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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行」과 「航米」, 한일 개화기의 미국 견문기와 표상권의 근대 Travel Writing & National Mise-En-Scène in East-Asia ; the Order of Nations, Yellow Embassies to the United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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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흔히 메이지 일본이나 양무운동기 청국을 모범으로 삼은 것으로 이야기되는 조선의 근대화 기획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대항 주제로서 미국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서울이라는 공간의 근대화와 관련된 서사물과 논설들의 계열들은 상징적 실례가 된다.
      메이지 도쿄 모델을 생각했던 일본 체험자들의 일본 견문기는 김옥균과 박영효의 한성부개혁으로 현실화되고, 또 좌절된다. 김옥균 「치도론」 「치도약칙」에 의한 메이지 도쿄의 표상화와 이에 이어지는 모범으로서의 도쿄, 또 박영효 1883-4년 한성판윤 재임기의 치도국의 설치 기획, 그 10년 후인 1895년의 내부 대신 재임기 치도에 관한 「99개조의 훈시」 등을 『사화기략』을 통해 점검할 수 있듯이, 대한제국의 황성만들기와 공공권 창안을 미국 체험으로부터 설명할 수 있다. 미국 워싱턴 모델을 염두해두었던 미국 체험자, 혹은 미국․일본 동시체험자들이었던 박정양, 이채연, 윤치호, 유길준, 이상재 등이 그들이다. 박정양 1895년 내부대신으로서 「도로 수치(修治)와 가가(假家) 기지(基地)를 관허하는 건」의 기획실천이나, 1896년 「한성내 도로의 폭을 개정하는 건」을 내부령은 미국 워싱턴의 방사형 도시구조를 연상시킨다. 그 선행 경험-표상화/서사화-신념화와 실천의 과정은 그의 문집, [죽천집] 소재의 「美行日記」, 「海上日記」에 그 단서가 있다. 특히 주한조선대사관 외교관이었던 이채연은 대한제국기 한성판윤으로서 박정양의 개조안을 실천하여, 한성 개조 사업과 국토 개발(철도 부설 기획)을 주관했으며 워싱턴을 염두해 둔 한성의 황성화(皇城化) 계획과 근대적 표상 공간의 실천을 이끌었다. 근대적 무대 예술, 연희의 공간으로 원각사를 직접 설계하면서 오페라하우스 스타일의 원형극장건설을 시도했던 것도 미국 경험의 재현에 가깝다. 주지하다시피, 서재필과 윤치호는 독립신문의 에크리튀르를 조선의 알페벳-한글로 할 것을 주장했다. 그들은 표상 차원의 한 속성인 시민성, 미디어와 대의제를 보았던 것이다. 의사교환의 공공권의 형성을 근대화의 핵심으로 이해한 이들은 독립협회, 중추원, 만민공동회 등의 대의제 개념을 도입했고, 박정양 내각은 그것을 상당부분 수용했다. 유길준, 서광범, 홍영식, 윤치호, 박정양 등이 모두 일본과 미국을 동시에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사실, 이들이 각각 소략하나마 일본과 미국에 대한 견문기들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이러한 견문기들에 의한 근대 경험의 서사화와 그 구체적 실천으로서의 표상공간의 변동은 근대적 미디어인 근대 문학 성립의 가장 원천적인 근거가 된다. 순한글로 쓴다는 개념은 일본적 혼종 글쓰기보다는 미국적인 공공권 개념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메이지 일본의 서양 견문기들은 질문 자체를 생산해는 기능과 함께, 메이지 유신의 성공과 한말 근대국민국가 기획의 좌초를 대조해 볼 수 있는 적잖은 단서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항적 주제의 환기는, 매우 실질적인 측면에서 그에 대한 접근 방식이나 연구사들을 통해서 다시 재참조가 된다. 예컨대, 김기수의 사행기(『日東記游』, 1876)는 1860년의 막말의 미국 사행기인 『航米日錄』(玉虫左太夫) 혹은 『村垣日記』 등과 대응되며, 조사시찰단 보고들(『문견사건』, 『시찰기』)등은 『미구회람실기』의 존재와 겹쳐 읽힌다. 이적(夷狄)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대체로 비슷한 관점에서 시작된 두 나라의 기록들이 어떤 대목에서 갈라지고 어떤 대목에서 만나는가 하는 구체적 사실들로부터 동아시아 근대의 다발들 중 많은 논제들이 들춰질 수 있을 것이다. 한일 견문의 기본 입장들이 어떤 대상, 어떤 상황에서 기성의 문화 기억(儒學․國學․蘭學․譯學․北學 등의 존재들)과 결합하거나 충돌하는지, 예컨대 기차나 화륜선과 같은 동일한 대상을 두고 각자들은 어떻게 그것을 재현하고 판단했는지를 묻는 일은 결코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병농(兵農)에 대한 주자의 전적들을 읽고, 동남으로 고혈(膏血)과 같은 쌀을 실어가는 화륜을 걱정하는 서상우․매천 황현의 관점. 박규수의 문하에서 『海國圖志』의 증기기관 해부도를 보며, 화륜 공장을 생각하는 김옥균․박영효의 관점. 열광의 정당(政黨)보다는 가치중립적으로 각각의 근대를 자기 규율에 의해 배치하려했던 박정양의 사고. 또 이러한 서책의 방략이 아니라, 직분과 가업(いえ=家)의 구조 속에서 대장공에서 조선소 기술자로 옮겨갔던 한 일본인의 식견. 난학을 읽다가, 영어의 패권을 알아버린 후쿠자와 유키치의 관점. 사쓰마․조슈 번(藩)의 전패(戰敗)에 대한 울분과 서양 군선의 장엄에 대한 충격으로 밀항을 감행하던 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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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메이지 일본이나 양무운동기 청국을 모범으로 삼은 것으로 이야기되는 조선의 근대화 기획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대항 주제로서 미국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서울이라는 ...

