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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품 수집과 조선, 그리고 세리자와 케이스케와의 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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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야나기 무네요시는 1930년대 일본사회에서 생활 속의 미를 찾아 민예운동을 일으킨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야나기를 「조선의 미」를 발견한 인물 또는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양심적인 ...

      야나기 무네요시는 1930년대 일본사회에서 생활 속의 미를 찾아 민예운동을 일으킨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야나기를 「조선의 미」를 발견한 인물 또는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이며 조선에 대한 이해자로 널리 인식되어져 오고 있다. 일반인들이 접하는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한 정보 혹은 글들은 근대인들에 의해 극히 미화된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로 「조선의 친구에게 보내는 글」을 발표할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현재 한국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야나기를 근대 조선에 대한 최고의 이해자라는 시각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2008년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야나기 조선민예품 수집을 보여준 「문화적 기억 - 야나기 무네요시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이 열렸을 때 한국의 저명한 미학자는 신문에 야나기를 미화하는 내용 일색의 글을 썼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야나기 소장의 조선민예품의 첫 친정나들이라는 거창한 캐치프레이즈와는 사뭇 거리가 느껴지는 초라한 내용의 것이었다. 이 전시회에서는 일본민예관이 소장하고 있는 엄청난 가치의 조선민예품 가운데 이미 알려진 것들의 존재조차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조선총독부 지휘아래 이루어진 조선에 대한 각종 문화재 발굴 및 조사 사업과는 별도로 같은 시기에 민간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야나기의 수집활동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본민예관에서는 동경, 오사카에서 정기적으로 민예를 테마로 야나기가 수집한 민예품들을 일반인에게 전시하고 있다. 올해는 야나기의 민예운동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담당한 세리자와 케이스케(芹沢銈介)와 야나기 무네요시의 장남인 야나기 요시타카(柳悅孝)의 염색과 직조에 관한 (染と織のしごと) 전시회가 열린다.
      세리자와는 야나기가 근대 일본사회에 「민예」운동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일부분을 담당한 인물이며 1956년 일본의 인간국보(重要無形文化財保持者)로 지정되었다. 평생 야나기와의 교류를 통해 일본 전국 각지의 전통공예의 기법을 조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디자인을 통한 작품세계를 구축하여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다. 세리자와는 평생을 통해 야나기의 조언과 응원을 받았던 인물로 야나기와 함께 「日本民藝地圖屛風」을 제작하였다.
      「日本民藝地圖屛風」은 1941년 일본민예관에서 처음 공개되었으며 그 후 1970년 오사카만국박람회 당시 만바쿠일본민예관에 출품되어 전시되었으나 그다지 일반인에게 친근하지 않은 작품, 자료로 이해되어져 왔다. 그러나 「日本民藝地圖屛風」은 야나기가 중심이 되어 전개되어진 일본민예운동의 목표와 성과를 가늠하게 하는 작품으로 새롭게 인식되어질 필요가 있다. 「日本民藝地圖屛風」은 야나기에 의해 일본 본토 및 메이지 이후 일본 제국의 영토로 편입된 지역, 그리고 대륙침략의 최종 영역을 목표로 제작되어지던 중 일본의 패전으로 제작이 중단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체가 만들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조선의 민예품 산지를 민예지도화한 것의 존재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후 세리자와에 의해 만들어진 지도병풍에는 철도망이 표시되어 있으며 그 범위는 北海道에서 九州까지 이외에도 조선과 만주, 타이완, 중국에까지 미치고 있다.
      일본민예관의 소장품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근대이전 동북아지역의 민족국가를 단위로 수집되어 있다. 이는 야나기의 한국에서 행보와 족적이 「조선인」들에 대한 연민과 이해로 위장된 자신의 수집욕구에 근거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야나기는 자신이 「조선」의 친구이며 최대의 이해자임을 강조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협력과 지원을 받았다. 야나기의 조선민예품 수집을 위한 행보와 발자취를 살펴봄으로써 비정치적이고 인도적이라는 위장된 평화적 이미지에 감춰진 야나기의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야나기의 한국과 관련된 행보와 족적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규명함과 동시에, 조선에서 그의 행적을 야나기가 기록한 수집여행기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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