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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주지역의 역사문화자료 현황과 전망

        길경택 ( Gil Kyung-taek ) 동아시아비교문화연구회 2017 東硏(동연) Vol.2 No.-

        본고에서는 우선적으로 충주를 중심으로 한 역사문화자료를 고려시대 건국을 기준으로 그 이후 것들을 주로 언급하여 살펴보았다. 그 방대한 역사문화자료 가운데 충주지역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건을 특별히 발췌하여 그림으로 형상화한 기록화의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였다. 이를 통해 충주지역이 우리 역사의 변곡점에 항상 등장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충주의 역사문화자료를 분야별로 분류하여 고찰해보았으며, 그동안 관련 기관에서 진행된 학술적 활용에 대한 자료도 소개하였다. 특히 예성문화연구회의 중원문화학술대회가 비록 민간단체라고 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학술적 활용의 가장 오랜 예로서 이제까지 충주지역의 역사를 지켜온 문화의 산증인이었음에 주목하였다. The objective of this article is to analyze current and future of history and culture data in Chungju. First of all, this introduced to history and culture data since the Goryeo Dynasty by each time period. Through these analyses, we could understand that the Chungju area is always at an inflection point in our history and played an important role. This also considered history and culture data by classifying the field and introduced academic application data conducted in relevant institutions all the while. Especially, Jungwon Cultre symposium of Yesung Culture Research was important example of academic application and was a living witness for the history of the Chungju area.

      • 하토야마 민주당정권 붕괴와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새로운 아시아외교와 안보·기지정책을 중심으로-

        키무라아키라 동아시아비교문화연구회 2019 東硏(동연) Vol.6 No.-

        2009년 여름 정권교체로 등장한 하토야마 정권은 대미자립과 탈 관료정치를 주요한 양대 정책으로 삼았으며, 후텐마기지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의 헤노코V자형 방안을 백지화 시키고 ‘국외이전, 최소한 오키나와현 밖으로의 이전’을 내세우며 오키나와의 민의에 따른 해결을 모색했다. 그런데 미국의 강한 반발과 국내 반대세력의 저항으로 그러한 주장과 정책은 점점 후퇴하여 결국은 ‘국내이전 최소한 현외이전’이 실현되지 못하고 헤노코 V자형 방안으로 회귀하였으며 하토야마 정권이 붕괴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하토야마 정권 붕괴의 배후에는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 이상으로 중대한 문제가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하토야마 정권이 출범 초부터 중요한 외교 과제의 하나로 내세웠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다. 이러한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의 기원은 1990년에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수상이 제창한 ‘동 아시아 경제 협의체(EAEC)’,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시 일본의 하시모토 수상이 제창한 ‘아시아통화기금(AMF)구상’이다. 그러나 기존의 동아시아 경제 협의체(EAEC)나 아시아통화기금(AMF) 구상은 미국의 강한 반대와 중국의 소극적인 자세 등으로 구체적인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흐름이 바뀌게 된 계기가 2009년 여름 총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룬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하토야마 정권의 등장과 하토야마 총리의 동아시아공동체구상이었다. 하토야마 총리는 정권 교체 후의 기고문에서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통화 통합과 항구적 안전보장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구체적인 동아시아공동체구상을 제기하였다. 특히 오키나와를 현재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군사 요충지에서 평화지대로 전환시키고 미래의 동아시아 공동체의회 설치를 포함한 거점으로 만들 구상도 내놓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은 이상적 구상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가능성을 내포한 일본과 동아시아의 미래의 책임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이를 두려워 하는 미국과 일본내의 기득 권익층에 의한 저항과 공격을 받아 결국 좌절되고 말았던 것이다. 하토야마 정권 당시 일본 국내에서는 미국이 후텐마 문제를 놓고 일본 정부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는 보도가 주로 나왔는데 미국이 정말로 두려워한 것은 한중일 3국이 제휴·협력하는 동 아시아 공동체 구상이었다. 하토야마 총리가 미국과 사전 상의·보고도 없이 유엔 총회에서 이를 제기한 것을 미국 스스로는 ‘미국 배제(미국에 대한 배신)’로 받아들였다는 감추어진 정치적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 중국 단오문화 전승에 한국 강릉단오제가 주는 시사점

