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재일기는 이문건이라는 한 개인의 생활사에 대한 기록에서 그치지 않고 16세기 문화사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없이 소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16세기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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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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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묵재일기는 이문건이라는 한 개인의 생활사에 대한 기록에서 그치지 않고 16세기 문화사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없이 소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16세기 사...
묵재일기는 이문건이라는 한 개인의 생활사에 대한 기록에서 그치지 않고 16세기 문화사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없이 소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16세기 사대부 계층이 자신들의 탄금 취미를 충족하기 위해 선택한 악기가 거문고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異論의 여지가 없지만, 묵재일기는 이 사실에 대해 좀 더 정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그 결과, 16세기에는 5척 길이의 거문고와는 별도로 3척 길이의 거문고인 短琴이 널리 유통되었고, 6현의 단금과는 별도로 5현의 단금도 존속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금은 거문고에 비해 가볍고 짧아서 휴대가 용이하고 연주의 수고를 덜 수 있는 이점이 있었기에 이문건은 상황에 따라 두 악기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연주하곤 했다.
악기의 상업적 유통 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16세기의 상황에서 사대부 계층의 탄금취미를 충족시키기 위한 琴의 제작과 보급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 역시 묵재일기를 통해 모색해 볼 수 있었다. 琴을 제작하는 일은 노역을 수반했기에 사대부가 직접 도구를 잡고 이 일에 가담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이문건도 금재를 자르고 다듬는 노역은 家奴나 官奴를 시켜서 하곤 했다. 琴 제작의 실질적인 작업은 공사 노비들이 맡아 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이들 노비 중에서 전문 제작자가 배출되곤 했다. 이문건이 琴 제작 솜씨에 감탄한 진주의 私奴나, 상주 관청에 예속되어 琴을 전문으로 만드는 일에 종사한 琴工의 존재가 묵재일기에서 확인되는 것도 그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그런데, 묵재일기에서 琴의 제작과 보급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인물은 이문건 자신이었다. 이문건이 직접 琴을 제작하는 일에 뛰어들었던 것은 당시 琴의 수급 체계가 열악했던 성주의 실정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성주는 상주와 마찬가지로 敎坊이 설치된 지역이기에 관청에서는 기생들의 악기를 공급하고 수리하는 일을 맡은 匠工을 반드시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상주와는 달리 성주에는 琴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금공이 없고 木匠이 이 일을 대신 맡아 하면서 官長의 명에 따라 사대부들의 琴 제작 요구에 부응하기도 했다. 게다가 성주 목장들의 기량은 그리 높지 않아 이문건에게 와서 琴 제작 기술을 배워가며 작업을 진행하는 수준이었다. 이문건이 굳이 다른 지역에서 철기를 구해 와서 제작 도구를 만들고, 琴絲를 그의 처가 직접 만들어 제공했던 사실이나, 성주 지방관들조차 이문건에게 琴의 수리를 맡기거나 琴을 빌려서 사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성주에서 琴의 수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terms of Geum, Hyun-geum were together used to refer to Geomungo in the book of Mukjaeilgi .The term of Geum was never used to mean Gayagenm. When the term of Geum was said instead of Hyungeum, everyone knew it referred to Geomungo. The word of Ge...
The terms of Geum, Hyun-geum were together used to refer to Geomungo in the book of Mukjaeilgi .The term of Geum was never used to mean Gayagenm. When the term of Geum was said instead of Hyungeum, everyone knew it referred to Geomungo. The word of Geum had such a firm place as the abbreviation for Hyungeum that any confusion did not occur in its meaning. But it was two musical instruments called Hyungeum and Dangeum that the noblemen chose to play for their hobby of playing the Geum. Dangeum is three cheok (about 90㎝) long and a little lighter and its production period is shorter in comparison with those of 5 cheok (about 150㎝) Hyungeum. Thus Hyungeum was usually used for indoor played instrument while Dangeum was played at party held outside or on Jeongza, a kind of gazebo thanks to the advantage of being portable. Dangeum generally was made of six strings like Hyungeum. Also Five string Dangeum removed the string on the outside was used, too.
The productive process and method of Geum has not changed over the years. The production of Geum requires much detailed handwork and Sophisticated technique such as cutting, trimming and pasting various accessories as well as main wood and several bridges(kwae) for Geum. Only a few noblemen such as Lee, Mun-geon could make and rep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