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英殿建於明朝樂年間(1403-1424),曾為政治權利的中心地。清朝康熙年間 (1662-1722)設立武英殿書局。康熙四十年(1701)以後,武英殿開始大量發行書籍。1772年將《永樂大典》的佚書,各省的採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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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2018
학위논문(석사)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 고문헌관리학전공 , 2018
2018
한국어
경기도
iii, 92 p. : 도표 ; 26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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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英殿建於明朝樂年間(1403-1424),曾為政治權利的中心地。清朝康熙年間 (1662-1722)設立武英殿書局。康熙四十年(1701)以後,武英殿開始大量發行書籍。1772年將《永樂大典》的佚書,各省的採集...
武英殿建於明朝樂年間(1403-1424),曾為政治權利的中心地。清朝康熙年間 (1662-1722)設立武英殿書局。康熙四十年(1701)以後,武英殿開始大量發行書籍。1772年將《永樂大典》的佚書,各省的採集本,武英殿刊本,匯為《四庫全書》。由於工程 量浩大久費時日,便從較為稀缺的宋元版本和《永樂大典》的佚書開始撰修。1773~1803 年共刊印了138種書籍,其中木版本4種,木活字本134種。這138種書稱為《武英殿聚珍 版書》。《武英殿聚珍版書》是清內府規模最大的一次木活字印刷活動。在中國木活字印 刷史和典籍史上具有重要意義。武英殿聚珍版書刊印完成後被發往東南五省并允許地方 翻刻,翻刻本為木版本。翻刻本與殿本在樣式上非常相似,也稱為《武英殿聚珍版書》。 由於時代的動蕩與變遷,現存的《武英殿聚珍版書》多為散本。國內足本該叢書有多少 部,並沒有具體的統計。此外,韓國,日本,美國等國家也有不同數量的相關書本。
本論文的主要研究對象為韓國現存的《武英殿聚珍版書》,研究目的在於調查韓國現 存該叢書的數量及內容,分析相關目錄,了解叢書的購買時期和東傳的過程,以及明確該叢書對韓國產生的影響和意義。
韓國該叢書的收藏機構主要集中在韓國學中央研究院藏書閣,首爾大學奎章閣韓國 學研究院,韓國國立中央圖書館,東亞大學圖書館,全南大學圖書館,高麗大學圖書 館。韓國的現存本按版本分為聚珍版和翻刻木版本,其中以木版本居多,聚珍本主要藏於首爾大學奎章閣韓國學研究院。從內容來看,集部書比經史子各部的書數量上略少,並且現存本多為頁數相對較少的著作,袖珍本也較多。這主要受印刷效率,製作成本, 便攜性等方面的影響。此外,韓國還藏有兩本相關目錄,用途分別為購書清單和點檢用。
韓國現存本的購入時間上限為1774~1781之間。18世紀的朝鮮重視文化,這無疑 是該叢書購入過程中的的催化劑。1773年朝鮮使臣嚴璹與中國文人關於《四庫全書》筆 談記錄可視為《武英殿聚珍版書》話題的開始。朝鮮對《四庫全書》一直具有濃厚的興趣, 正祖曾下令購買《四庫全書》,此後林濟遠, 李鼎運, 沈能翼等人不斷向朝鮮報告《四庫全書》的消息。此外,李德懋也向中國文人潘庭筠尋求過《武英殿聚珍版書》的目錄。
《武英殿聚珍版書》流傳到朝鮮后產生了重要影響。正祖下曾令按《武英殿聚珍版程 式》中的木活字製作方法製作生生字和整理字。此外,還有私人製作的金陵聚珍字等。與此同時韓國現存的兩本目錄也具有重要的意義,並且得益于該叢書的朝鮮東傳韓國的 藏書也更加豐富。
武英殿은 明代 永樂年間(1403-1424)에 설립되어 한 때 정치권력의 중심이 되었던 기관이다. 清代 康熙年間(1662-1722)에 武英殿書局이 설립되어 문헌 간행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康熙四十年(1701)...
