 루터 연구열은 사계에 큰 공헌이었다고 볼 수 있다.

      • 스칸디나비아 諸國에 있어서의 루터 硏究

        루터신학대학교 루터연구소 루터신학대학교 루터연구소 1966 루터 硏究 Vol.6 No.-

        스칸다나비아 제국에 있어서의 루터연구는 특히 스웨덴을 중심으로 하여 행해져 왔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룬드 학파(Lund대학 학자들을 중심한) 계통의 루터연구는 양적으로나 질적인 면으로 보아 매우 주목할만하다. 다음의 세 가지 분야를 들어서 말할 수 있다. 첫째는 루터의 속죄론(Versoehnungslehre)을 중심하여 행해진 연구들이 있다. 초대 교회로부터 16세기 종교개혁에 걸쳐 "사랑"의 역사적이며 사상적인 탐구를 한 Anders Nygren의 저서 "Agape and Eros"를 들 수 있다. 기독교사상사에 있어서의 종교개혁의 위치와 의의를 잘 취급한 연구라고 볼수 있다. 그리고 Gustaf Aulen과 Ragnar Bring의 연구를 비롯하여, 니그렌의 제자인 Rudolf Johannesson의 로마카톨리과 루터교의 비교연구 같은 것은 퍽 의의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 "믿음의 타락자에서 믿음의 아버지로:가톨릭의 루터 연구 100년사"

        프란쯔 포셋 루터신학대학교 루터연구소 2000 루터 硏究 Vol.14 No.1

        본 논문은 가톨릭 신학자인 저자가 미국의 Mini Luther Congress라 할 수 있는 North American Forum for Luther Research 정례 모임에서(1999.8-5, 세인트 폴) 발표한 것을 수정하고 증보한 것이다. 본 논문에서 포셋은 지난 100년 동안의 로마 가톨릭 학자들의 루터 연구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1900년대 초부터 말까지의 루터에 대한 상(象)이 다섯 단계로 바뀌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믿음의 타락자로서의 초기의 루터 상(象)이(1900-15) 종교심이 강한 상(象)으로 바뀌고(1915-30), 후에는 에큐메니칼적인 상(象)으로 진전되다가(1930-60), 황금기(1960-80)에는 신앙의 아버지와 신학의 아버지로서의 상(象)으로 나타난 후, 1980년 이후 지금까지 루터를 클레르보의 버나드의 부활로 보는 새로운 파라다임의 출현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가톨릭적인 모습의 루터 상(象)을 통해 저자는 루터의 신학과 그의 이전의 가톨릭 신학간에 일치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를 원하면서, Cochlaus의 영향아래 있는 로마 가톨릭의 왜곡된 상(象)으로부터 루터를 자유롭게 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를 가톨릭 전통과의 전무후무한 절교자로, 탁월한 "대 개혁자"로 여기는 개신교 상(象)으로부터도 자유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비(非)가톨릭계, 특히 루터교 역사가들이나 신학자들이, 모든 가톨릭 교도들이 Cochalus의 "어두운" 루터 이미지를 여전히 신봉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20세기의 가톨릭 루터 연구의 공헌 덕분에 루터와 그의 주요 관심사에 대한 더 나은 이해가 생기게 됐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미래의 루터 연구에서 있어야 할 과제들을 제안하고 있다. (편집자)

