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조선전기 두만강 유역 여진 번호의 성장과 발전, 소멸의 전개 과정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과제 수행을 위한 연구 내용을 연차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차년도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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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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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전기 두만강 유역 여진 번호의 성장과 발전, 소멸의 전개 과정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과제 수행을 위한 연구 내용을 연차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차년도는 '조선 변경의 허와 실:두만강 유역 여진 번호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주제이다. 1차년도의 연구 목적은 기존 선행 연구를 참고하는 동시에 관련 사료의 분석을 통해 번리·번병·번호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하는데 있다. 이와 함께 두만강 유역 여진 번호의 성장과 발전 양상을 파악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특히 압록강, 두만강에 대한 조선의 인식을 비교하는 동시에 조선의 변경 정책과 번호의 성장, 발전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규명한다. 즉 변경을 개척한 조선은 번리를 구축하여 심처야인의 공격을 직·간접적으로 막아주는 1차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위태로운 변경지대를 안정화시킬 수 있었다. 이후 150여 년 동안 이러한 안정화 정책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번호라 지칭되는 두만강 유역의 여진인들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집중화는 조선에 결코 유리하지만은 않았다. 결국 급성장한 번호들은 자신들의 보다 많은 이익을 위하여 조선의 통제에서 벗어나려 했고, 번호들의 조선 배반과 공격이 이어졌던 것이다. 번호의 공격은 1차 방어선이 도리어 조선을 공격하는 것과 같았기에 충격과 피해가 심각할 수밖에 없었으며, 거듭된 번호의 침입 앞에 새로운 변경정책의 변화가 요구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차년도는 '여진 번호의 조선 침구 양상과 조선의 대응 분석'이라는 주제이다. 2차년도의 연구 목적은 급속히 성장한 두만강 유역 여진 번호들의 조선 침구 양상과 이에 대한 조선의 대응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규명하는 것이다. 명종대 번호의 조선 침구의 시작과 선조대 니탕개·노토의 조선 침구 양상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조선의 대응과 정책을 분석한다. 즉 명종대부터 일어난 두만강 유역의 여진 번호들의 조선 침구와 배반 양상은 선조대가 되면 더욱 심각해져 임진왜란 직전 최대의 외침이라고 불리는 소위 ‘尼蕩介의 亂’ 사건이 일어났다. ‘니탕개의 난’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니탕개는 회령 부근의 번호였다. 니탕개는 여진 기병 2만여 명을 규합하여 두만강 유역에 있던 5진을 횡행하였으며, 조선은 시전 부락 토벌로 이에 대응하였다. 이후 임진왜란의 발발로 5진을 둘러싸고 있던 조선의 군사력이 약화되자 번호들의 이탈도 가속화되었다. 본격적으로 조선을 배반한 번호가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산의 번호였던 老土를 시작으로 종성의 번호였던 阿堂介가 배반하였는데, 이들은 조선을 침구하였을뿐만 아니라 다른 번호들을 공략하였다. 이 즈음부터 ‘叛胡’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바로 조선을 배반한 번호를 의미한다. 한편 번호들의 반란에 대해 조선은 정토로만 대응한 것은 아니었다. 번호들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자신들의 요구하는 생활필수품을 얻을 수 없고, 경제적인 부분이 해소되지 않자 조선을 침입하였던 것이다. 이에 번호들의 경제적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변경에 開市를 설치하여 주면서 번호를 예전처럼 조선에 복속시키려 하기도 하였다. 즉 강온양면의 번호 복속 정책을 유지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두만강 유역은 이제 조선과 번호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과 번호, 그리고 이들을 공략하여 편입하려는 건주부의 누르하치 등이 얽히면서 복잡한 양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3차년도는 '누르하치의 두만강 유역 번호 침탈과 조선의 대응 고찰'이라는 주제이다. 3차년도의 연구 목적은 누르하치의 두만강 유역 번호 침탈과 이에 대한 조선의 대응을 살펴보는 것이다. 여기서는 건주부와 홀라온부(후룬 4부)의 발전을 살펴보고, 홀라온부(후룬 4부) 및 건주부 누르하치의 번호 침탈 과정으로 인한 번호의 소멸상을 규명한다. 먼저 건주부의 누르하치 보다 더 적극적으로 두만강 유역의 조선 번호를 공략한 것은 홀라온부였다. 홀라온부의 공략을 피해 두만강 유역의 번호들은 홀라온과 경쟁관계에 있었던 건주부의 누르하치에게 귀부한 경우가 상당하였으며, 누르하치 역시 조선에 직첩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누르하치는 조선의 번호에 대한 직접적인 공략 대신 번호들을 유인하여 건주부로 率去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에 우선 조선에 서계를 보내어 번호 솔거에 대한 요청을 하였고, 조선은 누르하치의 번호 솔거 협상 요청을 거부하기도 하였지만, 누르하치가 홀라온을 격파한 이후부터는 군사적 열세를 인정하고 가급적 직접적인 충돌은 피하려고 하였다. 또한 두만강 유역의 번호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경제적 대우를 지속하려 하였지만, 누르하치가 조선의 번호 역시 자신의 족류라는 동족의식을 표방하면서도 군사력을 앞세워 번호를 대거 솔거하는 것에는 역부족이었으며, 두만강 유역의 여진 번호는 소멸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