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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김해 회현동 D지구 옹관묘에 대하여

        이양수(Yi Yangsu) 부산고고학회 2016 고고광장 Vol.- No.18

        김해패총으로 알려진 회현동 패총은 구야국・금관가야의 왕성인 봉황대 유적에 포함되어 있다. 그 중 D지구에서는 김해식 옹관으로 알려진 무덤이 확인되었다. D지구 옹관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❶ D지구에는 지석묘와 석관묘가 있었기 때문에 이전부터 묘역으로 인지되어 왔다. ❷ 고김해만에 접한 D지구는 일본을 왕래하는 배들이 정박한 항구에 인접해 있었을 것이다. ❸ 3호묘에서 출토된 동사는 문자기록과 관련 있는 도구로 생각되는데, 총 7~9점이 확인되었으며, 마모된 흔적으로 보아 적어도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2명 이상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것을 부장한 것이다. ❹ 3호묘에서 출토된 동검 중 비마연동검은 부장을 위해 만들어졌던 것이며 피장자를 위해 사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❺ 당시 김해에서 지배자는 묘제나 부장품 으로 보아 송국리 문화와 점토대토기문화 그리고 야요이문화도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었다. ❻ D지구에서는 1호와 3호 옹관묘 2기가 확인되었고 두 옹관이 약간의 시간차를 가지는 점에서 D지구에 묻힌 두 사람은 친족관계일 것이다. 또한 옹관이 왜에서 이동한 것이라고 한다면 당시 변진구야국의 상위층과 혼인 등으로 연관된 여성으로 해석할수 있을 것이지만, ❶ 김해 흥동 1호 주거지를 비롯하여 김해식 옹관이 제작될 당시 김해에 왜인들의 존재를 상정할수 있고, ❷ 야요이 토기의 영향을 받은 토기들이 한반도 남부에서 자주 제작되는 점, ❸ 구산동 유적의 사례에서볼 수 있듯이 야요이 전・중기 전반까지는 절충형의 야요이계 토기가 많이 만들어지다 중기 중반으로 가면서 왜에서 직접 제작된 반입 토기가 증가하는 점, ❹ 3호 옹관 출토 부장품의 형식이 일본 북부규슈의 부장품과 비교하면 한단계 늦은 점, ❺ D지구 출토 옹관의 형태가 일본과는 차이나는 기형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한다면 3호 옹관은 김해 자체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더욱이 묘제는 일본 북부규슈의 야요이 문화의 요소, 한국식동검과 동사는 한반도의 한국식동검문화의 요소, 관옥은 재지적인 청동기 문화적 요소라는 복합적인 성격이 주목된다. 이상을 근거로 하면 D지구에 묻힌 사람들은 한반도 남부-변진구야국과 왜를 연결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동반하여 출토된 유물 중 동사와 관련지어 볼 때, 피장자는 문자와 관련된 사람일 가능성이 높고, 상당한 지위에 있던 사람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한반도 남부에서 가장 중심지였던 봉황대 인근, 왜와 군현을 왕래하는 배들이 보이는 D지구에 무덤을 만들어 준 것으로 추정할 수있다. Hoehyeon-dong Shell Mound known as Gimhae Shell Mound is part of the Bonghwangdae(鳳凰臺) site which is a royal palace in the period from Guyaguk(狗耶國) to Gumgwanggaya(金官加耶). Gimhae-type burial jar was excavated in the D-zone of the shell mound site. Burial jar No. 3 belongs to the Yayoi culture and this type is not common in Korea. D-zone in which the burial jar is located includes dolmen and stone coffin of the Bronze age. Because of that, the area was recognized as a cemetery in the past. When focusing on the type of the grave, it is influenced by Yayoi of northern Kyushu(北部 九州) in Japan. However, Korean type bronze daggers and bronze burin(鍦) buried with the Jar No 3 are linked to the pottery with clay stripes culture(粘土帶土器文化) and the Korean type bronze dagger culture in the north. These complex features show dynamic aspects of rulers in Gimhae during the Qin-Han transition. In addition, the chronology was before 194 B.C. At the time, the King Jun(準王) of Gojoseon(古朝鮮) came to the south and Wiman(衛滿) was newly established in the land of Gojoseon. Considering cultural aspect, bronze mirror with minute designs(多鈕細文鏡) was spread across the Korean Peninsula and Japan.

