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홍성지역 담양 전씨家의 사환과 업적

        송기중(Song Gijung)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8 충청학과 충청문화 Vol.24 No.1

        지금까지 담양 전씨가의 고문서에 대해 살펴보았다. 담양 전씨가의 가계는 임진왜란 이후 크게 성장해서 이후 무반가문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과정에서 전윤과 전득우의 역할이 가장 컸다. 임진왜란 때의 공적을 바탕으로 성장한 가문은 이후 무반 집안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이후 전운상은 해골선의 고안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이 결과 조선 후기 대표적인 무반가문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이 집안의 고문서는 당대 무반 기문으로서의 색채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집안에서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문서는 주로 교령류였다. 교령류를 통해 이 집안의 가세의 변화와 당대 무반 가문의 주요 사로와 임명체제를 짐작해볼 수 있다. 담양 전씨가는 주로 동반 외관직과 서반직의 벼슬을 하였다. 동반외관직은 대부분 다 지방관이었다. 서반직은 경관직과 외관직이 고루 분포한다. 서반직 경관직은 주로 오위, 훈련원, 오군영에 임명되었다. 서반외관직은 수사나 병사 등부터, 첨사 만호 등 다양하였다. 또한 전령을 통해 임명되는 관직도 상당 수였다. 군관, 별군직, 중군 등 지휘관 등 각 군영의 주요 지휘관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소차계장류는 그 양이 적지만 당대의 재지사족의 재산 증식과 그 마을에서의 갈등관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결국 담양전씨가 고문서는 조선시대 무관 기문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삼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