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시기 한국을 살다 간 일본인들에게 ‘敗戰’은 한국인보다 더욱 갑작스러웠다. 한국사회의 주류로만 살아온 그들은 빠른 시일내에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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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Korean
아시아 태평양 전쟁 ; Damage awareness ; Memory of the history ; Repatriation ; The Pacific War in Asia ; Defeat experience ; Postwar society ; War experience ; History recognition ; 송환 ; 인양 ; 재한일본인 ; 전쟁경험 ; 전쟁기억 ; 피해의식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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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식민지시기 한국을 살다 간 일본인들에게 ‘敗戰’은 한국인보다 더욱 갑작스러웠다. 한국사회의 주류로만 살아온 그들은 빠른 시일내에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
식민지시기 한국을 살다 간 일본인들에게 ‘敗戰’은 한국인보다 더욱 갑작스러웠다. 한국사회의 주류로만 살아온 그들은 빠른 시일내에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처해졌다. 미소군의 진주와 함께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철수가 우선 진행되는 가운데, 군을 포함한 민간인 대부분은 일본으로 귀환(일본식 표기 引揚)되었다.
2차대전 종전 무렵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인구는 70만명 이상였으며, 35만명의 일본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전황이 불리해지는 가운데 소련군의 참전을 앞둔 일본군과 조선총독부는 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특히 소련과 근접한 함경남북도의 경우 항전태세를 취하려는 군과 피난을 떠나는 행정부가 상반된 대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속에서 함경북도 대도시는 화염에 뒤덮이고 있었다. 8월 10일 나진헌병대에서는 중요서류가 소각되고 있었고, 14일 회령에서는 경찰서․관공서․은행․철도 및 군사 관련시설 등이 파괴되며 시가지가 불타고 있었는데, 이는 도청이 소재한 청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각지에서의 화재는 급히 피신하는 일본인 관리들의 방화에 의해 자행된 것이었다. 한편 나남지구 사령부는 8월 15일 군관구사령부로부터 정전소식을 듣고, 전투중지를 알리는 군사령관 명의의 삐라도 수거했지만 좀처럼 이를 믿으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소련군에 대한 야습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평안도의 경우는 피난을 떠나려는 이들과 만주에서 소개된 6만명 이상의 일본인들이 뒤엉켜 극심한 혼란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는 무책임한 행정당국과 패전을 믿지 않으려는 군부의 妄動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8월 14일 패전에 대한 정보를 접한 조선총독부는 송진우, 여운형 등과 접촉하며 치안유지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치안지도권을 장악하겠다며 이에 반발하고, 9천명의 장병을 경찰로 돌리며 지방에 파견했다. 한편 지방에서의 일본군 무장해제가 10월까지 지체되는 가운데 지방에서는 일본인 경찰에 의해 한국인이 학살되는 등 여전히 반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각 관청, 은행, 회사들은 일본인들에게 2개월분의 봉급과 퇴직금을 선지불하는 등 귀환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렇듯 급작스레 전쟁이 종결되며 조선총독부 및 일본군의 대응이 혼란을 야기하면서 在韓日本人 사회 또한 요동치기 시작했다.
在韓日本人에게 패전의 경험은 쓰라리게 기억되었으며, 그러한 기억은 구술과 문헌기록 등 여러 가지 자료로 남아 ‘혼란스런 해방 정국’과 ‘일본인의 수난’을 묘사하는 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자료가 朝鮮終戰の記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Defeat was more rapid than a Korean for the Japanese who lived in Korea at colony time. They were employed in the situation that arranged life early in Korea, and must return to Japan. It is memorized a lot about the experience of the defeat of the Ja...
Defeat was more rapid than a Korean for the Japanese who lived in Korea at colony time. They were employed in the situation that arranged life early in Korea, and must return to Japan. It is memorized a lot about the experience of the defeat of the Japanese residing in Korea which such a memory stays as an oral statement and various documents such as documents records, and is utilized with a document to picture 'the Japanese suffering' and ‘the liberation situation of Korea'. This study is intended that light up the history recognition of Japan with main constituent (identity) called the Japanese who I disperse, and lived in each (time), Asia area based on such a record at space (space) called Japan and time called after 1945 after the Pacific War in Asia in the w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