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이 중화민국사상 가장 중요한 정치인물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 이견을 가진 연구자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생전에 생산된 문건들은 중국의 정치·외교·군사 등 각종 현안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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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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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개석이 중화민국사상 가장 중요한 정치인물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 이견을 가진 연구자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생전에 생산된 문건들은 중국의 정치·외교·군사 등 각종 현안에 대한 장개석의 입장과 태도를 살피는데 있어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자료이다. 이들 자료들은 당연히 중국에서의 한국독립운동, 해방 전후 내지 70년대 초반까지 한중관계사 연구에 있어서도 가장 소중한 의미를 지닌 일차사료이다.
카이로회담에서 장개석이 거듭 전후 한국의 독립을 주창하여 미․영 두 나라 영수의 동의를 얻게 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전후 동북아 질서의 재편과정에서 중국이 일정한 지분을 행사하고 나아가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장개석의 전후 구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전후 한국독립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였던 장개석도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임시정부 승인에는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이는 다른 나라에 앞서 임시정부를 승인함으로써 중국이 한국문제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열강의 우려를 의식한 탓이었다. 이외에도 해방을 전후한 시기 임시정부와 이승만에 대한 장개석의 인식과 전후 구상 등 많은 이슈들과 관련한 자료들이 장중정총통당안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직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 자료와 외교자료를 통해 해방 전후 장개석의 대한인식과 한반도문제에 대한 구상을 살펴보는 것이 본 연구의 첫 번째 주제이다.
국공내전이 국민당에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던 시대상황과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적극적인 반공노선 전환, 유럽에서 반공을 표방한 집단안보체제 형성 움직임이 가시화된데 자극받아 장개석은 중화민국이 주축이 되어 한국과 필리핀이 참여하는 태평양반공연맹을 구상하게 된다. 당장 중국대륙의 공산화가 현실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장개석은 공산세력의 확산을 막기 위한 반공국제조직 성립에 사활을 걸었고, 협력의 동반자로 필리핀과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장개석은 직접 두 나라를 방문하여 반공연맹 조직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여기서 주목되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태평양반공연맹은 필리핀 퀴리노대통령이 맨 처음 제안한 것이 아니라 장개석의 구상이었음을 관련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논의된 태평양반공연맹 추진 배경과 이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전개된 한중관계의 이면, 태평양반공연맹 구상이 한국전쟁 후 아시아민족반공연맹 결성에 어떤 작용을 하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작업이 본 연구의 두 번째 주제이다.
중국이 한국 독립에 적극 개입하고 최소한 탁치국의 일원으로 한국문제에 간여할 수 있기를 희망하였던 것은 남북한의 대결구도가 중국 동북지역은 물론 동아시아의 평화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자국의 이익에 착안하여 장개석은 한국의 운명을 결코 좌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구체적 표현 가운데 하나가 미·소의 군정지배를 실패한 것으로 판단하고 한국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 소련 외에 중국과 영국이 함께하는 4개국협상론을 제기한 것이다. 다자간 협상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유지 내지는 확대하려는 것이 중화민국, 곧 장개석의 대한인식과 방침의 핵심이었다.
한국문제에 있어서 장개석의 인식과 구상은 시종일관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고 강화하는데 출발점과 목적이 있었다. ‘장중정총통당안’과 당시 주한, 주미대사관과 중화민국외교부 사이에 오간 외교자료를 통해 대한민국정부수립 무렵부터 한국전쟁 발발 시까지 장개석의 대한인식과 구상을 살펴보고, 동시에 당시 대만언론에 나타난 대한인식과 반응을 통해 격동기 한중관계를 재조명하는 것이 본 연구의 세 번째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