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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경 똥장수: 어느 중국인 노동자의 일상과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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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청말 이래로 북경에서 분뇨처리업은 국가로부터 자립지향과 동시에 국가의 기능을 보완하는 민간사회의 영역이었다. 똥장수는 공공위생의 개선에 기여하는 대가로, 분뇨처리에서 독점적 지위를 국가적·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 요컨대 똥장수들은 공의식과 사리추구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민국시기에 들어와 이들 똥장수들은 시민들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고 시정부의 개혁대상이 되면서 시정부와 똥장수 사이에 대립과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이러한 갈등의 이면에는 똥장수들의 신분이 똥상인들에게 예속되어 있는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들 똥장수들은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하기보다는 똥상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손쉽게 동원되기도 하였다.
    20세기 전반 도시화의 진전 속에서 환경위생의 개혁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고 있었지만, 똥장수들은 개혁의 주도권을 선취하기 보다는 똥상인들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사리추구를 더욱 노골화하였다. 더욱이 시정부가 위생개혁을 실시하면서 똥장수의 신분보장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똥장수들은 위생개혁이 똥장수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똥상인들의 주장에 쉽게 설득당했다. 똥장수들은 제1차 분뇨처리업 개혁시기 시정부와 대응하면서 정부개혁을 좌절시킨 경험을 전유하고 있어서, 시정부의 위생개혁안에 쉽사리 타협하려고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위생개혁을 늦출 수 없었던 시정부가 무력을 동반한 제2차 분뇨처리업 개혁을 강행하자 결국 똥장수들은 시정권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1937년 중일전쟁이 폭발하면서 북경은 일제 통치하로 편입되었고, 일제는 북평시정부의 위생행정을 계승하고자 하였다. 일제는 환경위생 역시 북평시정부의 위생정책을 계승하고자 하였으며, 똥장수에 대한 정책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이었다. 일제는 이미 등록이 끝난 일반 똥장수 이외에 떠돌이 똥장수에 대해서도 등록을 강제하였으며, 장마철 똥장수들의 태업에 대해서도 강력한 단속을 실시하였다.
    20세기 전반 위생행정의 일대 혁신과 똥장수 일상생활의 변화는 신중국성립 이후 발생했다. 신중국 성립이후 중국정부는 1949년과 1950년 두 해에 걸쳐 분변처리 관련 법안을 쏟아냈다. 법안의 핵심은 全市에 분변관리소와 분변처리장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1951년 11월에는 똥장수와 수많은 갈등을 빚어왔던 분뇨처리구역(이른바 糞道)을 시정부가 환수하고, 1,148개소에 달하는 분뇨창고 역시 회수하였다. 아울러 분뇨창고와 똥상인에 예속된 똥장수들을 전원 시정부 직속으로 전환함으로써 수 백 년을 끌어왔던 위생개혁의 중요과제를 갈무리했다. 그러나 전염병의 확산과 환경위생은 여전히 사회적 과제였다. 이 때문에 전염병의 확산에 대비하고,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이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었는데, 이 운동을 애국위생운동이라고 한다. 사실 이 운동은 신중국 성립 이후 전염병예방과 환경개선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던 위생방역운동을 계승한 것으로서, 위생운동에 반제·민족주의적인 요소를 결합시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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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말 이래로 북경에서 분뇨처리업은 국가로부터 자립지향과 동시에 국가의 기능을 보완하는 민간사회의 영역이었다. 똥장수는 공공위생의 개선에 기여하는 대가로, 분뇨처리에서 독점적 ...

    청말 이래로 북경에서 분뇨처리업은 국가로부터 자립지향과 동시에 국가의 기능을 보완하는 민간사회의 영역이었다. 똥장수는 공공위생의 개선에 기여하는 대가로, 분뇨처리에서 독점적 지위를 국가적·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 요컨대 똥장수들은 공의식과 사리추구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민국시기에 들어와 이들 똥장수들은 시민들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고 시정부의 개혁대상이 되면서 시정부와 똥장수 사이에 대립과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이러한 갈등의 이면에는 똥장수들의 신분이 똥상인들에게 예속되어 있는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들 똥장수들은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하기보다는 똥상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손쉽게 동원되기도 하였다.
    20세기 전반 도시화의 진전 속에서 환경위생의 개혁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고 있었지만, 똥장수들은 개혁의 주도권을 선취하기 보다는 똥상인들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사리추구를 더욱 노골화하였다. 더욱이 시정부가 위생개혁을 실시하면서 똥장수의 신분보장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똥장수들은 위생개혁이 똥장수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똥상인들의 주장에 쉽게 설득당했다. 똥장수들은 제1차 분뇨처리업 개혁시기 시정부와 대응하면서 정부개혁을 좌절시킨 경험을 전유하고 있어서, 시정부의 위생개혁안에 쉽사리 타협하려고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위생개혁을 늦출 수 없었던 시정부가 무력을 동반한 제2차 분뇨처리업 개혁을 강행하자 결국 똥장수들은 시정권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1937년 중일전쟁이 폭발하면서 북경은 일제 통치하로 편입되었고, 일제는 북평시정부의 위생행정을 계승하고자 하였다. 일제는 환경위생 역시 북평시정부의 위생정책을 계승하고자 하였으며, 똥장수에 대한 정책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이었다. 일제는 이미 등록이 끝난 일반 똥장수 이외에 떠돌이 똥장수에 대해서도 등록을 강제하였으며, 장마철 똥장수들의 태업에 대해서도 강력한 단속을 실시하였다.
    20세기 전반 위생행정의 일대 혁신과 똥장수 일상생활의 변화는 신중국성립 이후 발생했다. 신중국 성립이후 중국정부는 1949년과 1950년 두 해에 걸쳐 분변처리 관련 법안을 쏟아냈다. 법안의 핵심은 全市에 분변관리소와 분변처리장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1951년 11월에는 똥장수와 수많은 갈등을 빚어왔던 분뇨처리구역(이른바 糞道)을 시정부가 환수하고, 1,148개소에 달하는 분뇨창고 역시 회수하였다. 아울러 분뇨창고와 똥상인에 예속된 똥장수들을 전원 시정부 직속으로 전환함으로써 수 백 년을 끌어왔던 위생개혁의 중요과제를 갈무리했다. 그러나 전염병의 확산과 환경위생은 여전히 사회적 과제였다. 이 때문에 전염병의 확산에 대비하고,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이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었는데, 이 운동을 애국위생운동이라고 한다. 사실 이 운동은 신중국 성립 이후 전염병예방과 환경개선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던 위생방역운동을 계승한 것으로서, 위생운동에 반제·민족주의적인 요소를 결합시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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