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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중반 기호 낙론계 심론 - 심기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

        유지웅 ( Yoo Ji-woong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21 儒學硏究 Vol.55 No.-

        이 논문은 18세기 중반 기호 낙론계 심론, 특히 심기에 대한 논의 양상을 도암 이재(陶菴 李縡, 1680~1746)와 그의 문인들인 백수 양응수(白水 楊應秀, 1700~1767), 미호 김원행(渼湖 金元行, 1702~1772)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기호학파 낙론계의 사적 흐름에서 18세기 중반은 낙학의 종지(宗旨)가 비교적 선명하게 부각된 시기였다. 특히 호락논쟁의 주요 쟁점이었던 미발과 성범심에 대한 낙론의 입장은 미발심체선, 성범심동으로 귀결되며, 이러한 입장의 이면에는 결국 심과 기(질)의 관계 즉 심기를 어떻게 해명하는가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재, 양응수, 김원행은 낙론의 입장인 미발심체선과 성범심동을 공유하지만 그 논증 구조에서는 상호간의 입장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이재는 심을 기 자체만으로 해명하지 않고 항상 성(리)과의 합일을 통해 성인과 범인의 심이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심과 기질을 구체적으로 구별하여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오는 언어표현상의 문제점도 발견된다. 반면 이재의 문인들인 양응수와 김원행은 심기에 대해 보다 세부적으로 설명한다. 먼저, 양응수는 심을 구성하는 기를 신기(神氣)와 혈기(血氣) 두 개의 기[心有二氣]로 전제하고 신기를 통해 성인과 범인의 심이 동일함을 설명하고 혈기를 통해서는 성인과 범인의 심이 다름을 설명한다. 그 결과 양응수의 입장은 동문들로부터 심(체)에 선악이 있다는 호론과 동일하게 귀결된다는 비판을 받는다. 반면 김원행은 심을 구성하는 기를 청탁(淸濁)이 섞여 있는 것을 전제하는 기질과는 차별적으로 이해하여 심기 그 자체의 도덕적 영역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심기에 대한 김원행은 입장은 인간 누구나 보편적으로 동일한 마음이 실재함을 존재론적 차원에서 확인하려는 낙론의 입장을 충실하게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재를 비롯한 양응수, 김원행 모두 호락논쟁의 과정에서 낙론의 입장을 반영한 성리설을 제시하지만 그에 따른 세부적인 논증 구조와 관련해서는 각각 차별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This paper set out to examine diversity in the theory of the mind of the Nak School in the middle 18th century with a focus on Doam Yi Jae, Baksu Yang Eungsu and Miho Kim Wonhaeng. The main point of the theory of the Nak School was highlighted with relative clarity in the middle 18th century. All of Yi Jae, Yang Eungsu, and Kim Wonhaeng discussed in the study maintained that the state of the mind-substance before aroused feelings, which reflects the position of the Nak School, should be good and that the sages and ordinary people should have the same mind, but they presented diverse discussions about their positions about the mind, especially its interpretations based on Li and Ki. First, Yi Jae refused to elucidate the mind only with Ki itself and tried to highlight the good of morality more clearly always through the unity of Ki and Li. His pupils, on the other hand, Kim Wonhaeng and Yang Eungsu developed their discussions in a direction of offering more detailed explanations about Ki that made up the mind. Kim, in particular, understood Ki that made up the Mind differently from temperament whose premise was the general mix of clear and muddy, developing his discussions in a direction of securing the moral domain of the mind itself. Unlike him, Yang Eungsu set a premise that there were two types of Ki, which made up the mind, including mind-vital force and blood-vital force and explained that the sages and ordinary people had the same mind in the aspect of the former and different minds in the aspect of the latter. As a result, his theory of the mind was criticized for sharing the same logic with the Ho School, which argued that there should be both good and evil in the mind, by his alumni. These findings demonstrate that Yi, Kim, and Yang all proposed Seong Li theories reflecting the position of the Nak School's theory but had differences from one another in the interpretation of the mind based on Li and 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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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암 이재의 성리설 연구 - 호락논쟁의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

        유지웅 한국양명학회 2022 陽明學 Vol.- No.67

        이 논문의 목적은 18세기 중반 기호 낙론계를 대표하는 도암 이재(陶菴 李縡, 1680~1746)의 성리설을 호락논쟁의 주요 쟁점에 주목하여 검토, 분석하는 것이다. 이재는 18세기 전반기 기호 낙론계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이다. 그는 『전서(全書)』 형태로 이이의 문집 간행을 주도했을 만큼 기호학계에서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한천정사(寒泉精舍)에서의 강학활동을 통해 낙론계 성리설을 계승, 확산시킴으로써 그의 문하에서 낙론계 정통 학맥이 계승되었다는 상징성도 지니고 있다. 아울러 호락논쟁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이재는 호론의 윤봉구, 채응상, 심조 등과 논쟁을 전개하여 낙론계 성리설의 여론을 대변한 인물이었다. 이재의 성리설에는 본연의 측면에서 기(氣)의 개입을 주장하는 호학의 입장을 비판한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이재는 만물이 근원적으로 ‘리’를 동일하게 부여받았다는 측면을 부각시키면서 기의 제한을 넘어선 ‘리’의 보편성을 확인하는 인물성동론을 주장한다. 미발 역시 기질적인 맥락에서 해명하려는 호학의 입장을 거부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일한 마음 즉 본심이 있음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 곧 수양의 출발점이자 목표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재의 입장은 호론과 대비되는 인물성동(人物性同), 미발심체선(未發心體善), 성범심동(性凡心同)을 공유한 것으로 호락논쟁에서 낙론의 입장을 충실하게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그가 호론과의 논쟁에서 심‘기’와 일반적인 ‘기질’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함으로서 오는 문제도 노출하지만 전체적인 그의 성리설을 통해 본다면 기질적 맥락에서 미발시 마음의 상태를 설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은 호락논쟁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낙론의 여론을 대변하고 주도했던 이재의 성리설을 호락논쟁의 주요 쟁점들을 중심으로 검토, 분석하여 낙학의 입장을 주로 호학의 이간을 중심으로 해명되었다는 한계점을 보완하고, 낙학파 성리학자인 이재를 통해 해명함으로써 낙학파 성리학자들을 호락논쟁의 주체로 복원시키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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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수(白水) 양응수(楊應秀)의 성리설과 18세기 낙론계에서의 반향(反響)

