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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연애에 관한 ‘문화 지형도’ 구축―1920~30년대 ‘자유연애’의 구현체(具現體)로서의 ‘키쓰’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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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V나 영화를 통해 종종 목격되는 키스 장면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성인남녀의 지극히 사적 영역에 속하는 입을 맞추는 행위가 우리의 삶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오늘날과 같은 ‘키스의 일상화’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 시기 ‘키쓰’가 각축전을 벌이던 ‘접문(接吻)’을 제치고 일상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리를 잡았다.
    1900년대 활자미디어에서 키스는 어디까지나 이문화를 소개하는 차원에서 다루어졌다. 그러던 것이 1910년대부터는 조선 사회 내 사건․사고로도 다루어지면서 서서히 ‘키쓰’가 우세한 쪽으로 기울다가, 192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 남녀의 은밀한 행위인 입맞춤 장면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며 조선 사회의 일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리아의반생」(『시대일보』1925.12.22), 「第二의接吻」(『매일신보』1926.03.17), 「엄치기文士의 新■業」(『별건곤』1927.02), 「‘키쓰걸’의出現」(『조선일보』1929.09.22) 등에서의 만문만화와 삽화가 키스의 시각화를 도모하였다.
    ‘두 사람이 상대방을 서로 애틋하게 사랑하여 사귐’을 뜻하는 연애가 근대에 들어 새로이 생겨난 문화라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이다. 1920년대라는 특정 시기 남녀 간의 사랑, 즉 연애는 ‘자유연애’로 달리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자유사상’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개념이다. 이러한 ‘자유연애’는 근대를 살아간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킨 기폭제 역할을 수행했을 터이다. 지금까지의 연구 경향 역시 이러한 인식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그러나 사전적으로 보아도 문화는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양식’을 일컫는 만큼, 근대 시기 대중이 연애를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실천했는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920년대 당시 연애는 지금껏 많이 다루어진 정사(情死)처럼 비일상적인 것뿐만 아니라, ‘연애에 관해 말하기’나 ‘이성에게 말 걸기’처럼 지금 시각에서 보면 지극히 일상적인 것까지를 포괄하며 실천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키쓰‘가 연애문화 형성의 초기 단계 조선에서 ’자유연애‘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실천양상, 즉 구현체로서 기능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1920년대 중반에도 ‘자유연애’는 아직 사회적으로 공감할만한 함의(含意)를 갖고 있지 않았는데, 그러한 와중에 ‘『키쓰』이니 『련애』이니하는신식은몰나도’(「純情을心約한 眞紅빗『당긔』」『매일신보』1926.05.28)에서 알 수 있듯이, 1926년 시점에서 연애의 행동양식인 '키쓰‘는 ’신식‘으로 거론되면서 인식의 영역인 ’련애‘와 동일한 가치로 이해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근대 연애문화를 이해함에 있어서 인식이 아닌 실천양상에 주목했을 경우, 1930년대 조선 사회에서 ‘키쓰’가 한자문화권에서 통용되고 있던 ‘접문’을 뒤로 하고 서양의 영향을 받아 일상화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놓쳐서는 안 될 주요한 사항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까지의 근대 연애 관련 연구는 일본 쏠림현상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근대 시기 연애문화 전반에 대한 실증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한 근대 연애문화는 대중을 대상으로 연구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1920년대 ‘자유연애’를 논하는 데 있어서 ‘신여성’이라는 주체가 이를 대변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연애는 여성 혹은 남성만으로 논할 수 없으며, 육체와 정신 모두를 통하여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신성한 연애’ 혹은 ‘영육일치’라는 인식적 영역으로 요약되어버린 ‘자유연애’를, 구체적으로 무엇으로 포착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 또한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이에 본 연구는 ‘키쓰’를 ‘자유연애’의 구현체로 보고 연애문화가 형성되고 향유되었던 1920~30년대 문학 텍스트를 포함한 미디어 전반에서 ‘키스’를 쫓음으로써, ‘자유연애’를 포괄하는 연애의 공시적․통시적 고찰을 시도하여 근대 연애에 관한 ‘문화 지형도’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근대 연애문화 형성과정의 전모가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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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나 영화를 통해 종종 목격되는 키스 장면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성인남녀의 지극히 사적 영역에 속하는 입을 맞추는 행위가 우리의 삶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 잡고 있...

