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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에서 古都에 대한 지식과 상상력 확장의 한계

        이훈상(Lee, Hoonsang)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14 동양한문학연구 Vol.39 No.-

        Mass media, mainly newspapers, have played important roles in spreading knowledge and imagination concerning the old capitals of the past dynasties since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ism. Before the colonial period, only a few elites possessed the knowledges and imagination of the old capitals, which were expressed through Chinese poetry. Contemporary Koreans' knowledge and imagination concerning old capitals, which date back to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period, shows discrepancy from those of Joseon Dynasty. Still, These two periods reveal a certain similarity in their nostalgia for the past in the fact that their nostalgia did not truly develop into a creative imagination. With this presumption, this study explores the peculiarities of Joseon Dynasty and the social and cultural heritage, which restricted the development of imagination concerning the past of Korean old dynasties. Despite the expansion of historical knowledge of old capitals sinc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old capitals have not been reborn as the space of memory with more creative imagination. The reason why can be pointed out as Joseon Dynastity's ideology of restoration, which viewed the Chinese three Dynasties, Xia, Yin, Zhou as utopia and tried to realize their ideal vision. Furthermore, social and cultural institutions which can support sociopolical collective actions based upon old capitals did not visibly exist. Local knowledge and folklore were subordinated into the dominant central hegemony. In this way, a series of factors can be explained as having restricted the development of creative imagination concerning the old capitals of the past dynasties of Korea. 이 연구는 근대 이후 한국사에서 古都를 대상으로 한 지식과 그 상상력에 초점을 맞추어 고도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새로운 상상력을 촉발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전제 아래 그 요인을 조선왕조사회의 현저한 특성으로 환원하여 논의하려 한 것이다. 이것은 고도에 대한 현재 한국사회의 지식과 상상력이 사실상 식민지기의 그것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고도와 관련된 지식을 조선후기와 식민지기의 그것을 대비하였는데, 조선시대의 경우 양반 엘리트의 문헌을 식민지기의 경우 대중 매체, 이 중에서도 주로 신문을 중심으로 추적하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반도가 국가 권력의 발생과 더불어 크고 작은 국가들이 출현하고 사라졌다. 그렇지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이어 조선왕조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한반도에는 하나의 정치권력만 허용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과거의 왕조가 해체되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서 과거를 청산하는 방식은 각기 달랐으나 일단 조선왕조의 경우 과거의 기억에 근거한 정치 세력의 결집이나 사회적 집합 행동은 출현하지 않았다. 이것은 조선시대 고도에 대한 기억 및 노스탤지어에도 반영되어 고도를 소재로 한 각종 시문의 대부분은 왕조의 흥망성쇠에 대한 허무와 무상의 감성에서 큰 차이를 찾기 어렵다. 그리고 이 같은 시정을 표출하고 생산한 것은 여기에 대한 지식을 가진 양반 지배 엘리트들이이었다. 반면 식민지기에는 고도에 대한 역사 지식이 민족주의와 식민지 권력이 각기 상호 경합하는 가운데 생산되어 대중매체를 통하여 소비되었으며 나아가 역사의 관광화를 통해서도 확산되었다. 이렇듯 고도에 대한 역사 지식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고도는 새로운 상상력을 촉발하는 기억의 공간으로 탄생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조선왕조의 오랜 사회적 문화적 유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회귀하여야 하는 이상향을 중국의 삼대로 상정하고 그 실천을 강력하게 추구한 조선 왕조의 복고 이념 아래 고도가 새로운 회귀의 자리로 재생하기는 어려웠다고 생각된다. 나아가 고도를 기반으로 사회적 집합 행동이 가능한 사회적 문화적 장치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는데, 이것을 전복할 수 있는 지역 지식이나 전승도 강인한 중앙의 헤게모니 아래 종속되어 있었다. 이렇듯 조선왕조의 중요한 특성으로 거론되는 일련의 사회 문화적 장치들은 고도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의 촉발을 제약하는 유산으로 계속 작용하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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