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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이 전쟁과 바다의 민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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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I. 머리말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놓고 주장된 기존의 두 학설은 다음과 같다. 트로이 전쟁은 에게 해에서 흑해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잡아 번영을 맞은 트로이를 미케네 그리스인들이 약...

      I. 머리말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놓고 주장된 기존의 두 학설은 다음과 같다. 트로이 전쟁은 에게 해에서 흑해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잡아 번영을 맞은 트로이를 미케네 그리스인들이 약탈하기 위해 행한 전쟁이었다고 오랫동안 주장되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아시아 서부 해안을 놓고 히타이트와 대치하던 미케네 그리스가 히타이트의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히타이트의 봉신국이었던 트로이를 장악하여 해안 지역 전체를 차지하기 것이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라고 주장된다.
      본 연구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 또는 의미를 좀 더 넓은 범주인 동 지중해권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던 바다의 민족들과 연결시켜 찾으려 한다. 바다의 민족들이 이집트에 침입하려 하였으나 격퇴되었다는 기록이 파라오 메르네프타 5년(기원전 1232년)과 람세스 3세 5년(기원전 1194년)에 제작된 두 승전비에 기록되어 있다. 이 연구의 목적은 트로이 전쟁이 두 침입사건의 사이에 벌어졌으며, 두 침입 사건 모두에 미케네 그리스인들이 관여되었으며, 동 지중해권의 차원에서 트로이 원정은 바다의 민족들로서 미케네 그리스인들이 벌였던 활동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데에 있다.

      II. 트로이 전쟁 이전, 미케네 그리스인들과 바다의 민족들
      이집트측 사료와 그리스의 전승을 통해 미케네 그리스인들이 파라오 메르네프타 치세에 이집트에 침입을 시도한 바다의 민족들의 하나였음을 제시하려 한다. 예를 들면, 그 파라오의 승전비에는 이집트 침입을 기도했던 다섯 바다의 민족들 중의 한 민족으로 ʼIḳwš가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모음을 삽입하면 알파벳으로는 Akawasha, Akaiwasha, Ekwesh로 다양하게 재구성해낼 수 있는데, 이들을 미케네 그리스인들의 다른 명칭인 Achaioi(아카이오이, 즉 아카이아인들)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여기서는 그러한 주장의 근거들을 소개하고, 그리스 사료 중에서 트로이 전쟁 이전 바다의 민족들의 활동으로 볼 수 있는 미케네 그리스인들의 활동을 분석해볼 것이다.

      III. 귀향하는 트로이 원정군과 바다의 민족들
      트로이 원정군은 승전 후 곧바로 그리스로 귀향하지 않고 이집트와 에게 해 지역의 섬들에 침입한다. 귀향자들의 대부분은 해로를 택하지만 일부는 육로를 취한다. 귀향자들이 이집트를 침입하려 했던 바다의 민족들의 주요 세력이었음을 논증하려 한다. 히타이트측과 이집트측의 기록을 통해, 그리고 특히 그리스측 기록을 세밀히 분석하여 그들이 취한 해로와 육로를 추적할 것이다.

      IV. 맺음말
      바다의 민족들에는 그리스인들이 주요세력이었다는 결론을 근거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해보려 한다. 트로이 원정군은 트로이를 함락한 후, 트로이에 주둔하지 않고 왜 육해로를 통해 키프로스, 페니키아, 이집트 쪽으로 남하하다가 결국 파라오로부터 이집트 접경인 가나안 해변에 정착지를 받고 정착한다. 그런데 그리스에서 제작된 도기 LHIIIA와 B(이 유형의 도기는 대략 1470-1220 BC에 사용되었다)는 히타이트 제국을 제외한 동 지중해권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발굴되었다. 그리스의 도기의 확산이 ‘미케네의 평화(Pax Mycenaeaca)’의 결과였는지, 아니면 ‘이집트의 평화(Pax Aegyptiaca)’의 결과였는지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기원전 1470년부터 1370년까지 이집트가 그 지역에서 지배적인 세력이었고 기원전 13세기 말까지도 군사적·정치적·문화적으로 중요한 세력으로 남았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역과 번영이 ‘이집트의 평화(Pax Aegyptiaca)’ 하에 일어났다고 가정하는 것이 더 타당하게 보인다. 미케네 그리스가 이집트로부터 수입한 물품 중에는 식량이 중요한 물품이었을 것이다(그리스는 척박한 지역이라 고전기에도 흑해 등지에서 식량을 수입하였다). 그런데 ‘이집트의 평화’가 와해되면서 동 지중해권의 교역망도 작동되지 않아 미케네 그리스는 이집트로부터 더 이상 식량을 수입할 수 없었고, 외부로부터의 식량수입에 의존한 미케네 문명이 와해되어 가는 중에 그리스인들이 바다의 민족들의 일부가 되어 이집트로 향하였을 가능성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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