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교회는 교회안에 나타난 영적인 현상들에 의하여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중 성령의 은사에 대한 문제는 바울이 12-14장에서 다루고 있을 만큼 고린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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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 목원대학교, 2010
학위논문(석사) --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 신학과 신약신학전공 , 2010
2010
한국어
231.413 판사항(5)
231.13 판사항(21)
대전
39장 ; 26 cm
참고문헌: 장 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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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교회는 교회안에 나타난 영적인 현상들에 의하여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중 성령의 은사에 대한 문제는 바울이 12-14장에서 다루고 있을 만큼 고린도교회에 있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바울은 자신이 설립한 고린도교회가 다시금 성령안에서 바로 설 수 있도록 성령의 은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어 보냈던 것이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울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 째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주라 고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12:1-3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고린도교회안에 이교도적 예배의 형태 즉, 영적인 황홀경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들어오면서 고린도교인들은 성령에 대한 현상이나 은사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부분이 생겨났다. 바울은 고전 12:2의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라는 표현을 통해 고린도교인들의 잘못된 이해의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바울은 어떠한 황홀경의 경험을 하여야지만 성령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던 고린도교인들에게 예수를 주라 고백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둘째는 고린도교회에 나타난 모든 은사들은 한 성령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12장에서 이 같은 지적을 통하여 자신의 특정 은사를 가장 높은 차원의 은사로 생각하였던 교인들에게 모든 은사들의 근본적인 동등성을 확인시켜 주고자 하였다. 바울에 의하면 같은 한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은사들을 주시지만, 또한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각각 다른 은사들을 받는 다는 것이다(고전 12:4-11). 모든 은사들은 같으나,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은사를 받는 것은 아니다. 고린도교회에 나타난 다양한 은사들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것이다(고전 12:11). 그래서 이 모든 은사들은 몸의 지체와 같이(고전 12:12-30) 공동체 안에서 상호 의존하며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은사에 있어 사랑의 은사가 우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13장을 통하여 바울이 사랑의 은사를 고린도교회에 나타난 다른 은사들보다도 더 우위에 놓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고린도교회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문제(특히 방언의 문제)로 인하여 교회가 어지러워진 상황에 있었다(고전 14:33). 바울은 교회에 질서 있게 세워지기 위하여 사랑의 은사의 중요성을 지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예언과 방언, 지식은 모두가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것이지만 사랑은 언제까지나 영원한 은사이기 때문이다(고전 13:8-13). 바울에게 있어서 사랑은 ‘더욱 큰 은사’이며 ‘가장 좋은 길’이고, 동시에 모든 고린도교인들이 끊임없이 추구해야할 목표인 것이다.
넷째는 모든 은사가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12장에서뿐 아니라 14장에서 거듭 ‘교회의 덕’이라는 표현(고전 14:4,5,12)을 사용하면서 특별히 교회안에서 방언과 예언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바울에 의하면 방언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은사이기는 하나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하는 은사이다. 더구나 방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할 뿐 아니라 교회를 어지럽게 하였던 은사이기도 하였다(고전 14:33). 반면에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였기 때문에 바울은 방언을 하기보다 예언하기를 구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14장을 통하여 바울이 의도적으로 방언을 격하시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역으로 고린도교회안에 방언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성령의 은사 문제가운데서 다시 교회를 질서있게 다시 세우고자 하는 바울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앞서 서론에도 보았듯이 아직도 한국의 많은 교단과 교회, 목회자들 사이에는 방언을 최고의 은사로 생각하고, 방언을 하지 못하면 성령을 받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방언을 하기 위한 연습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에 만연되어진 모습이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바울이 보여준 은사에 대한 이해와 같이 이제 자신의 덕을 세우는 은사가 아닌 교회에 유익이 되는 은사가 필요할 때이다. 성령 역시, 우리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시면서 이제 받은 은사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교회를 다시금 질서 있게 세워나가기를 원하신다. 성령의 은사가 오늘날 한국 교회를 화평케 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어질 때, 무너져가는 수많은 교회들을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한국 교회를 통하여 나타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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