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안성지역 불교유적 및 유물에 대한 연구:불교문화 조성세력을 중심으로

        이정훈(덕현) 중앙승가대학교 대학원 2011 국내석사

        RANK : 231999

        안성지역은 불교문화의 산실이다. 안성지역은 삼국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수많은 불교문화를 꽃피운 중요한 지역이다. 다양한 불교문화가 발전하여 왔으며,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문화적 접근이 용이한 지리적 입지, 농경과 상업의 발달, 등의 요인으로 시대를 불문하고 매우 중요한 거점지역으로 여겨져 왔다. 안성지역은 지속적으로 중앙불교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아서 다시 다른 지역에 영향을 전파한 중간 다리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기록이나 문헌을 통해서 안성지역에는 적어도 8세기에 불교가 상당히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사찰의 창건연대의 기록을 통해 보아도 삼국의 통일시기 전후인 7세기 중반에 이미 상당한 규모로 불교가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특히 광종 대에 들어 안성지역이 크게 주목받았다. 고려 광종은 중앙집권화의 기틀을 확립하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조치의 일환으로 안성지역을 군사적, 문화적 거점으로 두었다. `억불숭유'의 조선시대에도 왕실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 나름대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 및 현존하는 수준 높은 유물들은 안성지역의 불교문화가 굉장히 일찍 발달 했으며, 중앙지역과의 밀접한 접근성으로 인해 상당히 수준 높은 불교문화를 영위했던 지역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안성에 현존해있는 전통사찰은 칠장사ㆍ청룡사ㆍ석남사ㆍ용화사ㆍ운수암ㆍ청원사 등이 있으며, 봉업사지ㆍ봉안사지ㆍ매산리 사지와 같은 절터들도 곳곳에 남아있다. 이러한 사찰지 및 절터에서 많은 유물들이 전해지고 있다. 남아있는 고려시대 유적과 유물은 대다수가 석조유물들로 불상, 석탑을 중심으로 많은 수가 현존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유물들은 통일신라양식을 바탕으로 고려양식과의 조화가 이루어진 혼합양식과, 고려의 독창성이 반영된 독자적양식으로 구분된다. 혼합양식의 대표적인 불상으로는 봉업사지석불입상이나 죽산리 석불입상, 두현리 석조삼존불, 안성공원 내 석조여래좌상, 장원리 석조여래좌상, 굴암사 마애약사여래좌상, 굴암사 마애여래좌 상, 선유동 마애삼존불, 장원리 석조보살좌상, 북산리 석조여래입상 등이 있다. 그리고 석탑으로는 죽산리 3층석탑, 봉업사지 5층석탑, 미륵당 5층석탑, 죽산리 석탑, 장원리 내리 석탑 등이 있으며, 장명사지 석조대좌도 혼합양식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한편 고려독자적 양식은 불상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태평미륵불상, 기솔리 석불입상, 용인 목신리 석불입상, 용인 미평리 석불입상 등이 있으며 이 양식은 이후 민간세력에 의해 계승되어 대농리 석불입상, 죽리 석조여래입상, 아양동 보살입상, 아양동 석불입상, 국사암 석조삼존불등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고려유물의 양식적 특징들을 토대로 조성세력을 추측해볼 수 있다. 고려시대 안성지역에서의 세력구도는 `6두품출신 호족-토착안성호족-고려왕실세력'으로 이어왔다. 통일신라양식은 중앙에서 파견되어 죽주지역에 자리 잡았던 6두품출신 호족들에 의해 이어졌다. 朴氏 세력이 주목되며 대표적 인물로는 朴赤烏를 들 수 있었다. 고려창건 이후에는 안성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세력을 키운 토착 지방호족이 크게 대두된다. 안성토착호족은 고려의 건국 이후에 세력이 안정되면서 중앙으로 진출해 나갔으며 불사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토착호족세력에 의해 조성된 불교유물들의 특징으로 통일신라양식을 기본적으로 하면서 고려의 독창적 양식을 적절하게 융합을 들 수 있다. 또한 고려왕실이 주도한 불사도 적극적으로 이루어 졌다. 대표적으로 봉업사의 창건을 들 수 있으며 그 밖에도 수 차례의 불사들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정리해보면 고려시대의 불교문화 형성은 다양한 세력 간의 조화 속에서 통일신라의 미술양식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동시에 수준 높은 중앙양식의 영향도 받았다. 또한 고려왕실세력이 주도한 불사에서도 통일신라양식이 면면히 이어내려 오며 동시에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왕실이 신라 전통의 극복과 새로운 고려 전통의 창출이라는 시대적 사명에서 고려의 독창적인 양식이 출현하기도 한다. 억불숭유 정책의 조선왕조대에도 비교적 많은 불사가 진행되었다. 안성지역은 왕실과의 밀접한 연관을 맺었으며, 특히 왕실의 여성들이 시주자로 참여하여 불화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비록 표면적으로 나서서 불사를 주도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불사를 도모해 왕실의 수복강령과 선조의 명복을 기원하였다. 왕실의 시주로 제작된 불화들인 만큼 질적인 면에서도 매우 뛰어난 수작들이다. 이상에서 간단히 살펴보았듯이 안성지역은 불교의 영역을 구분 짓기 어려우며, 오랜 시간에 걸쳐 안성지역 전체가 하나의 큰 불교문화단지로 조성되어 왔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양식들의 불교문화재들이 아직도 그 숨결을 내뿜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이들의 발길을 불러들이고 있다. 안성지역불교문화가 지닌 풍부함과 뛰어난 조영양식, 그리고 문화사적인 가치 등이 불교미술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중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