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식민자와 조선 - 일제시기 大池忠助의 지역성과 ‘식민자’로서의 위상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G3678696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아래로부터의 ‘조선식민자’ 또는 ‘풀뿌리 식민자’라고 할 수 있는 재조일본인의 성장과 식민자로서의 위상을 대표적인 인물의 사례를 통해 파악하고자 한다. 이는 식민자의 범주를 확인하는 것이며 그 각각의 차이를 통해 제국주의의 다층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재조일본인 중 성장과 위상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되는 인물을 선택하고 시기별 조선 이주자들의 특징과 식민지에서의 성장과 그 위상을 계별 사례지만 ‘釜山의 大池’에서 ‘朝鮮의 大池’로까지 명명되었던 오이케 추스케(大池忠助)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사례 연구가 지니고 있는 대표성의 문제를 극복한다면 미시적인 관점에서 거시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역사 연구 방법론으로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묘사는 미시사적 측면에서 더욱 빛을 발하기에 지나친 의미 부여와 과장을 피한다면 일제시기 식민자의 모습을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재조일본인으로 대표되는 ‘풀뿌리 식민자’의 성장과 관련하여 그간의 연구에서는 주로 일제의 조선 침략에 기생하여 성장하는 모습들을 강조하였다. 그렇기에 경제적 성장과 그에 대한 정치적 요인이 중심적으로 지적되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오히려 일제의 조선 침략은 초창기 이주한 일본인들에 의해 추진된 경향이 크며 이를 기반으로 성장한 일본인들은 스스로 ‘식민개척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이들 연구에서는 조선으로 들어오기 전 일본에서의 성장배경과 그 과정에서 맺어진 인적 네트워크가 식민지에서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분명 새로운 식민지에서의 성장은 모험적이고 힘든 일이었다. 따라서 식민권력의 최고 정점인 조선총독부 또는 조선주차군 등의 정치 군사적 인적 네트워크는 큰 힘을 발휘하였으며 이를 통해 다른 재조일본인보다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는 그러한 인적 관계망의 형성이 조선으로 이주하기 전에 이루어진 것과 구별되는 식민지라는 지역적 특징이 식민자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착목하고자 한다. 재조일본인의 성장과 소멸이 식민지라는 공간에 결부되어 있는 이상 그 성장 또는 식민지라고 하는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 것은 상식일 수도 있다. 이를 경험 연구를 통해 그 점을 확인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또 다른 특징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부산지역의 일본인신문인 <<釜山日報>>와 <<朝鮮時報>>를 통해 오이케의 지역(부산)을 기반으로 한 각종 인적 연결망을 세밀하게 검토하여 어떻게 성장해 갔는지를 일차적으로 드러낼 것이다. 즉, 식민지 내의 지역성(locality)이 어떻게 재조일본인을 ‘조선의 식민자’로 전환시켰는지를 추적할 것이다. 더불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기서 주요한 무대로 삼고자 하는 식민지라고 하는 공간은 식민지 조선의 관문일 뿐만 아니라 대륙의 관문인 부산이라고 하는 지역이다. 주지하다시피 부산은 일본제국주의와 함께 성장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공간이다. 일제의 개항요구에 의해 최초로 강제 개항되기 이전부터 일본과의 무역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인들의 성장은 이와 함께 연동해서 추진되었다. 그렇기에 부산지역은 개항 이후 재조일본인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최적의 연구 대상 지역이 된다. 부산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일본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을 뿐만 아니라, 개항 이후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일본인 사회가 형성 정착된 도시이다. 개항 이후 15년이 되는 1891년의 경우만 해도, 부산의 일본인 인구는 5천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당시 서울 거주 일본인 인구의 5배가 넘는 수치였다. 이처럼 일찍부터 일본인 사회가 형성된 부산은 일제시기에 이르러서도 전국에서 일본인의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였을 뿐만 아니라, 이들 일본인들이 다양한 사회조직을 이루면서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도 다른 어느 도시보다 심각했다. 이러한 부산의 역사적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면, 부산을 기반으로 성장한 재조일본인 연구는 일제시기 식민지배세력이었던 일본인과 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식민지배구조의 특성, 그것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연구하는 데 더없이 좋은 하나의 연구 모델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번역하기

      본 연구는 아래로부터의 ‘조선식민자’ 또는 ‘풀뿌리 식민자’라고 할 수 있는 재조일본인의 성장과 식민자로서의 위상을 대표적인 인물의 사례를 통해 파악하고자 한다. 이는 식민자의 ...

