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30년대 北鮮의 도시 공간 변동 양상을 窮民救濟 治水事業과, 이후의 시가지계획 공간 결정이라는 식민통치정책의 적용과 연계하여 살펴보았다. 아울러 1930년대 북선 경기의 호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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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中央大學校 大學院, 2025
학위논문(박사) -- 중앙대학교 대학원 , 역사학과 한국사전공 , 2025. 2
2025
한국어
북선 ; 함흥 ; 흥남 ; 본궁 ; 성진 ; 청진 ; 일질콘체른 ; 전원개발 ; 함경선 ; 북선루트 ; 종단항 ; 북선개척사업 ; 궁민구제 치수공사 ; 성천강 개수공사 ; 한천천 호안공사 ; 수성천 개수공사 ; 조선시가지계획령 ; 저목장 ; 어항 ; 경화유 ; 공업용도지역 ; 유력자 이너서클 ; 진정활동 ; 北鮮 ; 咸興 ; 興南 ; 本宮 ; 城津 ; 清津 ; 日窒コンツェルン ; 電源開発 ; 咸境線 ; 北鮮ルート ; 終端港 ; 北鮮開拓事業 ; 窮民救済治水工事 ; 城川江改修工事 ; 漢泉川護岸工事 ; 輸城川改修工事 ; 朝鮮市街地計画令 ; 貯木場 ; 漁港 ; 硬化油 ; 工業用途地域 ; 有力者インナーサークル ; 陳情活動 ; Northern Korea ; Hamheung ; Heungnam ; Bongung ; Seongjin ; Cheongjin ; Nichitsu Konzern ; Electric Power Development ; Hamgyeong Railway Line ; Northern Korea Route ; Gate-way Port ; Northern Korea Development Project ; Public Relief Flood Control Project ; Seongcheongang River Improvement Project ; Hancheoncheon Riverbank Construction ; Suseongcheon River Improvement Project ; Joseon Urban Planning Ordinance ; Timber Storage Yard ; Hardened Oil ; Industrial Use Zone ; Inner Circle of Influential People ; Petitioning Activities
서울
(A) development of Northern Korea (北鮮) and formation of heavy and chemical industrial cities in 1930s : focusing on Hungnam, Seongjin and Cheongjin
1930年代 「北鮮 開發」と 重化學工業都市の形成 : 興南·城津·淸津を中心に
vi, 243 p. : 삽화(일부천연색), 지도(일부천연색), 도표 ; 26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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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 장규식
참고문헌수록
I804:11052-00000024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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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30년대 北鮮의 도시 공간 변동 양상을 窮民救濟 治水事業과, 이후의 시가지계획 공간 결정이라는 식민통치정책의 적용과 연계하여 살펴보았다. 아울러 1930년대 북선 경기의 호황과 맞물리면서 興南의 本宮과 城津, 淸津이 각각 중화학공업도시로 형성되는 과정을 다루었다. 본 연구에서는 당시 도시 공간 변동에 農工竝進으로의 산업정책 전환, 滿鮮連繫의 특수지로서 북선의 성격이 반영되고 있으며, ‘유력자 이너서클’의 구성 변화와 ‘모방’과 ‘경쟁’의 대응 양태가 나타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때의 변동이 식민정책의 일괄 적용과 관련이 있었던 관계로 도시별로 유사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1930년대 도시 공간 변동의 배경으로 1920년대 朝鮮總督府의 산업정책 추이를 살펴보았다. 3.1운동의 수습 과정에서 조선인에 대한 경제적 회유책으로 산업개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는데, 産米增殖計劃을 중점에 두고 계획에 수반하는 교통망 확충 등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산미증산계획은 농업을 통한 일본 자본의 유입을 시도하는 것이기도 했고, 이를 위한 사회간접자본의 확보는 또한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재원 등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선총독부는 1925년 전후의 시점에 산업개발의 의도를 본격적으로 드러내었다. 식민지배가 시작된 이후 조선총독부가 진행하던 각종 조사들이 대체로 마무리되고, 滿鐵로부터 조선철도 운영권을 회수하는 등 식민지배를 위한 기본 준비가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선의 개발은 조선총독부가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사안으로 떠올랐는데, 특히 철도망 확충을 전제로 한 각종 자원의 확보가 중요했다.
이때 북선의 자원 중에서는 풍부한 수력자원을 활용한 流域變更式 발전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赴戰江 水電에서 생산된 전력을 이용하고자 흥남에는 질소비료공장이 들어서고, 공장 주변으로 주거 및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섰다. 여기에 1928년 咸鏡線이 전 구간 개통하면서 북선 奧地 개척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함경선은 ‘북선루트’로의 접속을 통해 滿洲로의 연결을 강화함과 동시에 이후에 건설될 척식철도가 뻗어 나오는 주간선이 되었다. 이러한 북선의 각종 호재는 1930년대 북선에서 공업화 양상으로 수렴되어 갔다. 長津江, 虛川江 및 富寧水電으로 이어지는 전력자원 확보를 위한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 건설도 계속되었다. 본 연구의 대상이 되는 북선 도시는 ‘도시 공간의 성장’, ‘북선 지역의 부각’ 이 두 현상이 중첩되는 1930년대 最重要의 문제라 하겠다.
