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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목민의 꽃-몽골여자복식의 흐름 (출판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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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몽골복식과 한국복식간의 관계를 세밀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몽골 여자복식의 형성과 변화의 모습을 고대에서부터 전체적으로 연구하였다. 몽골 여자 복식의 역사를 구분하는 기준은 차례대로 제국 형성 이전의 몽골 여자복식의 원형, 원(Yuan) 및 기타의 몽골 제국기 의복, 북원 시기 및 청(Ching) 간섭기에 형성된 몽골 여자복식으로 나눌 수 있다.

      몽골 의복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유목민적(nomadic)’ 요소로, 거친 유목생활에서의 편리한 활동을 위한 것이었다. 주로 실용적인 면이 두드러지고 기마와 추위에 강하며 남녀 차가 없거나 유목 상징성이 강한 의상들이 포함된다. 대표적인 예는 소매가 좁고 깊게 여며지며 무릎 아래까지 내려가는 긴 델(deel)이었다, 그러나 14세기 전후 몽골 부인의 경우에는 기마와 활쏘기에 편하고 추위를 막는 의복들과 함께 상징성이 강한 복타(bogtag)를 필수적으로 착용해 유목상징성이 강한 의복을 입었다.
      이러한 의복들은 제국의 번영기에는 유목 정신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제국 쇠퇴 이후 청의 간섭을 받은 시기에는 떼르구르 우스(황소뿔 머리장식)등으로 변형되어 저항과 독립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둘째는 ‘정치 외래적’ 요소인데, 몽골제국의 기초를 이루었던 유목민 생활 외에, 활발한 정복활동으로 인한 잦은 외국과의 접촉과 그 문화적인 영향을 수입하여 형성된 의복을 말한다. 전에 없었던 새로운 재료와 의복과 관련된 외국 유행의 다량 도입, 거주지와 도읍을 옮기면서 발생한 지리적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의복, 정치적인 이유에서의 상대국의 관복 도입 등을 포함한다.
      몽골 제국들 중 원(Yuan) 제국은 온화한 기후의 중원에 자리잡았고, 고려양 등 다른 나라의 문물을 적극 도입하면서 본래의 몽골 유목풍과 원 제국풍의 차이가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청 간섭기에는 정치적인 관계로 인해 몽골에서 청 관복과 복식 디테일을 많이 도입했으나, 학살 정책에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부인 복식의 앞섶의 가리개(올바른 엥게르) 등은 청 복식의 디테일이 저항과 항쟁의 의미로 변형된 것이었다.

      셋째는 ‘종교적’ 요소로서, 몽골인의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친 샤머니즘(Shamanism)과 라마이즘(Lamaism), 기타 종교에서 파생된 의복의 문양과 장신구가 일반 여자복식에 끼친 영향을 말한다. 고대 몽골의 정신적 지주였던 샤머니즘은 라마이즘의 도입 이후 세력이 약화되었으나, 부리얏(Buriyat)을 비롯한 북부 몽골 지역에서 꾸준히 보존되며 라마이즘과 함께 여자의 의복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특징들을 담고 있는 몽골 여자복식은, 몽골이 역사적으로 주도권을 잡고 있던 몽골 제국기 전후와 이후 영향력이 약해지는 시기 등 각 시기에 따라 그 변화의 모습이 다소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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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복식과 한국복식간의 관계를 세밀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몽골 여자복식의 형성과 변화의 모습을 고대에서부터 전체적으로 연구하였다. 몽골 여자 복식의 역사를 구분하는 기...

      몽골복식과 한국복식간의 관계를 세밀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몽골 여자복식의 형성과 변화의 모습을 고대에서부터 전체적으로 연구하였다. 몽골 여자 복식의 역사를 구분하는 기준은 차례대로 제국 형성 이전의 몽골 여자복식의 원형, 원(Yuan) 및 기타의 몽골 제국기 의복, 북원 시기 및 청(Ching) 간섭기에 형성된 몽골 여자복식으로 나눌 수 있다.

      몽골 의복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유목민적(nomadic)’ 요소로, 거친 유목생활에서의 편리한 활동을 위한 것이었다. 주로 실용적인 면이 두드러지고 기마와 추위에 강하며 남녀 차가 없거나 유목 상징성이 강한 의상들이 포함된다. 대표적인 예는 소매가 좁고 깊게 여며지며 무릎 아래까지 내려가는 긴 델(deel)이었다, 그러나 14세기 전후 몽골 부인의 경우에는 기마와 활쏘기에 편하고 추위를 막는 의복들과 함께 상징성이 강한 복타(bogtag)를 필수적으로 착용해 유목상징성이 강한 의복을 입었다.
      이러한 의복들은 제국의 번영기에는 유목 정신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제국 쇠퇴 이후 청의 간섭을 받은 시기에는 떼르구르 우스(황소뿔 머리장식)등으로 변형되어 저항과 독립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둘째는 ‘정치 외래적’ 요소인데, 몽골제국의 기초를 이루었던 유목민 생활 외에, 활발한 정복활동으로 인한 잦은 외국과의 접촉과 그 문화적인 영향을 수입하여 형성된 의복을 말한다. 전에 없었던 새로운 재료와 의복과 관련된 외국 유행의 다량 도입, 거주지와 도읍을 옮기면서 발생한 지리적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의복, 정치적인 이유에서의 상대국의 관복 도입 등을 포함한다.
      몽골 제국들 중 원(Yuan) 제국은 온화한 기후의 중원에 자리잡았고, 고려양 등 다른 나라의 문물을 적극 도입하면서 본래의 몽골 유목풍과 원 제국풍의 차이가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청 간섭기에는 정치적인 관계로 인해 몽골에서 청 관복과 복식 디테일을 많이 도입했으나, 학살 정책에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부인 복식의 앞섶의 가리개(올바른 엥게르) 등은 청 복식의 디테일이 저항과 항쟁의 의미로 변형된 것이었다.

      셋째는 ‘종교적’ 요소로서, 몽골인의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친 샤머니즘(Shamanism)과 라마이즘(Lamaism), 기타 종교에서 파생된 의복의 문양과 장신구가 일반 여자복식에 끼친 영향을 말한다. 고대 몽골의 정신적 지주였던 샤머니즘은 라마이즘의 도입 이후 세력이 약화되었으나, 부리얏(Buriyat)을 비롯한 북부 몽골 지역에서 꾸준히 보존되며 라마이즘과 함께 여자의 의복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특징들을 담고 있는 몽골 여자복식은, 몽골이 역사적으로 주도권을 잡고 있던 몽골 제국기 전후와 이후 영향력이 약해지는 시기 등 각 시기에 따라 그 변화의 모습이 다소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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