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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尹杓 단국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4 한국학연구 Vol.1 No.-
국어사는 韓國史의 일부로서, 韓國語의 歷史를 말한다. 국어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병존해 잇는 수많은 개별적 언어사실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보편적인 원칙에 따라 분류하지 않고는 국어가 변화하여 온 과정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국어가 변천해 온 과정을 몇 시대로 구분하려는 이유는, 국어를 시대별로 나누어서 각 시대의 국어가 지닌 일반적 성격을 찾아내어 몇 개의 범주로 분류함으로써 국어가 단계적으로 변화하여 온 과정을 可視的으로 이해하려는 데에 있다.
朴星來 단국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4 한국학연구 Vol.1 No.-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역사는 스스로 마디를 만들어 가며 전개되기 마련이다. 아니 역사가 마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마디를 찾아내며 살아간다는 편이 옳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마디는 보는 이에 따라서 이렇게 보이기도 하고, 또는 저렇게 보이기도 하는 차이를 가진다. 역사가란 다름 아닌 그런 마디를 찾아가는 사람이라 할 수도 있다. 역사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서술하는 가운데 존재하는 것일진대 과거의 일들이 그야말로, “일어났었던 그대로” 서술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사건을 서술하고 어떤 것을 제외하는가를 결정하는 일은 역사가의 몫이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전개되고 또 서로 연관되거나 단절되어 있는가를 판단하는 일도 역사가의 일이다. 그래서 어떤 역사를 쓰거나 역사가는 그의 서술을 음과 절등으로 나누고, 그 나눔 속에 저절로 역사의 마디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 마디가 바로 그 역사의 시대 구분이 될 수 밖에 없다.
金炅賢 단국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4 한국학연구 Vol.1 No.-
이처럼 독자적인 방법을 가진 학문분야로 세우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현대사’는 항구적으로 그 개념적 규적이 애매하고 불안정한 것으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처럼 보인다.왜냐하면 G.Barraclough가 요구한 ‘현대사’에 고유한 방법속에는 항상 ‘현재주의적 오류’,즉 시대착오(anachronism)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그것을 Fischer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과거의 죽은 가지들을 도려내고 새싹과 우리가 사는 현대세계의 어두운 숲속으로 뻗은 가지들을 보존한다는 것은…그릇된 생각이다…이야기 계열 속에서 선행하는 사건은 결과에 의해 규정되거나 해석됨으로써 왜곡되기 마련이다.”다시말해,과연 역사가가 과거에서 오직 현재의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 이후만을 분리하여 본다는것이 가능할까?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그저 역사가의 동시대 혹은 그에 준하는 기간의 사건들이라는 아주 상식적이고 평범한 의미 속에서만 명맥을 지켜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