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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의 영화 통제 정책과 만주영화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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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만주국은 명목상으로는 독립 국가였지만 사실상은 일제의 식민지였다. 일본의 ‘제국 판도’ 가운데 가장 먼저 국책으로서의 영화를 통제한다는 구상이 실천에 옮겨진 곳이 일본이 아니라 만주국이었다는 사실은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 글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서 출발했다. 이 글에서는 일제의 문화 선전 정책의 한 전형으로 만주국에서 일제가 어떻게 영화를 통제하려고 했는가 하는 문제를 검토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논의의 초점은 만주국의 국책 영화 회사인 만주영화협회에서 실시한 순회 영사 활동이다.
    만주국에서는 일본보다 2년이나 앞선 1937년에 이미 문화 선전 분야의 만주국 최대 국책 회사 또는 아시아 최초의 영화 통제 회사라고 알려진 만주영화협회가 만들어지고 일제 식민지 지배 체제 최초의 문화 관련 통제법인 영화법이 제정되는 등 일찍부터 영화 통제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일제는 만주영화협회를 내세워 중국 민중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순화시키려는 공작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공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것이 바로 순회 영사 활동이었다. 순회 영사란 영사기를 비롯해 영화 상영에 필요한 각종 기재를 갖고 영화관이 없는 지역을 순회하면서 지역 주민에게 선전을 위해 특별히 선정된 영화를 보여주는 활동을 가리킨다.
    1940년을 전후한 시기에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손꼽히는 영화 생산국이었다. 이는 영화라는 새로운 근대 문화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식민지점령지는 일본과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었다. 물론 식민지점령지에서도 영화 문화가 빠른 속도로 정착되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시의 일부 청소년층에 국한된 것이었다. 식민지점령지에서 인구 구성상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촌 주민에게 영화를 접할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영화를 선전전의 주요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제한된 공간을 뛰어넘어 피지배 민족 전체를 대상으로 농촌 벽지로까지 영화 매체가 확대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제가 추진한 것이 바로 순회 영사 활동을 대규모로 조직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먼저 하나의 정책으로 구현되고 실행에 옮겨진 것이 바로 만주국이었고 그 주체가 만주영화협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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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국은 명목상으로는 독립 국가였지만 사실상은 일제의 식민지였다. 일본의 ‘제국 판도’ 가운데 가장 먼저 국책으로서의 영화를 통제한다는 구상이 실천에 옮겨진 곳이 일본이 아니라 ...

    만주국은 명목상으로는 독립 국가였지만 사실상은 일제의 식민지였다. 일본의 ‘제국 판도’ 가운데 가장 먼저 국책으로서의 영화를 통제한다는 구상이 실천에 옮겨진 곳이 일본이 아니라 만주국이었다는 사실은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 글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서 출발했다. 이 글에서는 일제의 문화 선전 정책의 한 전형으로 만주국에서 일제가 어떻게 영화를 통제하려고 했는가 하는 문제를 검토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논의의 초점은 만주국의 국책 영화 회사인 만주영화협회에서 실시한 순회 영사 활동이다.
    만주국에서는 일본보다 2년이나 앞선 1937년에 이미 문화 선전 분야의 만주국 최대 국책 회사 또는 아시아 최초의 영화 통제 회사라고 알려진 만주영화협회가 만들어지고 일제 식민지 지배 체제 최초의 문화 관련 통제법인 영화법이 제정되는 등 일찍부터 영화 통제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일제는 만주영화협회를 내세워 중국 민중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순화시키려는 공작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공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것이 바로 순회 영사 활동이었다. 순회 영사란 영사기를 비롯해 영화 상영에 필요한 각종 기재를 갖고 영화관이 없는 지역을 순회하면서 지역 주민에게 선전을 위해 특별히 선정된 영화를 보여주는 활동을 가리킨다.
    1940년을 전후한 시기에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손꼽히는 영화 생산국이었다. 이는 영화라는 새로운 근대 문화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식민지점령지는 일본과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었다. 물론 식민지점령지에서도 영화 문화가 빠른 속도로 정착되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시의 일부 청소년층에 국한된 것이었다. 식민지점령지에서 인구 구성상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촌 주민에게 영화를 접할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영화를 선전전의 주요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제한된 공간을 뛰어넘어 피지배 민족 전체를 대상으로 농촌 벽지로까지 영화 매체가 확대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제가 추진한 것이 바로 순회 영사 활동을 대규모로 조직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먼저 하나의 정책으로 구현되고 실행에 옮겨진 것이 바로 만주국이었고 그 주체가 만주영화협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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