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구원은 구원과 ‘사죄’의 은총 속에서 이루어지고 완성된다. ‘사죄’없이는 인간의 ‘죄’를 해결할 길이 없다. 다른 길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 받아 ...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T10789803
양평군 : 亞細亞聯合神學大學校 大學院, 2006
학위논문(석사)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대학원 , 신학과 조직신학 전공 , 2006. 2
2006
한국어
231.4 판사항(4)
234 판사항(22)
경기도
135p. ; 26cm
참고문헌: p. 130-135
0
상세조회0
다운로드기독교의 구원은 구원과 ‘사죄’의 은총 속에서 이루어지고 완성된다. ‘사죄’없이는 인간의 ‘죄’를 해결할 길이 없다. 다른 길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 받아 ...
기독교의 구원은 구원과 ‘사죄’의 은총 속에서 이루어지고 완성된다. ‘사죄’없이는 인간의 ‘죄’를 해결할 길이 없다. 다른 길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 받아 의롭다 인침을 받고 거룩함 입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후사가 되어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축복 속에서 영생을 얻는 것이다. 이 한 가지 길을 위하여 매진하고 달려가는 것이 바로 구원론이고 ‘사죄’의 은총이다. 그러나 바르트의 신학과 그의 구원론은 ‘사죄’없는 사죄에 전력을 다하고 철학적 논리와 칸트의 이성중심의 한계성 안에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잘못을 저질렀다. 바른 신학은 생명을 살린다. 신학의 모든 부분이 이 한 가지 열매인 구원을 위하여 매진해야한다. 바르트의 ‘사죄’이해는 말씀의 신학에 근거한다. ‘사죄’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인간의 전적 부패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절대적 도우심을 구해야만 한다. 우리의 사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는데 있다. 바르트에게는 ‘사죄’의 은총이 아니라 윤리학 만 남았다. 바르트는 ‘사죄’ 이전에 ‘하늘나라’를 부인한다. 참다운 ‘사죄’는 복음과 은혜 가운데에 존재한다. ‘사죄’는 우리의 ‘회개’가 수반 되어야 하는 것이다. 회개는 우리를 살린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감찰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참된 ‘화해자’가 되신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생명이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이미 사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시어 주님의 나라로 인도하신다. 바르트는 인식론적 논리와 칸트 철학의 범주 내에서 기독교 구원과 그 내용인 ‘사죄’를 이해했다. 그의 신학은 철학적 뼈대를 지니고 있을 뿐 참 다운 기독교 구원의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올바른 ‘사죄’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후대의 모든 이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였다. 그의 ‘사죄’는 구원 없는 사죄이다. 사죄 없는 사죄이며 생명과 능력을 지니지 않는 ‘사죄’이해이다. 바르트의 잘못된 ‘사죄’이해를 극복하고 기독교 신학의 바른 길을 열어가야 하겠다. 올바른 구원론적인 ‘사죄’는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부르심을 받아 회개하고 죄 사함 받아 ‘칭의’를 얻어 성령으로 거룩함 입고 의로운 가운데 성화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요한 칼빈’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서 ‘사죄’를 이해했고 ‘요한 웨슬레’는 오직 한 가지 구원을 위해 생명을 다했다. 이러한 믿음의 선배들의 토대위에 앞으로의 기독교 신학을 바로 세우고 참된 복음으로서 구원 얻는 올바른 ‘사죄’관을 확고히 해야 하겠다. 바르트의 ‘사죄’에는 인식론은 있으나 생명은 없다. ‘사죄’없는 ‘사죄’만이 관념 속에서 말해질 뿐이다. 바르트의 ‘사죄’는 기독교의 ‘사죄’이해가 아니며 성경 말씀에 입각한 ‘사죄’가 아니다. 그의 ‘사죄’에는 ‘사죄’가 없다.
목차 (Table of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