        강소천 동아시아비교문화연구회 2018 東硏(동연) Vol.4 No.-

        단오는 한국과 중국에 모두 전승되고 있는 전통명절이다. 한국의 경우, 단오는 고려시대 9대 명절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설날, 한식, 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여겨져 한국의 대표적인 여름철 명절로 손꼽힌다. 중국의 단오절은 선진(先秦) 시대에 기원하여 진한(秦漢) 시대 초보적으로 형성되었다. 정확하게 언제 한국으로 전해 들어왔는지를 알 수 없으나 현존 자료를 살펴보면 삼국시대까지 기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한국의 단오문화는 중국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단오(端午)”라는 명칭과 명절의 날짜가 중국과 같을 뿐만 아니라 많은 풍속들도 유사하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한국의 단오문화는 이미 현지화, 자국화되어 처음 중국부터 유래했을 때의 형태와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한국 단오제와 중국 단오절을 같은 것으로 보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 무형 유산으로 등록된 한국 강릉단오제의 경우, 중국의 단오절을 모태로 삼고는 있지만 강릉의 민간신앙 등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현지화되면서 완전히 다른 명절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단오절은 전국시대(戰國時代)에 기원하여 한나라(漢) 때 “악월악일(惡月惡日)” 설의 영향을 받아 악한 기운을 막고 건강을 기원하는 의례로 진행되었다. 후대에 영웅인물들의 전설과 결합하면서 단오절은 점점 영웅을 기념하고 그에게 제사지내는 날이 되었다. 각 지역에 전승되는 전설은 조금씩 다르지만 “굴원(屈原)”을 기념하는 설이 가장 보편적이다. 단오 때 종자(粽子)를 먹는 풍속, 용선경도(龍船競渡) 풍속 등이 원래부터 있었는데, “굴원” 전설이 생기고 나서 이 두 가지 풍속도 굴원과 연결되었다. 현재 중국에는 지역별, 민족별로 단오절을 지내는 풍속이 조금씩 다르다. 또한 한국에 비해 중국에서는 전통문화 복원의 중요성을 늦게 인식하였기 때문에 일부 풍속은 이미 실전(失傳)되기도 했다. 한국의 강릉단오제가 한국식 단오의 풍습을 잘 보존해 오는 경험을 참고하여 이를 거울로 삼아 중국도 자신의 전통문화를 잘 보호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강릉단오제가 2005년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단오의 소유문제가 한중 양국에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중국에서는 단오를 중국의 고유 전통명절로 주장하여 학계에 논란이 일어났고 그때부터 자극받아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전통문화의 전승 등의 문제에 대해서 반성하고 예전에 비해 전통문화의 보호 및 발전에 힘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및 인접 국가의 각종 전통문화에 대한 연구도 활성화되었다. 한국 강릉단오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조선시대의 것이다. 조선의 문신(文臣) 허균(許筠)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중기까지 강릉단오제는 신라의 대장군 김유신(金庾信)을 주신(主神)으로 모시는 제사의식이었다. 중국 성황제(城隍祭)의 영향을 받아 강릉단오제는 점점 읍치 성황제의 모습을 보이게 되었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 강릉의 승려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성황신으로 모셔지고 강릉단오제의 주신이 되었다. 이때부터 대장군 김유신은 강릉의 산신(山神)이 되었다. 강릉단오제는 현재까지 전승하는 과정에 여러가지 변화를 겪었으나 기본적인 제의를 통해 복을 기원하고 나쁜 기운을 쫓아내는 벽사진경(僻邪進慶)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현재까지 강릉단오제에서는 유교식 제의와 무속식 제의가 모두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강릉단오제는 전통축제이면서 전형적인 지역축제이다. 공동체의 문화유산이라서 지역사람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강릉단오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지역의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표하는 축제로서 알려져,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참여도 늘어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적극적인 참여가 있기 때문에 강릉단오제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오히려 더욱 흥성하게 국제적인 축제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릉단오제가 전통의 모습을 잃지 않고 온전하게 그 생명력을 이어올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은 바로 단오제 행사 중의 “난장”이다. 난장은 축제의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를 모두 제공하여 인근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각 지역의 관람객들을 끌어들인다. 정기적 상설시장보다 오히려 난장과 같은 부정기시장이 단기간 내에 경제적 효과를 더 발휘하는 셈이다. 본고에서는 한국 강릉단오제와 중국 단오절의 기원 및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강릉단오제가 가진 문화적인 가치가 전통명절의 현대화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였다. 한국 강릉단오제의 성공적 케이스 분석을 통해서 중국 단오절 전승에 있어서 얻을 수 있는 제언을 논의해 보았다.

