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군에 대한 기록은 사서에 어느 정도 등장하지만 정작 정의해놓은 것이 없기 때문에 많은 논의들이 이어져오고 있다. 본고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새롭게 규명해보았다. 첫째, 요대의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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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군에 대한 기록은 사서에 어느 정도 등장하지만 정작 정의해놓은 것이 없기 때문에 많은 논의들이 이어져오고 있다. 본고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새롭게 규명해보았다. 첫째, 요대의 규...
규군에 대한 기록은 사서에 어느 정도 등장하지만 정작 정의해놓은 것이 없기 때문에 많은 논의들이 이어져오고 있다. 본고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새롭게 규명해보았다. 첫째, 요대의 규집단은 특정 종족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아니라 心腹이라는 역할을 위해 모인 황제의 私有民 集團이다. 둘째, 요대의 규집단 중 각부족규군은 부족민의 관리를 위해 각부족 내에 비부족민인 규집단을 편제한 집단이다. 셋째, 금대의 규집단 중 서남북로의 10규군은 요대의 각부족규군이 금대에 변형되어 잔존한 집단이기 때문에 규군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금대에는 요대처럼 황제의 심복으로 부족민을 관리하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금대의 규군은 요대와 달리 부족에서 독립하였고, 거란인의 반란사건으로 거란인이 전부 동북로로 사민되면서 서북변 유목부족으로 구성된 규군만이 서남북로에 남게 되었다. 넷째, 금대의 규집단 중 동북로의 부족규군은 각 부족 내에 비부족민인 거란인이 편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요대의 각부족규군과 형태적 유사성을 보여 규군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즉 요대의 규집단과 금대의 서남북로 및 동북로의 규군은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집단이었지만 각집단이 가지는 유사성 때문에 같은 이름으로 불렸던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그래서 금 후기 규군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金朝에서는 몽골과 종족적으로 近緣한 서남북로의 규군은 쉽게 포기하였지만 거란족으로 구성된 동북로의 부족규군에 대해서는 끝까지 懷柔策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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