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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엘 폼므라와 장-끌로드 그룸베르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연출적 글쓰기 : ‘픽션’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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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의 첫 번째 단계로, 새로운 연출적 글쓰기로서의 ‘픽션’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고찰하고자 한다. 본 연구자는 포스트모던 예술의 한계에 대한 반성을 근대의 반-재현(l'anti-représentation)에서 시작하는 랑시에르의 철학적 사유와 함께 이 논의를 추구하고자 한다. 랑시에르에 의하면, 근대의 반-재현이 거부하고자 한 재현논리는 말의 가시성, 재현적 질서에 의한 인과적 구성 그리고 현실과 분리된 픽션으로서 고전적 재현의 세 가지 억압에 관련된 유사성만을 거부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결국, 근대예술에서 주장한 반재현, 달리 말하면, 재현적 체제와의 단절은 모방적인 것을 무조적 배제하고자 하는 것이나 형상화에 대한 거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문학적/ 연극적 글쓰기에서 과거의 재현개념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서 ‘모방적(mimétique)’ 방식이 사용가능함을 의미한다. 또한 모방적 방식의 수용은 사실주의적 방식의 현실언급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모방적 방식을 사용하는 새로운 글쓰기로서의 픽션(la fiction)은 관객들이 감정이입해야만 하는 환영적 현실의 재현이 아니다. 지금 소환하는 ‘새로운 픽션’은 내용에 대한 형식의 무관심을 드러내며, 재현적 규범에 반대하면서 행위로서의 말의 오래된 미메시스에 반대한다.(랑시에르, La parole muette, p. 14)
      이러한 관점 하에서 본 연구의 두 번째 단계로 시뮬라크르로서의 미메시스의 패러독스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하는 모방적 방식은 자신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을 거부하며 하나의 모델(IDEA)을 모방해야 하는 것으로서의 유사성도 거부한다. 그런데, 이는 플라톤이 극시인을 유령창조자라 하며 비판하던 지점이 아닌가 ? 하지만, 중요한 관점의 차이는 플라톤의 언급처럼 더 이상 어떤 실체도 갖지 못하는 모사로서 미메시스 이론을 비틀어내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플라톤이 주장했었던 반미메시스론의 전복은 대체(la substitution)의 묘사에 의해 구성되며 묘사된 이미지로서 드러난다.
      본 연구의 세 번째 단계로,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의 저서들, 『La parole muette』, 『문학의 정치, Politique de la Littérature』를 통해서 픽션은 현실의 반대가 아니며, 현실과 마찬가지로 어떤 실재성을 형성하는 방식임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래서 ‘문학적 창작에 고유한 사건들, 상황들, 그리고 개인들의 현전방식들, 다른 한편으론 정치적인 것으로서 행위들, 어떤 공동체, 주체들, 상황들을 정의하는 방식들 사이의 구조적 관계를 지닌다. 문학적 묘사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삶의 방식을 드러내는 픽션은 문학적 창작과 정치적인 것이 교차되어있는 방식임을 고찰하고자 한다. 그래서 새롭게 소환되는 픽션은 단순히 “상상력의 출현만이 아니며, 인간정신의 방식 차체를 유희하게 하는 것을 허용하는 생각의 움직임”(Rancière, Mallarmé : poétique de la sirène, p.88)임을 이해하고자 한다. 결국, 랑시에르에 의해 주장되어지는 픽션은 한편에서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으며 다른 한편에서 화석화된 말들을 통해서 마치 기습처럼 실행되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픽션은 “보게하는 것”과 “보지 못하게 하는 것” 사이에서 암묵적 화해를 제공한다. 새로운 글쓰기의 모순적인 이 두 요소는 이들 사이의 긴장을 야기시키며 절대적 주장을 강요하는 헤게모니적 글쓰기로 치닫는 상황을 폐기할 것이다.
      본 연구의 네 번째 단계에서는 조엘 폼므라의 작품, <이 아이>, <상인들>, <사이클/픽션> 그리고 <두 한국의 통일>과 장-끌로드 그룸베르그의 대표적 작품인 <아틀리에>와 <드레퓌스>를 통해서 먼저, 1) 두 작가의 글쓰기가 의미를 가지는 것에 저항하며 직접적인 메시지를 드러내지 않음을 살펴볼 것이다.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각각의 방황하는 말들은 그 자체의 감각적 물성을 드러낼 뿐 아니라 화석화된다. 화석화된 이 말들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발설되지 않는 말, 의미작용의 어떠한 의지와도 무관한 말, 화석들 또는 홈패인 돌들에 씌어진 역사를 담고있는 방식으로 사물들의 진리를 표현한다.”(랑시에르, 문학의 정치, p. 30) 그리고 2) 현실과 문학적 상상의 구조적 관계 사이에서 쓰여진 이들 작품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3) 이 둘의 모순적인 관계에서 드러나는 긴장과 함께 네거티브로서 현존하는 부재를, 상징적 침묵을 드러내며 화석화된 언어의 정치를 그래서 작품이 드러내고자하는 진리를 담보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새롭게 재소환된 ‘픽션’의 중요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본 연구를 통한 이러한 고찰은 연출적 글쓰기로서의 ‘픽션’의 이론적 고찰을 가능하게 하고 폼므라와 그룸베르그 작품에서 드러나는 픽션의 정치적인 것의 문학적, 미학적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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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의 첫 번째 단계로, 새로운 연출적 글쓰기로서의 ‘픽션’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고찰하고자 한다. 본 연구자는 포스트모던 예술의 한계에 대한 반성을 근대의 반-재현(l'anti-représenta...

