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池敎憲 한국사상문화학회 2001 韓國思想과 文化 Vol.12 No.-
이 글은 성남(城南) 향토문화연구의 일환으로 계획, 추진된 향토인물연구의 일환으로 작성된 것이다. 남공철은 조선 후기에 있어 보기 드문 전문적이고 전형적인 행정가요 정치가였다. 그는 25세에 벼슬길에 올라 영의정을 역임하는 등 74세로 치사(致仕)하기까지 무려 49년 동안이나 관직에 있었다. 그가 평생토록 청관미직(淸要職)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항상 계구(戒懼)하는 자세를 잃지 않고 자중자애(自重自愛)하였으며, 또한 인민애물(仁民愛物)하는 고위공직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고, 지촉(知足)욜 생활철학으로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금릉집(金陵集)』(24권), 『영옹속고(潁翁續稿)』(5권),『영옹재속고(潁翁再續稿)』(3권), 『귀은당집(歸恩堂集)』(8권), 『고려명신전(高麗名臣傳)』(12권) 등 도합 52권의 저술을 남긴 학자이자 저술가이기도 하다. 본고에서는 남공철의 생애에 대하여 상세하게 고찰하고, 이어 학문에 있어서는 문학론-특히 고문론(古文論)과 서화론(書畵論)을 중심으로 하여 논급하였다. 남공철의 학문은 유가의 모든 경전과 제자와 문집에 이르기까지 넓고 깊은 경지에 이르고 있으며, 특히 『시론』, 『서론』, 『추론』, 『역개사론(易繫辭論)』 및 『시동자문(詩童子問)』, 『독례록(讀禮錄)』 등은 그의 학문적 조예를 짐작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