1930년대 북선 경기의 활황은 북선 도시에서 실시된 궁민구제 치수사업의 양상과 맞물리면서 공간 변동의 유사성을 만들어 냈다. 북선에서 각종 개발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도시별로 치수사업을 진행하여 홍수의 위협으로부터 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었는데, 大恐慌 대책의 궁민구제 치수사업을 통해 그 실현에 이르게 되었다. 함흥의 成川江, 성진의 漢泉川, 청진의 輸城川도 이에 따라 각각 治水工事가 진행되었다. 본궁을 중심으로 하는 성천강 改修工事는 함흥과 흥남의 연결성 강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졌다. 성진에서는 北鮮開拓事業으로 생산된 목재가 철도를 따라 집중된 물량을 처리하기 위한 貯木場 시설을 축조하고, 저목장 공사와 연동하여 한천천 護岸工事가 진행되었다. 청진의 경우 수성천 개수공사를 통해 홍수 피해가 컸던 기존의 수성천 유로를 수성평야 외곽으로 크게 우회시켜 제방을 건설하였다. 새롭게 조성된 제방 하구에는 淸津漁港이 조성되었다.
북선 도시 공간 변동의 유사성은 치수사업을 통해 확보된 부지를 중심으로 도시별 시가지계획 공간 결정이 이루어지면서 또한번 구현되었다. 1934년 朝鮮市街地計畫令 공포에 따라 도쿄를 원형으로 하는 공간 결정의 방식이 식민지 도시에도 적용되었는데, 이때 공간 결정의 핵심은 기성 시가지의 확장과 신도시 조성이라는 다소 변형된 형태였다. 경성에서는 기존 시가지의 확장 방식이 적용된 반면 북선의 도시에서는 교통결절점 인근으로 새롭게 시가지를 펼치는 방식이 적용되었다. 함흥과 흥남은 성천강을 따라 본궁으로 시가지를 확장하는 추세에 따라 하나의 도시권을 염두에 둔 연계된 형태로 시가지계획이 수립되었다. 성천강 제방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본궁 일대는 주로 석유화학 관련의 공장 용지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두 도시 사이의 연결성이 강화되면서 시가지계획 또한 각각 인접한 본궁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성진의 시가지계획은 저목장 시설부터 漢泉川을 따라 북쪽 蓮湖洞 공장지대로의 확장이 주된 내용으로 일본마그네사이트공장이 들어섰으며, 아울러 저목장 외곽의 雙浦洞에는 일본고주파공장이 건설되었다. 청진은 수성천의 유로변경으로 확보된 공간에 대규모 공장을 유치하였는데, 청진어항에는 朝鮮油脂를 비롯한 硬化油工場이 부지를 가득 채웠고, 인근 부지로 미쓰비시제강소, 일본제철 청진공장 등이 들어섰다.
이와 같이 본 연구에서 중점을 둔 유사성의 문제는 결국 1930년대 북선 도시의 확장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이는 기존 시가지 외곽의 비어 있는 공간을 공장지대로 포섭하는 일련의 과정이기도 했다. 당시 북선 도시의 공간 변동은 산업도시의 그것과 유사한 형태로 도시 정체성이 변경되는 과정을 포괄하였다. 관련하여 공업용도지역의 설정도 이루어졌다. 공장이 들어서게 되는 위치는 특수지로서의 북선의 성격이 반영된 것으로 하얼빈 以東의 동북만주를 직접영향권으로, 하얼빈 以西 일대를 간접영향권으로 하는 철도망과 국경 인근으로 강화된 도로교통이 만들어내는 물류구조가 수렴되는 지점에 해당하였다.
아울러 본 연구에서는 식민지 도시 공간의 변화를 견인하던 조선총독부와 ‘유력자 이너서클’의 한계점을 각각 지적하였다. 우선 조선총독부가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었다는 서술의 태도를 취하였다. 조선총독부의 예측은 많은 부분 빗나갔다. 농업 생산 위주의 산업정책 양상은 米價 하락으로 조선총독부가 기존의 정책을 포기함에 따라 農工竝進으로 변경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원래 농민 위주의 사업으로 구상되었던 窮民救濟土木事業 또한 기존에 기획된 역할과는 달리 도시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유력자 이너서클’의 한계점과 관련하여서는 이른바 ‘아래로부터의 개발’이 조선총독부가 효율성을 추구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 보다 온당함을 논증하였다. 당시 북선의 도시에서는 重役兼任의 형태로 '유력자 이너서클'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1930년대 북선 도시 공간의 변화 양상과 관련하여 이들 ‘유력자 이너서클’ 또한 다양한 陳情活動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우가키(宇垣一成) 총독과 같이 이들의 활동에 부정적인 경우도 있었고, ‘유력자 이너서클’이 형성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의 범위가 한정적이다보니 일본 대자본의 진출 앞에서 버텨낼 수 있는 한계가 명확했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에서는 도시의 공간 변동이 해당 도시에 살았던 거주민에게 끼친 영향관계를 ‘유력자 이너서클’의 '모방'과 '경쟁'으로 구조화하여 설명하였다. ‘북선루트’와 종단항 나진의 등장은 다른 북선 도시들이 ‘모방’해야 할 이상적 모델이 되었다. 성진은 惠山線과 성진항을 이용하여 중부 滿洲를 연결하는 새로운 終端港이 되고자 했다. 함흥은 咸中線 부설 관련 진정활동의 논리로 興南港을 종단항으로 설정한 뒤 中江鎭을 경유 滿洲國 新京에 이르게 될 경로를 제시하였다. 한편 ‘경쟁’의 논리는 치수사업과 시가지계획을 거치며 새롭게 조성된 공업적지에 공장을 유치하기 위한 것으로 북선 내부의 도시들 사이에서만 아니라 북선 밖 식민지 내 유사한 조건의 도시들과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도시 공간 변동을 둘러싸고 ‘모방’과 ‘경쟁’의 논리가 작동하였던 것 또한 마찬가지로 북선 도시에서의 유사성이 도드라져 보이는 주요한 이유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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