        유지웅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23 儒學硏究 Vol.63 No.-

        This paper examines and analyzes Yang Eungsu's Neo-Confucianism, a representative disciple of Yi Jae, while paying heed to the Nak School in the 18th century. By doing so, this paper reasonably identifies Yang's academic identity, which has not been studied in depth. Yang is not mentioned in the same way as his contemporaries Park Seongwon, Kim Wonhaeng and Lim Seongju in relation to the study of the Nak School in 18th century. However, Yang is a highly symbolic figure among Yi's disciples, especially considering that it was not possible to participate in the publication of Yi's writings unless one was very close to his teacher or had a high academic standing. This may explain his place in Cheonmun (泉門). Yang also maintained his identity as a member of the Nak School by presenting a critical view of the Ho School regarding the Horak controversy, which was a major concern of the scholarly community at the time, with most of Baeksujib (白水集) relating to Neo-Confucianism. He was also a faithful student of his teacher, summarizing the conclusion of Yi's theory of the mind as "the mind being made up two kinds of Qi (心有 二氣)." However, while Yang was identified as a the Nak School scholar, he also had an identity that diverged from the Nak School-centered position. For example, not only did he criticize the theory of consciousness of Kim Changhyeob, the master of the Nak School, but his way of arguing the key issues of the Horak controversy also varied from the mainstream of the Nak School. His academic position was controversial within the Nak School, and his alumni criticized Yang's theory as being the same as the Ho School. Therefore, it would be a limited understanding to view Yang’s theory solely in the context of his being a 'successor' to 'the theory of the Nak School'. Thus,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stablish a more accurate understanding of Yang's academic identity. Specifically, the study will focus on Yang's membership in the Nak School and the criticisms his alumni had regarding his theories on moral culture. Ultimately, the success of this study will shed light on why Yang is a noteworthy figure in regard to the diversity within the Nak School in the 18th century and help us to better understand his academic identity. 이 논문은 이재 문하의 대표적인 인물인 양응수의 성리설과 이에 대한 18세기 낙론계의 반응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동안 피상적으로 다루어졌던 양응수의 학문적 정체성을 보다 합리적으로 결론 내리고자 한다. 18세기 기호 낙론계 연구와 관련하여 양응수는 동문이었던 박성원, 김원행, 임성주 등과 비교해 볼 때 의미 있게 다루어진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양응수는 이재문하에서 매우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도암집(陶菴集) 간행에 깊숙이 개입해스승의 유고를 정리, 편집하는 일을 주도하였으며 동문 중에서는 유일하게 1년간 스승의 시묘살이를 했다는 상징성도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볼 때 천문(泉門)에서의 양응수의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양응수는 성리설에도 조예가 깊어 백수집(白水集)에는 대부분이 성리설과 관련된 것이며 당시 학계의 최대 관심이었던 호락논쟁의 주요 쟁점에 대해서도 호론을비판하는 일련의 글들을 발표하여 낙론계 일원으로서의 정체성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재 심설의 종지를 ‘심유이기(心有二氣)’로 정리하는 등 스승을 충실히 계승한 제자의 역할 역시 자임하였다. 이렇듯 양응수는 천문에서 동문들과 함께 낙학의 여론을 주도한 인물이었으며, 백수집을 보더라도 학문적 성과가 매우 뚜렷한인물이었다. 그동안 학계에서 양응수에 대한 논의는 주로 낙론의 ‘계승’이라는 측면에만 주목하였다. 그는 분명 낙론계의 정체성을 유지하였지만, 낙론계 중심 학맥의 입장과는다른 정체성 역시 가지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그는 낙학의 종장이라 할 수 있는 김창협의 지각설을 비판하였을 뿐 아니라, 심유이기에 대한 해명에서도 낙론계 중심 학맥과는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러한 양응수의 학문적 입장이 낙론계 내부에서 논란이 되고 특히 동문들이 양응수의 성리설을 호론과 같다고 비판하는 것에서볼 때 그의 성리설을 단순히 ‘낙론’의 ‘계승’이라는 범주에서만 논의하는 것은 양응수의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제한적인 이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은 양응수의 학문적 정체성에 대해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기 위한선행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주로 낙론계 일원으로서 그의 정체성과 그의성리설에 대해 동문들이 가지고 있었던 비판과 문제의식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것이다. 이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18세기 낙론계 성리설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왜 양응수라는 인물을 주목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음과 동시에 그의 학문적 정체성이 보다 명확해지는데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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