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셰익스피어의 연구 영역이 문학에서 문화로 이동해가고 있는 현실을 너무도 자명하게 보여준 영상, <클루리스>(Clueless, 1995)의 분석으로 연구는 시작된다. 제인 오스틴(Jane Austin)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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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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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셰익스피어의 연구 영역이 문학에서 문화로 이동해가고 있는 현실을 너무도 자명하게 보여준 영상, <클루리스>(Clueless, 1995)의 분석으로 연구는 시작된다. 제인 오스틴(Jane Austin)의 <에마>(Emma)를 각색한 이 틴에이지 영화의 여주인공은 대중문화, 미디어, 패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베버리 힐즈의 여고생 셰어(Cher)이다. 그녀에게는 의붓오빠가 있고 그에게는 자신이 하버드대 학생이라는 사실을 과시하는 애인이 있다. 그녀가 <햄릿>에 등장하는 폴로니우스(Polonius)의 대사("to thine own self be true")를 햄릿의 대사라고 주장하자 셰어는 폴로니우스의 대사라고 정정해준다. 오빠의 애인은 자신이 <햄릿>을 정확히 알고있다고 응수하자 셰어는 자신이 <햄릿>은 몰라도 “멜 깁슨(Mel Gibson)은 확실히 알고 있다”며 통쾌한 승리를 거둔다.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심각하다. 상류층의 문화적 유행은 무엇이며 기호로서의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셰어는 <햄릿>을 읽은 적이 없고 그녀가 <햄릿>에 대해 습득한 정보는 프랑코 제피렐리(Franco Zeffirelli)가 감독한 <햄릿>만을 통해서이며, 좀 더 정확히 언급하면 햄릿 역의 멜 깁슨(Mel Gibson)의 연기를 통해서이다. 이러한 사실은 셰어의 문화적 문맹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교양을 의미하는가? 이 영화는 대중에게 제인 오스틴이건 셰익스피어이건 간에 원작보다는 원작을 가공한 영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셰어가 <햄릿>을 재구성하는 설정은 <햄릿>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문화현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 대중영상에서 도용된 <햄릿>은 전통적인 영문과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더욱 자주 일반에게 모습을 드러냈고 까메오(cameo)처럼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예기치 않게 등장했다. <햄릿>을 도용한 장르는 너무도 다양했다. 올리버 스톤(Oliver Stone)의 다큐멘터리식 영상 <JFK>(1991)는 케네디를 선왕에 비유하며 결국 케빈 코스트너처럼 미국의 가치관을 보호할 수 있는 변호사만이 햄릿이 될 수 있다는 메세지로 케네디 암살을 조명했고, 아놀드 슈왈츠네거(Arnold Schwarzenegger)가 <라스트 액션 히어로>(Last Action Hero, 1993)에서 연기한 햄릿은 클로디우스를 포함한 영화 속의 못마땅한 존재들을 기관총 난사를 포함한 폭력으로 분쇄하며 <햄릿>을 읽지 않은 실제 관객들에게 햄릿의 이미지를 액션 영웅으로 각인시켰다. <햄릿>을 번안한 액션 <르네상스 맨>(Renaissance Man, 1994)에서는 <햄릿>을 통하여 남성간의 유대가 강화되며 거르투르드가 비하된다. 등장인물 대니 드비토(Danny DeVito)와 미군은 <햄릿>을 완벽에 가까운 정훈교재로 인식하고 있다. 지나치게 겁을 먹거나 군대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군인을 규합하여 정예군으로 만드는 교재로서 그러하다. 1995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촉망받는 셰익스피어 배우, 케네스 브라나(Kenneth Branagh)가 감독, 연기한 <한겨울 이야기>(The Midwinter's Tale, 1995)는 영국의 한 지방에서 있었던 <햄릿>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브라나 자신이 1년 뒤 주연한 여성혐오적인 <햄릿>의 컨셉을 그대로 가지고 갔다. 1994년부터 2004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3번에 걸쳐 제작된 디즈니사의 <라이온 킹> 역시 <햄릿>을 각색하면서 시작부터 2004년의 패로디 버전에 이르기 까지 집요하게 백인상류사회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였다.
그렇게 대중영상에서의 <햄릿>은 틴에이지, 다큐멘타리, 액션, 디즈니에 이르기 까지 더 이상 우유부단의 대명사가 아닌 것으로 현시된 것이다. 그는 오이디푸스적 반역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강하게 길들이는 본질주의자(essentialist)가 되었고, <라이온 킹>의 삼촌 역 스카(Scar)를 동성애자로 설정하는 컨셉에서 보여지듯 아들은 아버지를 복수함과 동시에 악한 동성애자마저 무찔러 여성의 욕망을 비롯한 ‘일탈된’ 성을 잠재우면서 건전한 미국 상류층 건설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햄릿>은 연극 무대는 물론 고전과 실험적 셰익스피어 영상 제작 모두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페미니스트와 젠더 비평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상대로 숨어들어 보수적인 세계관을 구현함으로서 엘리트가 관람하는 명백한 셰익스피어 영상과 셰익스피어가 아닌 듯 하여 대중이 관람하는 영상을 향한 헐리우드의 이중잣대를 여과없이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영상들은 단순히 전통적 가치를 재구현하기 위하여 셰익스피어를 도용한 것으로 결론지어야 하는가? 이 영상들이 새롭게 대두한 미국식 문화제국주의의 승리를 강조하거나 셰익스피어를 미국인으로 대체하지는 않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이 영상들이 셰익스피어를 몰아내고, 무시하고, 도용하고 있는 만큼이나 영화는 나름대로의 미학적 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