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저술은 9개 장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각 장에 담길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서론 : 테라 오스트랄리스의 의미와 탐사를 이해하기 지리적, 그리고 사회적인 내용을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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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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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저술은 9개 장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각 장에 담길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서론 : 테라 오스트랄리스의 의미와 탐사를 이해하기 지리적, 그리고 사회적인 내용을 기술하고자 한다. 그리고 지도제작의 과정 및 동시대 예술가와 문학자들이 이들의 모험을 어떻게 문학 작품과 회화의 소재로 삼았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언급한다.
(2) 고대와 중세의 테라 오스트랄리스 : 고대의 대척지 개념으로 시작된 테라 오스트랄리스의 개념을 지도와 문헌을 통해 정리한다. 또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과 동물들의 형상 및 이들에 대한 중세인들의 인식을 기술한다. 대척지 개념은 단순한 지리적 개념에 제한되지 않는다. 천국과 지옥이 아닌 제3의 영역으로 아담과 노아가 이곳에 갔느냐는 종교적 의미와 로마의 세계정복에 항의하는 로마 지식인의 항의가 지도에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중세 대학의 가장 중요한 토론 주제의 하나가 대척지에 사는 사람들의 존재 방식이었다.
(3) 거대한 자바 : 테라 오스트랄리스란 단어를 지도속에 최초로 표기한 사람은 프랑스 지도 제작자 오론소 피네이다. 그는 테라 오스트랄리스를 남반구에 엄청난 크기로 그렸다. 이와 관련해 쇠너의 지구의 및 마젤란의 항해지 내용과 관련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또한 17세기 초반 프랑스 디페 학파의 지도제작자들이 그린 지도에는 인도네시아의 자바가 엄청난 크기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 자바 지도를 회전시켜 보면 현재 호주의 형태와 매우 유사하고, 자바의 지명를 로카크 또는 비치로 표기했다. 당시의 고문헌과 지도를 통해 이를 살펴본다.
(4) 스페인의 테라 오스트랄리스 인식 : 먼저 거인의 땅으로 알려진 파타고니아 고지도를 통해 16세기 전반부의 스페인의 이 지역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다. 그리고 1567년 멘다나의 솔로몬 제도의 발견에서 비롯된 부를 찾기 위한 스페인의 탐사 및 18세기까지의 스페인의 탐사 자료를 지도와 지역 스케치를 중심으로 기술한다. 당시 스페인은 지도와 그림을 통해 보이는 제국(visible empire)으로 만들려 했다.
(5) 뉴홀랜드 : 네덜란드의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탐사를 중심으로 기술하려고 한다. 네덜란드는 자카르타에 동인도회사 본부가 있었으므로 이 지역의 탐사에 가장 유리한 입장이었다. 그래서 타스만의 항해가 이 회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동인도회사와 서인도회사가 아닌 제3의 회사인 남방회사의 설립을 통한 네덜란드의 탐사 과정 역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르 마이레(Le Maire) 부자의 남방회사가 주도한 탐사가 결국은 새로운 항로를 발견했고, 또 이 항로를 표시한 지도는 당시 한반도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지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시 남태평양의 경험은 이후 유럽인들의 유토피아 이미지를 형성했다. 이 장에서는 지도 뿐만 아니라 당시 탐사에 동행했던 화가들이 그린 삽화를 통해 테라 오스트랄리스의 이미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또 바타비아호의 비극으로 인해 테라 오스트랄리스의 개념 및 이미지가 어떻게 변했는지도 추적하고자 한다.
(6) 가상의 여행기가 만들어 낸 허구의 땅을 찾아 나선 프랑스의 탐사 : 1654년 노르망디의 주교 폴미에(J. Paulmier)는 1504년 프랑스의 곤느빌(Gonneville)이 남쪽의 거대한 대륙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프랑스에서 발행한 지도에는 테라 오스트랄리스에 곤느빌의 땅을 표시했다. 그리고 이 곤느빌의 땅을 찾기 위해 18세기까지 많은 탐사가 이루어졌다. 이 장에서는 폴미에가 주장한 근거 및 당시 프랑스 정부와 로마교황청의 대응 등을 기술하기로 한다. 또한 탐사과정에서 프랑스인들은 남태평양을 낙원으로 인식하게 되었는데, 당시 생긴 유토피아관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는지도 살펴보기로 한다.
(7) 오스트레일리아 : 댐피에의 항해기는 이 지역의 인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영향을 받아 로빈슨 크루소와 걸리버 여행기를 비롯한 모험소설들이 출간되었다. 이러한 내용을 비롯해서 1801년 동시에 파견된 오스트레일리아를 지도로 그리기 위한 영국과 프랑스 지도제작자들의 경쟁 내용을 언급할 것이다.
(8) 남극 대륙 : 이제 남극 대륙만 미지의 대륙으로 남게 되었다. 이 장에서는 남극을 탐험한 탐험가들의 행적을 지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820년대에서 192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탐험과 이로 인해 만들어진 지도를 집중적으로 기술하되, 모험가들의 행적과 리더십에 대한 내용도 언급한다. 또한 남극 조약 및 마드리드 프로토콜 등 남극과 관련된 협약 및 우리나라가 설치한 과학기지에 대해서도 기술하여 우리에게도 테라 오스트랄리스가 사라진 땅이 아니라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알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