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의 국가론을, 더 정확히는 레비나스가 주창하는 국가의 정신과 의미 그리고 그 한계를 고찰하기 위해선 다양한 층위에서 폭넓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에 본 과제는 4가지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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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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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나스의 국가론을, 더 정확히는 레비나스가 주창하는 국가의 정신과 의미 그리고 그 한계를 고찰하기 위해선 다양한 층위에서 폭넓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에 본 과제는 4가지 단계를 설정한다.
첫째, 레비나스 윤리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위치와 관련한 연구다. 이를 위해선 레비나스 저작에서 산발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국가에 대한 논의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특히 『전체성과 무한』, 『존재와 달리 또는 존재성을 넘어』, 『자유와 명령』 및 1980년대 이뤄진 인터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해관계와 관련한 힘들의 관계를 조절하는 정치, 그리고 구체적 형태로서의 국가가 비인격적인 권력의 남용에 그 자신을 내맡길 때 발생하는 위험은 엄청나다. 국가의 이성은 그것이 합법적인 경우라 하더라도 폭력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국가, 제국주의적이며 전체주의적이고 억압적인 국가, 현실적 에고이즘에 결부된 국가”를 넘어서려 한다.
둘째, 자유주의 국가와 레비나스적 국가의 관계를 검토하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국가의 전체주의적 경향을 비판하는 가운데 자유주의 국가를 옹호한다. 거기서 “자기를 문제 삼을 수 있는 국가”, “항상 그 자신의 정의가 정말로 정의인지를 묻는 국가”의 가능성을 간취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국가가 그 유토피아적 계기와 관련하여 일정 정도 용인되곤 있지만, 그는 개인으로부터 비롯하는 자유주의 국가관으로부터 완전히 거리를 둔다. 오히려 “자유주의가 우리가 인간 주체의 본질적 존엄성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전부인가?”라고 되묻는다. 전통 정치철학과 레비나스 사이의 근본적 거리는 결코 경시될 수 없다. 레비나스가 내세우는 정치는 자유주의 정치 시스템의 세 모티브, 즉 개인, 개인의 합리적 평화, 개인의 경제적 협정과 결코 화해할 수 없다.
셋째, 「히틀러주의 철학에 대한 몇 가지 반성」을 검토하는 일이 요구된다. 국가사회주의를 철학적으로 탐구한 이 논문은 근대 자유주의 전통에 대한, 자유주의와 결별한 마르크스주의의 불충분성에 대한 심도 깊은 비판을 담고 있다. 그는 파시스트적 사유방식과, 자유를 가장 높은 이상으로 간주하는 서구 전통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자면, 자유주의에서 인간의 자유는 신체에 대한 정신의 우위에서 비롯한다. 그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이런 발상에 의문을 제기한 대표적 원리로 마르크스주의를 제시하지만, 마르크스주의가 자유주의와 완전히 단절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마르크스의 논의는 여전히 동일자의 논리 안에 빠져 있다는, 타자의 이해에, 타자의 고통과 자신의 고통을 동일시하는 사태에 기초해 있다는 것이다. 레비나스에서 자유주의와 파시즘은 모두 보편주의다. 파시즘은 유일한 인간을 민족에 포함시키는 보편주의고, 자유주의는 그를 대문자 인간에 종속시키는 보편주의라는 것이다.
넷째, 「카이사르의 국가와 다윗의 국가」 및 「국가 안에서 국가를 넘어」를 면밀히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탈무드를 독해하는 랍비의 입을 빌어 정치 공간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가운데 카이사르의 국가와 다윗의 국가를,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의 국가와 탈무드적 국가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제시한다. 랍비 전통에서, 바벨론, 로마 제국은 전체주의적인 국가를, 정치와 가치의 분리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서 예견한 폭력적인 식민지 팽창주의를 대표한다. 레비나스는 역사적인 혹은 정치적인 국가 ‘너머’에 있는, 메시아적 국가에 해당하는 ‘다윗의 국가’를 이야기한다. 특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그가 히브리 성경에 나타나는 ‘왕위’ 개념을 통해 메시아니즘과 정치를 결합시키려 한다는 점, 그러면서 그 최초의 사례로 이스라엘 국가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현실 이스라엘 국가와 메시아니즘에 대한 해석의 변화를 추적하는 가운데 말이다. 그러나 로마는 로마가 아니며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아니다. 이 두 국가는 정치에 접근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읽힐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