      흔히 메이지 일본이나 양무운동기 청국을 모범으로 삼은 것으로 이야기되는 조선의 근대화 기획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대항 주제로서 미국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서울이라는 공간의 근대화와 관련된 서사물과 논설들의 계열들은 상징적 실례가 된다.
      메이지 도쿄 모델을 생각했던 일본 체험자들의 일본 견문기는 김옥균과 박영효의 한성부개혁으로 현실화되고, 또 좌절된다. 김옥균 「치도론」 「치도약칙」에 의한 메이지 도쿄의 표상화와 이에 이어지는 모범으로서의 도쿄, 또 박영효 1883-4년 한성판윤 재임기의 치도국의 설치 기획, 그 10년 후인 1895년의 내부 대신 재임기 치도에 관한 「99개조의 훈시」 등을 『사화기략』을 통해 점검할 수 있듯이, 대한제국의 황성만들기와 공공권 창안을 미국 체험으로부터 설명할 수 있다. 미국 워싱턴 모델을 염두해두었던 미국 체험자, 혹은 미국․일본 동시체험자들이었던 박정양, 이채연, 윤치호, 유길준, 이상재 등이 그들이다. 박정양 1895년 내부대신으로서 「도로 수치(修治)와 가가(假家) 기지(基地)를 관허하는 건」의 기획실천이나, 1896년 「한성내 도로의 폭을 개정하는 건」을 내부령은 미국 워싱턴의 방사형 도시구조를 연상시킨다. 그 선행 경험-표상화/서사화-신념화와 실천의 과정은 그의 문집, [죽천집] 소재의 「美行日記」, 「海上日記」에 그 단서가 있다. 특히 주한조선대사관 외교관이었던 이채연은 대한제국기 한성판윤으로서 박정양의 개조안을 실천하여, 한성 개조 사업과 국토 개발(철도 부설 기획)을 주관했으며 워싱턴을 염두해 둔 한성의 황성화(皇城化) 계획과 근대적 표상 공간의 실천을 이끌었다. 근대적 무대 예술, 연희의 공간으로 원각사를 직접 설계하면서 오페라하우스 스타일의 원형극장건설을 시도했던 것도 미국 경험의 재현에 가깝다. 주지하다시피, 서재필과 윤치호는 독립신문의 에크리튀르를 조선의 알페벳-한글로 할 것을 주장했다. 그들은 표상 차원의 한 속성인 시민성, 미디어와 대의제를 보았던 것이다. 의사교환의 공공권의 형성을 근대화의 핵심으로 이해한 이들은 독립협회, 중추원, 만민공동회 등의 대의제 개념을 도입했고, 박정양 내각은 그것을 상당부분 수용했다. 유길준, 서광범, 홍영식, 윤치호, 박정양 등이 모두 일본과 미국을 동시에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사실, 이들이 각각 소략하나마 일본과 미국에 대한 견문기들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이러한 견문기들에 의한 근대 경험의 서사화와 그 구체적 실천으로서의 표상공간의 변동은 근대적 미디어인 근대 문학 성립의 가장 원천적인 근거가 된다. 순한글로 쓴다는 개념은 일본적 혼종 글쓰기보다는 미국적인 공공권 개념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메이지 일본의 서양 견문기들은 질문 자체를 생산해는 기능과 함께, 메이지 유신의 성공과 한말 근대국민국가 기획의 좌초를 대조해 볼 수 있는 적잖은 단서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항적 주제의 환기는, 매우 실질적인 측면에서 그에 대한 접근 방식이나 연구사들을 통해서 다시 재참조가 된다. 예컨대, 김기수의 사행기(『日東記游』, 1876)는 1860년의 막말의 미국 사행기인 『航米日錄』(玉虫左太夫) 혹은 『村垣日記』 등과 대응되며, 조사시찰단 보고들(『문견사건』, 『시찰기』)등은 『미구회람실기』의 존재와 겹쳐 읽힌다. 이적(夷狄)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대체로 비슷한 관점에서 시작된 두 나라의 기록들이 어떤 대목에서 갈라지고 어떤 대목에서 만나는가 하는 구체적 사실들로부터 동아시아 근대의 다발들 중 많은 논제들이 들춰질 수 있을 것이다. 한일 견문의 기본 입장들이 어떤 대상, 어떤 상황에서 기성의 문화 기억(儒學․國學․蘭學․譯學․北學 등의 존재들)과 결합하거나 충돌하는지, 예컨대 기차나 화륜선과 같은 동일한 대상을 두고 각자들은 어떻게 그것을 재현하고 판단했는지를 묻는 일은 결코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병농(兵農)에 대한 주자의 전적들을 읽고, 동남으로 고혈(膏血)과 같은 쌀을 실어가는 화륜을 걱정하는 서상우․매천 황현의 관점. 박규수의 문하에서 『海國圖志』의 증기기관 해부도를 보며, 화륜 공장을 생각하는 김옥균․박영효의 관점. 열광의 정당(政黨)보다는 가치중립적으로 각각의 근대를 자기 규율에 의해 배치하려했던 박정양의 사고. 또 이러한 서책의 방략이 아니라, 직분과 가업(いえ=家)의 구조 속에서 대장공에서 조선소 기술자로 옮겨갔던 한 일본인의 식견. 난학을 읽다가, 영어의 패권을 알아버린 후쿠자와 유키치의 관점. 사쓰마․조슈 번(藩)의 전패(戰敗)에 대한 울분과 서양 군선의 장엄에 대한 충격으로 밀항을 감행하던 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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