      • 宗敎改革의 現代的意義

        Coates, Thomas 루터신학대학교 루터연구소 1967 루터 硏究 Vol.10 No.-

        우리는 루터神學에 대한 知識과 評價를 새롭게 하고 증가시킴으로 宗敎改革 450 주년을 기념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우리는 루터의 神學을 역사적으로 고찰함으로만이 아니고 이것을 우리의 생활과 오늘의 敎會生活에 적용시킴으로 올바로 높이게 된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의 現代的 意義를 말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물론 실제로 全體의 宗敎改革은 언제나 현대적이다. 宗敎改革 당시에 된 敎理問題는 오늘날 시대에 뒤지거나 중요성을 상실한 것이 아니다. 루터와 改革者들에게 부닥친 모든 神學的 關心事는 여전히 우리와 現代 敎會에도 적용된다. 現代人의 문제와 요구에 그것을 적용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우리는 루터와 宗敎改革의 洞察力이 現代人의 思考를 정화하고 敎會의 方向을 지시하도록 하여야 한다. 물론 여기서는 지면 관계로 宗敎改革의 神學 問題를 전부 취급하거나 우리의 정황에 적용시킬 수 없다. 現代의 神學的 情況에 관련시켜 특별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몇몇 문제만을 다루려고 한다. 그러므로 宗敎改革의 現代的인 意義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오늘의 敎會 특히 한국의 敎會에 관계가 있는 세 가지 문제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그것은 첫째 敎會의 敎理, 둘째 말씀의 敎理, 세째 소명의 敎理에 관한 것이다.

      •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해

        지원용 루터신학대학교 루터연구소 2001 루터 硏究 Vol.15 No.-

        말틴 루터 박사는 한 탁상 대화 시간에 사도 바울의 "갈라디아서"를 논하는 가운데서, 이것은 "나와 약혼 관계에 있는 나의 서간이요, 나의 캐티폰 보라"라고 증거한 바 있다(Katie von Bora는 루더의 아내). 널리 알려진 대로 "갈라이다서"는 크리스챤의 자유의 대헌장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해"(1531, 1535)는 크리스챤의 독립선언문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뜻깊은 글이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죄로부터의 자유. 하나님 이외의 누구에게도 구속됨이 없는 완전한 자유이다. 율법과 복음에 관한 힘있는 해설문인 "갈라이사어 강해" 가운데서 루터는 그 자신의 신앙과 생활을 위한 힘의 근원을 발견하였고 그의 개혁에 필요한 무기를 얻게 되었다. 루터는 바울의 이 서한문을 과거 두 차례에 걸쳐서 이미 강의한 바 있었다. 1516-1517년에는 성 ㅈ롬과 에라스무스에 많이 의존하면서 행했고, 1523년에는 그들의 사상으로부터 떠난 입장에서 설명한 바 있다. (루터의 초기 갈라디아서 강해문들은 WA 2:436 이하와 SL 8:1352-1661)에 포함되어 있다.). 현재 널리 보급된 그의 후기 강해문(1535)에 근거하여 본다면 그는 그의 초기 주석들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 시대를 위하여"서는 (10여년 후인 루터의 후기 시대) 할 말이 적다고 보았다. 그 전기 작품들은 "인간 공적에 반대하여 행한 나의 초기 고민과 영적 투쟁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후기(1535)에 나온 그의 강해문을 더욱 크게 생각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저들(편집인들)이 내 충고를 들었다면, 저들은 갈라디아서와 같은 내용을 담은 책들만을 인쇄하려 했을 것이다."

      • 루터와 하나님의 임재(臨在)

        엄현섭 루터신학대학교 루터연구소 1991 루터 硏究 Vol.13 No.-

        루터는 초기에 신비주의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임재에 관해서는 매우 객관적인 견지를 고수하여서 은혜의 방편을 강조하였고 루터는 열광주의자들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였으며 그의 글 여러곳에서 직접 반대하는 내용을 찾을 수가 있다. 열광주의자들은 신비주의자들처럼 역시 객관적인 하나님의 임재보다는 주관주의적이고 감정적인 경향을 띠고 있어서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 성례전을 그들은 배격함으로서 루터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은 객관적인 물질을 동반하여 임재하심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영이시지만 유한한 인간이 쉽게 깨닫도록 그리고 올바르게 알도록 물질과 동반하여 임재하신다. 종교개혁 때도 그러했고 지금도 신비주의적이며 열광주의적인 신앙 행태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때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객관적인 하나님의 임재 개념이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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