      • KCI등재

        탕구의 위치로 본 요령식동검의 제작기술과 의미

        이양수(Yi, Yangsu) 부산고고학회 2012 고고광장 Vol.- No.11

        요령식동검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제작기술에 대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이 글에서는 제작기술과 관련하여 동검 표면에서 확인되는 기포의 양상과 X-ray 촬영을 통해 확인된 기포의 방향을 통해 주입구의 방향에 대한 검토를 행하였다. 그 결과 주입구가 슴베 쪽인 A식과 봉부 쪽인 B식이 존재함을 확인하였다. A식은 동검 제작에 있어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널리 이용되는데 요령식동검 뿐 아니라, 세계 전역의 동검 제작에서 확인된다. 이에 비해 B식은 상대적으로 좁은 봉부를 통과하여 용탕이 주입되기 때문에 병목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잘 이용되지 않는 기술로 생각된다. 양익에 화살촉을 만들 때 이용되기도 하는데 이는 역자형의 양익부분이 완벽하게 주조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B식의 동검은 청도 예전동, 여수 월내동, 여수 봉계리 월앙, 부여 수목리 등 한반도 남부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현재까지의 분포 범위로 본다면 제작지는 한반도 남부일 것으로 생각되며 여수 적량동·월내동 유적이 제작지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러한 B식의 제작기술은 일본으로 전해지는데, 현재까지의 자료로 본다면 광형동과와 긴기식동과[近畿式銅戈] 등에서 확인된다. 특히 사쿠라가오카[櫻ケ岡] 유적 출토의 近畿式銅戈에는 새발자국 무늬가 있는데 이러한 표식이 한반도 남부의 장수 남양리 3호묘, 부여 입포리 출토 한국식동 검에서도 확인되는 바, 한반도 남부의 청동기 제작기술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요령식동검은 A식과 B식의 제작기술 집단으로 구분되며 현재까지의 분포상황을 볼 때, B식은 한반도 남부에서 제작된 것이며, 적어도 청동기시대 후기에는 한반도 남부에 청동기를 제작·분 배·조절·소유하는 집단과 지배자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집단은 사서에 기록된 고조선 혹은 辰(衆)국의 모태와 연결될 것이라 생각된다. Despite the numerous studies that have hitherto carried out with respect to Liaoning type bronze daggers, studies on the manufacturing technology of bronze daggers have been relatively rare. In this regard, a review on the sprue directions during the course of manufacturing bronze daggers has been carried out with regard to the manufacturing technology. As a result, the existence of two sprue type was confirmed: Type A faces the directions of the handle ends of daggers, whereas type B faces the directions of the blades. Type A sprue has been most commonly used for manufacturing bronze daggers, and its applications can be found in the bronze daggers that had been manufactured across the globe. In contrast, the applications of type B sprue have relatively been rare due to the high risk of a bottlenack at the time of injecting molten metal through a point of narrow blades. To date, type B bronze daggers have been discovered in the southern areas of the Korean Peninsular, such as Yejeondong in Cheongdo, Wolneadong in Yeosu, Sumokri in Buyeo, etc. Given the distribution range that has been confirmed so far, the center of suck daggers are thought to be located within the Korean Peninsula or likely to be located in one of the following areas: Jeokryangdong and Wolnaedong in Yeosu. In conclusion, it can be assumed that Liaoning type bronze daggers can be classified into type A and B manufacturing technology groups. The current distribution status confirmed that type B bronze daggers were produced within the Korean Peninsula, as well as the existence of rulers and groups who manufactured, distributed, controlled and possessed bronze tools in the Korean Peninsula at least in the late Bronze Age. And type B manufacturing technology passed down Yayoi culture in Japan.

      • KCI등재

        변진한(弁辰韓) 지역에 영향을 준 고조선계의 문화

        이양수(Yi Yangsu) 동북아역사재단 2017 東北亞歷史論叢 Vol.- No.55

        변진한(弁辰韓)의 성장배경 중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 고조선일 것이다. 고조선과의 직·간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변진한은 성장하였고 그것에 대해 사서(史書)에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고고학적으로는 고조선과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 주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고조선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부족 그리고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부터 변진한의 문화가 철기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관련성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위만조선(衛滿朝鮮)이 성립하고 준왕(準王)이 남하하는 기원전 194년 이전까지 고조선이 변진한에 준 영향에 대해 고고학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그리고 고조선의 문화를 변진한의 입장에서 규정하고자 하였다. 백천(白川) 대아리(大雅里) 석관묘와 금천(金泉) 송죽리(松竹里) 4호 지석묘 주변에서 출토된 요령식동검, 연안(延安) 금곡동(琴谷洞)과 청도(淸道) 예전동(禮田洞) 출토 요령식동검 등을 통해 고조선이 변진한의 청동기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확인하였다. 청동기시대 후기에는 변진한에서 독자적으로 청동기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 첫 번째 증거는 거제(居濟) 아주동(鵝州洞) 13호 지석묘에서 출토된 동촉이다. 이것은 울산(蔚山) 검단리(檢丹里) 13·39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석촉과 형태적으로 유사하며, 결국 동촉을 모티브로 석촉의 디자인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시대 말기가 되면 변진한의 지역색을 가진 동검이 출현한다. 변한에서는 진동리식(鎭東里式)이라 불리는 세장한 형태의 동검, 진한에서는 봉길리식(奉吉里式)이라 부를 수 있는 짧고 검엽(劍葉)이 얇은 동검이 제작된다. 이러한 지역색의 등장은 독자적인 청동기 제작기술의 확립을 뜻하는 것이며, 그 기술은 고조선의 청동기 제작기술이 모방 등을 통해 한반도 남부-변진한으로 유입된 결과다. 결국 이러한 것은 고조선이라는 세력이 통제하던 청동기 제작기술과 그것을 얻어내려는 지역집단 간의 경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쟁 속에서 변진한은 성장하였을 것이다. This paper examines the effect on Gojoseon brought by Byeonjinhan from the Bronze Age to circa B.C. 194. The culture of Gojoseon is defined from the perspective of Byeonjinhan. We have come to know that Gojoseon affected Byeonjinhan greatly in many ways, such as through bronze daggers and mirrors. In the late Bronze Age Byeonjinhan began to produce bronze artifacts independently. The earliest evidence is a bronze arrowhead excavated from Ajudong No. 13 dolmens, in Geoje. This bronze arrowhead has the same shape as a stone arrowhead excavated from Geomdanri No. 39 dwellings, in Ulsan. We can see that the design of a stone arrowhead was a motif derived from that of a bronze arrowhead. At the end of the Bronze Age, daggers in Byeonjinhan may have emerged with their own regional qualities. This would mean the establishment of a unique bronze workmanship that reflected regionalism. The techniques utilized in the production of bronze artifacts were introduced into the societies of Byeonjinhan from Gojoseon. This article shows that the competition among local groups trying to acquire bronze production technology may have provided momentum for developing Byeonjinhan from Go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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