      본 연구의 첫 번째 단계로, 새로운 연출적 글쓰기로서의 ‘픽션’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고찰하고자 한다. 본 연구자는 포스트모던 예술의 한계에 대한 반성을 근대의 반-재현(l'anti-représentation)에서 시작하는 랑시에르의 철학적 사유와 함께 이 논의를 추구하고자 한다. 랑시에르에 의하면, 근대의 반-재현이 거부하고자 한 재현논리는 말의 가시성, 재현적 질서에 의한 인과적 구성 그리고 현실과 분리된 픽션으로서 고전적 재현의 세 가지 억압에 관련된 유사성만을 거부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결국, 근대예술에서 주장한 반재현, 달리 말하면, 재현적 체제와의 단절은 모방적인 것을 무조적 배제하고자 하는 것이나 형상화에 대한 거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문학적/ 연극적 글쓰기에서 과거의 재현개념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서 ‘모방적(mimétique)’ 방식이 사용가능함을 의미한다. 또한 모방적 방식의 수용은 사실주의적 방식의 현실언급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모방적 방식을 사용하는 새로운 글쓰기로서의 픽션(la fiction)은 관객들이 감정이입해야만 하는 환영적 현실의 재현이 아니다. 지금 소환하는 ‘새로운 픽션’은 내용에 대한 형식의 무관심을 드러내며, 재현적 규범에 반대하면서 행위로서의 말의 오래된 미메시스에 반대한다.(랑시에르, La parole muette, p. 14)
      이러한 관점 하에서 본 연구의 두 번째 단계로 시뮬라크르로서의 미메시스의 패러독스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하는 모방적 방식은 자신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을 거부하며 하나의 모델(IDEA)을 모방해야 하는 것으로서의 유사성도 거부한다. 그런데, 이는 플라톤이 극시인을 유령창조자라 하며 비판하던 지점이 아닌가 ? 하지만, 중요한 관점의 차이는 플라톤의 언급처럼 더 이상 어떤 실체도 갖지 못하는 모사로서 미메시스 이론을 비틀어내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플라톤이 주장했었던 반미메시스론의 전복은 대체(la substitution)의 묘사에 의해 구성되며 묘사된 이미지로서 드러난다.
      본 연구의 세 번째 단계로,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의 저서들, 『La parole muette』, 『문학의 정치, Politique de la Littérature』를 통해서 픽션은 현실의 반대가 아니며, 현실과 마찬가지로 어떤 실재성을 형성하는 방식임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래서 ‘문학적 창작에 고유한 사건들, 상황들, 그리고 개인들의 현전방식들, 다른 한편으론 정치적인 것으로서 행위들, 어떤 공동체, 주체들, 상황들을 정의하는 방식들 사이의 구조적 관계를 지닌다. 문학적 묘사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삶의 방식을 드러내는 픽션은 문학적 창작과 정치적인 것이 교차되어있는 방식임을 고찰하고자 한다. 그래서 새롭게 소환되는 픽션은 단순히 “상상력의 출현만이 아니며, 인간정신의 방식 차체를 유희하게 하는 것을 허용하는 생각의 움직임”(Rancière, Mallarmé : poétique de la sirène, p.88)임을 이해하고자 한다. 결국, 랑시에르에 의해 주장되어지는 픽션은 한편에서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으며 다른 한편에서 화석화된 말들을 통해서 마치 기습처럼 실행되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픽션은 “보게하는 것”과 “보지 못하게 하는 것” 사이에서 암묵적 화해를 제공한다. 새로운 글쓰기의 모순적인 이 두 요소는 이들 사이의 긴장을 야기시키며 절대적 주장을 강요하는 헤게모니적 글쓰기로 치닫는 상황을 폐기할 것이다.
      본 연구의 네 번째 단계에서는 조엘 폼므라의 작품, <이 아이>, <상인들>, <사이클/픽션> 그리고 <두 한국의 통일>과 장-끌로드 그룸베르그의 대표적 작품인 <아틀리에>와 <드레퓌스>를 통해서 먼저, 1) 두 작가의 글쓰기가 의미를 가지는 것에 저항하며 직접적인 메시지를 드러내지 않음을 살펴볼 것이다.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각각의 방황하는 말들은 그 자체의 감각적 물성을 드러낼 뿐 아니라 화석화된다. 화석화된 이 말들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발설되지 않는 말, 의미작용의 어떠한 의지와도 무관한 말, 화석들 또는 홈패인 돌들에 씌어진 역사를 담고있는 방식으로 사물들의 진리를 표현한다.”(랑시에르, 문학의 정치, p. 30) 그리고 2) 현실과 문학적 상상의 구조적 관계 사이에서 쓰여진 이들 작품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3) 이 둘의 모순적인 관계에서 드러나는 긴장과 함께 네거티브로서 현존하는 부재를, 상징적 침묵을 드러내며 화석화된 언어의 정치를 그래서 작품이 드러내고자하는 진리를 담보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새롭게 재소환된 ‘픽션’의 중요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본 연구를 통한 이러한 고찰은 연출적 글쓰기로서의 ‘픽션’의 이론적 고찰을 가능하게 하고 폼므라와 그룸베르그 작품에서 드러나는 픽션의 정치적인 것의 문학적, 미학적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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