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회유정책을 기본으로 한 강온양면(强穩兩面)의 기미정책(羈縻政策)을 실시하였고, 여진에 대한 조공 형태의 무역을 허락하고, 내조한 여진인들에게는 조선의 관직을 수여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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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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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세종은 회유정책을 기본으로 한 강온양면(强穩兩面)의 기미정책(羈縻政策)을 실시하였고, 여진에 대한 조공 형태의 무역을 허락하고, 내조한 여진인들에게는 조선의 관직을 수여하면서 ...
세종은 회유정책을 기본으로 한 강온양면(强穩兩面)의 기미정책(羈縻政策)을 실시하였고, 여진에 대한 조공 형태의 무역을 허락하고, 내조한 여진인들에게는 조선의 관직을 수여하면서 조선에 복속시켰으며, 이를 통해 변경의 안정을 꾀하였다. 그러나 여진인들의 침입이 있을 경우에는 무력을 동반한 정벌로써 이를 응징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여진세력이 하나의 통일된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많게는 수백에서 적게는 수십 명 단위의 부복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각 부족과 개별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는 없었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각 부족에 대한 정보 파악이 필수 조건이었다. 왜냐하면 조선에 오는 여진인에 대한 접대(接待)의 차등(差等), 조선의 관직을 수여할 때의 차등 등은 바로 여진인의 세력 강약에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여진 세력 또한 조선에서 받은 관직(官職)과 인신(印信)으로써 그 지위를 인정받았고, 이것을 조선과의 통교에 활용할 수 있었다. 즉 조선 또는 명에서 받은 인신이 찍힌 서계 내지는 관직을 받았던 임명장이라 할 수 있는 ‘고신(告身)’ 등이 있어야지만 조선과의 통교가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통교체제가 정비되어 갔다. 그러나 이러한 통교체제는 유력여진세력이 다른 세력의 인신 등을 빼앗아 여러 개의 인신을 소유하게 되면 그 만큼 여러 번의 통교가 가능해짐을 의미하였다. 실제로 건주위(建州衛)가 건주본위(建州本衛)・건주좌위(建州左衛)・건주우위(建州右衛)의 소위 ‘건주삼위(建州三衛)’로 분화된 이유 역시 명에서 받은 인신을 둘러싼 ‘위인쟁탈(衛印爭奪)’이 원인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에서는 이러한 통교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변경에서 직접 여진인들의 세력 강약을 조사하기도 하고 내조하는 여진인들에 정보를 수집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이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단종실록(端宗實錄) 3년 3월의 기사조(己巳條)이다. 여기에는 여진인 8백여 명에 대한 명단(名單) 및 종족(宗族), 세력 등급(勢力 等級), 거주지(居住地), 관하인수(管下人數), 관직명(官職名) 및 친족 관계(親族 關係) 등이 상세히 기록되고 있고, 두만강 유역 5진 부근에 거주하는 여진인 부락의 수와 가구수(家口數), 장정수(壯丁數)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렇지만 이 기록은 본래 먼 거리에 거주하는 화라온(火剌溫)・수빈강(愁濱江)・구주(具州) 등지의 올적합(兀狄哈)까지 포함하여 작성하려는 의도를 충족하지 못한 채 5진 부근에 거주하는 여진인들로 한정하게 되었다. 즉 조선은 두만강 유역에 5진을 설치함으로써 먼 지방에 거주하는 올적합과의 직접 교섭이 증가하기 시작하고, 교섭에 많은 문제점이 발생함으로써 이들의 세력 강약을 파악하고자 한 것이었다. 올적합과의 직접 교섭에 있어서의 문제점이란 바로 ‘위사(僞使)’의 발생이었다.
올적합 등은 명의 위소명(衛所名)을 거짓으로 만들거나, 인신(印信)을 위조(僞造)하거나, 심지어 원(元)의 몽고(蒙古) 인신을 사용한 서계(書契)를 가져오거나, 아예 인신이 찍혀 있지 않은 서계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또한 이에 편승해 경제적 목적을 가진 여진인들이 올적합을 사칭하여 조선에 오기도 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기초적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세종대 두만강 유역에 설치한 5진을 설치함으로써 조선과 먼 지역의 올적합과의 직접 교류가 발생하는 배경과 여진 위사 발생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조선전기 여진위사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과 동시에 그 유형 등을 분석함으로 여진위사의 형태와 유형 등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또 일본에서 발생한 위사의 유형과는 어떻게 다른 형태를 갖는지 살펴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선이 이러한 여진 위사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고 처리한 양상은 어떠했는지 사례별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