    TV나 영화를 통해 종종 목격되는 키스 장면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성인남녀의 지극히 사적 영역에 속하는 입을 맞추는 행위가 우리의 삶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오늘날과 같은 ‘키스의 일상화’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 시기 ‘키쓰’가 각축전을 벌이던 ‘접문(接吻)’을 제치고 일상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리를 잡았다.
    1900년대 활자미디어에서 키스는 어디까지나 이문화를 소개하는 차원에서 다루어졌다. 그러던 것이 1910년대부터는 조선 사회 내 사건․사고로도 다루어지면서 서서히 ‘키쓰’가 우세한 쪽으로 기울다가, 192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 남녀의 은밀한 행위인 입맞춤 장면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며 조선 사회의 일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리아의반생」(『시대일보』1925.12.22), 「第二의接吻」(『매일신보』1926.03.17), 「엄치기文士의 新■業」(『별건곤』1927.02), 「‘키쓰걸’의出現」(『조선일보』1929.09.22) 등에서의 만문만화와 삽화가 키스의 시각화를 도모하였다.
    ‘두 사람이 상대방을 서로 애틋하게 사랑하여 사귐’을 뜻하는 연애가 근대에 들어 새로이 생겨난 문화라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이다. 1920년대라는 특정 시기 남녀 간의 사랑, 즉 연애는 ‘자유연애’로 달리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자유사상’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개념이다. 이러한 ‘자유연애’는 근대를 살아간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킨 기폭제 역할을 수행했을 터이다. 지금까지의 연구 경향 역시 이러한 인식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그러나 사전적으로 보아도 문화는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양식’을 일컫는 만큼, 근대 시기 대중이 연애를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실천했는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920년대 당시 연애는 지금껏 많이 다루어진 정사(情死)처럼 비일상적인 것뿐만 아니라, ‘연애에 관해 말하기’나 ‘이성에게 말 걸기’처럼 지금 시각에서 보면 지극히 일상적인 것까지를 포괄하며 실천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키쓰‘가 연애문화 형성의 초기 단계 조선에서 ’자유연애‘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실천양상, 즉 구현체로서 기능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1920년대 중반에도 ‘자유연애’는 아직 사회적으로 공감할만한 함의(含意)를 갖고 있지 않았는데, 그러한 와중에 ‘『키쓰』이니 『련애』이니하는신식은몰나도’(「純情을心約한 眞紅빗『당긔』」『매일신보』1926.05.28)에서 알 수 있듯이, 1926년 시점에서 연애의 행동양식인 '키쓰‘는 ’신식‘으로 거론되면서 인식의 영역인 ’련애‘와 동일한 가치로 이해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근대 연애문화를 이해함에 있어서 인식이 아닌 실천양상에 주목했을 경우, 1930년대 조선 사회에서 ‘키쓰’가 한자문화권에서 통용되고 있던 ‘접문’을 뒤로 하고 서양의 영향을 받아 일상화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놓쳐서는 안 될 주요한 사항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까지의 근대 연애 관련 연구는 일본 쏠림현상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근대 시기 연애문화 전반에 대한 실증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한 근대 연애문화는 대중을 대상으로 연구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1920년대 ‘자유연애’를 논하는 데 있어서 ‘신여성’이라는 주체가 이를 대변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연애는 여성 혹은 남성만으로 논할 수 없으며, 육체와 정신 모두를 통하여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신성한 연애’ 혹은 ‘영육일치’라는 인식적 영역으로 요약되어버린 ‘자유연애’를, 구체적으로 무엇으로 포착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 또한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이에 본 연구는 ‘키쓰’를 ‘자유연애’의 구현체로 보고 연애문화가 형성되고 향유되었던 1920~30년대 문학 텍스트를 포함한 미디어 전반에서 ‘키스’를 쫓음으로써, ‘자유연애’를 포괄하는 연애의 공시적․통시적 고찰을 시도하여 근대 연애에 관한 ‘문화 지형도’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근대 연애문화 형성과정의 전모가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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