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구체적인 목적은 캐스린 태너(Kathryn Tanner)의 탈근대적 문화신학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에 있으며, 이를 위해 그녀의 주요 저서인 『문화 이론들: 신학을 위한 새로운 의제』(Theori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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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2014
학위논문(석사) --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 조직신학전공 , 2014. 8
2014
한국어
서울
Kathryn Tanner's postmodern theology of culture : theological embracement of postmodern cultural anthropology
v, 132 p. : 삽화 ; 26 cm
지도교수: 손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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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본 연구의 구체적인 목적은 캐스린 태너(Kathryn Tanner)의 탈근대적 문화신학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에 있으며, 이를 위해 그녀의 주요 저서인 『문화 이론들: 신학을 위한 새로운 의제』(Theories ...
본 연구의 구체적인 목적은 캐스린 태너(Kathryn Tanner)의 탈근대적 문화신학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에 있으며, 이를 위해 그녀의 주요 저서인 『문화 이론들: 신학을 위한 새로운 의제』(Theories of Culture: A New Agenda for Theology)을 중심으로 태너가 이끌어내고자 하는 주요 주제를 다룬다. 이 연구의 동기는 ‘탈근대 문화인류학적 개념으로서의 ‘문화’는 과연 신학과의 관계에서 유의미한 공명을 일으키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질문의 보다 근본적인 형태는 ‘과연 신학은 오늘날의 탈근대적 상황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것인가’이다. 이 시작 질문에 대해 필자는 태너의 탈근대적 문화신학을 통하여 ‘스스로 우상된 이들의 겸허한 자기 성찰’이라는 유의미한 대답이 도출된다고 주장한다.
본 논문은 논의를 위해 서두에서 ‘근대’를 이성중심주의로, ‘탈근대’를 탈중심주의로 용어적 의미를 분류한 후, ‘근대’의 관점에서의 문화신학을 기획한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와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문화신학을 고찰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문화신학은 한국교회의 문화신학의 방향성을 정위시키는 데에 큰 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와 ‘문화’ 사이, 그리고 ‘종교’와 ‘문화’ 사이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구조에 기반하여 양자간의 대화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근대’의 이성중심주의적 산물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러한 근대적 문화신학을 대체할 것으로서 태너의 탈근대적 문화신학을 소개한다. 그녀의 탈근대적 문화신학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본 논문에서는 그녀가 제안하는 ‘문화’의 의미의 탈근대적 이행 과정을 살펴보고, 또한 그러한 문화의 탈근대적 의미에 기반한 ‘신학’의 문제를 살펴본다. 우선적으로 그녀는 문화에 대한 근대적 이해가 야기하는 자문화중심주의와 관련된 실질적인 문제들을 지적하고, 그것이 탈근대 문화인류학 안에서 어떻게 수정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문화상대주의’로서의 탈근대적 문화 개념을 재구성한다. 이러한 재구성 작업은 신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는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는 신학 역시 문화의 한 부분이기 때문인데, 이는 ‘하나님’ 그 자체를 ‘문화’로 규정한다기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학문으로서의 ‘신학’, 그리하여 특정 공동체와 개인에 따라 모두 다른 삶의 양상과 방법을 규범으로 제시하는 것으로서의 ‘신학들’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문화인류학의 이러한 통찰력은 탈근대적인 접근을 수용하면서 여러 ‘신학들’ 사이에서의 권력 관계의 문제를 주의 깊게 살핀다. 즉 어떤 하나의 특정한 신학이 다른 신학들 위에 스스로 ‘하나님’인 양 군림하는 것을 경계하고, 다양한 신학들의 목소리에 의해 비판적으로 성찰되는 기반을 마련한다. 기독교의 정체성은 더 이상 획일적이고 보편적으로 정해질 수 없고,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됨에 대한 질문만을 과제로 공유하는 ‘논쟁의 공동체’로 남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태너의 문화신학의 궁극적 목표가 ‘스스로 우상된 이들의 겸허한 자기 성찰’에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은 태너의 문화신학이 한국교회에 만연한 ‘팽창중심주의’와 ‘분열 문제’에 대해서도 유의미한 제안을 던져주며, 또한 한국교회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문화신학’의 위상에 대해서도 더욱 포괄적인 이해를 제공해준다고 주장하면서 논의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