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가의 무가화’, ‘무가의 공가화’의 양태를 보이는 ‘공무체제’는 ‘공무분리’와 ‘공의로의 일원화’를 지향하는 오다·도요토미 정권의 출현으로 변용되었다. 본 연구는 ‘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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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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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가의 무가화’, ‘무가의 공가화’의 양태를 보이는 ‘공무체제’는 ‘공무분리’와 ‘공의로의 일원화’를 지향하는 오다·도요토미 정권의 출현으로 변용되었다. 본 연구는 ‘공무체제’라는 새로운 개념을 바탕으로 기존 일본 중근세 국가체제를, 일본인들이 바라보는 분석틀이 아니라 외국사를 전공하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일본 중·근세 국가상을 재구축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공무체제’라는 개념을 자세히 규명하고, 나아가 공무체제의 전개 및 해체과정을 고찰한다. 본 연구에서는 ‘공무체제’의 구조를 크게 (1) 사상과 이념, (2) 제사와 의례, (3) 정치구조와 법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 그 변용과정을 분석한다.
(1) 제1차년도 : 사상과 이념
12세기 후반 겐지(源氏)와 헤이시(平氏)가 싸웠을 때, 안토쿠 천황 등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다이라 씨는 자신이 ‘관병(官兵)’임을 내세워 겐지의 토벌을 정당화하였다. 조정은 ‘관’이며 그 명령을 대행하는 다이라 씨도 ‘관’이었다. 자연스레 겐지는 반군(朝敵)이 되었다. 그런데 반란군으로 규정되어 명분상 수세에 몰려 있던 겐지가 내세운 명분은 ‘의병(義兵)’이었다. ‘관’과 ‘의’의 대립이다. 그 후 가마쿠라를 거쳐 무로마치 시기에 이르러 공무가 융합하는 과정에서 관과 의를 아우르는 새로운 개념이 나타났는데 이것이 바로 공이었다. 고대 율령제에서 유래하는 조정의 권위 혹은 통치의 정당성을 의미하는 ‘관’의 사용빈도는 자연스럽게 격감되어 갔다. 무사정권은 ‘무위(武威)’를 내세워 국가수호(守護)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조정·사사 등의 구세력과 민중까지를 아우르기 위해서는 보다 보편적 관념에 입각한 ‘공’을 표방할 수밖에 없었다. 무가가 무가임을 표방하는 ‘무위’의 개념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흔히 ‘무위’란 무가의 위광(威光)을 지칭하며 가마쿠라 시기부터 빈출되는 용어이다. 본 연구에서는 그 중에서도 특히 ‘무위’관념을 무가만이 독점하고, 공가와 사사에게는 다른 관념을 강요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2) 제2차년도 : 제사와 의례
무로마치 시기에 들어와 나타난 새로운 종교 현상은 무가(무로마치도노:室町殿)를 위한 기도가 정착되었다는 점이다. 원래 도지(東寺)를 비롯한 중앙의 대사원은 천황(원)을 종교적으로 호위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무로마치 시대에 이르러 도지 등 전통 대사원은 그 기도 대상을 무가까지 확대하였다. 물론 무가(쇼군)을 위한 기도자체는 가마쿠라시기부터 존재하였지만, 현밀계 사원이 무가만을 위한 종교기도조직을 갖추어 항상적으로 기도를 올리게 된 점에 무로마치 시기의 특징이 있다. 기도(제사)와 더불어 의례의 측면에서도 공무융합의 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 가령 가마쿠라 시기 쇼군이 외출할 때 행렬은 무가적 군진(軍陣)형태의 행렬과 공가풍 행장의 두 계열이 존재하였다. 무로마치 초기에는 이와 유사하여 두 계열이 존재하였으나, 중기 이후 무로마치 막부의 의례가 정비되면서 방생회 상경(上卿)과 같은 공가적 의례에도 새로 생긴 쇼군의 어공중(御供衆)과 같은 무가중이 행렬에 새로 포함되어, 문자 그대로 방생회는 ‘공무’의 의례로 변하였다. 일반적으로 중세 무사의 지표는 활이며, 무사의 ‘무위’는 종종 활을 통해 표출하고 있다. 그런데 무로마치 시대에 들어와 활을 쏘아 과녁을 맞추는 새로운 연중의례가 공가사회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와 아울러 이 행사가 무로마치의 마지막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추방한 이후 오다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후 귀족들이 즐겨하고 있던 어유큐 행사가 거의 사라지거나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점에도 주목하였다.
(3) 제3차년도 : 정치구조와 법
공무체제를 운영하는 실상을 이해하기 위해 구체적인 정치구조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무로마치 시대 공무체제의 정치 시스템을 파악하기 위해 양자 즉 공과 무의 연결고리인 무가전주와 소시다이(所司代)가 주목하였다. 특히 오다 시기 “제사(諸寺)·제사(諸社)의 전주는 천황 뜻에 맡겨져”온 것이 역사적 선례이면서도, 오다 정권과 도요토미 시기 무가전주를 제어하는 것의 의미를 살펴본다. 아울러 오다 시기 무가전주를 통한 대조정 교섭이 현저히 감소하는 추세의 의미, 도요토미 시기 무가전주의 격이 오다 시기에 비해 기쿠데이 하루스에(菊亭晴季), 가주지 하루토요(勸修寺晴豊), 나카야마 지카쓰나(中山親綱), 고가 아쓰미치(久我敦通) 등 청화가급으로 높아진 현상 등의 의미를 재검토한다. 또한 본 연구는 무가전주와 소시다이와 관련한 무로마치, 오다·도요토미 시기의 법체계를 분석하여 공무체제가 법적으로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가 하는 점도 주된 분석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