      본 연구는 아래로부터의 ‘조선식민자’ 또는 ‘풀뿌리 식민자’라고 할 수 있는 재조일본인의 성장과 식민자로서의 위상을 대표적인 인물의 사례를 통해 파악하고자 한다. 이는 식민자의 범주를 확인하는 것이며 그 각각의 차이를 통해 제국주의의 다층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재조일본인 중 성장과 위상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되는 인물을 선택하고 시기별 조선 이주자들의 특징과 식민지에서의 성장과 그 위상을 계별 사례지만 ‘釜山의 大池’에서 ‘朝鮮의 大池’로까지 명명되었던 오이케 추스케(大池忠助)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사례 연구가 지니고 있는 대표성의 문제를 극복한다면 미시적인 관점에서 거시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역사 연구 방법론으로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묘사는 미시사적 측면에서 더욱 빛을 발하기에 지나친 의미 부여와 과장을 피한다면 일제시기 식민자의 모습을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재조일본인으로 대표되는 ‘풀뿌리 식민자’의 성장과 관련하여 그간의 연구에서는 주로 일제의 조선 침략에 기생하여 성장하는 모습들을 강조하였다. 그렇기에 경제적 성장과 그에 대한 정치적 요인이 중심적으로 지적되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오히려 일제의 조선 침략은 초창기 이주한 일본인들에 의해 추진된 경향이 크며 이를 기반으로 성장한 일본인들은 스스로 ‘식민개척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이들 연구에서는 조선으로 들어오기 전 일본에서의 성장배경과 그 과정에서 맺어진 인적 네트워크가 식민지에서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분명 새로운 식민지에서의 성장은 모험적이고 힘든 일이었다. 따라서 식민권력의 최고 정점인 조선총독부 또는 조선주차군 등의 정치 군사적 인적 네트워크는 큰 힘을 발휘하였으며 이를 통해 다른 재조일본인보다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는 그러한 인적 관계망의 형성이 조선으로 이주하기 전에 이루어진 것과 구별되는 식민지라는 지역적 특징이 식민자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착목하고자 한다. 재조일본인의 성장과 소멸이 식민지라는 공간에 결부되어 있는 이상 그 성장 또는 식민지라고 하는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 것은 상식일 수도 있다. 이를 경험 연구를 통해 그 점을 확인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또 다른 특징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부산지역의 일본인신문인 <<釜山日報>>와 <<朝鮮時報>>를 통해 오이케의 지역(부산)을 기반으로 한 각종 인적 연결망을 세밀하게 검토하여 어떻게 성장해 갔는지를 일차적으로 드러낼 것이다. 즉, 식민지 내의 지역성(locality)이 어떻게 재조일본인을 ‘조선의 식민자’로 전환시켰는지를 추적할 것이다. 더불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기서 주요한 무대로 삼고자 하는 식민지라고 하는 공간은 식민지 조선의 관문일 뿐만 아니라 대륙의 관문인 부산이라고 하는 지역이다. 주지하다시피 부산은 일본제국주의와 함께 성장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공간이다. 일제의 개항요구에 의해 최초로 강제 개항되기 이전부터 일본과의 무역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인들의 성장은 이와 함께 연동해서 추진되었다. 그렇기에 부산지역은 개항 이후 재조일본인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최적의 연구 대상 지역이 된다. 부산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일본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을 뿐만 아니라, 개항 이후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일본인 사회가 형성 정착된 도시이다. 개항 이후 15년이 되는 1891년의 경우만 해도, 부산의 일본인 인구는 5천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당시 서울 거주 일본인 인구의 5배가 넘는 수치였다. 이처럼 일찍부터 일본인 사회가 형성된 부산은 일제시기에 이르러서도 전국에서 일본인의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였을 뿐만 아니라, 이들 일본인들이 다양한 사회조직을 이루면서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도 다른 어느 도시보다 심각했다. 이러한 부산의 역사적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면, 부산을 기반으로 성장한 재조일본인 연구는 일제시기 식민지배세력이었던 일본인과 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식민지배구조의 특성, 그것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연구하는 데 더없이 좋은 하나의 연구 모델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