武英殿은 明代 永樂年間(1403-1424)에 설립되어 한 때 정치권력의 중심이 되었던 기관이다. 清代 康熙年間(1662-1722)에 武英殿書局이 설립되어 문헌 간행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康熙四十年(1701)이후, 무영전에서 대량의 도서를 간인하기 시작 하였다. 乾隆三十七年(1772)에 『永樂大典』의 佚書, 각 省의 採集本, 무영전 간본을 수집하여 『四庫全書』를 편찬했다. 『사고전서』는 양이 방대해서 모두 撰修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판본이 드문 판본과 『영락대전』의 일서부터 먼저 간인하였다. 간인 작업은 乾隆三十八年(1773)에 시작하여 嘉慶八年(1803)까지 138종의 책(목판본 4종, 목활자본 134종)을 인출하게 되었다. 이 138종 책을 『무영전취진판서』라고 한다.
『무영전취진판서』는 淸內府에서 시행한 목활자 인쇄 중 규모가 제일 큰 인쇄활동의 결과물이다. 중국 목활자 인쇄사와 典籍 보존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후 중국 일부 지방의 출판사에서도 번각하였으며, 모두 목판으로 인쇄했다. 번각본 총서와 무영전본 총서의 양식이 많이 닮아서 내부의 인쇄분이 內聚珍本, 번각인쇄본은 外聚珍本이라고 한다.
하지만 淸代의 멸망과 사회의 변동 때문에 『무영전취진판서』가 많이 흩어졌다. 지금까지 완질의 총서가 얼마나 현존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무영전취진판서』는 중국 외에도 한국, 미국, 일본 등 몇 몇 나라에서 확인된다.
본 연구는 한국에 현존하는 『무영전취진판서』를 대상으로 삼았다. 現存本의 내용과 수량 및 판본을 조사하고, 『무영전취진판서』 관련 서목의 역할과 총서의 구입 시기 및 전래 경로를 규명하며, 이 총서가 한국에 끼친 영향과 의의를 밝히는 데에 목적이 있다.
한국에 『무영전취진판서』의 주요 소장처로 확인된 곳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국립중앙도서관, 동아대학교 한림도서관, 전남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이다. 현존본을 판본으로 분류하면 취진본과 목판본으로 나뉜다. 또 취진본은 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經·史·子·集部의 책은 다 있고, 集部 책의 수량은 經·史· 子 각 部의 책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또 現存本은 모두 冊數가 상대적으로 적은 책이고, 奎璧本도 많이 있다. 이유는 인쇄의 효율성, 제작비용, 편의성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는 『무영전취진판서』 관련 서목이 두 종 있다는 것을 확인되었다. 두 서목의 역할은 각각 購書單子와 點檢用이다.
한국에 현존하고 있는 『무영전취진판서』의 구입 시기 상한은 1774~1781 사이이 다. 18세기, 문화를 중시하는 사회배경은 『무영전취진판서』 구입하는 데의 촉매 역할을 했다. 1773년, 조선 사신 嚴璹가 중국문인과 한 『사고전서』 관련 筆談 기록은 조선 『무영전취진판서』 얘기의 시작으로 이후에도 조선은 『사고전서』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 정조는 명을 내려 『사고전서』를 사게 했고, 林濟遠, 李鼎運, 沈能翼 등이 계속 『사고전서』의 편찬 소식을 전했다. 李德懋도 중국 문인 潘庭筠에게 해당 서목을 구한 적이 있었다.
『무영전취진판서』의 조선 전래 후에 『武英殿聚珍版程式』의 활자제작방식이 生生 字와 整理字의 제작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개인이 활자를 제작할때 취진이라는 용어가 수용되기도 하였다. 또 장서각에 소장된 서목은 구서단자로써그 당시에 수입책의 가격을 파악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 규장각 장본은 총서본의 판본, 완질인지 낙장본이지 확인하는 데에 가치가 있다. 그리고 『무영전취진판서』 의구입으로 인해 한국의 중국저술의 장서가 풍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