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초기 한국교회의 중심신앙이었던 종말론이 해방 이후를 기점으로 어떻게 변화를 거듭했으며, 각 시대마다 어떠한 종말론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말하면 왜 그 소중...
본 논문은 초기 한국교회의 중심신앙이었던 종말론이 해방 이후를 기점으로 어떻게 변화를 거듭했으며, 각 시대마다 어떠한 종말론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말하면 왜 그 소중한 복음진리인 종말론과 재림신앙이 변질되어 이단화(異端化) 되어가고, 교회의 강단에서 경시(輕視)되어가고 있는가? 라는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어쩌면 사도행전의 초대교회 사도들과 신자들처럼, 순교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고 신앙을 수호하였던 한국교회의 원동력은 바로 종말신앙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교회의 놀라운 성장과 생명력의 가장 중요한 근원 가운데 하나도 역시 종말신앙에 있다. 종말신앙은 일본의 식민통치, 특히 1935년부터 한국교회를 강타했던 신사참배의 도전과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이 소중한 신앙의 진리가 해방 이후와 6.25전쟁을 기점으로 하여 점점 변질되어가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본 논문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한국교회가 왜 종말신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뿌리내리게 되었는지에 관해 살펴보았다. 어떻게 한국교회는 초기 기독교의 시대부터 종말신앙을 갖게 되었는가? 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전통사상’과 ‘재한 미국선교사들의 종말론적인 신학’의 영향으로 보았다.
특히 한국교회 초기 종말론 형성의 종교적 문화적 배경으로써, 근본적인 뿌리가 되는 것은 역시 한국의 전통종교들의 세계관이다. 한국의 전통종교 즉 무교, 불교, 유교에는 종말론적인 암시들이 담겨있어서 초기 한국교회 종말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종말론적인 특징들은 해방 후 한국교회 신자들의 신앙형성, 특히 종말신앙형성에 있어서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본 연구자는 이점에 대해서는 해방(1945년) 이전으로 국한지어 설명하였다.
초기 한국교회 종말론 형성의 중요한 또 하나의 뿌리는, 재한 미국선교사들의 종말론적인 신학이다. 재림에 대한 전천년설 종말론적 기대, 즉 복음주의 신앙의 배경을 가지고 입국한 재한 미국선교사들의 종말론적 신학으로부터 받은 영향이다. 초기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순수하고도 매우 헌신적인 신앙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성도들의 재림에 대한 전천년설 종말론적 기대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종교들의 종말론적인 특색이 가미된 한국교회 만의 독특한 종말론은 일제치하의 혹독한 시련을 극복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초기 한국교회 종말신앙의 형성에 또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과 함께 한국교회의 영적인 부흥을 주도했던 길선주 목사의 종말론이다. 길선주 목사는 “종말의 희망을 알리는 나팔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의 종말론은 역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로써 한국교회사에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주었음을 밝혔다.
본 논문의 연구 주제인 해방 이후 한국교회 종말론에 관해서는 본격적으로 Ⅲ장부터 논의하였다. 해방 이후 시대구분은 크게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1)해방과 6.25전쟁 직후 혼란기(1945~1960), 2) 6·70년대 경제성장운동과 정착기(1960~1980), 3) 80년대 이후 성장기(1980~)이다. 본 연구자는 각 시대별 역사적 상황과 종말론적 특징들, 주요현상들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첫째로 해방과 6.25 직후 혼란기(1945~1960)의 한국교회 종말론에 관해 살펴보았다. 그 당시 역사적 상황을 보면, 해방 후 정치적 혼란과 남북한 교회의 재건, 6.25전쟁과 사회적 혼란, 한국교회의 분열이라는 사건들이 있었다. 그러한 역사적 사건들은 과연 어떻게 한국교회 종말론에 영향을 주었는가? 본 연구자는 해방 후 정치적·사회적·교회적 혼란 상황은 분명히 종말신앙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았다.
해방 후 남북한의 정치적 혼란과 교회의 분열, 6.25동족상잔 전쟁 직후 사회적 혼란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다시금 종말신앙에 의존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종말론적인 이단과 신흥종교가 우후죽순처럼 발흥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6.25전쟁 이후 사회적 혼란은 한국국민들과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힘들고 불합리한 이 세상의 현실너머 초월적인 세상을 추구하는 종말론적 동인(Motive)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6.25전쟁은 한국 땅에 종말론으로 무장한 신흥종교와 이단의 싹이 자라게 하는 역사적인 토양(土壤)을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민족적인 비극과 함께, 특히 한국교회의 분열은 그 당시 종말론 이단과 신흥종교 집단의 발흥케 하는 간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본다. 해방이후 그리고 6.25 동란 이후 특히 성행하게 된 종말론적 이단들의 탄생은 한국교회가 해방과 전쟁 후 교회의 재건이라는 무거운 사명을 감당해야만 했던 한국교회의 교단 분열과 동시대적으로 맞물려있다.
교회(교단)의 분열이 종말론적 이단의 발생에 직접적인 영향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동시대적으로 간접적으로 강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세포분열처럼 교회의 분열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