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사진에서의 현대성에 대한 자각이, 어떠한 시각적 스타일로 표명되었고, 한국사진사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볼 것이다. 연구의 주요 대상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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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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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사진에서의 현대성에 대한 자각이, 어떠한 시각적 스타일로 표명되었고, 한국사진사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볼 것이다. 연구의 주요 대상은 “영상사진”으로, 1960년대 말부터 국지적으로 나타나 1970년대에 이르러 젊은 사진가 세대들이 추구했던 사진적 스타일을 뜻한다. 이는 이미지 제작에 있어서 혁신적인 프레이밍, 선별적 포커싱(초점맞추기), 과격한 화면구성 등으로 나타나며, 이는 육명심, 최광호, 이갑철로 이어지는 사진작업의 흐름을 관통한다.
한국에서 “영상사진”의 개념은 1980년대에 들어서 최초로 등장하였다. 사진가 육명심은 70년대 한국 사진을 회고하는 글에서 “영상사진”의 특성을 “영상을 통한 자아추구,” “신세대의 신선한 감각,” “사진영상의 본질 추구” 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영상사진”의 개념은 이미 1960년대 일본의 아방가르드 사진, 특히 프로보크(Provoke; プロボク) 그룹에 의해 정교화 된 바 있다. 그들은 “영상(eizo; 映像)”이 텍스트가 재현할 수 없는 이 세계의 불확실성, 파편성을 드러내고, 궁극적으로는 구조화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폭로(provoke)하는 기능이 있다고 간주, 이를 “다큐먼트”라는 구체적 물질의 형태로 제시하려 했다. 프로보크의 사진 스타일, 즉 거친 입자, 초점나간 사진, 검게 눌러진 톤으로 요약되는 “아레부레보케(アレ・ブレ・ボケ)” 이미지의 제작은, “영상”의 특수한 이해에서 비롯되었다. 비단 사진계 내부를 넘어, 당시 일본 아방가르드 영화, 문학, 미술을 아울러 “영상”의 개념은 예술적 실천의 키워드로 부상하였다. 그것은 60-70년대 고도의 자본주의, 냉전체제, 관료주의 등, 거대한 사회의 권력 구조에 대항하여, 급진적 가능성을 품는 실천 행위로 해석되었다.
1960-70년대 한국에서 “영상사진”의 실험적 경향을 선도했던 젊은 사진가의 대다수는 1950년대 태생으로, 일본 유학시절에 이미 프로보크 그룹의 사진이나 “영상”의 개념적 맥락을 접한 적이 있었다. 다소의 시차가 존재하지만 일본의 “영상사진”은 한국 사진가들에게 새로운 사진적 가능성으로 공유되었음은 분명하다. 또한 “영상사진”의 성립은 사진 제도의 확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 서라벌 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는 “영상”의 사진적 실천을 가장 활발히 진행하던 니혼대학 사진학과와 자매결연을 맺고, 일본에서 이미 전개된 새로운 사진적 흐름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흥미롭게도 일본에서의 “영상”적 실천이 도시화, 소외, 교외 문제, 풍경론, 고도소비사회 등의 현대적 이슈를 기록의 중심에 놓았던 반면, 한국의 사진가들은 카메라의 시야를 도시 외부로 돌려, 민속적, 토속적 주제에 주목하였고 이를 통해 한국적 아이덴터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특히 이 시기에 제작되었던 육명심의 “백인” 시리즈, 이갑철의 “풍경” 시리즈, 최광호의 “가족” 시리즈는 산업화와 국제화의 추세 뒤에 밀린 “정신적” 가치에 대해 새로운 사진적 스타일로 접근하였다. 즉 이들은 사진적으로는 리얼리즘과 살롱사진을, 그리고 주제면에서는 단순한 이국주의로 정의되던 전통문화의 기록을 넘어서기 위해 “영상사진”의 문법을 개척하였고, 이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한국적인 것”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그 탐색의 중심에는 새롭게 발견된 사진의 매체적 특성이 놓여있었다. 과격한 프레이밍, 비자연스러운 톤과 계조, 탈초점 등, “한국적인 것”에 대한 탐구는 사진적 스타일의 탐색이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토속성과 민속성에 대한 강조는 비단 “영상사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각문화, 특히 <뿌리깊은 나무>나 <샘이 깊은 물>등의 화보잡지에서 추구하던 지식과 삶의 비전과도 조응될 수 있을 것이다. 1960-70년대 “한국성”의 문제는, 좀 더 폭넓은 지성사나 사회 문화사의 맥락에서 연구되어야 할 것이며 그러한 연관 속에서 “영상사진”의 스타일 또한 단순한 형식적 특성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매개된 시각적 실천으로 새롭게 자리매김 될 수 있다.
“영상사진”의 흐름은1985년 구본창의 <긴 오후의 미행>에서 비약적인 도약을 맺게 되고, 3년 후 열린 <사진, 새 시좌>전의 기본 축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러나 80년대 말의 시점에서, 카메라는 더 이상 토속적인 것이 아니라 도시와 산업화, 속도, 소외, 즉 현대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새 시좌>전은 60년대부터 시작된 “영상사진”의 완결이자 전환점, 혹은 새로운 문턱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본 연구는 1960년대 말부터 진행된 사진 매체와 스타일에 대한 새로운 탐색을 “영상사진”의 흐름으로 이해하고, 8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 흐름이 어떻게 지속, 변형, 전환되었는지 분석하는 것에 초점을 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