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의 창제는 세종이 국가경영 구상을 실천하려는 방략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다. 이는 세종대에 추진된 일련의 언어·문화적 업적들이 일련의 인적 자원과 정책적 지속성의 측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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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의 창제는 세종이 국가경영 구상을 실천하려는 방략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다. 이는 세종대에 추진된 일련의 언어·문화적 업적들이 일련의 인적 자원과 정책적 지속성의 측면에서 ...
훈민정음의 창제는 세종이 국가경영 구상을 실천하려는 방략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다. 이는 세종대에 추진된 일련의 언어·문화적 업적들이 일련의 인적 자원과 정책적 지속성의 측면에서 연관되어 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특히 정음은 그것이 창제되어야 다른 어문 정책의 실행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일차적인 사업으로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정음 창제의 필요성은 교화의 확대와 율문의 언문화, 운서의 편찬이라는 현실적인 요구에서 촉진된 측면이 크지만, 여기에는 이러한 사업을 조선인의 풍토와 특성에 맞추어 만들어야 한다는 세종의 자의식이 크게 작용하였다.
어문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세종은 선제권을 잡고 일을 추진하였는데, 정책을 추진할 때는 되도록이면 비공개로 추진하거나 신임할 만한 최소한의 인원으로 극비리에 추진함으로써 반대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또한 반대가 있다 하더라도 이들을 설복하는 과정에서 정당성을 확보하여 이니셔티브를 취하려 했다. 이때 신하들을 제압하기 위해 세종이 택한 방식은 이치와 명분에 근거하여 따져 묻는 방식이었다. 세종은 신하들의 반대 논리가 명분이 없음을 지적하고 자신의 정책은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애민’의 명분을 내세움으로써 정책의 정당성을 유교의 명분론에서 구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희생양을 만들어냄으로써 반대 세력을 제압하고 그로써 경계시키는 방식을 취하였다.
훈민정음은 그것을 이용하여 용비어천가를 만들었는데, 그 내용이 왕조 창출의 비정통성, 비도덕성을 합리화하기 위한 송덕가라는 점은 일련의 언어정책이 궁극적으로는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왕조의 정당성을 확립시키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