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접고 펼칠 수 있는 부채인 접선(摺扇)을 중심으로, 접선과 관련된 문화와 접선의 제작 과정, 제작자인 선자장을 비롯한 장인들과 접선의 제작 과정에 사용자들의 문화가 어떻게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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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4
학위논문(석사)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 문화유산융합학과 무형유산학 , 2024. 2
2024
한국어
충청남도
88 ; 26 cm
지도교수: 崔英成
I804:44031-20000074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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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접고 펼칠 수 있는 부채인 접선(摺扇)을 중심으로, 접선과 관련된 문화와 접선의 제작 과정, 제작자인 선자장을 비롯한 장인들과 접선의 제작 과정에 사용자들의 문화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연구하였다. 접선은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물리치는 실용적인 면 이상으로 다양한 문화적 의미 를 지녔다. 접선은 신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종류와 장식이 달랐다. 사용자의 권위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임금은 공을 세운 신하를 치하할 때 접선을 하사하였고 특히 단오에 접선을 선물하는 것은 중요한 연례 행사로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행해졌다. 뛰어난 품질로 조선을 대표하는 공예품이었던 접선은 외국의 사신들이 소유하기를 소망하는 경우가 많았고 외교품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다. 한편 조선 후기에 사대부 문인들이 그림을 그리는 문인화가 유행하였는데 접선은 이와 결합하였다. 접선에 시·서화를 장식하고 그러한 접선을 소지하는 것은 지식인 계층에서 자신의 학덕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접선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나무·종이·금속 등의 다양한 재료가 필요하였다. 따라서 각각의 재료를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중요하였다. 접선은 한 사람이 단기간에 만들 수 있는 물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양한 장인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접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자장(扇子匠)을 비롯한 죽장(竹匠)·지장(紙匠)·칠장(漆匠)·옥장(玉匠)과의 협업이 필요하였다. 이는 접선을 통해 무형의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공예 기술을 파악하게 해주고 기술을 체득하고 있는 사람까지도 이해하게 한다. 접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류층에게 필수품이 되었고 그들의 고상한 신분과 미적 감각을 반영할 필요성이 있었다. 장인들은 접선을 제작할 때 그들 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접선은 사용자의 신분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도, 고귀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탁월하였다. 부챗살에 그려진 박쥐무늬는 복을 기원하였고 매화와 국화의 사군자 무늬는 유교에서의 이상적 인간상인 ‘군자’의 상징성을 보여주었다. 조선의 학자들은 부채를 통해 음양사상과 성리학의 기철학(氣哲學)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특히 합죽선은 음양의 조화를 잘 보여준 공예품이었다. 본 논문에서는 접선의 기원과 역사, 접선이 가졌던 문화적 의미와 상징, 합죽선 제작 방법, 그리고 합죽선 제작에 반영된 접선문화를 밝혔다. 그간 선행연구에서 간과되었던 접선을 조명하여 접선의 생활문화와 기술문화까지 총체적으로 인식하려는 시도에 의의가 있다. 다만 유기물로 제작된 접선의 특성상 남아 있는 접선 유물의 수량이 부족하여 실제 유물을 분석하지 못한 점과 동아시아 3국의 접선의 교류와 비교를 파악하지 못한 점은 추후 연구과제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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