      • 東亞思想的民族主義和跨國主義

        辛炫承 ( Shin Hyun Seung ) 동아시아비교문화연구회 2017 東硏(동연) Vol.1 No.-

        최근 들어 동아시아 담론의 장에서는 지역과 국가 및 지리적 영역의 경계를 넘어 역사 철학 문학 사회 문화 정치 현상을 바라보고 연구하려는 트랜스내셔널리즘(초국가주의) 인문학이 주목받고 있다. 어느 특정 국민국가의 관점이 아니라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양한 현상을 바라보자고 하는 것이 트랜스내셔널리즘이 추구하는 목적이다. 본 논고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출발하여 좁게는 한국 근대사상, 넓게는 동아시아 근대사상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즉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초월한 시각을 동아시아 근대사상에서 찾아내고자 하는 작업이다. 이와 같을 때 동아시아 근대사상의 實像은 재발견될 것이다. 결국 이 논고는 동아시아적 시각, 즉 동아시아 삼국(한, 중, 일) 근대의 사상사적 시점에서 韓國近代思想의 내셔널리즘과 트랜스내셔널리즘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그래서 연구대상을 말하면 협의로는 한국 근대 지식인들, 광의로는 동아시아 근대 지식인들(특히 중국과 일본)의 초국가주의적 담론과 구상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논의를 위해 이 논고에서는 한국의 근대사상과의 비교검토로서 중국과 일본의 근대사상론―중국의 화이질서관 중체 서용론, 일본의 존왕양이론 화혼양재론―을 시야에 넣고 의론하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 이 전세계를 휩쓸기 시작하여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트랜스내셔널 리즘은 바로 글로벌라이제이션과 일맥을 같이하는 사조이며, 세계의 모든 분야에서 트랜스내셔널 현상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동아시아 근대의 학술사조는 작금의 트랜스내셔널 思潮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였다. 국경을 뛰어넘은 思潮에 대항한 내셔널리즘적 사고와 그것의 적극적 수용과 절충·조화를 시도했던 트랜스내셔널리즘적 사고가 공존했던 시대가 동아시아 근대라는 사상공간이었던 것이다. In recent years, transnationalism (supranationalism) humanities has been paid attention in the field of East Asian discourse, which goes beyond the boundaries of regional, national, and geographical areas to study and studies history, philosophy, literature, society, culture, and political phenomena. Transnationalism seeks to look at various phenomena from a more objective viewpoint, not from the perspective of any particular nation state. This paper starts from this context and examines narrowly not only aspects of Korean modern thought but broadly East Asian modern history. In other words, this article attempts to identify a perspective that transcends the border between the nation and ethnic group in modern history of East Asia. When we can find it, the actual image of East Asian modern history will be rediscovered. Thus, this essay was designed to explore the possibilities of nationalism and transnationalism in Korean modernism from the viewpoint of modern history of East Asia, that is, the ideological historical viewpoint of the East Asian Three Countries (Korea, China, and Japan). In this regard, this paper analyzes the supernationalist discourses and ideas of Korean modern intellectuals, and intellectuals of East Asian modern intellectuals (especially China and Japan). For this discussion, this essay compares probes the modern thought of China and Japan - the theory of Chinese harmony, and the theory of middle classes - a comparative study with modern thought of Korea. Since the mid-1980s, cross-border globalization has been sweeping everywhere and is continuing today. Transnationalism is a synonym for globalization, and the transnational phenomenon is constantly maintained in all areas of the world. The scholarship of modern Asia in East Asia was also a signal to announce the prelude of Transnational Thoughts. It was the ideological arena of East Asian modernity that coexisted with the transnationalist thinking that tried to compromise and harmonize with the aggressive acceptance and of nationalistic thought against the tendency which crossed the b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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