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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40년대 일본의 대외전쟁과 '怨親平等供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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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논문은 근대일본의 불교계에서 거행된 ‘피아전사자공양’을 일본사회 고래의 불교적 자비심 혹은 휴머니즘의 발로로 파악하는 통설을 비판하고, 1930~40년대에 거행된 ‘피아전사자공양’의 근저에 존재하는 정치적 맥락을 규명하려 한 논고이다. 근대일본의 ‘피아전사자공양’이 원친평등(怨親平等, 원수[적군]와 근친[아군]은 평등하다)이라는 불교용어를 매개로 전개된 점을 감안하여 이 시기의 ‘피아전사자공양’을 ‘원친평등공양’으로 규정하고, 그 구체적인 전개양상을 면밀하게 추적했다.
      1930~40년대의 ‘원친평등공양’은 ‘국책’을 배경으로 정형화되어갔다. 만주국 성립을 계기로 불교를 통한 선무공작이 부각되는 가운데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원친평등공양’은 각종 방중・방일 사절단과 시찰단을 매개로 하여 ‘중일친선’의 표상으로 연출되었다. 이러한 패턴은 아시아태평양전쟁기에 이르러 한층 강화되었다. ‘귀축미영’의 격멸과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이 주창되는 가운데, ‘중일친선’의 표상으로서의 ‘원친평등공양’은 일본과 중국 양방향에서 흡사 통과의례처럼 거행되었다.
      ‘원친평등공양’이 선무공작일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생자에 대한 회유라는 맥락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무공작으로서의 ‘원친평등공양’에는 “우리 일본인은 원친평등의 견지에서 중국인 전사자도 공양하고 있다. 중국인 여러분도 원친평등의 견지에서 일본인에 대한 원한 같은 것은 버리라”는 내용의 프로파간다가 함의되어 있었다.
      프로파간다로서의 ‘원친평등론’이 유행하기 시작하던 무렵, 군관민이 일체화된 관음신앙운동이 활발해진다. 이 운동은 ‘동아민족’ 누구나 인지할 수 있는 관음보살을 매개로 ‘흥아’를 실현해간다는 내용의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회일반의 동향과 프로파간다로서의 ‘원친평등론’이 결합한 지점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남경대학살의 책임자로 전후에 처형)의 흥아관음(興亞觀音)이었다. 두려움 없고 자비로운 ‘성전’이 계속해서 수행되고 있던 당시 상황에서, 흥아관음은 장차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흥아의 초석’을 수용하는 ‘기억장치’로 설정되었다. 흥아관음이라는 ‘기억장치’를 통해 ‘성전’은 끊임없이 호명되고 정당화되었다. 전사자공양을 표방하는 흥아관음의 면전에서 전승기원의 법회가 펼쳐져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러한 문맥 속에 존재한다.
      이처럼 1930~40년대의 ‘원친평등공양’에서 종교적 자비심은 일종의 외피로 기능했으며, 승자의 정치적 입장이 노골적으로 투영된 프로파간다야말로 그 핵심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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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근대일본의 불교계에서 거행된 ‘피아전사자공양’을 일본사회 고래의 불교적 자비심 혹은 휴머니즘의 발로로 파악하는 통설을 비판하고, 1930~40년대에 거행된 ‘피아전사자공양...

      본 논문은 근대일본의 불교계에서 거행된 ‘피아전사자공양’을 일본사회 고래의 불교적 자비심 혹은 휴머니즘의 발로로 파악하는 통설을 비판하고, 1930~40년대에 거행된 ‘피아전사자공양’의 근저에 존재하는 정치적 맥락을 규명하려 한 논고이다. 근대일본의 ‘피아전사자공양’이 원친평등(怨親平等, 원수[적군]와 근친[아군]은 평등하다)이라는 불교용어를 매개로 전개된 점을 감안하여 이 시기의 ‘피아전사자공양’을 ‘원친평등공양’으로 규정하고, 그 구체적인 전개양상을 면밀하게 추적했다.
      1930~40년대의 ‘원친평등공양’은 ‘국책’을 배경으로 정형화되어갔다. 만주국 성립을 계기로 불교를 통한 선무공작이 부각되는 가운데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원친평등공양’은 각종 방중・방일 사절단과 시찰단을 매개로 하여 ‘중일친선’의 표상으로 연출되었다. 이러한 패턴은 아시아태평양전쟁기에 이르러 한층 강화되었다. ‘귀축미영’의 격멸과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이 주창되는 가운데, ‘중일친선’의 표상으로서의 ‘원친평등공양’은 일본과 중국 양방향에서 흡사 통과의례처럼 거행되었다.
      ‘원친평등공양’이 선무공작일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생자에 대한 회유라는 맥락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무공작으로서의 ‘원친평등공양’에는 “우리 일본인은 원친평등의 견지에서 중국인 전사자도 공양하고 있다. 중국인 여러분도 원친평등의 견지에서 일본인에 대한 원한 같은 것은 버리라”는 내용의 프로파간다가 함의되어 있었다.
      프로파간다로서의 ‘원친평등론’이 유행하기 시작하던 무렵, 군관민이 일체화된 관음신앙운동이 활발해진다. 이 운동은 ‘동아민족’ 누구나 인지할 수 있는 관음보살을 매개로 ‘흥아’를 실현해간다는 내용의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회일반의 동향과 프로파간다로서의 ‘원친평등론’이 결합한 지점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남경대학살의 책임자로 전후에 처형)의 흥아관음(興亞觀音)이었다. 두려움 없고 자비로운 ‘성전’이 계속해서 수행되고 있던 당시 상황에서, 흥아관음은 장차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흥아의 초석’을 수용하는 ‘기억장치’로 설정되었다. 흥아관음이라는 ‘기억장치’를 통해 ‘성전’은 끊임없이 호명되고 정당화되었다. 전사자공양을 표방하는 흥아관음의 면전에서 전승기원의 법회가 펼쳐져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러한 문맥 속에 존재한다.
      이처럼 1930~40년대의 ‘원친평등공양’에서 종교적 자비심은 일종의 외피로 기능했으며, 승자의 정치적 입장이 노골적으로 투영된 프로파간다야말로 그 핵심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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